
라오콘의 절규
인간은 태어나면서 하느님으로부터 특권을 부여받았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땅의 모든 만물을 지배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특권은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무차별적으로 내려주신 특별한 은총이다.
은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그 시대에 적합한 문명을 일구어내면서 삶의 흔적들을 남겨놓았다.
현대인들은 각 나라별로 이를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보존해오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를 떠나 타국의 문화를 접하고자 문화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하여 우리들은 오늘도 배낭을 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의 탈피가 아니라 삶의 자리를 잠깐 동안 옮겨서 낮선 문화에 노출되기를 즐겨한다.
올 해는 좀 특별한 여행을 하였다. 다름 아닌 해외 성지 순례 여행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되 미술과 건축 부문에 초점을 맞추었다. 가톨릭문화의 중심인 이태리를 중심으로 하고 자연의 보고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 이르는 성지순례 여행을 다녀왔다. 로마에서 이틀을 보내며 말로만 들어왔던 중세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마치 기억이 봉인된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만났던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작 ‘라오콘상’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동을 종이 위에 그려보려고 시작해본다.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리며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것 같이 온몸에 전율이 흐름을 느낀다.
라오콘 상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그리스 신화와 연결된 트로이 전쟁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다.
터키를 여행했을 때 트로이 목마를 보기위해 장거리를 이동했던 기억이 난다.
해안가에 남아 있는 트로이 성곽 유적을 둘러보았지만 이보다는 트로이 목마를 보고자 하는 욕망이 더 앞섰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목마는 다시 만들어지고 있었을 뿐 신화 속에서 만났던 트로이 목마는 없었다.
라오콘상이 조각가의 손길로 만들어지는 데는 트로이 전쟁사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그리스가 견고한 트로이 성을 점령하기 위해서 트로이 목마를 고안해낸다. 오디세우스는 목마를 만들어 아테나 여신에게 봉헌하고 트로이 성 앞에 세워두고 자신의 군대를 철수시키는 위장전술을 사용한다.
반면에 트로이 성안에는 시논이라는 스파이를 침투시켜 트로이 인들을 설득한다. 이때 트로이 아폴로 신전의 신관인 라오콘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목마의 배를 향해 창을 던지기 까지 한다. 라오콘은 그리스 군이 철수하는 것을 진심으로 믿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풍랑을 일으켜 그리스 군을 물리쳐 달라고 소를 제물로 바친다.
이를 본 아폴로 신은 프로케와 카리보이아 라는 바다뱀을 보내어 라오콘 신관과 두 아들을 물어 죽이게 된다. 트로이 인들은 라오콘이 목마에게 불경한 짓을 하였다고 하여 목마를 성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러나 목마 안에는 그리스 군이 숨어 있었으며 난공불락의 트로이성은 삽시간에 함락된다.
트로이 전쟁에서 나오는 라오콘이 뱀에 물려죽는 장면을 그리스 로도스 섬 출신 조각의 거장 아케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도로스가 함께 라오콘 군상을 만들게 되었다. 이 조각상은 1506년 로마의 에스퀼린 언덕에서 농부에 의해 발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티칸 박물관으로 들어서자 많은 관광객들이 한곳에 몰려 있었다. 웅성거림이 출입구를 통하여 들려왔다. 까치발을 서 보았지만 서양 사람들의 키 높이를 쫓아갈 수 없었다.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맨 앞에 자리를 잡고 바라보니 바로 그 유명한 라오콘 군상이 아닌가. 뱀이 두 아들과 라온콘을 칭칭 감고 허리춤을 물어뜯으려 하고 있다. 뱀이 조여 오는 고통을 이기려 라오콘은 한 손에 뱀을 움켜쥐고 최후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뱀과의 사투에서 온 힘을 쏟는 라오콘의 근육질과 리얼하게 표현한 힘줄에서 생명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라오콘 얼굴에서 나오는 고통스런 표정은 필경 뱀과의 사투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들 또한 뱀에게 자신의 몸을 내맡긴 채 아버지를 바라보며 구원의 손길을 보내보지만 아버지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이 죽어가고 있다. 왼쪽 다른 아들도 체념한 고통스런 인상과 근육, 핏줄이다. 뱀이 물어서 독이 핏줄을 타고 흐르듯이 선명하게 보이는 핏줄은 사실주의의 극치가 아닐까. 이는 조각가의 예술혼이 라오콘 군상에 집중된 결과이다. 하이얀 대리석을 쪼아서 극도로 리얼하게 표현한 이 작품은 조각상이 아니라 실제 인물처럼 다가온다. 사람들은 죽음의 고통스런 모습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리얼한 표현 그 자체를 바라보며 생명의 힘을 느끼기 위해 찾아왔을 것이다. 또한 조각상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이면에 흐르는 트로이 전쟁 신화를 이 군상에서 확인하고 싶었을 게다. 라오콘 군상을 바라보며 우리는 예술가의 혼과 열정을 만나고 그리스 신화 속으로 떠나는 또 다른 여행의 발걸음을 떼게 되는 것이다. 종국에는헬레니즘 문화를 엿보게 된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면서 고대 근동지역과 지중해 연안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만들어진 문화가 바로 헬레니즘 문화이다. 즉 그리스 정신과 동방 정신이 융합된 범세계적 문화로 일컬어진다.
전해오는 미켈란젤로의 일화도 만날 수 있다. 라오콘 상 발견 당시 오른쪽 팔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 팔이 쭉 펼친 것인지 아니면 현재처럼 구부려 진 것인지 논란이 있었다. 이 때 미켈란젤로는 현재처럼 구부려 진 채로 조각되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모여 펼쳐진 것으로 결론에 이르렀고 쭉 펴진 팔로 만들었단다. 훗날 발견된 오른쪽 팔은 현재의 모습이었다. 미켈란젤로의 통찰력이 입증된 셈이다. 미켈란젤로는 항의의 표시로 훗날 시스티나경당에 그린 최후의 심판에서 예수님의 팔을 라오콘상의 오른 팔처럼 그렸다고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삶의 여정은 길어야 100년이 아닌가. 그러나 건강하게 맑은 정신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은 얼마일까. 삶의 여정 속에서 향기 나는 행복한 삶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내가 살고 있는 작은 공간을 박차고 나와 여행을 통해서 세계 도처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산을 접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해준다. 더 넓고 큰 세상을 향해 배낭을 싸자. 그리고 떠나보자. 생각지도 못했고, 잊어버리고 지내왔던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그 곳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삶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라오콘상 앞에서 예술가의 혼을 만나며 오랜 과거 역사 속으로 시계추를 돌려 시간을 봉인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2012.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