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6년 8월, 조선 최초의 국모 강비는 왕후가 되신지 겨우 4년 만에 승하하신다.
살아생전에 태조의 사랑과 아들이 곧 왕위에 오를 것이란 기쁨 속에서 눈을 감았겠지만...
신덕왕후의 장례는 조선 건국 최초의 국장이 되었다. 첫 능지는 안암골로 잡았으나 물이 솟아 도성 안 황화방 북원(현 덕수궁 옆 영국대사관과 정동 미국대사관저 영내 인근)에 능을 조성하여 ‘정릉’이라 불렀다. 지난 번에 마담올리브님이 멋지게 불러주셨던 ‘광화문 연가’에서 “덕수궁 돌담 길...언덕 위 정동길...” 찾으면서 나오는 ‘정동’이란 이름 역시 정릉에서 연유한 것이다.
2년 후, 방원이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으로 두 아들 모두 죽음을 당하였으나, 강비가 직접 겪지는 않았으니 어찌 보면 오히려 다행이랄 수도 있겠다.
왕자의 난 이후 이성계는 어쩔 수 없이 둘째 방과에게 보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고, 2대 정종 역시 모양새 좋으라고 억지로 떠맡은 왕위에 연연하지 않고 2년 만에 부인(정안왕후 김씨)의 말씀을 잘들은 덕에 왕좌를 동생 방원에게 잽싸게 돌려주고 개성으로 돌아가 상왕의 자격으로 인덕궁을 지어 놓고 유유자적 격구나 즐기시면서 남은 생을 보낼 수 있었다. (조선 27왕 중 젤로 뱃속 편하셨던 나랏님)
1400년, 조선 3대 왕으로 즉위하며 원(願) 풀은 태종은 태상왕인 이성계가 1408년 5월, 승하하자 도성 내에 무덤을 둘 수 없다하며 신덕왕후 강비의 정릉을 양주 사을한록(현 정릉동)으로 이장시켰다.
태종은 신덕왕후를 제례에서 제외시키고, 서모의 예로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이장 후, 한 달 뒤 정자각을 헐어서 목재와 석재를 태평관을 짓는데 사용하면서, 능 앞의 석인은 묻어버리고, 봉분은 깍아서 평분을 만들어 흔적을 남기지 말라 명하였다. 더욱이 그 해 광통교(현 광교)가 홍수에 무너지자 정릉의 석물 중 병풍석, 우석 등을 복구공사에 사용하였다.
(청계천 복원공사에서 615여 년 전 舊정릉에 사용되었던 병풍석과 우석의 영저, 영탁 조각이 그대로 발견되었는데, 조각의 상태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보다 훨씬 뛰어(??) 날 수 밖에...)
1410년에는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지위를 격하시켜 종묘에 부묘시키지 않으며 수백 년간 방치시킴으로써 신덕왕후는 종묘의 제사를 받지 못하였었다. 이후 선조 때 복귀의 논의가 있었으나 중단되었고, 1669년 2월(현종10년) 송시열의 상소로 그 해 11월 1일 신덕왕후의 신위가 260년 만에 종묘에 다시 배향되었다. 당시 정릉골에만 쏫아져 내렸던 비를 백성들은 “세원지우(洗怨之雨: 원한을 씻어낸 비)”라 불렀다.
청계광장을 찾으실 때 조금 관심을 가지시고 한 번 둘러보세요, 광장입구에서 좌측계단으로 내려가시면 복구된 광통교 아래 아직도 旧정릉의 무덤을 둘렀던 12면의 병풍석들이 남측과 북측 석벽에 몇몇은 방향조차 거꾸로 박힌 채 그대로 그 자리에 석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신덕왕후 강비의 정릉 전경과 능침 : 능 앞의 장명등과 혼유석, 고석 등은 초창기 석물 그대로 이다.


- 청계천 국제관광공사 앞에 놓여있는 광통교와 석축에 사용된 옛 정릉의 병풍석 및 우석(코너석).
병풍석은 12지신상을 새겨 무덤의 하단부를 12방위로 보호하고 있는 돌이다. 우석은 병풍석 사이의 코너 마춤돌로 역시 12개 이다. 좌측 1단과 2단의 병풍석은 그림조차 거꾸로 놓여져 있다. 그 옛날부터...
첫댓글 또하나입니다.
가는 곳곳마다 사진을 찍으시더니만~~
와아
하나님 대단하십미당...
앗~청계천을 자세히볼껄~^ㅎ
근데요~뭐든지 하려면 잽싸게~정종처럼 잽싸게해야
일신이 편하다는거~~^ㅎ
잘읽었어유~내일은 뭘까? 할아버지 옛날얘기 기다리는 얼라들모양~^^ㅋ
글씨...을매나 한이 맺혔으면..
지하에서 얼마나 한스러웠음 저런 고사성어가 다 생겼을까요

이글 먼저 읽었음 나도 청계천 오늘 광통교 쪼오기 마주 내려다봤었는데...담에 갈 기회있음 꼭 찾아보겠습니다.

넘 잼있어요.
태조이성계도 글치....멀쩡하고 장성한 향처 아들을 두고 경처 베갯머리 송사에 눈이 멀어 아들 잃고... .신덕왕후 역시 죽어서도 왕후대접도 못 받고
청계천 복원 당시 그에 대해 말 많았던 것 읽었어요..
근래 정릉 근처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정릉이 아파트 뒤에 쏙 숨어 있는데..참 좋다해서 도시락 싸들고 함 소풍가자 했는데..곧 가볼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그때 잘난 척 해야쥐
크고 작은 다툼은 어디에나,


'그래도 아버지의 부인이었는데' 하는 공자님 말씀은 접어 둬야,,,,,,,
눈에 핏발 세운 이전투구의 끝은 인생무상
왕후가 됐으면 거기에 만족해야 하는데 친아들을 태자로
으려다 형제의 난을 불렀으니...
북한산은 자주 올라갔으면서 실제 정릉은 한 번도 못 가봤네요


.. 감사합니다. 
성북구 정릉이죠
경처와 함께 청계광장 가봐야겠네요
하나또하나님
신덕왕후 강비의 사연이....
1~3편까지 단숨에 읽었습니다. 사진 자료까지 준비하셔서 재미있고 쉽게 풀어주시니 아주 좋네요.^^
소피님~~ 정말 오랫만이시네요. 건강하신가요?
또하나입니다.
안녕하셨어요? 두 분도 건강하시지요?^^
1~3편까지 지도 단숨에 읽었습니다 전 청계천 보았는데 걍 무심코 지나쳤는데 ~~
역사공부를 다시하는거같습니다 역사에관심이많았는데 조은글사진너무재미있게봤네요 나중에책으로 내면좋을거같아요 하나또하느님!
와우~! 새삼스레 흥미진진~ ~ 다음회가 기다려집니다 ^^
잘 읽었습니다.
지식이
쌓이는 만큼
역사 공부도 깊어지지요.
역사의
문화에 대한
눈을 뜨게 되면
그 여행의
재미도 배가가 되고
본인은 물론
우리 아이들과
그 이후
손자들에게도
할 이야기가 참
많아지겠지요.
저는
역사학도는
아니지만 조금씩
동서양의
고른 독서를
하려 노력합니다.
사는 게
고단하여
여행은 많이
다니지도 못했지요.
멀지만
시공간을
초월한 인류자산을
만끽하는 즐거움을 책과
함께
나누면서
의식을 한층
고양시키며 삽니다.^^
긴 글을
올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하나또하나님.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
선생님 글이 넘 깁니다요
학상이 쓸 려니 한참을 내려와야 허네요 쪼까 줄여주시모 선상님께 감샤허겄십니더
너무 욕심내지않고 잘 살아야 하겄따는 생각이 간절하네요
와! 쓰시느라고 너무 수고하셨어유
저도 단숨에 읽고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