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고래 조련사였던 여자는 쇼를 하던 중 사고로 두 다리를 잃게 된다. 물속에서 정신을 잃은 그녀가 병원 침대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다리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사랑해마지않던 그녀의 직업과 그녀의 연인, 그리고 클럽에서 남자들의 시선을 한껏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여성으로서의 자신도 그날 그 사고와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 이것은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러스트 앤 본(De rouille et d'os)'에서 목격하게 되는, 한 인간이 '상실'을 경험하며 '결핍'의 상태로 접어드는 순간이다.
우리는 채워지지 않을 결핍을 가지고 태어났다
결핍(缺乏). Le Manque.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람을 뜻하는 이 단어의 뜻을 조금 더 확장시켜 본다면 부족, 결여에서 시작해 공허와 허무를 지나 욕구와 욕망에 닿는다. 자크 라캉 역시 '욕망은 결핍'이라고 주장했는데, 그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필연적으로 의식 속에 결핍을 가진다. 상징계에 접어들어 자아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결핍을 인지하게 되고, 결핍은 곧 욕망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원천적인 것이므로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하는 되는 것, 그러나 죽을 때까지 채워지지 않으므로 평생 공허함과 좌절을 겪어야 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숙명이라는 얘기다.
채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핍이 아니다. 뚫린 벽을 메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구멍이겠지만, 그 벽을 통해 햇살을 받고 싶다면 구멍은 창문이 된다. 스스로가 결핍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채로 완성된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결핍감을 느끼는 순간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미완의 것이 되고 모든 생성은 시작된다.
많은 예술 작품이 예술가 개인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결핍과 그것을 채우려는 아주 사적인 욕구에서 출발한다. 간혹 이러한 개인의 결핍이 사회의 욕망으로 확대되어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1960년대 미국 문화의 흐름을 예로 들 수 있겠다. 1960년대 미국문화를 주도했던 사이키델리 록(Psychedelic Rock)과 히피 문화는 미국 경제가 초고속 성장을 이룬 뒤,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느낀 정신적 결핍에서 시작되었다. 푸코와 들뢰즈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런 면에서 '욕망은 결핍'이라는 자크 라캉의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어디 예술뿐이겠는가. 우리가 지금 아무 불편함 없이 사용하고 있는 모든 기기와 사회제도 역시 그 시작은 결핍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발명의 역사는 사실 '결핍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내가 너의 다리가 되어 세상을 건너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처럼 결핍을 가지며 그것을 채우기 위해 애쓴다는 라캉의 이론은 제우스 신에 의해 반으로 갈라지는 그리스 신화 속 인간의 모습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그리고 이 신화 속 이야기는 종종 인간이 평생 '나의 반쪽'을 찾아 헤매는 이유를 낭만적으로 해석하는 근거로 쓰인다.
두 다리를 잃은 여자는 한 남자를 만난다. 남자는 다리가 있던 여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고, 누나의 집에 얹혀산다. 예전에 복싱을 조금 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클럽이나 마트에서 경호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물이며, 예민하지 못한 감성을 가졌다. 그는 두 다리를 잃은 여자도 오르가슴을 느끼는지 궁금할 뿐이고, 그렇게 시작된 둘의 관계가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둔하다. 그 둘의 사랑은 이미 오래전 시작되었지만, 아들의 사고가 아니었다면 그는 끝내 자신을 마음을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인생은 결핍 그 자체였지만, 그는 마음이 결핍된 탓에 그 결핍을 인식조차 못 했던 것이다.
영화의 포스터에는 다리를 잃은 여자를 업은 남자의 모습이 담겨있다. 남자가 여자의 잃어버린 두 다리가 되어줄 때,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채워 함께 세상을 건넌다. 결핍이 또 다른 결핍을 만나 잠시나마 풍요로워지는 순간이며, 태어날 때부터 결핍을 가진 우리 모두가 꿈꾸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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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의 시 '꽃'의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라는 구절이 계속 입에서 맴도는 것은 내 두 다리를 내어주어도 좋을 누군가가 '결핍'되었다는 신호로 봐야 할까.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만 같은 기분은 언젠가 우리의 결핍이 누군가에 의해 메워지고, 우리 역시 누군가의 결핍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남겨두어도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