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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message 입술의 열매 39가지 (22P)
(약이 되는 말)/ 꿈 많은 사람 지음/ 하늘사다리
*둘씩 짝을 짓고, 함께 글을 읽고서 훈련한다.
계속하여 천국 방언으로 서로 축복하며, 선포하게 한다.
내가 정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인지, 이 축복의 말들이 정말 내 삶에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을 해 본다.
배종부 목사의 ‘사랑의 천국방언’
1. 고맙습니다.
2. 감사합니다.
3. 미안합니다.
4. 죄송합니다.
5. 반갑습니다.
6. 사랑합니다.
7. 잘했습니다.
8. 믿겠습니다.
9.“괜찮습니다. 다 모르고 그랬는걸요!”
10.“괜찮습니다. 함께 삽시다.”
11.“괜찮습니다. 다 나 때문입니다.”
12.“괜찮습니다. 내가 부족입니다.”
13.“걱정마세요. 다시 회복하면 됩니다.”
14.“잘 믿어야 합니다.”
15.“잘 살아야 합니다.”
16.“잘 죽어야 합니다.”
17.“영원히 천국에서 살아야 합니다.”
1.감사합니다.
이 말 만큼 좋은 말이 또 있을까요?
감사할 줄 알면, 인생을 다 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사 학위를 몇 개를 받았다 해도 감사할 줄 모른다면 아직 참 사람은 아닙니다. 사람은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개도 꼬리를 흔들며 적극적으로 감사의 표시를 합니다.
이웃에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성실하던 아이가 친구를 잘못 사귀어 비뚤어졌습니다. 때로는 타이르고 때로는 나무라며 온갖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어느 날 탈선의 현장에서 잡아 온 아버지가 참다 못해 매를 들었습니다. 이 때 나타난 딸의 반응을 보십시오.
"당신이 나한테 뭐 해 준 게 있다고 때리는 겁니까?"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건강해서 감사, 몸이 좀 불편해도 병원에 입원 안하니 감사, 입원했다 해도 죽을 병이 아니니 감사, 예수 믿으니 감사, 북한에 태어 나지 않고 자유의 땅에서 태어나니 감사...
아직도 북한의 김정은을 두둔하며, 우호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사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별빛 같은 은혜에 감사하면, 달빛 같은 은혜를 주시고, 달빛 같은 은혜에 감사하면, 햇빛 같은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26)
2.결심이 대단하시군요.
좋은 일에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내가 내리는 결심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결심과 결단력이 주어져야 합니다. 이는 기도의 사람이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인생의 큰 선회는 대단한 각오와 결단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러나 나쁜 일은 아무런 결심이 없이도 잘 됩니다. 매일 아침 조깅을 하는 것도 보통 결심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도시인들은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에스컬레이터나 엘이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걸어서 오르려 해도 왠만한 결심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아파트 12층에 사는 어떤 이는 계단을 걸어서 오르 내립니다. 그러나 이 결심을 어기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가 많습니다. 조금만 짐이 있어도, 조금만 피곤해도 엘리베이터 단추로 손이 갑니다.
일기를 쓰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에 들어 가기까지 하루도 일기를 거르지 않은 학생이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 간 바로 며칠 후 생전 처음 술에 취해 밤 늦게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머니는 기가 막혔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고 배신감이 온 몸을 사로잡았습니다. 믿었던 모범생 아들의 뒷모습을 허탈감으로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이 빛났습니다. 아들의 앞에는 일기장이 펼쳐져 있었고, 자신의 연약한 결심을 반성하는 일기가 그 늦은 밤에도 어김없이 쓰여지고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살후3:13)
3.그 말씀 늘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도 변치 않고, 오래 오래 간직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돌에다 새기는 방법입니다. 바닷가 모래 위에 쓰면 몇 초를 넘길 수 없고, 종이에나 가죽에 써도 변색하거나 훼손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돌에다 깊이 새겨 놓은 글자는 몇 백년이 지나도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돌 보다 더 견고하고 오래 오래 간직되는 방법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 판에 새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두 돌판은 지금 찾을 길이 없지만, 마음 판에 새겨 주신 말씀들은 수 천년을 지난 오늘도 변함없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세요. 힘이 됩니다.
세상의 그 어떤 무기 보다 더 큰 능력이 됩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6:6-7)
4.그 생각이 더 옳은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자기 것에 애착이 더 있습니다. 자기 자식이 더 예뻐 보이고, 자기 생각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방어벽을 높이 쌓고 보호하려 듭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서 "어찌 이리도 털이 부드러울까?" 한답니다.
자기 것을 아끼는 마음은 좋습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내 것이니까, 우리 나라 것이니까 좋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전통문화’ 라는 이름 아래 무속적이고 미신적인 행위를 마냥 좋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고, 옳지 않으면 우리 것이라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내 의견이 타당성이 있더라도 남의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람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계획해서 내놓은 의견이기 때문입니다. 내 의견보다 더 옳다면 과감하게 찬성해 주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태도입니다.
속으로는 내 생각보다 옳다고 인정하면서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에 모른 척 하지 마시고, 당당하게 말하세요.
"그 생각이 더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5.그 옷 잘 어울리네요.
우리는 옷차림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거울 앞에 서는 이유가 얼굴 아니면, 옷차림 때문일 것입니다. 옷차림은 인격을 나타 냅니다. 직업을 나타내기도 하고, 성격을 나타 내기도 합니다.
어울리게 입는 것은 그 옷의 가격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환경에 가장 적합하게 입는 것이 어울리는 옷차림입니다.
학생 다운 옷차림, 가정 주부 다운 옷차림, 직장인 다운 옷차림이면 최고의 멋쟁이입니다.
분위기에 잘 맞는 옷을 입는 분이 오셨나요?
가볍게 한 마디 하세요.
"그 옷 잘 어울리네요."
작은 말 한 마디가 천국을 만듭니다.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 난다.' 하느니라.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31:25-30)
6.그 용기 대단하군요.
일반적으로 판단할 때 불가능 하다고 여겨지는 일에 도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6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대학에 도전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조지 포먼은 권투 선수로는 환갑이라는 30세가 훨씬 넘은 45세의 나이로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역사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복서' 라는 별명 속에 묵직한 주먹을 날렸었습니다.
칠순을 넘긴 노부부가 높은 산을 오르는가 하면,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강물에 뛰어 드는 용감한 시민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용기는 지친 우리의 삶에 용기가 됩니다. 신선한 삶의 청량제가 됩니다.
용기란 앞에서 말한 극적인 것 만은 아닙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용기도 많습니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아이들을 건네 주는 용기, 두 발이 없이 기어 다니며 물건을 파는 불쌍한 이웃에게 작은 물질로나마 도와 주는 용기, 길가에 버려진 휴지를 쓰레기통에 주어 넣는 작은 용기, 이런 용감한 분들에게 격려해 주세요.
"그 용기 대단하군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히10:35)
7.그렇게 하겠습니다.
순종이 말은 쉬운데, 쉽게 되지 않습니다. 자신은 밑의 사람에게 순종을 요구하지만, 막상 순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가장 큰 것이 순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이 순종의 사람이냐, 불순종의 사람이냐에 따라 쓰임 받고, 버림 받는 차이를 가져 왔습니다.
순종하는 것이 천천의 수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께서는 더 좋게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야구 경기를 보면 감독이 타자에게 희생 번트를 지시할 때가 있습니다. 선수 입장으로 볼 때 컨디션도 좋고 안타를 날릴 만한 자신도 있는데, 감독은 번트를 요구합니다. 멋진 안타를 날려서 점수를 내고 그 날의 영웅이 되고 싶은데, 감독은 희생 번트를 지시합니다. 그럴 때 훌륭한 선수는 묵묵히 희생 번트를 내어 자신은 죽고, 주자를 1루 더 진루시킵니다. 만일 지시를 어기고 홈런을 쳤다고 해도 그 선수는 훌륭한 선수라 할 수 없습니다.
내 입장에 맞지 않더라도 순종하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8."기도 하겠습니다."
누구에게나 무기가 있습니다.
벌은 침이 무기입니다. 메뚜기는 강력한 뒷다리가 무기입니다. 개미는 부지런함이 무기이고, 매미는 노래 실력이 무기입니다. 사자는 발톱과 이빨이 무기이며, 독수리는 강력한 날개와 하늘 높이 떠서도 조그마한 쥐 한 마리도 밝히 볼 수 있는 시력이 무기입니다.
사람도 누구나 나름대로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지식을, 어떤 분은 재산을, 어떤 분은 건강을, 권력을, 배경을, 출신 학교를, 기술을, 부모의 권세를, 자식의 출세를 … 그래서 그런 것들을 무기로 삼아 의지하며 살아 갑니다. 그러나 그런 무기들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곧 녹슬고, 부서지고, 꺾여지고 맙니다. 한 때의 부, 한 순간의 명예, 잠시의 권력 앞에서 사람은 애처롭게 매달리고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영원히 녹슬지 않고, 부서지지 않는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사람이 갖고 있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 하십니까?
문제가 있으신가요? 이렇게 말하세요.
“기도하겠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9.꼭 그 날이 올 거예요.
기다림이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연인을 기다려도 행복하고, 좋은 날을 기다려도 행복합니다. 학생들은 방학을 기다리고, 직장인들은 휴가를 기다립니다.
우리 들에게 기다림을 빼 버린다면, 얼마나 살기 힘든 세상이 될까요?
초등학교 가기 전의 일입니다.
형님이 대구에 가서 공부를 하다 방학이 되면 시골 집으로 돌아 옵니다. 방학이 되어 가면 아버지께서는 자꾸만 앞산 언덕을 바라 보십니다.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체부 아저씨는 매일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을에 편지가 있어야 옵니다.
언덕 넘어 우체부 아저씨가 보이면 아버지는 동구 밖까지 나가셔서 우리 집에 오는 편지가 있는지 물어 보십니다. 기다리던 편지가 없으면, 얼마나 서운해 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편지가 있는 날이면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지금도 모습이 선합니다.
편지에는 언제 가겠다는 내용이 쓰여 있습니다. 그 날부터 밤잠을 설치신 아버지는 오겠다고 한 날 아침 일찍부터 저를 데리고 언덕에 올라 가 기다리십니다. 언제나 점심에는 훨씬 지나야 도착하지만, 아침 일찍부터 기다리셨습니다.
기다리세요.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2:3)
10.끝까지 해 보겠습니다.
승리의 면류관은 끝까지 남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시작이 아무리 좋고, 중간이 대단해도, 끝이 좋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설계도 좋고, 기초공사가 아무리 잘 되어도, 완공하지 못하면 가치가 없습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한국 축구가 보여 준 투혼은 대단했습니다. 우승 후보 독일에게 선취 골을 먹고도 후반에 몰아 붙여 무승부를 이룬 장면은 세계 축구를 놀라게 했습니다.
세계 언론은 한국의 승리요, 독일의 참패라는 보도를 했습니다. 승부는 가리지 못했으나, 이미 모든 사람은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누가 끝까지 최선을 다 했느냐로 판정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패했다 하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사람은 승자가 누리는 찬사를 받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운 승리는 떳떳한 패배보다 못합니다.
용두사미가 되지 마세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이 창대한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 웃는 자가 최후의 승리자입니다.
"너희가 이 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
11.내일이 있잖아요.
오늘이 있으면, 내일도 있습니다.
저녁이 있으면, 아침도 있습니다.
눈물이 있으면 기쁨도 있고, 실패가 있으면 성공도 또한 있습니다.
내일만 잊어 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좋은 날이 있습니다.
농부는 가을을 바라 보며, 봄과 여름을 참습니다.
등산하는 분들은 정상을 바라 보며, 고통을 참습니다.
공부를 하는 학생도, 후보 선수로 벤치를 지키는 선수도, 조명등 뒤편에서 무대를 바라 보는 엑스트라도 내일을 바라 보며, 오늘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오늘 병원에 누워 계신가요?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세요. 그 손안에 내일의 월계관이 있습니다.
실패한 분들에게 격려하세요.
"내일이 있잖아요."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시126:6)
12.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죠.
신자와 불신자를 어떻게 구별할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것 가지고 삽니다." 라는 분들은 신자라 부릅니다.
"내 손으로 힘써 벌어서 살고 있습니다." 라는 분들은 불신자라 부를 수 있습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 부지런 하고, 같은 세상, 같은 아파트, 같은 조건 속에서 별 차이 없이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근본을 따지고 들어 가면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햇빛과 공기, 눈, 비, 이슬,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모든 축복들은 모두에게 주어진 일반 은혜이지만,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 천국과 지옥, 영생과 영벌, 의인 심판과 멸망의 심판은 너무나도 큰 차이입니다.
말 한 마디의 차이가 이렇게 사람을 크게 갈라 놓을 수 있을까요?
오늘도 생명 있음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 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13.당신과 마주 앉으면 편안해요.
마주 앉으면 편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어도 부담 없이 편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마주 앉으면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헤어졌으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소리쳐 불러 세워서 몇 마디라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있는 쪽으로 오고 있어도, 못 본 척 슬쩍 피해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잘나서도 아니고, 말 솜씨가 있어서도 아닙니다. 특별히 나에게 잘해 주는 것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그러면 과연 무엇일까요?
무엇이 편안하게 하고, 불편하게도 할까요?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식 없는 순수함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안한 사람이 되세요.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4:25)
14.당신과 악수하면 힘이 생깁니다.
악수할 때의 느낌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잡은 듯 만 듯 어설프게 잡는 분이 있고, 아무 힘이 없어 허전하게 느껴지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딘지 모르게 힘과 신뢰가 느껴지는 악수가 있습니다.
악수는 신뢰의 표현입니다. 맥 빠진 손을 잡으면 마음도 맥이 빠집니다. 쥐고 마구 흔들 필요야 없겠지만, 힘이 느껴지는 악수는 기분이 좋습니다. 나와의 만남이 반갑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 힘도 없고, 시선도 마주하지 않는 악수를 하면, 저 분은 내게 관심도 없고, 반갑지도 않지만, 아는 사이니 형식적으로 했다는 썰렁한 생각이 들게 됩니다.
악수할 때 힘있게 하세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세요.
"당신과 악수하면 힘이 생깁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삼상23:16)
15.베풀어 주신 호의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 나면서 숨을 거둘 때까지 도움을 입고 살아 갑니다. 아니 죽은 후에도 많은 도움을 입고 본향으로 들어 갑니다. 짐승도 도움을 입긴 하지만, 사람과는 다릅니다.
시골집 소가 송아지를 낳는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낳은지 한나절이 지나면 비틀거리며 일어 서려 하고, 하루만 지나면 몸을 가누고 일어 섭니다. 그리고 또 하루만 더 지나면 걷습니다.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며칠이 지나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합니다.
사람은 어떻습니까?
얼마나 많은 보호와 보살핌이 따라야 하는지 모릅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야 겨우 걷습니다. 학교를 가도, 졸업을 해도, 직장을 가져도, 결혼을 해도, 끝없는 도움의 손길 속에 삽니다. 여든이 넘은 어머니가 환갑을 넘긴 아들에게 "차 조심하거라" 하시는 것을 보아도 사람은 끝없는 도움 속에 사는 것이 분명합니다.
내게 베푸신 많은 손길을 잊지 말고 감사하세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116:12)
16.보고 싶었습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뵙고 싶었습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 이런 말을 하세요. 우리의 삶은 만남의 삶입니다.
부모를 만나고, 형제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이성을 만나고, 이웃을 만납니다.
오늘 하루도 수 없는 만남의 연속일 것입니다. 가족이나 학교, 직장 동료처럼 언제나 만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만남도 있을 것입니다. 만남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세요.
우리 주님은 나를 만나러 내려 오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분이 죄악의 쓰레기장에서 온갖 오물을 뒤집어 쓴 내 손을 덥석 잡으시고 냄새 나는 내 몸을 안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보려고 이 땅에 내려 왔단다" 라고.
이삭은 리브가를 기다렸습니다. 어서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황혼의 들녘에 나가 조용히 묵상했습니다. 눈을 들어 바라 보았습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창24:63)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창24:67)
집에 들어 서면서, 이렇게 말하세요. 문을 열어 주면서 이렇게 말하세요.
"하루 종일 보고 싶었어요."
17.분위기가 좋군요.
모임에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즐거운 모임에는 거기에 맞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경건한 모임에는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분위기는 1차적으로 외적인 내용으로 조성됩니다. 실내의 조명, 색채, 음향, 장식물, 바닥재 등 눈에 보이는 요소들이 분위기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모인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표정과 말씨에서 결정됩니다.
화려한 궁정에서 온갖 보석으로 꾸민 잔치도 분위기가 살벌할 수 있고, 초라한 오두막집 호롱불 아래서도 사랑과 감사가 가득한 최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분위기는 돈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듭니다.
"분위기가 참 좋군요"
따뜻한 이 한 마디는 시설을 떠나서 그곳을 최고의 분위기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12:3)
18.새 구두 신고 오셨네요.
관찰력을 기르세요. 주변의 변화에 반응을 보이세요.
너무 무감각한 것도 병입니다. 부인이 헤어 스타일을 바꾸어도 전혀 모르고, 남편의 바짓가랑이가 터져도 모른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어도 느낌이 없고, 넝쿨 장미가 담장을 휘감아 돌아도 무감각하다면 이는 심각한 감정의 중병입니다.
조금만 우리의 감각을 손질하고 닦아 내면, 언제나 새로운 활력이 넘칩니다.
아직도 흰 눈이 채 녹지 않고,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때려도 바람 없는 양지녁엔 어느 새 새싹이 얼굴을 내밉니다.
얼마나 반가운 손님인가요?
주위에 누가 새 구두를 신고 오셨나요?
한 마디 하세요.
"예쁜 다리에 새 구두라, 참 어울리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19.손이 참 예쁘시군요.
우리는 큰 것을 좋아합니다. 큰 집, 큰 차, 큰 냉장고, 큰 TV … 큰 것을 좋아하다 보니, 작은 일에는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작은 일은 소홀히 생각하는 습관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그까짓 것, 그까짓 것 몇 푼이 된다고, 뭐 그런 시시한 것 가지고...
그래서 작은 일을 정성껏 하는 사람을 쫌상, 소인배, 겁쟁이 등으로 매도하고, 작은 일은 등한히 하고 눈에 띄는 큰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을 보고, 대인, 큰 그릇, 통 큰 사람으로 추켜 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이 큰 일도 잘 할 수 있는 것이지, 작은 일을 무시하는 사람이 큰 일을 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손이 참 예쁘시군요" 이것은 작은 관심이요 작은 칭찬입니다.
이렇게 작은 손을 칭찬할 수 있는 사람이 크고 넓은 마음으로 큰 일도 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마25:21)
20.실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좌절케 하는 어려움은 항상 우리 앞에 있습니다. 앞이 캄캄하고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도저히 벗어날 가망 없이 사방이 막힌 절망이 때때로 있습니다. 이럴 때 무어라 말하면 좋겠습니까?
실망의 말을 해 보세요. 절망의 담은 더 높아지고, 좌절의 벽은 더 두꺼워집니다.
희미하던 불빛이 더 가물 가물해지고 실낱처럼 가늘게 보이던 비상구도 어느새 막혀 버리고 맙니다.
이럴 때 소망의 말을 하세요. 절망의 담 한 모퉁이가 무너져 내리고, 좌절의 벽에 금이 갈 것입니다. 희미하던 주위가 어느 새 어렴풋이 분별할 정도로 밝아지고, 보일락 말락 하던 비상구가 시야에 들어 올 것입니다.
"실망하지 않습니다."
"더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언어 습관입니다.
"그가 이 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고후1:10)
21.언제나 새로워 보이시네요.
우리는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제 했던 일을 오늘 또 하고, 오늘 한 일들을 내일 또 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루하고 답답한 일입니다.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이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일과에서도 새로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을 즐기며 할 수 있습니다. 의미를 부여하세요. 성취감을 찾으세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독특한 일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작품의 한 부분을 쓸고 있다고 감사한 어느 환경미화원처럼 말입니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과 중에서도 언제나 웃으며 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언제나 새로워집니다.
새로워 지세요. 마음의 창을 여세요.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22.역시 당신이 최고예요.
칭찬하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있는 분입니다. 칭찬하기가 쉬울 것 같지만,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불가능 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잘 안됩니다. 좋은 것일수록 쉽게 되는 일은 없습니다. 욕은 안 배워도 잘 되고, 원망과 시기도 연습 없이도 잘 됩니다. 게으름, 낙심, 비방도 노력 없이 잘 되는 자동화 시스템입니다. 자식 사랑은 ‘내리 사랑’ 이라 저절로 되고, 효도는 ‘오름 사랑’ 이라 잘 안됩니다.
그러나 좋은 것은 노력해야 합니다. 애써야 합니다.
사랑도 좋은 것이기에 희생의 노력이 필요하고, 봉사도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아픔이 있어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칭찬은 참 좋은 무기입니다. 적절한 칭찬은 위대한 힘을 발휘합니다.
칭찬하세요. 칭찬하는 훈련을 하세요.
"역시 당신이 최고예요" 이 한마디에는 최고가 아닌 사람일지라도 최고로 만드는 무한한 에너지가 숨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7)
23.욥을 생각하세요.
우리에게는 모델이 있습니다.
믿음의 모델은 아브라함이요, 순종의 모델은 이삭입니다. 용서의 모델은 요셉이요, 온유의 모델은 모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고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날 때 모델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용서하기 힘들 때는 요셉을 생각해야 하고, 교만이 나를 주장할 때는 모세를 떠올려야 합니다. 고난이 나를 떠나지 않을 때는, 역시 욥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당하고 있는 환란이 크다 해도 욥 만큼이야 되겠습니까?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사라져 갔다 해도 욥 만큼이야 되겠습니까? 시련의 한복판에 서서 욥을 바라 보세요, 욥 뒤에 서 계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욥보다 더 큰 시험과 고난을 당하셨기에, 우리의 고난을 이해하십니다.
모델을 바라 보세요.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 12:7)
24.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무슨 일이든지 얽어 매지 말고, 풀어 나가세요.
우리네 인생살이가 얼마나 복잡합니까?
가만 있어도 얽히고 꼬이는 게 일인데, 거기다가 스스로 더 끌어 들여 얽어 맬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용서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얽히고 꼬인 문제들을 풀러 오셨습니다. 죄에 얽힌 우리들, 원한으로 묶인 우리들, 원망과 시기, 질투로 매여 있는 우리들을 풀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모든 것을 풀어 주셨습니다.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잘 용서하지 못합니다. 힘이 있으면 보복하고 힘이 없으면 어디 두고 보자 하고 마음에 담아 두고 삽니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갚겠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용기는 용서입니다. 가장 마음이 넓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
용서하세요.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쌔,"(눅23:34)
25.위를 바라 보세요.
사람은 위를 보고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동물의 머리는 모두 땅을 향해 지어졌지만, 사람은 위를 바라보도록 창조 되었습니다. 산을 오르는 자는 위를 보고 오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모두 위를 보고 나아 가는 사람입니다.
멧돼지 한 마리가 몹시 배가 고팠습니다. 그 날 따라 아무리 헤매도 토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진맥진한 상태에 이르러 땅에 떨어진 과일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맛이 있는지 허겁 지겁 먹어 치웠습니다. 힘이 생기고 눈도 밝아 졌습니다. 더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땅을 팠습니다. 땅에서 발견했으니, 땅 속에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파고 또 파도 과일은 없었습니다. 발이 모두 부르터서 피가 나고 주둥이도 엉망이 되었습니다. 기진맥진한 멧돼지는 그만 벌렁 드러 눕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그렇게 찾아 헤맸던 과일들이 나무 위에 셀 수도 없이 많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한 번만 들이받았더라도 몇 개는 땅에 떨어졌을 텐데, 이제는 일어날 힘조차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2)
26.잊지 않겠습니다.
사람은 잘 잊어 버립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잊는 것이 오히려 좋습니다. 문제는 잊어야 할 것은 잊지 못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쉽게 잊고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합니다.
누가 내게 속상한 말을 한 것은 잊지 못해 밤새 되새김하고, 싫은 소리 한 번 들은 것을 잊지 못해 두고 두고 접어 두었다가 공격할 기회를 기다려 꺼내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단한 금고를 마음에 마련해 놓고 안좋은 일들을 차곡 차곡 쌓아 두었다가 하나 하나 꺼내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겨울 김장을 큰 독에 담아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손님이 올 때마다 꺼내 먹듯이, 나쁜 것을 절대 버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나쁜 것은 잊으세요.
반대로 이제는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잊지 않도록 신경 쓰세요.
부모님의 은혜, 선생님의 은혜, 친구의 도움, 선배의 가르침,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마세요.
누가 내게 은혜를 베푸셨나요? 이렇게 말씀 드리세요.
"잊지 않겠습니다."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 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신8:14)
27.잘 되시지요?
경기가 좋지 않고, 어려움이 있어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볼 때도 긍정적으로 물어 보세요.
잘 될 줄 믿고, 희망 속에서 추진하는 것과 잘 안될 것 같아 소신 없이 하는 것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앞서 뛰는 선수를 꼭 따라 잡아야지 하고 이를 악물고 뛰는 것과 저 선수는 평소에 나보다 빠른 사람이니 뛰어 봤자 앞지를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뛰는 것은 차이가 많습니다. 상대의 컨디션이 나쁘면 따라 잡을 수도 있고, 아니라 하더라도 2등은 할 수 있습니다.
좋게 말하세요. 남이 잘 되기를 바라세요. 그러면 남보다 먼저 내가 잘 됩니다.
좋게 생각하세요.
새가 운다고 하지 말고, 노래한다고 하세요.
늙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성숙해진다고 생각하세요.
젊으면 힘이 있어서 좋고, 나이 먹으면 경험이 풍부해서 좋습니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룻2:4)
28.잘 참으셨어요.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몰라서 참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내의 열매가 좋다는 것은 알지만, 오래 참고 견디기가 어렵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이럴 때 한 사람의 격려의 말은 엄청난 힘을 가져다 줍니다.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 주저 앉고 싶을 때, 누군가 옆에서
"잘 참으셨어요. 조금만 더 인내하세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라고 했을 때,
그는 힘차게 일어나 끝까지 달려 갈 수 있습니다.
주위의 누군가 어려움을 당하고 계신가요?
가서 격려하세요. 당신이 당하고 계신가요?
말씀을 읽으세요.
하나님의 격려가 끊임없이 당신을 밀어 주실 것입니다.
이 찬송을 불러 보세요.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 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1:12)
29.저 분 잘 되어야 할 텐데…
남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참 좋은 마음입니다. 남을 위해 기도해 주는 일도 참 좋은 일이겠지요. 기쁜 일이 있을 때 같이 웃어주고 슬픈 일이 있을 때 같이 눈물 흘려 주는 마음은 너무나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요즘 세상에서 남이 잘 될 때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남이 실패했을 때 진정으로 위로와 격려를 할 수 있는 마음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라이벌이 잘 되었을 때 마음이 어떨까요? 경쟁사가 실패하고 쓰러졌을 때 마음이 어떨까요?
원수의 집에 불이 났을 때 내 손에는 물통이 들려 있을까요? 아니면 부채가 잡혀 있을까요? 아니면 한 손에는 물통, 한 손에는 부채일까요?
남을 위해 복을 비세요. 그 복에 하나님의 복이 더해져서 내리실 것입니다.
"사람이 양 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마12:12-13)
30.저 분은 가슴이 따뜻한 분이에요.
어느 광고에서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 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은 머리는 차고, 가슴은 뜨거워야 한다고 합니다. 머리로는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해서 선악을 구별하고, 가슴으로는 관용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따뜻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을 덮음을 때로는 사랑으로 잘못 생각합니다. 선악의 기준이 없으면, 일반 상식이 허용하는 범위 밖에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슴이 차가워도 안됩니다. 이기주의, 배타주의의 세상이 되고 맙니다.
지금 머리를 만져 보세요. 가슴에 손을 대 보세요. 조용히 나를 진찰해 보세요. 병원에 가지 않아도 이 병은 스스로 어느 정도 진단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내가 하는 행동을 기준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혹 이상이 발견 되시나요?
요양에 들어 가세요.
우선 말부터 바꾸면서 시작하세요.
맵고 짠 음식은 피하듯이, 맵고 짠 말도 피하고, 부드럽고 따듯한 말을 하세요.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렘 17:14)
31.제 잘못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복싱 챔피언일까요?
낙하산 없이 뛰어 내려, 묘기를 펼치는 고공 낙하 요원들일까요?
밧줄 하나에 생명을 걸고 절벽을 아슬 아슬하게 기어 오르는 등반가일까요?
발목에 매달린 생명줄을 의지한 채 높은 다리에서 뛰어 내리는 번지점퍼일까요?
아니면 생명을 아끼지 않고, 온갖 위험스런 촬영에 나서는 스턴트맨일까요?
이 모두가 용기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제 잘못입니다" 라고 솔직히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변명하지 않고, 자기의 명예에 손상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 뜨릴 때의 용기 보다, 나단 선지의 지적을 받고 곧 잘못을 시인하고 엎드려 회개하는 용기 있는 자세입니다.
이제 이렇게 말하세요.
"제 잘못입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삼하12:13)
32.제가 하겠습니다.
모두가 망설이고 주저할 때,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나서세요. 위기를 극복하는 비결이 됩니다.
항상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적극적으로 나서세요.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골리앗 앞에서 숨을 죽이고 누구 한 사람 나서지 않을 때, 다윗은 믿음으로 나가서 승리했습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세 용사는 다윗이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사모할 때, 적진을 돌파하고 우물 물을 길어와 최고의 용사로 기록되었습니다.
침체되어 있는 분위기, 발전의 소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상황에서 奮然(분연)히 일어 나세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33.좋아 보이네요.
남을 좋게 봐 주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나도 즐겁고, 상대방도 즐겁습니다. 꽃이 아름다우면 나비도 춤을 추듯이, 좋은 말은 모두를 행복하게 합니다.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미소 띤 얼굴을 보고, 첫 추위에 빨갛게 달아 오른 혈색 좋은 볼을 보고, 살짝 액센트를 가미한 눈 화장을 보고 그냥 무뚝뚝하게 지나치지 마세요.
"좋아 보이네요."
이 한 마디로 더 좋아지게 하는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긴 머리는 여자다워 좋고, 짧은 머리는 발랄해 보여서 아름답습니다.
숏다리는 안정감이 있어서 좋고, 롱다리는 시원해서 좋습니다.
좋게 보면 좋게 되고, 나쁘게 보면 더 나쁘게 됩니다.
이제부터 이렇게 말하세요.
"좋아 보이네요."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 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아2:10-12)
34.좋은 계획 세우셨어요?
계획을 세우고 하는 일과 닥치는 대로 하는 일은 결과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하면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게 되어, 그 만큼 시간이 절약됩니다. 닥치는 대로 하다 보면 일은 많이 한 것 같은데, 막상 결산을 해 보면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오늘 해야 할 일들을 기록하고 계획을 세워서 하면 초과 달성까지 가능합니다.
한 주일의 계획, 한 달의 계획, 1년의 계획, 평생의 계획을 세우세요.
사람의 일평생 가운데 아무 의미 없이 버려지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어림잡아도 10년은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좋은 계획 세우셨나요?
아직 안 세우셨다면, 지금이라도 세워 보세요.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5:6)
35.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기쁨을 같이 하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같이 하면 절반으로 줄어 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일을 만드세요. 좋은 일이 내게 다가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좋은 일을 스스로 만들어 보세요.
시골 동네 뒷산에는 찰흙이 나는 언덕이 있었습니다. 바위 틈에 빨간 찰흙이 끼어 있었습니다. 나뭇가지로 파내면 이내 한 주먹이 됩니다. 얼마나 부드럽고 잘 뭉쳐지는지 모릅니다. 이것으로 구슬을 빚어 구슬치기도 하고, 토끼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재미 있습니다. 귀가 큰 토끼, 코가 큰 코끼리, 목이 긴 기린, 밥그릇, 국그릇, 빚는 대로 만물상이 됩니다. 그러나 만들지는 않고, 꼭 심술을 부려서 망쳐 놓는 친구도 있습니다.
좋은 일을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들어 놓은 좋은 일을 망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드세요. 좋은 일을 많이 만드세요.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살후3:11)
36.참 검소하시네요.
돈을 잘 버는 사람을 유능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돈을 잘 쓰는 사람을 화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검소한 사람은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능한 사람도 필요하고, 화통한 사람도 필요하지만, 우리 나라를 이끌어 가는 가장 큰 힘은 역시 검소한 사람들입니다.
유능한 사람이 많이 벌면 무엇합니까?
불필요한 곳에 낭비해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국민 정서도 해치고, 사회악을 조성할 뿐입니다.
"한국인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라는 말을 외국 언론이 말한 바 있습니다. 일부 특정인들의 낭비와 사치 풍조를 보고 잘못 내린 판단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아껴 씁시다. 물도, 전기도, 바다도, 산도 아끼고 사랑합시다.
주위에 "참 검소하시네요"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기를 바라고, 나도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힘씁시다.
말도 아껴서 좋은 말만 골라서 합시다.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잠17:27)
37.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초등학교 축구라도 최선을 다해 싸우면 멋진 경기가 됩니다. 그러나 프로축구라 해도, 맥빠진 경기는 관중까지 맥빠지게 만듭니다.
농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아름답습니다.
기능공의 손에 묻은 기름 때는 아름답습니다.
학생의 손에 잡힌 몽당연필은 아름답습니다.
주부의 몸에 둘려진 앞치마는 아릅답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세요.
운동회 때 100미터 달리기가 있었습니다. 키도 작고 다리를 다쳐 잘 뛰지 못하는 아이가 꼴찌로 들어 왔습니다.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뛰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비록 꼴찌로 들어 왔으나, 가장 많은 박수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장애인 올림픽은 그야말로 감동적인 장면의 연속입니다. 인간 승리요, 불굴의 의지를 보여 주는 드라마들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분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세요.
그리고 나도 이렇게 말하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마12:33)
38.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거예요.
누가 도와 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될까요?
부모의 도움, 스승의 도움, 사장님의 도움, 대통령의 도움, 이 모두가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대통령께서 직접 나를 도와 주신다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설령 대통령이 우리 아버지라 할지라도 정말 필요한 도움은 주지 못합니다. 생명을 책임져 주지 못합니다. 내일을 인도해 주지 못합니다. 사고와 질병과 재난을 막아 주지 못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도움을 받고 사는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세요. 하나님이 도우셔야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샘이 넘쳐 흐릅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5)
39.한 번 더 도전해 보세요.
마지막 고비에서 포기함으로 실패로 막을 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몇 번만, 아니 한 번만 더 시도했더라면 이룰 수 있는 일을 놓쳐 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독수리 한 마리가 덫에 걸렸습니다. 독수리는 이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차게 날아 올랐습니다. 그러나 덫에 묶여진 끈은 독수리를 날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 다시 거듭 거듭 안간힘을 다해 날아 오르려 했으나 그 때마다 실패만 거듭거듭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의 발버둥으로 끈은 거의 끊어져 있었습니다. 이제 한 두번만 더 시도하면 끈은 끊어지고 독수리는 푸른 창공을 향해 날아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독수리는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한 번만 더 날아 오르면 자유의 몸이 되는데도 지금까지 안되었던 경험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지치셨나요?
한 번 심호흡을 하시고, 다시 한 번 날아 보세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