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湖水
김윤태
조용한 호수
더러운 손발 씻으려다
그 살에 쐬여
그 둑 너머
밭고랑으로 간다
시뜻한 그림자가
아무리 들여다 봐도
되 비춰 주지 않는다
온새미로 품고 있는 해도
일그러뜨릴 잠재력마저
내색 않는 조용한 호수
오로지 그 깊은 속은
그 언저리에서 자라는
나무들만이 호수에 들어가서 잰다.
발췌 : 김윤태 시가집 <때로는 조를 빼고서 빛 접음을 내 뵌다>에서 (2005년. 서울)
------------------------------------------------------------------------------------------
수변(水邊)
김윤성
어느 물가
잡초에 파묻혀
외로이 비어 있는 벤치 하나
지난 날
그대와 나 종일을 앉아
물소리만 듣던 곳
때로는 물새도
청령(蜻蛉)도 노닐다 갔을
그러나 지금은 빈자리
그 빈 벤치를 또 찾아 왔다
내가 영원히 사라진 뒤
오직 하나 남을 빈자리와 같은 –.
발췌 : 김윤성 시선집 <그냥 그대로>에서 (도서출판, 마을. 서울. 2013년)
--------------------------------------------------------------------------------
수변 (水邊)
- 영랑호에서 -
김영수
1월 끝 자락, 어느 한낮
바람 잦아든 조용한 물가
산에서 흘러 온 물들이
숨 고르며 모여든 수면(水面) 위에
허공에서 시원(始原)한 바람이
물 비늘 세우고 시린 하늘을 가른다
잎 떨군 나뭇가지들은
하늘에 파열선(破裂線)을 그리고
물새들 날아 오르며
호수(湖水) 너머 수평선을 절단(切斷) 한다
나는, 잠시
인식과 의식 사이, 극점(極點)에서
이율배반의 멀미를 느낀다.
사진 : 속초 영랑호에서 (2016년 4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