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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번역본의 약사(略史)
안 유 섭 목사 (아르케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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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영국에 정착한 여러 민족의 언어가 혼합되면서 형성되었다. 최초의 언어는 BC 6세기경 청동기 시대에 들어와 정착한 켈트족의 켈트어였는데, 당시 영국 초기의 켈트족을 브리튼인이라고 하며 영국을 브리타니아(브리튼섬)라고 하였다. 이들은 AD 1-5세기 동안 로마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라틴어의 영향을 약간 받게 되었지만, 4세기경부터 같은 켈트족인 스코트인과 픽트인이 이주해 들어오기 시작하고 마침내 서로마의 멸망(476년)으로 로마가 완전 철수하면서 라틴어의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5-6세기경에는 게르만족의 일족인 색슨족과 앵글족이 점령하여 웨식스 등 7개의 왕국을 세우고 지배하면서 비로소 앵글로-색슨어(Anglo-Saxon)라는 고대 형태의 영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영국은 잉글랜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8-10세기에는 덴마크 계통의 데인족이 들어와 잠시 지배한 적도 있으며 언어적으로 약간의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그후 1066년에 프랑스의 노르망디공(公) 윌리엄의 정복으로 앵글로-색슨족의 통치가 끝나고, 노르만인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노르만계통의 프랑스어와 스칸디나비아어의 영향을 받아 언어적으로 혼합되면서 11-15세기에 중세 시대 영어로 발전하게 되었고, 현대 영어와 같은 형태로 발전한 것은 16세기부터이다.
이렇게 민족적, 언어적으로 매우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영국에 기독교가 전해진 것은 3-4세기경으로 알려져 있는데, 로마카톨릭의 전파로 인해 일찌기 로마화되었으며 사제들은 라틴어 역본을 가지고 그들의 종교의식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번역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따라서 고대와 중세에 이르기까지도 특별한 번역본이 없었는데, 다만 라틴 역본을 고대 영어로 번역한 앵글로-색슨 역본이라는 것이 전하고 있으며 또 소량의 쪽 번역본이 전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들도 대부분 라틴어 성경을 번역한 2차 혼합번역으로서 본문비평적 가치는 별로 없는 것들이다.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최초의 영어번역 성경은 위클리프 역이다. 이는 영국 땅에 기독교가 전파된 지 무려 1,000년이 흐른 뒤에야 영어로 된 성경이 탄생한 것인데 후대의 영국의 현대 역본 간행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후 인쇄술의 발명으로 현대 역본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시대를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영어 성경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되고 가장 많이 발간되고 있는 책이 되었다. 중요한 영역본의 역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위클리프 역)
위클리프(Wicliffe)는 영어로 된 최초의 번역성경을 1382년에 발간하였는데, 일반 평신도들이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 것이다. 위클리프 역은 신구약 합본으로서 손으로 필기된 마지막 고대 역본이라고 할 수 있는데, 12세기경에 유럽에 도입되어 양피지를 대체하기 시작한 종이에다 기록하였다. 위클리프 역은 라틴 불가타를 저본으로 번역하였고, 다른 오래된 사본은 거의 참고로 하지 않았다. 또 외경을 포함하고 있으며, 당시의 고어체로 기록하였으므로 그 문체는 약 150년 후에는 읽기 힘들게 되었다. 위클리프 역은 출판되자마자 당시의 로마 카톨릭교회로부터 금서로 정해졌으나 현재까지 약 170여권이 남아 있다고 한다.
(틴데일 역)
14-15세기에 유럽에는 점차 값싼 종이가 사용되고 1450년에 드디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유럽에서 각종의 라틴어 번역과 각국 언어로 된 번역성경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또한 15세기말부터 16세기초까지 성경원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져서 헬라어와 히브리어에 대한 문법책과 사전류가 발간되고 있었는데, 영국에서는 위클리프 역 이후 그때까지 인쇄된 번역성경이 나오지 않았다.
1525년에 틴데일(Tyndale)은 헬라어 본문을 직접 영어로 번역한 신약성경 수천 부를 거듭 인쇄하여 출판하여 보급함으로써 일반 성도들이 쉽게 성경을 접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카톨릭교회가 그것을 불태워버리려고 사들이면서 틴데일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고, 틴데일은 신약 출판 후에 곧 구약 번역에 착수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결국 1534년에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희생은 헛되지 않아서 그가 순교한 후에 그의 두 조수였던 카버데일과 매튜에 의해 완성된 신구약 영역본들이 출판되어지는 밑거름이 되었으며, 틴데일 역은 번역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나중에 제임스 왕 역(흠정역)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카버데일 역)
카버데일(Coverdale)은 틴데일의 조수였는데 1535년에 신구약 합본의 영어번역 성경을 출판하였다. 이는 최초로 인쇄된 영어 신구약성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직접 번역한 것은 아니며 라틴 불가타와 루터의 독일어 역본(1522년) 그리고 틴데일 역 등을 참고하여 번역한 것이다.
(토마스 매튜 역)
토마스 매튜(Tomas Mattew) 역시 틴데일의 조수였는데 1537년에 틴데일 역과 카버데일 역을 결합하여 신구약 합본으로 출판하였다. 이 역본은 자세한 주와 참조문을 달아놓은 것이 특징이다.
(큰 성경)
큰 성경(Great Bible)은 헨리 8세 때 켄터베리의 프로테스탄트 대주교이며 종교개혁가였던 토마스 크랜머의 승인 하에 카버데일의 지도로 1539년에 만들어졌다. 이는 틴데일 역의 교정판인 매튜 역을 다시 교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신구약 합본으로서 그 크기(가로 9인치×세로 15인치)가 유난히 컸기 때문에 큰 성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제네바 성경)
피의 여왕 매리의 재임 기간에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무자비한 박해로 토마스 크랜머경(卿)과 토마스 매튜 같은 이들이 순교를 당하자, 많은 종교개혁가들이 영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존 낙스(Knox)는 신교도들을 이끌고 스위스의 제네바로 가서 영어 번역본을 준비하였다. 제네바(Geneva) 성경은 낙스의 후계자인 휫팅햄(Whittingham)에 의해서 1557년에 간행되었는데 함께 망명했던 카버데일이 많이 도와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약은 주로 틴데일 역을 참고하였으며, 구약은 히브리어 사본과 라틴역 본문을 직접 번역하였다. 큰 성경이 교회에서 공식예배에 많이 사용되었다면, 제네바 성경은 일반 성도들이 즐겨 읽는 영어번역으로서 1611년 제임스왕 역이 나올 때까지 140여 회나 판을 거듭하면서 출판되었다.
(제임스왕 역, KJV)
엘리자베스 여왕을 이어 즉위한 제임스 1세는 즉위초인 1604년에 성경 원문에 근거한 새로운 영어 번역을 지시하였고, 곧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비롯하여 라틴어와 각국의 언어에 능통한 학자 54명이 참여하여 번역을 시작한 지 7년 만인 1611년에 제임스왕 역(King James Version)이 완성되었다. 줄여서 KJV라고 하며, 왕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번역이므로 보통 흠정역(欽定譯)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KJV이 근거한 원문은 주로 비잔틴 계열의 소문자 사본들이었는데, 원문에만 의존하지 않고 틴데일 역과 카버데일 역, 그리고 독일의 루터 역과 라틴 역을 많이 참고하였다. 발간 후에는 오자가 많이 발견되고 지나친 문자적 번역으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으나 꾸준히 판을 거듭하면서 기존의 번역본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후에 KJV은 전면 개정은 하지 않고 조금씩 수정되었는데, 초판에는 외경도 포함되었지만 제임스왕을 계승한 찰스왕 때 간행된 판본부터는 제외시켰으며, 1769년에 옥스퍼드의 블레이니(Blayney)에 의해 마지막 수정된 것이 오늘날까지 표준본으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이는 1611년 판과 비교하면 7,500군데 이상 수정이 가해진 것이다.
(영어 개정역, RV)
KJV이 공인 역본으로 자리잡은 후 19세기초까지 영어 개정 역본은 나오지 않고 있었는데, 그동안 대문자 사본이 많이 발견되면서 KJV의 저본이었던 소문자 사본과 차이가 많음을 주목한 학자들로부터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KJV의 딱딱한 고전풍의 문체를 현대적인 영어로 바꿔야한다는 주장도 나오면서, 1871년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을 비롯하여 초교파 학자들 65명 가량으로 구성된 번역위원회는 KJV의 개정작업을 시작하였다. 다음해에는 미국의 학자들도 함께 참여하여 1881년에 우선 신약에 대한 영어 개정 역본(Revised Version)을 발간하였다. 이는 출판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로 영국과 미국에서 수백만 권이 팔려나갔으며, 1885년에 구약이 완성되어 별도 출판되었고, 외경을 포함한 신구약 합본은 1898년에 간행되었다.
(미국 표준역, ASV)
KJV를 영국에서 개정한 번역이 영어 개정역(RV)이라면, 미국에서 개정한 번역이 미국 표준역(American Standard Version)이다. 이는 1881년 출판된 웨스트콧과 홀트의 헬라어성경의 본문을 많이 참고하고 영국식 영어 표현을 미국식으로 바꾸어 KJV을 대폭 수정한 전면적인 개정판으로 간행되었는데, 외경을 제외하고 1900년에 신약과 1901년에 구약까지 출판되었다. 즉, ASV부터 외경은 성경목록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에서 발간된 ASV는 점차 RV를 누르고 영미 전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미국 개역 표준역, RSV)
미국 개역 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은 새로운 번역이 아니라 ASV를 다시 수정한 것이다. 파피루스와 오래된 필사본들이 계속 발견됨에 따라 헬라어 본문의 새로운 수정편집이 이루어지면서 미국의 국제 종교 협의회는 영어 번역본 역시 현대적인 영어로 새롭게 번역할 것을 결의하고 22명의 신학자들로 개정 위원회를 구성하여 개정작업을 시작하여 1946년에 신약을, 1952년에 구약을 출간하고, 1957년에는 외경까지 간행하였다. RSV는 지나친 의역으로 원문의 뜻을 흐려놓았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으나 영어권에서 널리 사용되는 성경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유대교 영어역)
영어권에 살던 유대인들은 맛소라 사본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유대교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영어권에서 발간된 성경들을 사용하였는데, 유대교적인 해석과 다른 점이 많아서 그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었다. 따라서 미국에 있던 유대교 출판협회는 1962년에 율법서를, 1978년에 예언서와 성문서를 출판하였고, 1985년에 개정판을 출판하였다. 이들을 유대교 영어 역본(Jewish Version)이라고 부른다.
(새 영어 성경)
새 영어성경(New English Bible)은 1961년에 신약이, 1970년에 신구약 합본이 출판되었는데, 스코틀랜드 교회가 기존의 모든 전통적인 번역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번역을 시도한 것이다. 여기서는 의미의 정확성보다는 본문의 이해 가능성을 우선한다는 원칙으로 철저한 의역을 하였다.
(현대 영어역)
현대 영어역(Today's English Version)은 복음 성경(Good News Bible)이라고도 하는데 미국 성서공회가 전통적인 문자적 번역을 피하고 의역을 시도하여 완전히 구어체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1966년에 신약이 출판되고, 1976년에 구약이 간행되었으며, 1979년에는 외경도 번역?출판되었다.
(새 국제역, NIV)
새 국제역(New International Version)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어권의 개혁교회가 연합하여 공동으로 번역한 새로운 영어성경이다. 판권 소유는 뉴욕의 국제 성서공회에 두기로 하고, 1973년과 1978년에 각각 신약과 구약을 간행하였는데, 전통적 표현과 어법을 따르면서도 쉬운 현대식 영어로 번역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본문비평의 결과를 번역에 많이 반영하였는데, 특히 가장 최근에 발견한 사해 두루마리 사본까지 반영하여 본문의 신뢰도를 높이려고 노력하였다.
유럽 및 아시아의 번역본
오늘날 전세계 언어로 번역된 성경의 종류는 신구약 합본이 발간된 것이 200여 종류이며, 일부분이 번역되고 발행된 것은 1,000 여 종에 가깝다. 역사상 영어 역본이 가장 많지만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많은 성경 번역본을 가지고 있다. 인쇄술의 발명과 더불어 현대 역본이 대량 출판되면서 종교개혁을 전후로 각국에서 많은 번역과 출판이 이루어졌다. 그후 19세기 들어서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도 자국어로 성경이 번역되기 시작하였다.
(독일어역 성경)
독일에는 5-6세기경에 고트어로 된 구약과 신약이 있었고, 8세기에는 라틴역을 독일 남부의 바바리아(Bavaria) 방언으로 번역한 것이 존재하였다. 9세기에는 복음서를 발췌 번역한 것들과 시편의 독일어 번역이 있었으며, 고대 역본 중에서 가장 나중에 나온 것으로 1400년경에 필사된 아우스부르크(Ausburg) 구약 성경이 있다.
인쇄된 현대 역본으로 최초의 것은 1466년에 발간된 멘텔 성경(Mentel Bible)으로서 루터의 독일어역이 나오기 전까지 18판이나 출판되었다. 그러나 독일에서 성경 번역사에 신기원을 이룬 것은 1522년에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번역본이다. 1517년 비텐베르크 대학 정문에 95개조를 내걸고 종교개혁의 기치를 올렸던 루터는 작센 선제후의 비호를 받으며 성경을 번역하였다. 우선 에라스무스의 헬라어성경을 저본으로 번역한 독일어 신약성경을 1522년에 출간하였고, 구약은 브레스키아 히브리어성경(Breskia Hebrew Bible, 1484년)을 저본으로 하여 1534년에 발간하였다. 그후에도 1546년까지 10번이나 개정을 거듭하면서 출판하였는데, 루터의 독일어역은 독일의 공인된 번역본으로서 향후 독일어의 통일을 이루는데 공헌한 점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밖에는 1530년대의 카톨릭 계통의 번역으로서 엠제르(Emzer)의 라틴 불가타를 독일어로 번역한 것과 요한 디텐버거(Ditenberger)가 개정본을 낸 것이 있으며, 16세기말까지 독일에는 꽤 많은 번역본들이 나타났으며 최근까지도 독일어 번역본은 계속 출판되고 있다.
한편 12-13세기경에는 히브리어로 씌어지고 독일어로 번역된 이디쉬 역본(Yiddish Version)이 독일의 유대인들 사이에서 나왔으며, 이디쉬의 인쇄본으로는 1616년에 발간된 야곱 벤 이삭 아스케나지(Ashkenazi)의 체나 우레나(Tzenah u-Rena)가 있다. 그후에도 1780년에는 모세 멘델손(Moses Mendelssohn)의 독일어역 구약성경이 나오고, 1837년에는 고트홀트 살로몬(Gottholt Salomon)의 독일어역 구약, 1925-37년에는 마르틴 부버와 프란츠 로젠바이크가 공동으로 히브리어 문체를 잘 살려낸 구약번역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불어역 성경)
프랑스는 14세기까지 불어로 된 공인된 번역본을 가지지 못했다. 다만 12세기말 왈도(Waldo)파가 복음서와 바울 서신 등을 번역하여 사용한 것이 최초의 불어역 성경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이는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으나 현재까지 그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또 13세기에는 파리대학을 중심으로 한 신학자들이 함께 라틴 불가타를 불어로 번역한 것이 고대 역본으로 존재한다.
인쇄술 발명 이후 불어로 된 현대 역본으로는 1487년에 카톨릭교회측에서 라틴 불가타를 번역하여 큰 성경(La Grande Bible)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한 것이 처음이다. 그후로는 1525년에 카톨릭 신자인 데따블(Jacques Lef vre d' Etaples)이 파리에서 불가타의 불어 역본을 발간하여 중요한 역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개신교 쪽에서는 1535년에 칼빈의 사촌인 올리베땅(Pierre Robert Oliv tan)이 라틴 불가타를 번역한 불어 역본이 중요하다. 이는 계속 수정판을 내었는데 1946년 판에는 칼빈이 서문을 써주기도 하였고, 1553년 판은 스테파누스가 제네바에서 발간하면서 그의 헬라어 성경과 같은 장, 절의 구분을 적용하였다.
그밖에 19세기 후반 들어 세공(Louis Segond)이 구약과 신약을 1874-79년까지 발간한 것이 있으며, 20세기에는 1956년에 도미니크 수도회가 발간한 예루살렘 성경이 있고, 1971-75년에 걸쳐 출판된 공동번역성경(Traduction Oecumenique de La Bible)이 있다.
(기타 유럽의 번역본)
14-16세기의 르네상스 시대부터 종교개혁을 전후로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스페인, 덴마크, 스웨덴과 러시아 등지에서도 성경 번역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록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에서 발간된 것만큼 중요한 것들은 아니었고 양도 많지 않았지만, 전 유럽 국가들이 카톨릭과 개신교를 막론하고 성경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근세와 현대로 가까이 오면서 전세계적으로 선교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각 선교지에서도 성경 번역이 곧 뒤따르게 되었다.
(중국어역 성경)
중국에 기독교가 전해진 것은 7세기초 당태종 때 네스토리안파(그리스도 신인일체성과 신모설 부인)에 의해서였다. 그후 중국에서는 기독교가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였고, 비문 등에 경교의 경전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일부분일지라도 중국어 번역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다가 13세기에는 카톨릭이 전파되었고, 19세기에 개신교가 전파되었는데, 중국에서 성경 번역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바로 개신교에 의해서였다.
최초의 중국어 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810년 마쉬만(Marshman) 선교사에 의한 마태복음이며, 같은 해 모리슨(Morrison)은 사도행전을 번역하였고, 계속 번역이 이루어져 마침내 1822년에 신구약 전서가 중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그후 중국어 성경은 하나님 호칭에 따라 신(神)판과 상제(上帝)판으로 나뉘고, 또 문체에 따라서 고전문체인 문리역(文理譯), 문리역을 쉽게 쓴 천(淺)문리역과 구어체인 국어역 등으로 구분된 번역본들이 발간되었다.
중국어 역본은 대별하면 대표역본(Delegate Version)과 화합역본(Union Version)이라는 두 종류로 나뉘어진다. 대표역본은 다시 신판과 상제판으로 나누며, 화합역본은 중국어 성경의 통일을 위해 중국내 모든 선교단체가 모여 445명의 대표들이 공동으로 번역한 것으로 1907년에서 1919년까지 신약과 구약을 출판하였다. 중국인 단독으로 번역한 것은 1952년에 여진중이 신약을 번역 출판한 것이 있고, 최근 번역으로는 홍콩성서공회가 1979년에 발간한 당대성경(當代聖經)과 같은 해에 영어 성경 Living Bible을 번역하여 간행한 금일성경(今日聖經)이 있다.
(일본어역 성경)
일본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1549년 예수회 신부인 프란시스코 사비에르(Francisco Xavier)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그는 일본에 오기 전에 인도 어느 지방에서 일본 청년 야지로우를 만나 그에게 전도를 했으며, 야지로우는 마태복음을 일본어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이 일본어 번역의 효시라고 한다. 그후에 사비에르는 페르난데즈(Fernandez)와 함께 시편 등을 계속 번역하였다.
그러나 인정되는 일본어 번역본은 1837년 화란 선교사 귀츨라프(K. Gutzlaff)에 의하여 싱가포르에서 발간된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이다. 그후 여러 선교사들에 의하여 계속해서 번역이 이루어졌다. 일본인에 의한 최초의 번역으로는 1873년 가다마사(永田方正)가 영어역본과 중국어 역본을 저본으로 신구약 일본어성경을 펴낸 것이 있다. 제대로 된 일본어 번역은 명치역(明治譯)인데, 이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요꼬하마에서 성서번역위원회를 결성하여 1880년에 신약과 1888년에 구약을 간행한 것이다. 현재는 1954년 간행된 소화(昭和) 구어역(口語譯) 신구약성경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번역성경 약사(略史)
우리말로 된 최초의 성경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00년경 역관(譯官) 최창현에 의하여 한글로 번역된『셩경직광익(聖經直廣益)』을 든다. 이는 중국에서 펴낸 성경직해(1636년)와 성경광익(1740년)을 합쳐서 재편집한 20여권에 이르는 필사본인데, 천주교에서 사복음서를 발췌하여 교회력에 따라 읽으면서 신앙의 실천 지침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우리 나라 천주교 초창기에 읽혔다고 한다. 이는 1892년에『셩경직?』라는 이름으로 인쇄본으로 다시 출판되어 더욱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한글 번역본은 1882년에 낱권으로 발행된 로스역을 최초로 치고 있으며, 그때부터 한글성경 번역이 많이 이루어지면서 우리말로 된 성경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우리 나라 성경의 번역 초기부터 현재까지 중요한 번역본들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로스역)
스코틀랜드 선교사인 존 로스(John Ross)는 우리 나라에 선교하러 들어오기 전에 한글로 된 성경 번역작업을 먼저 하였다. 그는 당시 청나라와 조선의 경계지역인 고려문에서 한국인 이용찬을 만나 한국어를 배우고 나서 성경 번역을 위한 사전준비작업으로 1877년에는 우선 조선어문법책부터 펴내었다. 그 후 매킨타이어(J. Macintyre)가 가세하고 서상륜 등 몇 사람의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1882년에 처음으로 낱권 성경인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출간하였다. 번역을 계속한 결과 드디어 1887년에는 신약전체를 번역하여『예슈셩교젼셔』라는 이름으로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로스가 취한 번역 원칙은 한국인이 먼저 중국의 한문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나서 그 원고를 헬라어성경 및 영어성경과 대조하여 수정하는 것이며, 번역방식은 축자번역이 아니라 조선어의 관용적 의미가 잘 통할 수 있도록 번역하였다고 한다.
(이수정역)
이수정은 경서와 사적을 관리하는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로서 박영효와 함께 신사유람단의 일행으로 일본에 건너갔다가 전도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는 세례까지 받은 후 동포의 전도를 위해 우리말로 된 성경의 필요성을 느꼈으나, 혼자서 우리말로 전체를 번역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한문성경에 한글로 토(吐)를 달아서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번역하였으며, 이것이 1884년에 미국성서공회의 도움으로 현토한한신약성서(懸吐漢韓新約聖書)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이수정역 신약성경은 이듬해인 1885년에 우리 나라 개신교의 첫 선교사로 알려진 장로교의 언더우드(H. Underwood)와 감리교의 아펜젤러(H. Appenzeller)가 가지고 들어와 사용하였다.
(개인 번역본들)
우리 나라에 개신교가 들어오고 나서 우리말 성경 번역은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885년부터 1910년까지 약 25년 동안은 우리 나라의 초창기 번역시대로서 성경 낱권에 대하여 개인적인 번역이 많이 이루어졌다. 신약의 경우 1887년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공동으로 마가복음을 번역하였고, 1890년에는 아펜젤러가 로스역 로마서를 수정?번역하였으며, 1892년에는 마태복음도 나왔다. 같은 해에 미국인 성교사 게일(J. Gale)이 사도행전을 번역하였는데, 게일은 성경원어에 박식한 인물로서 한글성경 번역을 위해 창설된 성서번역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 1891년에 침례교 선교사 펜윅(M. Fenwick)은 요한복음을 번역하였고, 그밖에도 몇 가지 종류의 발췌번역들이 1900년대 초기에 나타났다.
구약의 경우 1898년에 러시아 태생의 유대계 기독교인인 피터스(A. Peters)가 시편에서 발췌한『시편촬요』를 간행하였고, 1890년대에 나온 것으로 추측되는 창세기 일부가 번역되어 전하는 고경(古經)이라는 필사본이 있으며, 또 1897-98년에 걸쳐 최초의 교회신문인『죠션크리스도인회보』에 구약성경 본문 일부가 한글로 연재된 것이 있다.
(구역 성경)
우리 나라 기독교 초기에 개인적인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한편으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를 중심으로 알렌(H. Allen), 스크랜톤(W. Scranton), 헤론(J. Heron) 등이 가세하여 1887년에 성경번역위원회가 조직되어 성경의 한글 번역을 시작하였다. 이 번역위원회에서 발간된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나중의 개역 성경과 대조하여 구역(舊譯)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번역위원회에 속한 선교사들은 개별적으로 성경을 번역하여 발간하기도 했지만, 1893년에는 성경번역원칙을 확정하고 번역위원회 공동으로 본격적인 성경번역에 착수하였다. 이들의 노력으로 1900년에『신약젼셔』라는 이름으로 한글신약 완역본이 나왔는데, 1938년 개정본이 나오기까지 40년 가까이 한국교회에서 사용되었다.
번역원칙으로는 선교사들은 헬라어성경(네슬레-알란트판)과 영어개정역(RV)을 저본으로 하였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중국어 대표역본(Delegate Version)과 일본어성경을 저본으로 번역하여 위원회에 제출하면 이것들을 취합한 후에 검토의견을 가지고 전체 회의를 통해서 본문을 결정하는 방법을 택했다.
구약은 1904년부터 번역에 착수하여 1910년에 완성되었으며, 이듬해인 1911년에 마침내 신구약 합본으로『셩경젼셔』라는 한글판 성경이 최초로 출간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전파된 지 25년만에 이룬 업적으로서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근거가 되어왔으며, 국어학적인 면에서도 조선 말기의 언어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인정되고 있다. 구약번역에는 시편촬요를 번역한 피터스를 비롯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합류하였는데, 구약의 저본으로는 히브리어성경(맛소라본), 미국표준역(ASV), 영어개정역(RV)이 사용되었고, 또한 중국어 대표역본과 일본어성경이 참고되었을 것이다.
(개역 성경)
구역(舊譯) 한글성경이 나오자마자 바로 개역위원회가 조직되었다. 그것은 급한 번역으로 오역이 많기 때문이었는데, 구약이 신약보다 더 심하므로 구약부터 개정작업이 시작되었다. 그간 타계한 아펜젤러(1858-1902)는 참여할 수 없었으나, 언더우드를 비롯하여 미국 북장로교와 남감리회, 호주 장로교 선교사들이 많이 번역에 참여하였으며, 히브리어에 능통한 유대계 피터스도 참여하였다. 한국 사람으로는 남궁혁과 이원모 등 6명이 실질 번역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새 번역작업은 난항을 거치면서 시작한 지 25년만인 1936년에『구약젼셔 ?역 』으로 출간되었다.
신약의 경우 구약보다 훨씬 뒤인 1926년에 개정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이때는 언더우드(1859-1916)가 타계하여 참여하지 못한 대신 다른 많은 선교사들이 참여하였음, 한국인으로는 남궁혁이 참여하여 12년만인 1938년에『신약개역』이란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이는 당시 조선어학회에서 개정한 한글 철자법의 일부를 적용하여 아래아(?) 자가 없어지고, 문장이 조금 세련되어졌으나, 구역(舊譯)과 비교하여 큰 변화는 없었다.
아무튼 개역위원회에서 발간한 구약개역과 신약개역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성경의 모체가 되는 것으로서, 이것들 역시 한글에 능숙치 못한 선교사 중심의 번역이었으므로 표현에 있어서 한문성경을 많이 의지한 결과 오늘날 보다시피 한문투의 어색한 표현이 많은 것이다.
그러다가 1947년 대한성서공회가 발족하고 1948년 한글 맞춤법이 개정?확정되면서 1936-38년에 발간된 신구약 개역성경에 대하여 새로운 맞춤법을 채택?적용함으로써 1956년 드디어 개역성경이라고 불리는 현재의『성경전서』가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는 이름뿐인 개역이지 내용과 표현에 있어서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많은 교단에서는 독자적으로 혹은 연합으로 실질적인 성경의 개역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