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육이
이 병 옥
우리 집은 뜰이 없다. 비좁은 터에 건물만 달랑 들어선 벽돌집이다 보니 삭막하기조차 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꽤 너른 옥상이 있다. 우리는 입주하던 그 해부터 옥상에다 대형 화분을 이용해 상추, 쑥갓, 쪽파 등 각종 채소를 심고 모양이나 크기가 다른 사오십여 개 화분에는 사철 잎이 푸른 관상용 화초를 심어 정성껏 가꾸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하면서 그들의 숫자와 몸집이 불어나자 점점 다루는 일이 부담스러워졌다. 더위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하루만 물을 못 줘도 이파리가 축축 늘어져버렸고, 겨울에는 추위에 취약한 식물이라서 냉해를 입을까 봐 담요를 들고 쫓아다녔다. 이처럼 사철 햇볕과 그늘을 찾아다니며 집 안팎으로 들여놓고 내놓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지난해 늦가을의 일이다. 된서리를 피해 옥상에 있던 아이비 화분을 힘겹게 들고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디며 그만 놓쳐버렸다. 그날 화분만 깨졌으니 다행이었지, 그대로 계단으로 굴렀더라면 내 몸 한두 군데 이상 크게 부서질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계절 바뀔 때만이 아니다. 간혹 집이라도 비우게 되면 얼어 죽을까 봐, 말라죽을까 봐 노심초사였다. 그렇게 근심 걱정을 달고 살다보니 어느 날부턴가 꽃을 보며 즐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노예로 살고 있다고 느끼면서 마음속에 갈등이 일었다. 고민 끝에 한 때 이웃의 부러움을 사며 우리 집 자랑으로 여겼던 화초들을 미련 없이 처분하기로 결심했다. 아쉬움 반, 시원함 반으로 치우고 나니 빈자리가 썰렁하다. 그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이번에는 자잘한 다육이를 키워보기로 했다. 다육이는 덩치 큰 놈도 있지만, 내가 선택한 건 앙증맞고 작아서 다루기가 쉬울뿐더러 물 한 모금 못 먹어도 한두 달은 꿋꿋이 버틸 수 있다는 강단이 있어서 더욱더 맘에 들었다. 봄여름 동안 화원과 풍물장을 들락거렸다. 그렇게 모아들이기 시작한 다육이는 가을로 접어들자 서른 여종이 훌쩍 넘게 되었다. 그들을 들여다보는 재미 또한 짭짤하다. 흔히 말하기를 다육이는 게으른 사람이 키운다지만 막상 다뤄보니 그것도 맞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다육이를 키우면서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다. 처음에는 다육이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는데 놀랐다. 다양한 만큼 이름도 헷갈릴 정도로 복잡하다. 똑같아 보여도 이름이 또 다르다. 마치 쌍둥이가 외모는 비슷해도 이름은 다르듯이 말이다.
생김새도 천차만별이다. 손톱이나 발톱 같이 암팡지게 생겼나 하면 꽃잎처럼 연약하고 나무같이 다부지기도 하다. 넓적한 놈이 있는가 하면 통통한 놈이 있고, 동글동글한 놈이 있는가 하면 길쭉한 놈도 있다. 성질 또한 제 각각이란 걸 알게 된 뒤로는 다육이 매력에 폭 빠져버렸다. 보면 볼수록 귀엽고 예쁘다. 하나하나 눈여겨보니 동물이나 식물이나 공통점이 있다. 항상 관심과 사랑을 먹어야 건강하고 반듯하게 자라는 건 물론이고, 장점과 단점, 강함과 약함 또한 동시에 지녔다는 점이다. 여름에는 잎에 힘이 빠져 보이거든 물을 주라는 꽃집 주인의 당부를 기억하며 자꾸 수도꼭지로 손이 가는 걸 꾹 눌러 참았다. 조석으로 물뿌리개를 돌리던 버릇이 있어서 나름 엄청 기다렸다가 물을 주었는데 장마기간인 걸 미처 몰랐다. 어째 날이 갈수록 비실비실하다 했더니 해충에다 무름 병을 앓는단다. 화원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몽땅 뽑아서 소독하고 뿌리의 습기를 완전히 말린 후, 물 빠짐이 좋은 흙으로 분갈이 해주었다.
다육이는 물과 거름을 안주는 것보다 너무 줘서 죽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베란다와 옥상을 오르내리며 화초에 물 주는 일이 몸에 밴 내 경우는 다육이 키우기에 가장 어려운 점이 물 주기인 것 같다. 일조량이 충분하고 환기와 통풍이 잘 되는 곳이면 약 보름 단위로 물을 주되, 그밖에는 화분 속 수분과 주변의 습도 상태를 살펴가며 물 주는 시기와 간격을 알아서 조절하란다. 그러고 보니 일주일이냐 한 달이냐를 따지기보다 실제로 부딪혀서 죽이고 살리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우리 집 기온과 환경에 맞는 물주기와 분갈이, 즉 나만의 노하우를 터득하는 게 더 중요하고 확실한 성공법이리라. 그래서 몸집 불리기나 물 욕심이 없는 고놈들을 단단하고 멋있게 키우기 위해 틈나는 대로 눈썰미와 촉감으로 관찰하기로 했다. 그러다 내 눈에 꽂히면 살짝 다가가 속삭여준다.
꽃인가 하면 잎이고 이파리인가 하면 꽃 같은 너를
그 누가 줏대 없다 하리 작아서 더 예쁜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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