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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삼매경 상권
2.5. 등분(等分)을 다스리는 법문
[부처님을 생각하는 삼매의 세 가지]
다섯 번째 법문은 등분을 다스리는 행이다.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은 부처님을 찾으니,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마땅히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는 삼매를 가르쳐야 한다.
염불삼매에는 세 가지 사람이 있으니, 초습행(初習行)ㆍ이습행(已習行)ㆍ구습행(久習行)이다.
1) 불상의 상호를 보다
만일 초습행의 사람이라면 불상이 있는 곳에 데리고 가거나, 혹은 스스로 가게 하여 불상의 상호를 잘 보게 한다.
모습 모습이 명료해지면 한마음으로 지니고 조용한 곳으로 돌아가 마음의 눈[心眼]으로 불상을 관조하여 마음이 돌아다니지 않게 하고, 생각을 묶어 불상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
다른 생각을 거두어서 항상 불상에 머물게 한다.
만일 마음이 머물지 않는다면 스승은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그대는 마땅히 마음을 꾸짖어야 한다.
그대로 말미암아 받는 죄가 헤아릴 수 없으니, 끝없는 생사와 갖가지 고뇌를 다시 받지 않는 것이 없다.
만일 지옥에 있으면 큰 바다 같은 구리를 삼키거나 마시며, 타오르는 쇠구슬을 먹고,
만일 축생에 있으면 똥과 풀을 먹으며,
만일 아귀에 있으면 배고픔의 고통을 받고,
만일 사람 속에 있으면 가난하고 고단하며,
만일 하늘 위에 있으면 욕망을 잃어버리고 근심한다.
항상 그대를 따르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이 갖가지 육체적 고뇌[身惱], 정신적 고뇌[心惱] 등 헤아릴 수 없는 고뇌를 받게 하니, 이제 마땅히 그대를 통제하리라. 그대는 마땅히 나를 따르라.
내 이제 그대를 한 곳에 묶어서 내가 마침내 다시는 그대 때문에 곤란해지거나 괴로움의 해독을 받지 않으리라.
그대가 항상 나를 곤란하게 했으니, 내 이제 마땅히 일[事]로써 그대를 곤란하게 하리라.
이와 같이 하여 그만두지 않으면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리라.
이때 문득 마음의 눈을 얻어 불상의 모습과 광명을 보리니, 눈에 보인 그대로여서 다름이 없다”라고 해야 한다.
이와 같이 마음이 머물면, 이것을 ‘처음으로 익혀서 행하는 이의 사유(思惟)’라고 한다.
이때 마땅히 다시 생각해서,
‘이것은 누구의 모습인가? 바로 과거 석가모니부처님의 모습이다. 내가 이제 부처님의 형상을 보았듯이 형상이 온 것도 아니고, 나 역시 가지 않았다’라고 말해야 한다.
2) 과거의 부처님을 보다, 32상과 80상호
이와 같은 심상(心想)으로 과거의 부처님을 본다.
처음 신(神)이 내려올 때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고, 32상(相)의 대인(大人)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첫째 발바닥이 평평하다.
둘째 발바닥에 천 개의 바퀴살이 있는 바퀴가 있다.
셋째, 손가락이 길고 아름답다.
넷째, 발뒤꿈치가 넓다.
다섯째, 손가락과 발가락에 모두 명주그물이 있다.
여섯째, 다리를 포개면 높고 평평하며 아름답다.
일곱째, 이니연(伊尼延)의 무릎과 같다.
여덟째, 평소에는 손이 무릎을 지난다.
아홉째, 음마장(陰馬藏)의 모습이다.
열째, 니구로다(尼俱盧陁)의 몸이다.
열한째, 하나하나의 구멍에 하나하나의 털이 나 있다.
열두째, 털이 위쪽을 향해 나서 오른쪽으로 선회한다.
열셋째, 몸의 빛깔이 상품의 금보다 더 뛰어나다.
열넷째, 신광(身光)이 네 면의 한 길[丈]을 비춘다.
열다섯째, 피부가 아름답다.
열여섯째, 일곱 곳이 가득 차 있다.
열일곱째, 양쪽 겨드랑이 아래가 평평하고 아름답다.
열여덟째, 윗몸이 사자와 같다.
열아홉째, 몸이 크고 아름다우며 단정하고 반듯하다.
스무째, 어깨가 둥글고 아름답다.
스물한째, 40개의 치아가 있다.
스물두째, 치아가 희고 고르며 빽빽하고 뿌리가 깊다.
스물셋째, 네 개의 어금니가 희고 크다.
스물넷째, 뺨이 사자와 같다.
스물다섯째, 맛 중에서 최상의 맛을 얻는다.
스물여섯째, 혀가 크고 넓고 길면서 얇다.
스물일곱째, 범음(梵音)이 깊고 멀리까지 들린다.
스물여덟째, 가릉빈가의 음성이다.
스물아홉째, 눈이 감청색이다.
서른째, 속눈썹이 우왕(牛王)과 같다.
서른한째, 정수리의 터럭이 육골(肉骨)을 이룬다.
서른두째, 미간에 흰 터럭이 길고 아름다우며 오른쪽으로 감겨 있다.
다시 80가지 작은 특징이 있다.
첫째, 정수리를 볼 수 없다.
둘째, 코가 곧고 높으며 아름답고 구멍이 드러나지 않는다.
셋째, 눈썹이 초승달과 같고 감색 유리 빛이다.
넷째, 귀가 아름답다.
다섯째, 몸이 나라연과 같다.
여섯째, 뼈 사이는 쇠사슬과 같다.
일곱째, 몸이 한꺼번에 도는 것이 코끼리 왕과 같다.
여덟째, 움직일 때는 발이 땅에 네 마디마다 발자국을 찍어서 나타낸다.
아홉째, 손톱은 붉은 구리 빛깔과 같고 얇으면서도 윤이 난다.
열째, 무릎이 둥글고 아름답다.
열한째, 몸이 청결하다.
열두째, 몸이 유연하다.
열셋째, 몸이 굽지 않았다.
열넷째, 손가락이 길고 둥글며 가늘다.
열다섯째, 지문(指紋)이 그림과 같으며, 여러 가지 색으로 장엄하였다.
열여섯째, 혈맥이 깊어 보이지 않는다.
열일곱째, 복사뼈가 깊어서 보이지 않는다.
열여덟째, 몸이 윤기 나고 광택이 있다.
열아홉째, 몸을 스스로 지키고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
스무째, 몸이 달을 다 채워서 태어난다.[3월에 수태하여 2월에 태어났다.]
스물한째, 용모와 위의가 충족되어 있다.
스물두째, 머무는 곳이 편안하다.[우왕이 서서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스물셋째, 위엄을 일체에게 떨친다.
스물넷째, 일체를 즐겁게 본다.
스물다섯째, 얼굴이 길지 않다.
스물여섯째, 반듯한 용모에 요란스럽지 않은 빛깔이다.
스물일곱째, 입술이 빈바(頻婆) 열매의 빛깔과 같다.
스물여덟째, 얼굴이 원만하다.
스물아홉째, 울리는 소리가 깊다.
서른째, 배꼽이 둥글고 깊어 나오지 않았다.
서른한째, 터럭이 곳곳에서 오른쪽으로 감겨 있다.
서른두째, 손과 발이 원만하다.
서른셋째, 손과 발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옛날에 ‘안팎을 잡는다’고 말한 것이 이것이다.]
서른넷째, 손과 발의 문양이 분명하고 곧다.
서른다섯째, 손의 문양이 길다.
서른여섯째, 손의 문양이 끊어지지 않았다.
서른일곱째, 일체의 악한 마음을 머금고 있는 중생들이 보게 되면 모두 온화하고 기쁜 낯빛을 얻는다.
서른여덟째, 얼굴이 넓고 아름답다.
서른아홉째, 얼굴이 달과 같다.
마흔째, 중생들이 보면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흔한째, 털구멍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나온다.
마흔두째, 입에서 향기가 나오고 중생들이 만나면 7일간 법을 즐긴다.
마흔셋째, 풍채가 사자와 같다.
마흔넷째, 나가고 머무는 것이 코끼리 왕과 같다.
마흔다섯째, 법을 행하는 것이 독수리왕과 같다.
마흔여섯째, 머리는 마타라(磨陁羅) 열매와 같다.[이 열매는 둥글지도 길지도 않다.]
마흔일곱째, 소리의 나뉨이 만족스럽다.[소리는 60가지 구분이 있는데 부처님은 이들을 모두 구족한다.]
마흔여덟째, 어금니가 예리하다.
마흔아홉째, [중국어에 해당하는 이름이 없어서 쓰지 못했다.]
쉰째, 혀가 크고도 붉다. 쉰한째, 혀가 얇다.
쉰두째, 털이 순수한 홍색(紅色)이며 색깔이 청결하다.
쉰셋째, 넓고 긴 눈이다.
쉰넷째, 구멍의 문이 차 있다.[아홉 구멍의 문이 서로 구족하여 차 있다.]
쉰다섯째, 손과 발이 붉고 흰 것이 연꽃 색깔과 같다.
쉰여섯째, 배가 들어가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았다.
쉰일곱째, 볼록한 모양의 배가 아니다.
쉰여덟째,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쉰아홉째, 몸이 무겁다.
예순째, 몸이 크다.
예순한째, 몸이 길다.
예순두째, 손과 발이 원만하고 청결하다.
예순셋째, 사방에 커다란 빛이 두루하고 광명이 스스로 비춘다.
예순넷째, 중생을 평등하게 본다.
예순다섯째, 교화에 집착하지 않고 제자를 탐내지 않는다.
예순여섯째, 뭇 소리가 가득함을 따라서 줄어들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는다.
예순일곱째, 뭇 음성에 따라서 법을 설한다.
예순여덟째, 말씀을 하시되 걸림이 없다.
예순아홉째, 차례로 서로 이어서 설법한다.
일흔째, 일체 중생들 눈으로는 그 모습을 자세하게 보아서 다 알 수가 없다.
일흔한째, 보아도 싫증나거나 만족함이 없다.
일흔두째, 머리카락이 길고 아름답다.
일흔셋째, 머리카락이 아름답다.
일흔넷째, 머리카락이 헝클어지지 않는다.
일흔다섯째, 머리카락이 부서지지 않는다.
일흔여섯째, 머리카락이 유연하다.
일흔일곱째, 머리카락이 푸르고 비유리(毘琉璃) 색깔이다.
일흔여덟째, 머리카락을 위에서 묶었다.
일흔아홉째, 머리카락이 드물지 않다.
여든째, 가슴에 덕(德)이란 글자가 있고, 손과 발엔 길(吉)이란 글자가 있다.
광명이 무량한 세계를 꿰뚫어 비추고,
처음 태어나자 일곱 걸음을 걷고 입을 열어 핵심적인 말씀을 연설하셨다.
출가하여 고행에 힘쓰시고,
보리수 아래에서 마군을 항복시키며,
후야(後夜)의 새벽에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셨고,
빛나는 모양이 분명해서 멀리 시방을 비추되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며,
여러 하늘들이 허공에서 현악에 맞추어 노래 부르고 공양하며 꽃을 뿌리고 향을 비처럼 내리니 일체 중생들이 모두 공경하여 헤아릴 수가 없으며,
홀로 삼계를 걸으시되 되돌아보고 몸을 굴리심이 마치 코끼리 왕이 도는 것과 같으며,
도(道)의 나무를 보시고 처음 법의 바퀴를 굴리시니, 천인(天人)이 깨달음을 얻어 도로써 스스로 깨달아 열반에 이르게 된다.
부처님의 몸은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움직이는 것이 헤아릴 수 없으니,
마음을 기울여 염불하여 생각이 벗어나지 않게 하며,
바깥으로 여러 연(緣)을 생각하면 추슬러서 돌아가게 한다.
이와 같이 어지럽지 않으면, 이때 문득 한 분의 부처님, 두 분의 부처님 나아가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세계의 모든 부처님의 색신(色身)을 볼 수 있으니, 심상(心想) 때문에 모두 그것을 볼 수 있다.
이미 부처님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설법의 말씀을 들었으나, 혹 스스로 묻기를 청한다면, 부처님께서 설법하시어 여러 가지 의심의 그물을 풀어 주시리라.
3) 부처님의 공덕과 법신을 생각하다
이미 부처님의 생각을 얻었다면,
마땅히 다시 부처님의 공덕과 법신을 생각하되,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한 지혜이시고, 절벽이나 밑바닥이 없는 지혜이시며, 헤아릴 수 없는 덕이시고,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이시며,
[‘다타’는 진(秦)나라 말로는 여(如)이고 ‘아가도’는 해(解)라고 한다.
또 실어(實語)라고도 하며,
또 모든 성인께서 편안한 길로 오신다는 말이며,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오시다는 뜻이다.
또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뒤에는 중(中)의 의미가 있게 되었다.]
아리하(阿犁呵)이시니라.
[‘아리’는 진나라 말로는 적(賊)이며, ‘하’는 살(殺)이라는 뜻이다.
즉 부처님께서는 인욕으로 갑옷을 삼고, 정진으로 굳고 단단함을 삼으며, 선정으로 활을 삼고, 지혜로 화살을 삼아 교만 등의 적을 죽이시기 때문에 살적(殺賊)이라고 한 것이다.]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이시며,
[‘삼먁’은 진나라 말로 진실(眞實)이라는 말이고 ‘삼불타’는 일체를 다 깨달았다는 뜻이니,
괴로움의 원인을 깨달아 열반의 원인을 익혀 바른 견해를 말하고 네 가지 진실을 알아 전전하지 않는다.
다 깨달아 남음이 없기 때문에 진실하게 일체를 깨달았다고 말한다.]
비가차라나(鞞伽遮羅那)이시고,
[‘비가’는 진나라 말로는 명(明)이고 ‘차라나’는 선행(善行)이라는 뜻이다.
3명(明)을 밝히고 청정한 행을 실천하여 그로 인해 홀로 스승 없이 대각(大覺)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명선행(明善行)이라고 말한다.]
삼반나(三般那)이시니라.
[진나라 말로는 만성(滿成)이다.]이시고,
숙가타(宿伽陀)이시고,
[진나라 말로는 잘 이해한다(善解)는 뜻이며,
또한 잘 스스로 얻음(善自得)이라고도 한다.
또는 잘 말하여 근심이 없음(善說無患)이라고도 한다.]
노가비(路伽憊)이시고,
[‘노가’는 진나라 말로 지(智)라 하니, 지라는 것은 세상의 인(因)을 알고 진도(盡道)를 다 알기 때문에 세지(世智)라고 말하는 것이며, 세지는 또한 세상을 안다는 뜻이다.]
아누다라(阿耨多羅)이시니라.
[진나라 말로는 무상선법(無上善法)이라고 한다.
성인의 지혜로 일체을 다 나타내어 인도하고 큰 덕이 한량없어서 범마중성(梵魔衆聖)도 미칠 수 없거든, 더구나 일반 중생으로서야 어떻게 부처님의 높은 덕에 미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무상(無上)이라고 말한 것이다.]
부루사담먁(富樓沙曇藐)이시고,
[‘부루사’는 진나라 말로 대장부(大丈夫)라 하고, ‘담먁’은 가(可)라고 하니, 가화장부(可化丈夫) 또는 조어사(調御史)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시고 큰 지혜를 지니셨기 때문에,
어떤 때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말씀을 하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고절(苦切)한 말씀이 있으시기도 하며,
혹은 친히 가르치기도 하시니, 이렇게 길들이고 가르쳐서 중생들로 하여금 도를 잃지 않게 하므로 부처님을 이름하여 가화장부조어사법(可化丈夫調御師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다디파마누사남(舍多提婆魔㝹舍喃)이시니라.
[진나라 말로는 천인사(天人師)라고 한다.
모든 사람의 번뇌를 다 해탈시켜 주어서 항상 최상의 법에서 물러남이 없게 하신다는 뜻이다.]
불바가바(佛婆伽婆)이시라고 생각해야 한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행(行)과 불행(不行)을 아시고 진(盡)과 부진(不盡)을 실천하시어 일체 법을 보리수 아래에서 분명히 깨달으셨으므로 ‘불’이라고 한다.
‘바가바’는 큰 명성이 있다는 말이요, 또한 ‘바’는 여근(女根) 또는 토(吐)라고도 하니, 여근을 영원히 버렸기 때문에 여근토(女根吐)라고 한다.]
그때 다시 두 부처님의 신령한 덕과 셋, 넷, 다섯 분의 부처님 나아가 헤아려 다할 수 없는 허공계가 모두 이와 같음을 생각한다.
다시 돌이켜 한 분의 부처님을 보되,
능히 한 분의 부처님을 보고서 시방의 부처님을 만들며,
시방의 부처님을 보고서 한 분의 부처님을 만들 수 있으니,
능히 하나의 색깔로 금ㆍ은ㆍ수정ㆍ비유리(毘琉璃) 색깔을 만들게 하여 사람들 마음의 즐거움에 따라 모두 그것을 보게 할 수 있다.
그때는 오직 두 가지 일을 관하니, 허공의 부처님 몸과 부처님의 공덕이다.
더구나 다른 생각이 없어서 마음에 자재함을 얻어 뜻이 흐트러지지 않으면, 이때 염불삼매를 이룰 수 있다.
만일 마음이 흐트러지면 생각에 다섯 가지 티끌이 있는 것이다.
만일 여섯 가지 정신작용에 있으면 마땅히 스스로 힘써서 그 마음을 극복하고 격려하여 강제로 굴복시켜야 하니, 이와 같은 사유로는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고 부처님의 법을 얻기 어렵다.
그러므로 말하길 여러 가지 밝은 것 중에 해가 으뜸이며, 여러 가지 지혜 중에서는 부처님이 최고라고 하니,
왜 그런가?
부처님께서는 대비를 일으켜 항상 일체 중생을 위하시기 때문에 머리와 눈과 골수와 뇌로써 중생을 구제하신다.
그런데 어찌 방심하여 염불에 전념하지 않고 무거운 은혜를 저버리려 하는가?
만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지 않으셨다면 사람의 길[人道]과 하늘의 길[天道]과 열반의 길[涅槃道]이 없었을 것이다.
만일 사람이 향과 꽃으로 공양하거나 골육(骨肉)과 혈수(血髓)로 탑을 세워 공양한다 하더라도 아직 수행인이 법으로 공양하여 열반에 이르지 못했다면, 오히려 부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것이 되리라.
설령 부처님과 공(空)과 무소유(無所有)를 생각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응당 마음을 삼가고 전념하여 잊지 않는 것으로써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할 것인데, 어찌 하물며 전념하지 않으면서 염불하여 여러 삼매와 지혜를 얻고 성불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수행자는 항상 전심전력하여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해야 하며, 이미 부처님을 뵈었으면 청하여 의심되는 것을 해결해야 하니, 이 염불삼매는 등분(等分)과 나머지 무거운 죄를 없애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