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수보살권계왕송(龍樹菩薩勸誡王頌)
대당(大唐) 삼장법사(三藏法師) 의정(義淨) 지음
이현옥 번역
이 게송은 용수(龍樹)보살이 시로써 편지를 대신하여 남인도의 친한 벗인 승토국(乘土國) 왕에게 한 수(首)를 보내준 것이다.
이 글은 앞서 번역되어 신주(神州) 관서의 창고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볼 수 없었고, 더욱이 말이 미묘하여 상세히 알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다시 본문을 정하여 유통시키려 하였으나 제재에 막히게 되자, 사문 의정이 동인도(東印度)의 탐마립저국(耽摩立底國)에서 번역한 것이다.
유정이 무지하여 마음이 가려진 까닭에
자비를 일으켜 지혜를 열게 하려는 것이네.
큰 덕을 갖추신 용수가 국왕을 위하여
편지를 부쳐 그가 닦고 배울 수 있게 한 것이네.
이 한 행의 게송은 후세의 사람들이 적은 것으로 편지의 본뜻을 기록한 것이다.
덕을 갖추신 이여, 나는 여래[如如]의 가르침을 연설하리니
중생을 위하여 복덕과 사랑이 일어나도록 말하려네.
진실로 선한 이는 살펴 들을 수 있으리니
이 게송을 이름하여 성기저(聖祇底)라 하네.
불상은 어떤 나무로 만들어졌어도 공경하듯이
모든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공경해야 하네.
내가 지은 시송은 교묘하지는 않으나
정법에 의지해 설한 것이니 경시해서는 안 되네.
왕이 앞서 여래의 가르침을 이해했어도
다시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면 뛰어난 지혜가 더 생길 것이네.
마치 석회 벽에 달빛이 빛나듯이
어찌 선명하여 더욱 아름답고 미묘하지 않으리오.
부처님ㆍ부처님의 가르침ㆍ승중(僧衆)
보시ㆍ지계 및 하늘의
하나하나 공덕을
부처님께서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네.
십선(十善)의 모든 업도(業道)에
몸ㆍ언어ㆍ생각을 늘 가까이하고
온갖 술을 멀리하여 끊고
또 맑고 깨끗한 생활을 행해야 하네.
재물의 실체가 견고하지 않음을 알고
법대로 비구에게 보시하여
빈천함이 다시 되풀이되더라도
내세의 친한 벗으로 삼아야 하네.
뭇 공덕은 계에 의지하여 머무니
마치 땅에서 모든 것이 생장하는 것과 같네.
구멍 속의 잡된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항상 배워야 한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네.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과
지혜는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네.
이들로써 수행에 도달하고 감응할 수 있으며
어떤 바다라도 건너가 부처님이 될 수 있네.
만약 부모님께 효도하고 봉양하면
그 집안에 범왕(梵王)이 태어나고
현세에 좋은 이름을 드날려
내세에 천당에 태어나리.
살생ㆍ도둑질ㆍ음행ㆍ거짓말
정오 이후의 식사[躭食]ㆍ높은 자리를 애호함과
술ㆍ가무(歌舞)와
꽃 및 향 바르기를 끊어야 하네.
만약 여자와 남자가
이 팔지성계(八支聖戒)를 잘 이루면
욕계의 육천(六天)에서
맑은 선(善)이 자라 장차 태어나네.
인색ㆍ아첨ㆍ거짓말ㆍ욕심ㆍ게으름과
거만ㆍ음욕ㆍ분노ㆍ가문[氏族]과
지식[多聞]ㆍ젊음[年少]ㆍ교태를
똑같이 모두 원수처럼 보아야 하네.
무생(無生)은 근면에서 기인한 것이고
생사[有死]는 게으름에서 비롯한 것이네.
꾸준히 선법을 잘 기르려면
근신(勤愼)하며 닦아야 하네.
먼저 게으름을 멀리하고
나중에 마음을 바꿔 꾸준히 닦으면
마치 구름으로 뒤덮였다 해도
맑게 갠 밤에 밝은 달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손타라난타(孫陀羅難陀)나
앙구리마라(央具理摩羅)나
달사(達舍)ㆍ기막가(綺莫迦)
따위의 악을 모두 바꿔서 선으로 만드네.
용맹정진은 인내와 같지 않고
분노의 힘으로써 행해서도 안 되네.
궁극에는 불환위(不還位)를 얻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증명하셨으나 분노를 제거해야 가능한 것이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때리고 매도하며
자신의 재산을 기만하고 능멸하여 빼앗을 경우에도
한을 품으면 원망과 다툼을 초래하고
한을 버리면 편안한 즐거움 속에서 잠들 수 있네.
마치 물이나 흙, 돌의 경우처럼
사람의 마음도 다 그와 같네.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 먼저의 경우이고
뛰어난 법을 사랑하는 것은 나중의 경우이네.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말에 관해 말씀하셨으니
곧 사람의 아름다운 말ㆍ진실한 말ㆍ거짓말이네.
비유하면 꿀과 꽃과 똥과 같아
거짓말을 버리고 아름답고 진실한 말을 행해야 하네.
지금 밝은 데에서 후에 밝은 데로 가는 것과
지금 어두운 곳에서 후에 다시 어두운 곳으로 가는 것과
지금 밝은 데에서 어두운 곳으로 가는 것과
지금 어두운 곳에서 후에 밝은 곳으로 가는 것이 있네.
이와 같은 네 종류의 사람 가운데
왕은 마땅히 그 첫 번째에 해당하니
스스로 생소한 가운데 익숙[熟]함이 있는 것처럼,
또 익숙한 가운데 생소함이 있는 것처럼,
또한 익숙한 가운데 익숙함이 있는 것처럼,
혹은 다시 생소함 중에 생소함이 있는 것처럼,
암몰라(菴沒羅)의 열매 가운데
이와 같은 차이가 있네.
사람도 그 네 경우와 같으니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왕은 알아야 하네.
다른 이의 아내가 있는 방을 엿보지 말며
설사 보았다면 마치 어머니ㆍ딸처럼.
누나ㆍ누이처럼 생각하고 나이에 따라
일어나는 애탐(愛貪)을 부정하다고 생각해야 하네.
마치 자식ㆍ아들ㆍ곳간ㆍ생명처럼
들뜬 마음을 막아 지키고
맹수ㆍ독약ㆍ칼ㆍ원수ㆍ불과 같은
욕망의 즐거움이 침입하지 못하게 해야 하네.
욕망 때문에 이롭지 않은 것을 만드니
비유하면 겸박(兼博)의 열매와 같네.
부처님께서는 “생사의 감옥과 쇠사슬
그것을 마땅히 제거해야 하니,
속임수는 항상 대상을 동요하지만
이 육식(六識)을 능히 굴복시키는 사람과
몽둥이를 집어 원수들을 쓸어버리는 사람 중에
앞의 사람이 훨씬 더 용맹함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네.
냄새 나는 아홉 구멍의 온갖 때의 방
몸은 원만하기 어렵고 얇은 피부로 감싸여 있네.
소녀의 장식물과 화장을 지우면
송장과 나쁜 말에 불과함을 보기를 청하네.
나병 균[癩虫]이 곪아 짓물러질 때마다
고통스러워 불 가까이에서 안락을 구하여
멈추고자 해도 없애기 어렵듯이
욕망에 탐닉하는 것도 그와 같네.
진실로 뛰어난 이치를 알기 위해서는
작의(作意)로써 모든 일을 관찰하고
오로지 이 덕을 익혀야 하며
남김없이 법을 가까이해야 하네.
만약 사람이 가문과 인망과
미모와 박식함을 갖추었지만
지혜가 없고 파계한다면
이 사람을 어찌 족히 귀하다 하리오.
가령 가문이 보잘것없고
용모가 추하고 아는 것이 적은 사람일망정
지혜가 있고 계율을 보호한다면
사람들이 다 공경해야 하네.
이익ㆍ무익ㆍ괴로움ㆍ즐거움
명성ㆍ무명ㆍ비난ㆍ칭찬의
속세의 여덟 법을 이해하고
마음을 가지런히 하여 이 경계를 떠나네.
바라문[再生天]ㆍ사문[乞士]
부모ㆍ처자ㆍ사람
이로 인해 죄를 짓지 말며
지옥의 과보를 다른 이가 나눌 수 없네.
모든 죄업을 행하면
마치 칼에 베어 상처가 나는 것과는 같지 않아
임종의 시간에 이르러야
악업의 과보는 완전히 드러나네.
믿음ㆍ계율ㆍ보시ㆍ청정하게 듣는 것
부끄러움ㆍ뉘우침ㆍ바른 지혜를
칠재(七財)라고 석가모니께서 말씀하셨네.
모든 존재하는 물질은 진실로 허망한 것이네.
장기와 바둑 즐기기, 잡된 경계를 구경하며 교분하기
게으르고 악한 벗을 가까이 하는 것
음주, 때 아닌 때에 다니기의 이 여섯 과실은
아름다운 명예를 위협하는 것이므로 버려야만 하네.
재물을 구함에 있어 욕심이 적은 것이 최고라고
인천(人天)의 스승께서 강조하여 말씀하셨네.
만약 욕심을 적게 가지고 수행하면
가난해도 부자라네.
가령 사람이 널리 모든 일을 구하려 하면
이생[爾許]의 괴로움을 초래하여 더 받네.
지혜로운 사람이 만약 욕심이 적음을 닦지 않는다면
번뇌를 다시 받으니, 마치 머리 여럿을 가진 구렁이와 같네.
살인자와 같은 원한을 품고
남편을 허수아비처럼 기만하고 경시하며
조그만 물건도 훔치고야 마는
이 도적 같은 세 종류의 아내는 마땅히 버려야 하네.
자매처럼 따르고 어머니처럼 자애하고
노비처럼 순종하며 친구처럼 함께 하는
이와 같은 네 종류의 아내는 공경받아야 하며
이 집의 수호신[天人]이라 불림을 알아야 하네.
밥을 먹는 것을 마치 약을 복용하는 것과 같이 하고
욕심과 성냄이 없어야 하는 것은
살찌고 교만하며 거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몸을 유지하기 위함이네.
꾸준히 몸으로써 온종일
초저녁부터 새벽에 이르도록
잠잘 때도 꿈속에 오래 남도록 해야
사명(使命)이 헛되지 않게 끝까지 남네.
자애ㆍ비심ㆍ기쁨ㆍ평정심을
닦고 익혀 항상 연구해야 하네.
비록 상류에는 못 들어갔어도
능히 범세천(梵世天)에 태어날 수 있네.
잡된 욕심ㆍ괴로움ㆍ성찰ㆍ희락을 버리고
업에 따라 정차 네 가지 땅에 태어나니
대범천(大梵天)ㆍ광음천(光音天)ㆍ변정천(編淨天)이나
광과천(廣果天)에 태어남이 그와 같다네.
대치도[對治]를 항시 닦아
덕으로써 중생을 아주 가엾게 여기면
이 다섯 가지 행은 선이 되어
큰 악을 행하지 않네.
소금 비를 내려 약간의 물을 짜게 할 수 있지만
어찌 강과 못을 다 짜게 하는 것과 같을 수 있으리오.
가령 죄업이 미진하고
선이 두루 미칠 때도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야 하네.
성냄ㆍ침착하지 못함ㆍ후회와
졸음ㆍ욕심ㆍ의심의
다섯 가지 장애의 적[蓋賊]은
선한 이로움들을 항상 훔치네.
가장 뛰어난 다섯 가지 법은
믿음ㆍ용기ㆍ기억ㆍ선정ㆍ지혜이네.
이것을 꾸준히 익혀야만
근기와 힘의 최상이 능히 초래되네.
병의 고통ㆍ죽음ㆍ사랑하는 것과의 이별
이 모두 자신의 없이 되네.
미처 건너지 못하였지만 꾸준히 닦을 수 있으면
성품을 대치하여 교만 방자하지 않네.
만약 하늘에 태어나거나 해탈을 바란다면
바른 견해를 마땅히 닦아야 하네.
설사 사람이 선을 행해도
삿된 견해로 악한 과보를 초래하네.
즐거움이 없고 무상(無常)하며 무아(無我)이고
부정(不淨)임을 진실로 아는 사람은
망념에 의해 네 가지 전도된 견해를 가져
힘든 괴로움이 이 몸에 있게 되네.
물질은 내가 아니고
나는 물질에 있지 않으며
물질로서의 나는 다시 있지 않음을 설하나니
나머지 사온(四蘊)도 공함을 알아야 하네.
시절(時節)에 의해 발생하지 않고
자연(自然)이나 본성(本性)에 의해서도 아니며
무인(無因)도 자재(自在)에 의해서도 아니니
어리석은 업과 애욕으로부터 생기네.
계금취견(戒禁取見)ㆍ신견(身見) 및
의심[毘織吉蹉]의
세 결박이 해탈[木叉門]을 결박함을
마땅히 알아야 하네.
해탈은 궁극적으로 자신에 의지하는 것이며
다른 도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네.
부지런히 듣고 계율과 선정을 꾸준히 닦으면
사성제[四眞諦]가 거듭 생기네.
계율ㆍ선정심ㆍ지혜를 더 높이고
이를 배우며 항상 닦아야 하네.
백오십여 가지의 계율은
이 세 가지에 다 포함되고
몸에 몸의 생각이 머무는
이 길을 항상 잘 닦아야 하네.
그와 같은 정념이 어그러지면
모든 법은 다 쇠망하네.
수명이나 많은 재액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물거품 같아
순식간에 숨이 끊기거나
누운 사람을 일어나게 하는 희유한 것이네.
죽음에 이르면 재가 되고 부패하여
대변과 때를 오래 지니기 어렵네.
몸은 이렇게 관해야 하네. 실체로서의 법이 아니기에
소멸ㆍ분해ㆍ부패ㆍ분리되는 것이라고.
대지ㆍ수미산[迷盧]ㆍ바다라도
칠 일 동안 타면 불덩이가 되는데
하물며 이 극미의 몸이
어떻게 재가 되지 않으리오.
이와 같이 무상하고 또 오래가지 못하며
귀의할 곳도 구제할 것도 가족도 없네.
훌륭한 사람은 생사를 반드시 싫어하니
마치 파초의 몸체에 알맹이가 없는 것과 같네.
거북이가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의 구멍에
얼굴 한 번 내밀기가 비록 어렵다지만
축생의 몸을 버리고 인간의 몸이 되기는 더 어렵기 때문에
악행의 과보를 다시 초래하는 것은
금은보화로 만든 선반으로 똥을 걷어내는 것보다
더 많이 어리석은 것이네.
만약 사람으로 태어나 죄를 지으면
완전히 바보이네.
사는 동안 착한 벗을 의지하고
바른 서원을 일으키며
전생의 몸으로 복업을 이루고
사대륜(四大輪)을 완전히 갖춰야 하네.
부처님께서는 착한 벗을 가까이하고
모두 범행(梵行)에 친근하라고 말씀하셨네.
착한 사람은 부처님께 의지하기 때문에
원적(圓寂)을 잘 증득하네.
삿된 견해에 의해 아귀ㆍ축생
지옥법[泥黎法]을 듣지 못하는 곳
변두리ㆍ미개지[蔑戾車]에 태어나고
거듭 우매한 벙어리로 태어나네.
혹 장수천(長壽天)에 태어나서
여덟 가지 틈없는 오류를 제거하고
휴식을 얻고 나면
내생으로 향할 수 있네.
사랑하는 것과의 이별ㆍ늙음ㆍ죽음
여기에는 많은 괴로움이 있는 곳이네.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태어남을 싫어하고
조그만 과실을 지적해도 들어야 하네.
어머니가 또 아내가 되고
아버지가 바뀌어 아이가 되며
원수가 친구로 바뀌며
일정한 규칙 없이 돌고 도네.
개개의 존재가 마신 모유(母乳)는
사방의 바다보다 더 많지만
다른 삶의 몸을 받아 윤회하는 존재는
그보다 더 많이 마시네.
과거 개개의 삶에서 남긴 뼈가
윤회하며 묘고산(妙高山)만큼 쌓이고
땅바닥의 구슬이 멧대추의 씨[核]가 되었네.
자기 몸의 형체를 세는데 어떻게 끝이 있으리오.
인드라신[梵主]의 세상에서 모두에게 공경받아도
업력에 의해 결국에는 지상에 빠져들며
전륜성왕으로 태어났다가도
몸을 바꿔 노비가 되기도 하네.
삼십삼천에서 기녀가 주는 즐거움을 받다가도
지옥에 떨어져
곧 참혹하고 지독한 괴로움들을 겪으니
몸이 깔리고 부서져 울부짖네.
묘고산의 봉우리에서 즐거움을 받아
그 발이 부드러운 땅만 밟다가도
윤회하여 화탕지옥의 고통을 받고
분뇨지옥을 겪게 되네.
아름다운 동산에서 즐기며
천녀와 노닐다가도
칼숲에 떨어져
손ㆍ발ㆍ귀ㆍ코가 끊기네.
혹은 만타묘(曼陀妙)의 연못에서 목욕하며
황금과 꽃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천녀와 즐기다가도
몸을 버리고 다시 지옥의 뜨거운 불길 속에서 고생하네.
욕계천에서 법락(法樂)을 받은
욕심이 없는 대범천(大汎天)도
다시 아비지옥에 떨어져
타오르는 불꽃의 고통이 늘 계속되네.
혹은 태어나 해와 달에 머물고
몸의 빛이 사주(四洲)를 두루 비추다가도
하루아침에 암흑천지로 돌아가서
반대로 손조차 볼 수 없게 되네.
세 가지 등불로 복을 밝히고
죽은 후에도 지녀야 하니
혼자 끝없는 암흑 속으로 들어가네.
해와 달의 빛조차 흐르지 않는 곳으로.
생명이 있는 것들은 흑승지옥ㆍ극열지옥과
중합지옥ㆍ규환지옥ㆍ무간지옥에서
항상 괴로움을 당하니
모든 악을 행한 자를 태우네.
혹은 깨처럼 짓눌려지고
혹은 가루처럼 부서지네.
마치 날카로운 도끼로 나무를 자르고
혹은 톱으로 가르는 것과 같네.
맹렬히 타오르는 불에 끊임없이 달궈지거나
뜨거운 청동 물을 마시고
몸이 칼침 위에서 찔리고
쇠로 만든 상 위에서 달궈지네.
어떤 경우에는 손을 높이 쳐들고
쇠 이빨을 가진 사나운 개에게 물리기도 하고
매의 부리와 이빨로
그의 심장과 간을 쪼이네.
등에 붙은 파리나 벌레들의
수가 수천을 넘으며
날카로운 침에 몸이 쏘여
갑자기 쓰러져 다 먹히네.
사람들이 뭇 죄업을 갖춰 지으면
괴로운 육신의 몸으로 백천 번 떨어짐을 듣지만
이처럼 완고하고 어리석은 금강성(金剛城)은
목숨이 다하면 지옥의 맹렬한 불길을 만나네.
때때로 보고 연모하고 듣고 생각하기에 힘쓰며
경론을 독송하며 항상 성찰해도
지옥에 관해 들으면 공포심을 갖는데
어찌 이 이숙(里熟)에 남으리오.
모든 약 중에 무엇이 최고인가 하면
갈애가 다한 무생(無生)의 즐거움이 최고 정수이고
뭇 괴로움 중에 무엇이 최고인가 하면
무간지옥의 괴로움이 가장 극심하네.
인간이 하루 종일
삼백 개의 창에 거듭 찔리더라도
지옥의 가벼운 고통과 비교하면
깃털 같으니 어찌 서로 맞댈 수 있으리오.
이곳에서 심한 고통을 받으며
백 구지(百俱胝)의 세월을 지나도
그와 같은 악이 아직 다하지 않으면
목숨을 버려도 업이 연유하는 바가 결코 없어야 하네.
이와 같이 악의 과보의 종자는
몸과 언어와 마음에서 연유한 것이니
그대는 꾸준히 힘닿는 대로 지켜
가벼울 티끌의 악이라도 침입 못하게 해야 하네.
혹은 축생계에 들어
살생ㆍ포박의 고통에 늘 시달리고
적정에 이르는 선을 멀리 여의어
거듭 서로에게 괴로움을 입히네.
혹은 살생ㆍ포박의 고통을 입는 것은
구슬ㆍ꼬리ㆍ뿔ㆍ가죽을 구하기 때문이니
송곳ㆍ채찍ㆍ갈고리로 정수리를 찍히고
밟히고 맞으며 짐을 지고 다른 이가 올라타네.
아귀가 바라는 희망을 이룰 수 없고
고통이 항상 임박함이 견줄 것이 없어
기갈과 추위ㆍ열기
피로ㆍ공포가 항상 침입하네.
목구멍이 마치 바늘구멍만 하고
배는 마치 산처럼 크니
배고픔에 지쳐 자기의 대변이라도 좀 먹으려 해도
결코 먹을 수 없네.
형체는 마치 비틀어진 마른 나무와 같고
피부는 옷을 입힌 것 같네.
입에서는 불길이 밤마다 타오르고
날던 모기가 떨어져 음식에 가득 차네.
피와 고름과 모든 부정한 것으로
복이라고는 얻으려 해도 좇을 것이 없어
다시 서로 입으로 물어뜯으며
거듭 목의 혹에 무르익은 종기를 먹네.
달빛 아래서도 더워지고
햇살 속에서도 몸이 춥기만 하며
열매를 바라나 다만 빈 나무뿐이고
강물을 보아도 말아 있을 뿐이네.
이와 같이 온갖 괴로움들을 받으면서
만 오천 년이 경과하며
오랜 동안 생명에 얽매이는 것은
괴로움의 그릇이 견고하기 때문이네.
굶주린 아귀로 태어나
한결같이 괴로운 맛을 당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고 막힌 자에 대한 애착과
인색한 허물 때문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네.
하늘에 태어나 비록 즐거움을 받아도
복이 다하면 고난을 생각해야 하네.
끝내 지옥에 떨어지면
즐거움을 생각할 수 없네.
앉는 것을 싫어하고 옷이 때에 절며
몸의 빛이 변하여 퇴색하고
진물에다가 새로 땀이 흐르고
머리 위에서 오래된 꽃이 시드네.
이러한 다섯 가지 현상이 나타나면
하늘의 무리들이 죽음을 의심하지 않네.
지상에 거주하는 사람이 만약 죽으면
번민과 산란심이 상의(上儀)로 바뀌네.
만약 하늘에서 떨어지면
많던 선이 다하여 남음이 없게 되니
임의대로 축생ㆍ아귀나
지옥의 한 곳에 떨어지네.
아수라의 본성이
설령 각혜(覺慧)가 완전하다 해도
하늘에 대해 분노하여 괴로운 마음이 일어나는 까닭에
아귀의 세계에서는 진리를 볼 수 없네.
이와 같이 표류하는 생사처에
하늘, 인간, 축생과 아수라
하천한 업은 온갖 괴로운 처지에 태어나고
귀신의 세계와 함께 나락가에 떨어진다네.
맹렬한 불길이 머리 위에서 타고
몸과 옷을 모조리 태웠을 경우라도
이 괴로움을 쉴 새 없이 잘 제거하고
태어남이나 머묾이 없는 열반을 생각해야 하네.
그대는 계율ㆍ선정ㆍ지혜를 구하여
적정하고 유연해지면 허물과 재앙을 여의어
다함이 없고 늙고 죽는 것이 없는 열반에 드니
사대(四大)와 해와 달 모두 다 없네.
사념(思念)ㆍ택법(澤法)ㆍ정진과
선정ㆍ지혜ㆍ환희ㆍ경안(經眼) 등
이 일곱 가지 보리분(菩提分)은
미묘한 열반을 일어나게 하네.
지혜가 없는 선정은 있지 않고
선정이 없는 지혜는 거듭 약해지네.
가령 이것을 짝지어 운행하는 자라면
삶의 바다도 소의 발자국과 같네.
열네 가지 무기법(無記法)은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니
이것에 관해 헤아려서는 안 되며
각(覺)에 의해 소멸시킬 수도 없네.
무지에 의해 업이 일어나며
업으로 말미암아 다시 식(識)이 생기네.
식은 명색(名色)을 말미암고
명색은 육처(六處)를 생겨나게 하네.
육처는 촉(觸)을 말미암고
촉은 수(受)를 말미암으며
수는 이미 애(愛)를 말미암고
애로 인해 취(取)가 초래되네.
취는 다시 유(有)를 말미암고
유는 또한 생(生)을 말미암으며
생은 노사(老死)를 말미암으니
근심과 병을 구해도 얻을 수 없네.
윤회는 큰 괴로움의 덩어리이니
이것은 속히 끊어 제거해야 하며
이와 같이 생이 소멸하면
온갖 괴로움이 다하여 남김 없네.
가장 훌륭한 언교장(言敎藏)은
깊고 미묘한 연기문(緣起門)이네.
만약 이것을 정견(正見)할 수 있으면
무상존(無上尊)을 뵐 수 있네.
정견(正見)ㆍ정명(正命)ㆍ정정진(正精進)ㆍ정념(正念)과
정정(正定)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사유(正思惟)를
팔정도[八聖道]라 하니
적정하게 닦고 다스려야 하네.
무명은 애욕이 모임으로 인해 일어나고
몸에 의지하여 온갖 괴로움이 발생하네.
이것을 제거해야 해탈을 증득하니
팔정도를 마땅히 행해야 하네.
곧 이 유가(瑜伽)의 업은
사성제[四種聖諦]의 원인이 되며
비록 잘 꾸민 집에 사는 자라도
지혜에 의해 번뇌의 나루를 막을 수 있네.
허공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니
마치 곡식이 땅을 근거하여 자라는 것과 같네.
앞서의 모든 법들을 증득한 자라도
대개는 번뇌를 갖추고 있네.
어쨌든 임시로 여러 번 진술했지만
번뇌를 제거하도록 간략하게 말하리라.
감정에서 비롯한 일을 굴복시켜야 하니
성인께서는 마음이 근본이라고 말씀하셨네.
위에서 말한 법대로
비구라도 다 행하기 어려우니
하나의 일이라도 잘 닦아서
허무하고 요망하게 태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네.
뭇 선(善)에 다 환희가 따르고
미묘한 행으로 세 번 스스로 닦으며
회향하고 성불하기 위해
복 무더기를 항상 거두어들여야 하네.
나중에 무량한 목숨으로 태어나
널리 하늘과 사람을 제도하는 것은
마치 관자재보살이
아주 어려워도 원수와 친한 이를 균등하게 대하는 것과 같네.
생ㆍ노ㆍ병ㆍ사ㆍ욕심ㆍ성냄ㆍ어리석음을 제거하고
불국토에 의탁해서 세간의 아버지가 되시고
수명이 무량하여 알지 못할 정도로
저 대각(大覺) 아미타[彌陀主]와 닮아야 하네.
계율ㆍ평정심ㆍ지혜를 열어
하늘ㆍ땅ㆍ허공에 명성을 두루 빛내고
대지에 사는 사람이나 하늘의 무리들은
아름다운 여인들과 애욕을 즐기지 말아야 하네.
번뇌는 유정의 무리를 얽어매니
흐르는 생사를 끊고 정각(正覺)에 올라
세간을 건너고 다만 이름뿐이며
무생(無生)을 얻어 티끌세상을 떠나야 하네.
아리야나가갈수나보리살타소힐리밀리거료(阿離野那伽曷樹那菩提薩埵蘇頡里蜜離佉了)아리야(阿離野)는 성스럽다는 뜻이다.
나가(那伽)는 용(龍)이나 코끼리이다.
갈수나(曷樹那)의 의미를 번역하면 용맹하다는 것이다.
보리살타(菩提薩埵)는 깨달은 유정이다.
소힐리(蘇頡里)는 곧 친밀함이다. 리거(離佉)는 책이다.
앞서 용수(龍樹)라 말한 것은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