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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본생심지관경 제4권
3. 염사품(厭捨品)
이때 지광 장자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 받아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아래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공손히 합장하여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부처님으로부터 매우 깊고 묘한 은혜 갚는 법을 듣고 마음속이 뛸듯하여 아직까지 없었던 것을 얻었으니,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감로(甘露)를 만난 듯 합니다.
제가 이제 네 가지 은혜를 갚고자 하여 불(佛)ㆍ법(法)ㆍ승(僧)에 나아가서 집을 나와 도를 닦으며,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여 보리(菩提)를 증득하길 희망합니다.
부처님은 큰 자비로 어느 땐가 비사리(毘舍離) 성에서 무구칭(無垢稱)을 위하여 매우 깊은 법을 말씀하시길,
‘그대 무구칭이여, 청정한 마음으로 선한 업의 뿌리를 삼고 선하지 못한 마음으로 악한 업의 뿌리를 삼으니,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세계가 청정하고 마음이 더러운 것과 뒤섞여 있기 때문에 세계가 더러움에 뒤섞여 있는 것이다.
내 불법에서는 마음으로 주인을 삼나니 일체 모든 법이 마음으로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다.
네가 이제 집에 있어도 큰 복덕이 있어 여러 보배와 영락이 충족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남녀 권속이 안온하고 쾌락하며, 바른 소견을 성취하고 3보를 비방하지 않으며,
효도하는 마음으로 어버이를 공양하며, 큰 자비로 의지가지없는 이에게 보시하며,
개미같이 작은 벌레라도 오히려 해를 끼치지 아니하고, 인욕(忍辱)으로 옷을 삼고, 자비로 집을 삼으며,
덕 있는 이를 존경하고, 교만한 마음이 없어서 일체를 어여삐 여기기를 갓난아기 같이 하며,
재물과 이익을 탐하지 아니하고 항상 희사(喜捨)를 닦으며,
3보를 공양하되 싫증내지 아니하고, 법을 위하여 몸을 버리되 아낌없이 하였도다.
이와 같이 백의(白衣)가 비록 출가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한량없고 끝없는 공덕이 구족한 것이다.
네가 오는 세상에서는 만행(萬行)이 원만하므로 3계를 뛰어넘어 큰 보리를 증득할 것이다.
네가 닦은 마음이 바로 참 사문이며, 또한 바라문이며, 이것이 참 비구며, 이것이 참 출가이니라.
이런 사람은 곧 집에 있어도 출가한 것이라고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께서 언젠가 가란타(迦蘭陀) 죽림원(竹林園)에서 악성(惡性)의 여섯 무리의 비구를 위하여 교계(敎誡)의 법을 말씀하실 적에,
‘너희들 비구는 자세히 들어라. 불법의 바다에 드는 데는 믿음이 근본이 되며,
생사(生死)의 강을 건너는 데는 계(戒)가 배가되는 것이니,
만일 사람이 출가하여 금계(禁戒)를 수호하지 않고 세간의 즐거움을 즐겨 탐하여 부처님의 계보(戒寶)를 상하게 하며,
혹 바른 소견을 잃고 삿된 소견의 숲에 들어 한량없는 사람을 끌어다가 크고 깊은 구덩이에 떨어뜨린다면,
이러한 비구는 출가했다 하지 못하며 사문도 아니요 바라문도 아니어서 모습은 사문 같지만 마음은 항상 집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문은 멀리 떠나는 행[遠離行]이 없는 것이다.
[멀리 떠나는 행의 두 가지]
멀리 떠나는 행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몸이 멀리 떠난 것이요,
둘째는 마음이 멀리 떠난 것이다.
몸이 멀리 떠났다는 것은 사람이 출가하면 몸이 텅 비어 한가한 데 처하여 욕경(欲境)에 물들지 않는 것을 말하며,
출가한 이가 청정한 마음을 닦아 욕경에 물들지 않는 것을 마음이 멀리 떠났다고 하는 것이니,
몸은 비록 출가하였지만 마음은 욕경을 탐하면 이러한 사람은 멀리 떠났다고 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정결하게 믿는 사내나 계집이 몸은 속가에 있어도 위없는 마음을 내어 큰 자비로 일체를 이롭게 한다면, 이런 수행자는 참으로 멀리 떠났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이에 여섯 무리의 악성 비구는 이 법의 소리를 듣고 유순인(柔順忍)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희들은 비록 부처님의 말씀을 믿기는 하지만 각자 의심을 품어 뜻을 결정치 못하겠습니다.
훌륭하신 세존이시여, 능히 세간의 모든 의심을 끊으신 분이며, 일체 법에 자재함을 얻으신 분이며, 진실 된 말씀을 하시는 분이며, 앞뒤가 어긋나게 말하지 않는 분이며, 이 도를 아시는 분이며, 이 도를 여시는 분이시니, 오직 원하건대 여래께서는 저희들 무리와 미래세의 일체 유정을 위하여 방편을 버리시고 진실한 법을 말씀하시어 영원히 의심과 후회를 여의어 불도에 들도록 하소서.
[두 가지 보살]
이제 이 모임 가운데는 두 가지 보살이 있으니,
첫째는 출가한 보살이고,
둘째는 집에 있는 보살이다.
이 두 보살은 일체 유정을 잘 이롭게 할 수 있어서 쉼이 없지만, 제 생각에 출가한 보살은 집에 있으면서 보살의 행을 닦는 것에 미치지 못할 듯합니다.
왜냐 하면 옛적에 금륜전륜성왕이 있었는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어 세간의 덧없고, 괴롭고, 빈 것을 싫어하여 떠나서 윤왕의 지위를 침이나 콧물 버리듯 버리고 청정히 출가하여 불도에 들었습니다.
이때 후궁과 부인과 채녀(采女) 8만 4천이 왕이 출가하는 것을 보고 각기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치며 울부짖어 통곡하고, 크게 번뇌에 핍박당하여 이별을 섭섭히 여기는 것이 지옥의 괴로움과 같았습니다.
금륜성왕이 처음 위(位)를 받을 때 감동시켰던 보녀(寶女)와 왕의 천 명의 아들과 대신과 권속이 함께 이별을 슬퍼하여 지위를 버리고 출가한다고 울부짖는 소리가 4천하에 가득하였으며, 이 모든 권속들이 각기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 왕은 복과 지혜가 한량없고 끝이 없거늘 무엇 때문에 우리를 버려 놓고 출가하는지 슬프고 괴롭다. 세계가 공허하도다. 이제부터는 의지할 데도 없고 믿을 데도 없다’
만일 정결하게 믿는 선남자와 선여인이 불ㆍ법ㆍ승에 귀의하여 보리의 마음을 내서 부모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에 들면, 부모는 어여삐 여겨 생각하는 정이 깊이서 이별을 슬퍼함이 천지를 감동시켰습니다.
마른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고기가 땅에서 구르는 것처럼 사랑하지만 헤어져야하는 괴로움도 또한 이와 같나니, 저 윤왕의 권속들의 마음에는,
‘출가한 보살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데, 어찌 부모와 처자를 번뇌로 해롭게 하여 한량없는 사람들에게 큰 고뇌를 받게 하는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출가한 보살이 자비로운 마음도 없고 중생을 이롭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보살이 큰 자비를 갖추어 중생을 어여삐 여기며 일체를 이롭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한 것입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지광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네가 큰 자비로 나에게 출가와 재가(在家) 둘 중에서 낫고 못함을 말해달라고 부탁하였지만, 네가 이제 물은 출가한 보살이 재가 보살만 못하다고 한 것은 옳은 뜻이 아니다.
왜 그런가? 출가한 보살은 재가 보살보다 수승함이 한량없고 끝이 없어서 비교할 수가 없다.
왜냐 하면 출가한 보살은 바른 지혜의 힘으로 자세하게 집에서 있을 수 있는 갖가지 잘못을 관찰하나니,
이른바 세간의 모든 집 가운데 재물을 쌓아놓아도 만족한 줄 알지 못하는 것이,
마치 큰 바다가 일체 크고 작은 강물을 받아들여도 일찍이 만족하지 않았던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향산(香山)의 남쪽 설산(雪山)의 북쪽에 아뇩지(阿辱池)가 있어 네 큰 용왕이 각각 한 모퉁이에 살고 있는데, 동남쪽 용왕은 흰 코끼리 머리요, 서남쪽 용왕은 큰 소의 머리요, 서북쪽 용왕은 사자 머리요, 동북쪽 용왕은 큰 말 머리를 하고 있다.
각각 네 모퉁이에서 큰 강물이 솟아나오니, 첫째는 긍가하(殑伽河)로 그 물이 이르는 곳에 흰 코끼리가 따라 나오고, 둘째는 신도하(信渡河)로 그 물이 이르는 곳에 물소가 따라 나오며, 셋째는 박추하(溥芻河)로 그 물이 이르는 곳에 사자가 따라 나오고, 넷째는 사타하(私陀河)로 그 물이 이르는 곳에 큰 말이 따라 나온다.
이와 같은 큰 강의 하나 하나에 각기 5백의 중간 강이 있고, 중간 강에 각기 셀 수 없는 작은 강이 있으니, 이 대ㆍ중ㆍ소의 일체 여러 물이 모두 큰 바다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 큰 바다는 일찍이 만족할 줄 모르니, 세간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일체의 거처하는 집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보배를 사방에서 모아다 모두 집 안에 들일지라도 일찍이 만족할 줄 몰라서 많이 구하여 쌓고 모으다가 갖가지 죄만 짓고 속절없이 갑자기 옛집을 버리게 된다. 이때 집 주인은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한량없는 겁을 지내도록 끝내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이다.
선남자여, 집을 만드는 것은 곧 5온(蘊)의 몸이요, 그 집 주인은 바로 너의 본디 알음알이[本識] 이다.
어떤 지혜 있는 이가 집 만들기를 즐길 것이냐. 오직 보리의 안락한 보배 궁전만이 있어서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프고 괴로운 번뇌를 떠났으니,
만일 예리한 근기로 청정하고 믿음이 깊은 선남자들이 부모와 처자와 권속을 제도해서 함이 없는 감로의 집에 들어가게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3보에 귀의하고 출가하여 도를 배워야한다.”
이때 여래께서 게송으로 거듭 말씀하셨다.
출가한 보살이 집에 있는 보살보다 수승하여
숫자나 말로 견줄 수 없으니
집에 있으면 감옥같이 핍박 받아
해탈을 구하려 해도 매우 어렵네.
출가하면 한가[閑曠]함이 허공과 같아
자재롭고 함이 없어 속박을 여의지만
잘 살펴보소, 집에 있으면 과실이 많아
모든 죄업을 끝없이 짓나니
생계를 꾸미고 욕심을 내지만 항상 부족하여
마치 큰 바다를 채우기 어려운 것과 같으니
아뇩달지(阿辱達池)의 용왕 등이
네 모퉁이에서 큰 강물을 쏟아내어
대ㆍ중ㆍ소의 강에 있는 물이
낮밤으로 흘러 쉼이 없지만
저 큰 바다는 아직도 가득 차지 않았으니
탐내는 집들도 또한 이와 같다네.
집에 있으면 모든 악업을 일으켜
씻고 참회해도 없애버리지 못하는데
부질없이 위험하고 무른 몸만 사랑할 줄 알고
목숨이 아침 이슬처럼 스러짐을 깨닫지 못하다가
염마사자(焰魔使者)가 서로 재촉하면
처자나 집이 따라 올리 없으니
깊고 어둡고 긴 밤중에
홀로 죽음의 문으로 나아가 업에 따라 받는다네.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여 자비를 일으켜
중생으로 하여금 세간을 싫어하게 하시고자
‘네가 이제 얻기 어려운 몸을 얻었으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게으름 피우지 말아야 한다.’
살고 있는 집이란 몹시 싫어할만 하고
공적(空寂)이란 보배 집은 생각하기 어려우나
길이 병들고 괴롭고 근심하고 번뇌함을 여의므로
모든 지혜 있는 이는 잘 관찰한다네.
지금 청정하게 믿는 선남선녀가
부모와 권속을 제도하려고
감로의 성에 들어가게 하려면
출가하여 묘한 도를 닦기를 바라고 구해서
점차 수행하여 정각을 이루면
곧 위없는 법륜을 굴릴 것이다.
“또 다시 선남자여, 출가한 보살은 세간의 집 보기를 석화(石火)와 같이 여겨 깊이 염증을 내니,
왜냐 하면 보잘 것 없는 불이 일체의 모든 풀과 나무 등을 태울 수 있는 것처럼,
세간의 집도 또한 이와 같아서 탐내는 마음으로 구하고 찾아 사방으로 내달리다가,
만약 얻은 것이 있다하더라도 수용하기에 부족하여 아무 때나 쫓아 구해서 싫증냄이 없으며,
만약 얻은 것이 없다면 마음에 뜨거운 고뇌가 생겨 낮과 밤으로 쫓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간의 일체 집은 한량없는 번뇌의 불을 내어 탐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항상 만족함을 알지 못하니,
세간의 재물과 보배는 풀과 나무 같고 탐하는 마음은 세간의 집과 같은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일체의 모든 부처님이 삼계를 화택(火宅)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선남자여, 출가한 보살은 이러한 것을 관찰해서 세간을 싫증내어 떠났으므로 참 출가라 하는 것이다.”
이때 여래께서 게송으로 거듭 말씀하셨다.
출가한 보살이 세간의 집을 관찰하니
마치 인간의 보잘 것 없는 불이
일체의 풀과 나무를 점차 태우는 것처럼
세간 집도 또한 이러함을 알아야만하네.
중생이 가진 모든 재물과 보배는
서로 구하여도 항상 부족하여
구해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 항상 마음에 있어
늙고 병들고 죽는 불이 한 때도 멸함이 없으니
이런 인연으로 모든 세존께서
3계를 화택이라고 말씀하셨네.
만일 3계의 괴로움을 뛰어넘고자 한다면
응당 범행(梵行)을 닦아 사문이 되어야 하니
삼매의 신통으로 눈앞에 나타나게 하여
나와 남이 모두 이로워 다 원만하다네.
“또 다시 선남자여, 출가하기를 즐거워하여 마땅히 집을 관찰하기를, 마치 저 깊은 산 돌굴 속에 있는 큰 보배 곳집 같이 하나니,
비유컨대 장자가 오직 외아들을 두었으나 집은 큰 부자여서 재물과 보배가 한량없으며, 남녀 종들과 코끼리와 말이 수 없이 많으나 그 아비가 갑자기 중한 병을 얻어, 이름난 의사와 좋은 약으로도 능히 치료하지 못하여 그가 스스로 죽음이 장차 오래지 않음을 알고,
곧 아들을 불러 말하였다.
‘나에게 있는 일체 재물과 보배를 너에게 맡기니, 부지런히 수호하여 줄게하거나 잃어버리지 말아라.’
이렇게 부탁하고서 곧 목숨을 마쳤다.
이때 그 장자의 아들이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치 않고 방자하게 놀아, 이미 가업을 손상하여 재물이 손실되고 종들이 도망가서 의지할 데가 없게 되니,
그의 늙은 어머니가 마음속으로 근심하고 고뇌하여 드디어 중한 병을 얻어 곧 죽게 되었고,
그 아들은 빈궁하여 의지할 바가 없어 드디어 산으로 들어가 나무를 줍고 과실을 따서 팔아 스스로 공급하다가 눈을 만나 돌굴 속에 들어가 임시로 쉬게 되었다.
그러나 이 굴속에는 옛 국왕이 7보를 감춘 곳으로 아는 이가 없어서 수백천 년을 지내도록 사람의 발자취가 끊어졌었는데,
이때 저 가난한 사람이 업의 인연으로 우연히 굴속에 들어와 한량없는 금을 보고 마음이 크게 기뻐 일찍이 없었던 것을 얻고는,
‘곧 나누어서 약간의 금으로는 집을 짓고, 또 약간의 금으로는 아내를 얻으며, 이와 같이 종과 코끼리와 말 등 하고자 함에 따라 모두 그 뜻대로 하리라’ 하고 이런 계획을 세웠으나,
이때 여러 도적이 있어 달아나는 사슴을 쫓아 굴 앞에 이르렀다가 이 가난한 사람이 금을 분배하는 것을 보고는, 마침내 사슴은 놓아두고 사람을 죽이고 금을 취하였다.
어리석은 범부도 또한 이와 같아서 깊이 세간의 즐거움에 집착하여 속세를 떠나기를 즐기지 않나니,
깊은 산 돌굴은 세간의 집과 같고,
금과 보배를 감춘 것은 선근(善根)과 같으며,
염마사자는 곧 이 때의 도적 떼이다.
업에 따라 보를 받아 3악도(惡道)에 떨어져 부모와 3보의 이름조차 듣지 못하여 선근을 상실하니,
이런 인연으로 응당 싫어하고 떠나서 위없는 큰 보리의 마음을 내어 출가하여 도를 닦아 묘각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때 여래께서 게송으로 거듭 말씀하셨다.
집에 있기를 즐기는 모든 보살은
집 보기를 보배 더미 같이 여기나니
비유컨대 장자가 한 아들을 두었고
집은 큰 부자로서 재보가 넉넉하며
남녀 종과 코끼리와 말과
일체 필요한 것이 풍부하지 않음이 없었는데
그 뒤 장자의 몸에 병이 있었지만
온 세상 어진 의원이 모두 대책이 없어
죽음에 이르러 모든 친족에게 당부하길
집 재물을 아들에게 맡겨 주노니
효도하여 봉양하는 마음을 두도록 가르쳐서
부지런히 제사 지내 끊어짐이 없도록 하라.
이때 그 아들이 아버지 명을 어기고
방종하고 어리석어 게으름이 많아
늙은 어머니가 근심을 품어 병든 몸인데
또 악한 아들로 인하여 마침내 죽게 되었네.
권속이 떠나므로 의탁할 바 없어서
나무를 주워 파는 것으로 일을 삼았으니
산 속에 갔다가 눈보라를 만나
돌굴에 들어가 잠시 쉬었네.
굴속엔 옛날에 묘한 보배를 감추었지만
이미 오래 지났으므로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나무하는 사람이 진짜 금이 있는 곳집을 만나
마음이 뛸듯해 드문 일이라는 생각을 내고
이윽고 진짜 금인 보배를 나누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쓰니
혹 집과 혹 처재(妻財)와
종과 코끼리와 말과 수레를 갖고자 했네.
미래를 헤아려 남겨둠이 없더니
도적 떼가 사슴을 쫓아 그 앞에 다다름에
이것이 원수를 만나는 때라
마침내 그를 죽이고 금을 가져갔다네.
어리석은 중생이 또한 이와 같으니
돌굴은 세간의 집과 같고
진짜 금을 감춘 것은 선근에 비유되며
염마사자는 겁탈하는 도적과 같네.
이런 인연으로 모든 불자가
일찍 출가하여 선품(善品)을 닦나니
뜬 거품 같은 목숨을 관찰하여
부지런히 계인(戒忍)인 바라밀을 닦는다네.
마땅히 7보 보리수에 나아가
금강의 자리에서 여여(如如)함을 증득하고
항상 머물러서 없어지지 않는 생각하기 어려운 의론을
정법의 바퀴를 굴려 군품(群品)을 교화한다네.
“또 다시 선남자여, 세간에 있는 일체 집은 독이 섞인 맛난 음식과 같다.
비유컨대 장자가 외아들을 두었는데 총명하고 지혜롭고 예리한 근기로 가루라(迦樓羅) 비밀관문(秘密觀門)을 통달하여 능히 독약을 분별하고 선교방편과 방편이 있었으므로 부모가 은혜롭고 어여삐 여기어 사랑스럽게 생각함이 비할 데 없었다.
이때 장자의 아들은 일이 있어서 시장에 갔다가 미쳐 집에 돌아오지 못하였고, 부모는 모든 친속들과 함께 즐거이 잔치를 벌여 맛난 음식을 베풀었는데,
원수 삼는 집이 있어 은밀히 독약을 음식에 넣었으나 알아차린 이가 없었으므로,
부모는 음식에 독약이 섞여 있는 것을 알지 못하여 어른과 어린이로 하여금 독이 섞인 음식을 먹게 하였다.
그 뒤에 아들이 돌아오니 부모는 기뻐하며 남겨 두었던 음식을 그에게 주었으나,
아들은 음식을 먹지 않고 가루라 비밀관문을 염(念)하여 바로 음식 속에 독약이 섞여 있음을 알았다.
그 아들이 비록 부모가 독을 먹은 줄 알았으나 독약을 먹었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왜냐 하면 만일 독약을 먹은 줄 알게 되면 다시 고민을 더하여서 독기가 빠르게 퍼져나가 반드시 사람을 죽도록 만들기 때문이었다.
곧 방편을 베풀어 부모님께 여쭈었다.
‘저는 아직 이 음식을 먹지 않고 잠시 시장에 갔다 와서 먹겠습니다. 왜냐 하면 제가 먼저 값진 보배구슬을 사서 궤 속에 남겨두고 잠그는 것을 잊었습니다.’
이에 부모는 보배구슬이란 말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아들이 가는 대로 맡겨두었다.
아들은 드디어 가장 용한 의원의 집으로 달려가서 아가타(阿伽陀)라는 독을 풀어주는 묘약을 구하여, 얻은 약을 가지고 빨리 달려 집에 돌아와 젖과 타락과 사탕 세 가지 맛을 합쳐 달여서, 아가타를 섞어 약을 만든 뒤에 부모님께 여쭈었다.
‘오직 바라건대 부모님께서는 이 감로를 드십시오. 이것은 저 설산(雪山)의 아가타약 입니다. 왜냐 하면 아까는 잘못 독약을 자시었습니다. 제가 잠시 나갔던 것은 본래 부모님과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죽지 않는 묘한 약을 구하려던 것이었습니다.’
이에 부모와 모든 사람들은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여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얻었고, 곧 묘약을 먹어 모든 독기를 토하자마자 바로 죽지 않음을 얻어서 다시 수명을 연장하였다.
출가한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과거에 부모가 생사에 잠겼고 현재에도 부모가 능히 벗어나 여의지 못하여 미래의 생사를 가히 끊기 어려우며, 현재의 번뇌를 조복해 없애기 어려우니,
이런 인연으로 부모와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한 몸같이 여기는 큰 자비심을 일으켜 큰 보리를 구하려고 출가하여 도에 드는 것이다.
선남자여, 이것을 ‘집에서 맛난 음식에 독약을 섞어 넣은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이때 여래께서 게송으로 거듭 말씀하셨다.
세간에 있는 모든 집은
독이 섞인 맛난 음식이라 하나니
비유컨대 장자가 외아들을 두었는데
총명하고 예리한 지혜와 재주가 많아
가루라 비밀문을 잘하여
독약을 분별하는 공교한 방편을 알았는데
아들이 일이 있어 시장에 가서
잠시 물건을 바꾸다가 집에 돌아오지 못하였네.
부모는 잔치하려 모든 친족을 모으고
온갖 맛난 음식을 다 갖추었는데
한 악한 사람이 독약을 가져와
은밀히 음식에 넣었다네.
아들은 집에 있지 않았으므로
부모는 그를 위해 일부를 남기고
온 가족이 독약 섞인 음식을 잘못 먹었는데
아들이 관문(觀門)을 염해 독이 있음을 알고
곧 달려서 의원의 처소에 이르니
죽지 않는 가타(伽陀) 약을 구하여
세 가지 맛을 섞어 달여 약을 만들어
곧 친족에게 속히 먹도록 여쭈었네.
이렇듯 먹은 감로와 같은 약은
잡독을 없애 안락하게 하는 것이니
일체의 신심 있는 선남자가
출가해 도 닦음도 이와 같아서
부모와 중생을 제도키 위한 것이네.
먹은 모든 번뇌의 독약은
미친 마음으로 뒤바뀌어 모든 죄를 지어서
길이 생사의 근심과 슬픔의 바다에 잠기나니
사랑을 끊고 친족을 이별하고 불도에 들어
조어장부(調御丈夫) 큰 의왕을 가까이 해서
무루(無漏)를 닦아 아가타를 구하여
부모가 3계 택(宅)에 환생하는 것을
법약을 먹게 하여 3장(障)을 끊고
곧 위 업는 보리과를 증득하여
미래세가 다하도록 없어지지 않아
능히 중생을 제도해 귀의시켜서
마침내 큰 열반과
부처님 보리의 대원경지(大圓鏡智)에 처하게 함이네.
“또 다시 선남자여, 출가한 보살은 항상 세간의 일체 집을 큰바람이 잠시도 머물지 않는 것과 같이 본다.
왜냐 하면 선남자여, 집에 있는 이의 마음은 항상 망령된 생각을 일으켜 외경(外境)에 집착하고, 능히 참[眞]을 깨닫지 못하여 무명(無明)에 취해서 뒤바뀌어 경계[境]에 닿아도 또한 항상 머무르지 않으며, 악한 생각이 쉽게 일어나고 선한 마음은 내기 어려운 것이다.
망령된 생각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번뇌가 일어나고, 그로 인하여 선과 악의 업을 지으며, 선과 악의 업에 의해서 5취(趣)의 과보를 감득하니, 이와 같이 생사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지만, 오직 바른 소견은 뒤바뀐 마음이 아니어서 모든 선한 업을 짓고 세 가지 선근과 믿음 등으로 인하여 무루법의 종자를 늘여 키우고 능히 무루(無漏)삼매의 신통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인의 도를 증득하여 서로 이어가니, 만일 망령된 생각을 조복시키고 정관(正觀)을 닦으면 일체 번뇌가 영원히 다하여 남음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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