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현재인과경 제3권
7. 왕사, 빈비사라왕, 아라라선인, 가란신선
그때 백정왕은 왕사와 대신을 보내고 난 뒤에 곧 태자의 영락을 마하파사파제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태자가 입었던 영락인데, 차익에게 맡겼기에 돌아와서 당신에게 주게된 것이오.’
마하파사파제는 영락을 보고 나서 갑절이나 더 슬퍼하면서 생각하였다.
‘사천하의 인민들이 아주 박복하구나 이 밝고 지혜로운 전륜성왕을 잃었으니 말이다.’
또 나머지의 꾸미개들을 보내어 야수다라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태자는 이 몸을 꾸몄던 꾸미개들을 너에게 주도록 하였단다.’
야수다라는 이 물건들을 보자마자 기절하여 땅에 넘어져버렸으므로,
왕은 또 사람을 파견하여 야수다라에게 칙명하여 스스로 아끼고 공경하게 하여서 태 안의 아이가 편안하지 못한 일이 없게 하였다.
[왕사와 대신이 태자을 만나다]
그때 왕사와 대신은 발가 선인이 고행을 하는 숲 속에 이르러서 시종하던 사람들과 여러 의식의 장식들을 물리쳐 없애고서 곧 신선이 살고 있는 곳으로 나아가매 신선이 앉기를 청하므로 서로가 문안하고서 이에 왕사는 신선에게 말하였다.
‘저는 바로 백정왕의 스승인데, 이제 여기까지 온 까닭은 저 백정왕의 수족인 태자께서 나고ㆍ늙고ㆍ병들고 죽음의 고통을 싫어하여 집을 떠나 도를 배우러 이 숲을 따라서 지나 갔었는데 큰 신선께서는 보셨습니까?’
발가 선인은 왕사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요사이 여기에서 한 동자를 보았었는데,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상호가 완전히 갖추었습니다.
이 숲에 들어왔었기에 나와 함께 의론을 하면서 드디어 하룻밤을 묵고 갔었거니와 바로 이 분이 왕의 태자인 줄을 몰랐습니다.
우리들이 닦는 도가 비천하다 하여 여기서 북쪽으로 갔었는데, 저 신선인 아라라(阿羅邏)와 가란(迦爛)에게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때에 왕사와 대신은 이 말을 듣고 곧 빨리 그 신선의 처소에 나아가다가 중도에서 태자가 나무아래에 단정히 앉아서 생각하고 있음을 멀리서 보았는데 상호의 광명이 해와 달 보다 뛰어났는지라,
곧 말에서 내리며 시종들을 물리치고 모든 의식의 복장을 벗어버리고 태자에게 나아가 한쪽에 앉아서 서로 문안을 하고, 왕사는 태자에게 아뢰었다.
‘대왕께서 태자를 찾게 하시면서 드릴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태자는 대답하였다.
‘부왕께서 당신을 보내시며 무슨 말씀을 하라 하셨습니까?’
왕사는 말하였다.
‘대왕은 오랫동안 태자께서 깊이 집을 떠나시려 하였고 이 뜻은 돌리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태자에 대한 은혜와 애정이 깊어서 근심 걱정으로 타오르는 불이 언제나 자연히 훨훨 타고 계시는데, 태자께서 돌아오셔야만 꺼지실 것입니다.
원컨대 곧 수레를 돌려도 태자에게는 도의 일을 온전히 버리도록 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시는 곳이란 반드시 산이거나 숲만이 아닙니다. 마하파사파제와 야수다라며 안팎의 권속들은 모두가 다 근심과 괴로움의 큰 바다에 떨어져 있으니, 태자는 돌아가실 것을 생각하시며 그들을 구제하십시오.’
그때에 태자는 왕사의 말을 듣고 깊숙하고도 묵직한 소리로써 왕사에게 대답하였다.
‘제가 부왕께서 저에 대한 은정이 깊은 줄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다만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음의 괴로움을 두려워하여 그 때문에 여기에 와서 끊어 없애려한 것입니다.
만약 은혜와 사랑을 마치는 날까지 만나고 모이게 하거나 또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음이 없게 하였다면 저는 또 무엇 하러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저는 이제 부왕을 어기고 멀리하는 까닭은 장래에 화합을 하려 하기 위해서이므로 부왕의 근심 걱정하는 큰불이 지금은 비록 훨훨 탄다 하더라도 저와 부왕은 오직 금생에 있는 이 한 고통만이 남아 있으며 장차 오는 세상에서는 저절로 영원히 이런 근심을 끊어질 것입니다.
만약 당신의 말씀대로 저를 궁중에서 살면서 도의 일을 닦게 한다 하면 마치 7보의 집의 안에 불꽃을 가득히 채움과 같거늘 어떤 사람이 이 집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
독이 섞인 밥과 같아서 설령 굶주린 사람이 있다하더라도 마침내 먹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미 나라를 버리고 집을 떠나서 도를 닦고 있거늘 어떻게 나에게 다시 궁성에 돌아가서 도를 배우고 닦게 하겠습니까?
세간 사람들은 큰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조그마한 즐거움을 위해서 오히려 빠져서 잠깐도 버릴 수가 없거든 하물며 저는 이 극히 조용한 곳에서 모든 근심과 괴로움이 없거늘 잘 버리고 서는 도로 나쁜 데에 나아가겠습니까?
옛날의 여러 왕들은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다가 중도에서 돌아가 애욕을 받은 일이 없었습니다. 부왕께서 만약 반드시 저를 돌아오게 하려 하신다면 곧 이는 선왕(先王)들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그때에 왕사는 태자에게 아뢰었다.
‘진실로 태자께서 지금의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 신선이며 성인들도 한 분은 말하기를,
〈미래에는 결정코 과보가 있다〉라고 하였고,
한 분은 말하기를,
〈결정코 이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두 신선이며 성인들도 오히려 미래 세상 안에서 반드시 있다 없다 함을 알지 못하셨거든 태자는 어찌하여 현재의 안락을 버리고 미래의 정해 있지 않은 과보를 구하려 하십니까?
나고 죽음의 과보는 오히려 결정코 있느냐 없느냐를 알 수 없거늘 어떻게 해탈의 과보를 구하려 하십니까?
오직 원컨대 태자께서는 곧 궁중으로 돌아가십시다.’
그러자 태자는 대답하였다.
‘저 두 신선이 미래의 과보를 설명하면서 한 분은 〈있다〉하고 한분은 〈없다〉하니,
모두 이는 의심을 하며 결정적인 설명이 아니거니와 나는 이제 마침내 그들의 가르침을 닦거나 따르지를 않을 것이므로 이것으로써 힐난 하지 마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과보를 바라거나 그리워하여 여기에 온 것이 아니며 눈으로 보게 된 나고 늙고ㆍ병들고ㆍ죽음을 반드시 겪어야 하겠기에 해탈을 구하고 이 괴로움을 면하기 위해서 일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오래지 않아 내가 도를 이룸을 보게 될 것이며, 나의 이 뜻과 소원은 마침내 돌일 수 없으리라. 돌아가서 부왕에 여쭙되 이와 같이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때에 태자는 이런 말을 하여 마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왕사며 대신과 작별하고 북쪽으로 가면서 아라라와 가란 선인들의 처소로 나아갔다.
때에 왕사와 대신은 태자가 떠나감을 보고 슬피 울며 괴로워하였나니,
첫째는 태자와 정이 깊었음을 생각하였음이요,
둘째는 왕의 사자로서 명을 받아 태자의 처소에까지 왔으면서도 그의 뜻을 움직이지 못하였는지라,
길 곁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스스로 돌아갈 수가 없었으므로 서로가 함께 의논하였다.
‘이미 왕의 사자가 되어서 성과가 없이 이제 빈 것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어떻게 대답을 올리겠소.
우리들을 따라온 다섯 사람을 머물러 두어야겠습니다.
그들은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마음과 뜻이 부드럽고 성품 됨이 성실하고 정직하며 성바지도 강한 이들이니 은밀히 엿보고 살피며 그의 나아가고 머무름을 보살피게 하십니다.
이런 말을 하여 마치고 그 곁을 돌아보며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사람을 보면서 말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여기에 머무를 수 있겠느냐?’
다섯 사람은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나아가고 머무르는 행동을 은밀히 엿보며 살피겠습니다.’
그리고는 곧 작별을 하며 태자의 처소로 나아가자 왕자와 대신은 궁성으로 돌아왔다.
[빈비사라왕을 만나다]
그때 태자는 저 아라라와 가란 선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나아가다가 항하(恒河)를 건너 왕사성을 지나는 길에 성을 들어갔더니, 여러 인민들이 태자의 얼굴 모습과 상호가 특수함으로 보고 기뻐하여 사랑하고 공경하면서 온 나라가 모두 달려 와서 쳐다보며 이렇게 떠들썩하게 지껄이는지라,
빈비사라왕(頻毘婆羅王)이 듣고 왕은 곧 놀라며 물었다.
‘이것이 바로 무슨 소리들이냐?’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백정왕의 태자 살바 실달타는 옛날에 여러 관상쟁이들이 그는 전륜왕의 자리를 얻어서 온 천하의 왕 노릇을 하리라고 예언하였고 또 다시 그가 만약 집을 떠나면 반드시 일체 종지를 성취하리라고 예언하였었는데, 그 사람이 지금 이 성에 들어왔으므로 밖의 여러 인민들이 다투어 달려가서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떠들썩하게 지껄이는 것입니다.’
이때에 빈비사라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온몸을 뛰놀면서 곧 한 사람에게 칙명하여 가서 태자가 있는 곳을 살피게 하였으므로, 사자는 칙명을 받고 태자를 찾아나가서는 반다바(般茶婆)산의 한 돌 위에 단정히 앉아서 생각을 하고 있음을 보고는,
때에 사자는 곧 돌아와서 대왕에게 자세히 아뢰었으므로 왕은 곧 수레를 차리어 여러 대신이며 백성들과 함께 태자의 처소에 나아가서 반다바산에 이르러 멀리서 태자를 보니 상호의 광명이 해와 달보다 뛰어났는지라, 곧 말에서 내리어 몸의 장식과 여러 시종들을 물리치고 나아가 앉아서 태자에게 문안하였다.
‘네 가지 요소가 모두 고르고 온화하십니까?
제가 태자를 보매 마음이 매우 기쁩니다만 그러나 한 가지 슬픔이 있습니다.
태자는 본래 이는 해의 성바지로서 오랜 세상을 서로 이으면서 전륜왕이 되었었으며, 태자도 지금 전륜왕의 상호가 모두가 완전히 갖추어 계시거늘 어찌하여 버리시고 깊은 산에 들어와서 모래와 흙을 밟고 깔며 멀리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제가 이것을 보고서 슬퍼합니다.
태자께서 만약 부왕께서 지금 계시기 때문에 전륜성왕의 자리를 가지려 하시지 않으시면 장차 저의 나라를 반씩 나누어 다스립시다. 만약 적다고 생각되시면 저는 나라를 다 버리고 신하로써 태자를 섬기겠습니다.
만약 또 저의 이 나라도 가지시지 않겠으면 네 가지 군사를 드릴 터이니, 몸소 다른 나라를 쳐서 가지십시오. 태자께서 하고 싶은 바라면 어기지를 아니하겠습니다.’
그때에 태자는 빈비사라왕의 이 말을 듣고 깊이 그의 뜻에 감동하여 곧 왕에게 대답하였다.
‘왕의 성바지는 본래 밝은 달[明月]이신지라 성품이 자연히 높고 시원하며 비루한 일을 하지 아니하고 하는 일들은 맑고 훌륭하지 않음이 없으신데 이제 하시는 말씀만은 기특하시다고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왕을 자세히 살피건대 속의 뜻이 지극히 간절하므로 앞보다 뒤가 갑절이나 되십니다. 왕은 이제 곧 몸과 목숨과 재물에 대한 세 가지 굳건한 법을 닦으실 것이요, 또한 굳건하지 못한 법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권장하지 마셔야 합니다.
나는 이제 전륜왕의 자리를 버렸거늘 또한 무슨 일로 왕의 나라를 가져야 합니까?
왕은 착한 마음으로써 나라를 버리어 나에게 주겠다는 것도 오히려 갖지 않겠거든 무엇 때문에 군사로써 남의 나라를 쳐서 가지겠습니까?
나는 이제 부모를 작별하여 수염과 머리칼을 깎아 없애고 나라를 버리게 된 까닭은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음의 괴로움을 끊기 위해서요,
다섯 가지 욕심의 즐거움을 구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세간에 다섯 가지의 욕심은 큰 불더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을 불사르며 스스로 뛰어 나올 수 없게 하거늘 어찌하여 나에게 탐내고 집착하기를 권하십니까?
내가 이제 여기까지 온 까닭은 두 신선인 아라라와 가란이 바로 해탈을 구하는 가장 으뜸 되는 길잡이라 하기에 그 곳에 나아가서 해탈의 도를 구하려 한 것이요, 오래 여기에서 머무르지 않겠습니다.
나는 왕의 처음에 하신 말씀과 기쁜 마음으로 나에게 주신 것을 어겼으나 싫어하거나 원망을 하지 마십시오. 왕은 이제 바른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릴 것이며 인민들을 그릇되게 하지 마십시오.’
이런 말을 하여 마치고 태자는 곧 일어나서 왕과 작별하였다.
때에 빈비사라왕은 태자가 떠나감을 보고 깊이 크게 실망하여 탄식하며 합장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처음 태자를 보자 마음이 크게 뛰놀더니, 태자가 떠나니 갑절이나 슬픔과 괴로움이 생깁니다. 당신은 이제 큰 해탈을 위하여 떠나가시겠다면 감히 만류하지는 않겠습니다. 오직 원컨대 태자께서는 기대하신 바를 빨리 이루십시오.
만약 도가 이루어지시면 먼저 저를 제도하여 주십시오.’
태자는 이에 작별하고 떠나갔으며, 때에 왕은 받들어 보내며 길곁에 서서 보이는 데까지 바라보다가 보이지 않자 비로소 돌아왔다.
[아라라선인을 만나다]
그때 태자는 곧 나아가 그 아라라선인의 처소에 이르렀는데, 때에 여러 하늘들은 신선에게 말하였다.
‘살바 실달께서 국토를 버리고 부모를 이별하고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하여 일체 중생들의 괴로움을 뽑아 주려고 이제 이미 오셔서 여기에 이르려고 합니다.’
이때에 그 신선은 이미 하늘의 말을 듣고서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는데 얼마 안 되어 멀리서 태자가 보이므로 곧 나가서 받들어 영접하면서 찬찬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함께 사는 곳으로 돌아와서 태자를 청하여 앉혔다.
이때에 신선이 태자의 얼굴 모습을 보았더니 상호가 완전히 갖추어지고 모든 감관이 편하고 조용하였으므로 기이 애정과 공경심을 내면서 태자에게 물었다.
‘길을 가시느라고 고달프시지는 않습니까?
태자께서 처음 탄생하심과 집을 떠나서 또 여기까지 오시게 됨을 나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능히 불더미에서 몸소 깨치고서 나오셨고 또 큰 코끼리가 덧 가운데서 스스로 벗어남과 같습니다.
옛날의 여러 왕들은 한창일 때에는 다섯 가지 욕심을 마음껏 받다가 감관이 늙어짐에 이르면 그런 후에야 곧 나라와 즐거움의 도구를 버리고 집을 떠나서 도를 배웠으므로 이는 기특할 거리가 못되었거니와,
태자께서는 이제 이 한창인 나이에 다섯 가지 욕심을 능히 버리고 멀리 여기까지 오셨으니, 참으로 특수하삽니다.
부지런히 힘써 나아가시어 속히 저 언덕을 건너셔야 하시리다.’
태자는 듣고 대답하였다.
‘저는 당신의 말씀을 들으니 매우 기쁩니다. 당신은 저를 위하여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음을 끊는 법을 말씀하시면 저는 이제 즐거이 듣겠습니다.’
신선은 대답하였다.
‘장하고 장하십니다.’
그리고는 곧 설명하였다.
‘중생들의 시초는 명초(冥初’)에서 시작되었나니,
명초로부터 아만(我慢)이 일어나고,
아만으로부터 어리석은 마음이 나고,
어리석은 마음으로부터 염애(梁愛)가 일어나고,
염애로부터 다섯 가지 미세한 티끌의 기운[五微塵氣]이 나고,
다섯 가지 미세한 티끌의 기운으로부터 5대(大)가 나고,
5대로부터 탐냄과 성냄 등의 모든 번뇌가 나서,
이에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음에 헤매면서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나니,
이제 태자를 위하여 간략히 말하였을 뿐입니다.’
그때에 태자는 곧 물었다.
‘저는 지금 이미 당신이 말씀하신 나고 죽음의 근본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어떠한 방편으로 끊을 수 있습니까?’
신선은 대답하였다.
‘만약 이 나고 죽음의 근본을 끊으려 하면,
먼저 집을 떠나서 계행을 닦아 지니고,
겸손하고 낮추어서 욕됨을 참으며,
비고 한가한 데 머물러서 선정을 닦아 익히되,
욕심세계의 악하고 선하지 못한 법을 여의고,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는 초선(初禪)을 얻으며,
각관(覺觀)을 없애고 정(定)에서 생기는 기쁜 마음[喜心]으로 제2선(禪)을 얻으며,
기쁜 마음을 버리고 바른 생각으로 즐거움[樂]의 뿌리를 갖추어 제3선(禪)을 얻으며,
괴로움과 즐거움을 버리고 청정한 기억으로 평정[捨]의 뿌리에 들면서 제4선(禪)을 얻어 생각이 없는 과보[無想報]를 얻습니다.
특별히 어떤 스승은 이와 같은 것을 말하여 해탈이라 이름을 하는데, 선정으로부터 깨치고 나서 그런 뒤라야 해탈의 자리가 아닌 줄 압니다.
빛깔[色]이란 생각을 떠나서 ‘공’한 곳에 들며 대경(對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스러져서 의식[識]이란 곳에 들며,
한량없는 의식이란 생각이 스러져서 오직 한 의식이라 함만 자세히 살피어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며,
갖가지의 생각을 떠나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드나니,
이 곳을 마지막의 해탈[完議解脫]이라 하며,
이것이 모든 배우는 이들의 저 언덕[彼岸]입니다.
태자께서 만약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음의 근심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은 행을 닦아야 합니다.’
그때에 태자는 신선의 말을 듣고 마음이 기쁘거나 즐겁지 않는지라 곧 생각하였다.
‘그의 아는 바와 소견은 마지막이 아니며 이는 영원히 모든 번뇌를 끊는 것이 아니로다.’
그리고는 곧 말하였다.
‘저는 지금 당신이 말씀하신 법 가운데는 아직 이해하지 못할 곳이 있으므로 이에 묻고자 합니다.’
신선이 대답하였다.
‘공경하면서 물는 뜻을 좇겠습니다.’
그러자 곧 물었다.
‘생각도 생각 아님도 아닌 곳에는 내가 있습니까? 내가 없습니까?
만약 내가 없다고 하면 생각도 생각 아님도 아니라고 말씀해서는 안 되며,
만약 내가 있다고 하면 나에게는 앎이 있습니까? 나에게는 앎이 없습니까?
나에게 앎이 없다고 하면 곧 나무와 돌과 같을 것이요,
나에게 만약 앎이 있다고 하면 곧 반연(攀緣)함이 있을 것입니다.
이미 반연이 있으면 물듦과 집착이 있으며, 물듦과 집착이 있기 때문에 해탈이 아닙니다.
당신은 거친 번뇌는 다하였으나 미세한 번뇌가 아직 존재함을 스스로 모릅니다.
그 때문에 마지막이라 생각되나 미세한 번뇌는 더욱 자라나서 다시 내려와 태어남을 받습니다.
이 때문에 저 언덕을 건넌 것이 아닌 줄 아십시오.
만약 나와 나라는 생각을 없애서 온갖 것을 다하여 버리면 이것이 곧 참 해탈이라 하는 것입니다.’
신선은 잠잠하며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태자의 말하는 바가 매우 미묘하구나.’
그때 태자는 다시 신선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이 얼마에 집을 떠나셨으며, 맑은 행을 닦아 온 지가 또 몇 년이나 되십니까?’
신선은 대답하였다.
‘나는 나이 열여섯 살에 집을 떠났었고, 맑은 행을 닦아 온 지는 104년입니다.’
태자는 듣고 나서 생각하였다.
‘집을 떠난 지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얻게 된 법은 바로 이렇구나.’
이때에 태자는 훌륭한 법을 구하기 위하여 곧 자리에서 일어나면 신선과 작별을 하자,
그때에 신선은 태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오면서 이런 고행을 익혀서 얻게 된 결과는 바로 이런 것뿐인데,
당신은 바로 왕의 성바지로서 어떻게 고행을 닦을 수 있겠습니까?’
태자는 대답하였다.
‘당신이 닦으신 것과 같은 것은 고행이 되지 않습니다.
따로 가장 괴롭고 행하기 어려운 도가 있습니다.’
신선은 이미 태자의 지혜로움을 보고 또 뜻이 굳건해서 이지러지지 않았음을 자세히 살피고는 틀림없이 일체 종지를 이룰 것을 알고서 태자에게 아뢰었다.
‘당신이 만약 도가 이루어지면, 원컨대 먼저 나를 제도하여 주십시오.’
이에 태자는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십시다.’
[가란신선을 만나다]
다음에 가란이 살고 있는 곳에 닿아서 논의하고 문답하였으나 역시 그와 같았으므로, 태자는 곧 길을 떠나갔다.
이때에 두 신선은 태자가 떠나감을 보고 저마다 생각하였다.
‘태자의 지혜야말로 깊숙하고 미묘하며 기특한지라 이에 헤아리기가 어렵구나.’
그리고는 합장하고 받들어 보내면서 보이지를 않자 곧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