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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권방편경 하권
4. 가호품[2]
[걸식하는 때]
그때 족성자는 수보리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알고 수보리에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묻습니다. 오직 수보리께서는 어떻게 번뇌를 다하여 머무를 곳과 뜻이 돌아가야 할 바를 분별합니까?”
수보리가 대답했다.
“나는 번뇌[漏]가 다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이 또 물었다.
“무엇을 번뇌라 합니까?
과거와 미래와 현재는 다함이 없습니다.
과거는 이미 다했고, 미래는 이르지 않았으며, 현재는 머묾이 없습니다.
모든 미래는 다함을 얻을 수 없으니 이것 역시 다함이 없으며,
또 현재라는 것도 이미 다함에 돌아가므로 머무는 바가 없으니 역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수보리가 대답했다.
“오직 족성자여, 나는 퍼붓는 물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루의 시간이 또 정오가 되었습니다. 남은 시간은 조금밖에 없으니 식시(食時)에 도착하고자 합니다.
지금 걸식하도록 하여 때를 잃지 않게 하십시오.”
이때 족성자는 보주불토묘화(普周佛土妙華)라 하는 삼매에 들어 이 삼매로 정수(正受)하였다.
그 족성자는 삼매를 마치고 멀리서 수보리를 보고는 그 몸을 일체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불국토에 나타나게 하였다.
부처님 곁에 머물면서 모시고, 그 불국토에 있었는데 해가 솟아 천하를 비추되,
혹은 해가 중천에 이르지 않은 아침 식사 때 같고, 혹은 조식(早食)이 지난 것 같고, 혹은 다시 오래지 않아 식사 때가 되었다가 해가 중천에 서 있기도 하고, 혹은 건추(揵%(木*遲))를 칠 때 같기도 하고,
혹은 앉아서 밥을 먹기도 하고, 혹은 일어서서 발우를 가지고 씻기도 하고, 혹은 불토(佛土)에서 걸식을 행하기도 하고,
혹은 오정(午正) 때 같고, 혹은 포시(晡時)를 나타내고, 혹은 초저녁[初夜]이다가 혹은 한밤중[夜半] 같고, 혹은 이미 새벽이 된 것 같고, 혹은 불토에는 일월이 없기도 했는데,
중생과 인물이 모두 광명이 있었다. 나타낸 공덕의 높고 높음이 이와 같았다.
이때 족성자가 존자 수보리에게 말했다.
“인자께서는 어느 시간에 먹으러 가겠습니까?
또 지금 때를 보건대, 해가 어느 곳에 있습니까?”
수보리가 대답했다.
“족성자여, 지금은 그 때가 아닙니다. 식사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머지 불국토에서도 역시 때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때 족성자는 즉시 삼매에 들었던 모습으로 신족통(神足通)을 나타내 보여 해를 다시 동으로 돌려 아침 식사 때와 같이 하고는 수보리에게 물었다.
“현자여, 다시 보십시오. 때가 아침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자께서는 생각을 편안히 하고 앉아서 스스로 음식을 드십시오.”
[이름]
수보리가 대답했다.
“지금 나는 부탁하며 족성자에게 묻습니다. 이름을 무엇이라 합니까?”
“오직 수보리여, 나의 명호(名號)는 불ㆍ세존께 여쭈면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오직 수보리여, 일체의 이름은 다 이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이름은 다 생각에 따른 것이므로 헛되고 거짓이어서 진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망상의 대상도 또한 다 진실하지 않아 명호가 없습니다.
마땅히 일체는 본래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다시 족성자여, 일체지(一切智) 역시 이름을 빌린 것뿐입니까? 생각으로 인한 것이라서 진실하고 바르지 않다면 어째서 ‘일체지’라 일컫습니까?”
“생각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은 진실하고 바른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일체지는 한량이 없으므로 명호를 빌린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각각 모든 부처님의 나라에서 유행(遊行)하는 것도 역시 본말(本末)이 없습니다.”
수보리가 물었다.
“족성자여, 일체지는 한량이 없어서 명호를 빌린 것뿐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 여인이 대답했다.
“오직 수보리여, 일체지의 광명은 두루 불토(佛土)를 비추지만,
무엇을 일러 일체지가 불토를 섭취(攝取)한다 하며,
무엇을 일러 일체지가 일체지를 섭취한다 하며,
무엇을 일러 넓은 지혜의 광명이 비춘다 하며,
무엇을 일러 번뇌[垢]를 소멸한다 하며,
무엇을 일러 널리 모든 뜻이 나타난다 하며,
무엇을 일러 위[上]라 하며,
무엇을 일러 크다고 하며,
무엇을 일러 눈으로 본다 하며,
무엇을 일러 가지기 어렵다 하며,
무엇을 일러 크게 버린다 합니까?
무엇을 일러 수보리여, 불토의 큰 베풂이라 하며,
무엇을 일러 불국(佛國)의 이름을 ‘명호를 빌린다[假號]’ 하고 모든 모양과 글자를 구별한다 합니까?
수보리여, 그 일체지는 한량이 없기 때문에 명호를 빌린 것입니다.
색상(色像)도 각각 이와 같아서 명호가 한량없습니다.
명(名)ㆍ색(色)도 한량없어 한정하기 어려우며, 통(痛: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한량이 없으며,
음종(陰種)ㆍ제입(諸入)ㆍ의지(意止)ㆍ의단(意斷)ㆍ신족(神足)ㆍ근력(根力)ㆍ각의(覺意)ㆍ8도(道) 역시 한량이 없어서 다 명호를 빌렸을 뿐입니다.
일체의 도품(道品)과 제법(諸法)도 이와 같으며, 모든 불국토도 각각 한량이 없어서 다 명자를 빌린 것이니, 어찌 진실한 명호이겠습니까?
이런 까닭으로 오직 수보리께서는 마땅히 일체의 이름은 다 이름이 없으며,
생각으로 인한 것은 다 진실하고 바른 것이 아니며,
명호를 널리 알리는 것 역시 생각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이 말도 본래는 다 없는 것이라고 관찰해야 합니다.”
[중우(衆祐)]
이때 수보리가 족성자에게 물었다.
“인자께서는 좋은 이익을 더했고, 모든 나열기(羅閱祇:왕사성)의 장자와 범지(梵志)도 이와 같이 함께 이르렀으며,
중우(衆祐)ㆍ거사(居士)가 다 제도를 받았습니다.”
“수보리 존자께서는 그것을 아십니까, 이른바 중우란 무엇을 말합니까?”
“내가 지금 그것을 자세히 말하겠습니다.
계(戒)를 받들고 참되고 바른 법을 따르며 마음이 안정되어 어지럽지 않는 것을 일컬어 세상의 중우라 합니다.”
대답했다.
“오직 수보리여, 이런 것들은 진정한 중우가 아닙니다.
만약 중생에게 대비심을 일으켜도 중생과 인물(人物)은 다 얻을 수가 없어야 이것을 곧 세상의 중우라 합니다.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불ㆍ법ㆍ성중(聖衆)의 삼보를 끊지 않아야 이를 중우라 합니다.
만약 일체 중생의 티끌과 번뇌의 재액을 소멸시켜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게 한다면 이를 중우라 합니다.
지혜가 한량없고 다함이 없어야 이를 중우라 합니다.
공덕이 무궁하고, 변재가 끝이 없고, 법장(法藏)이 끝없어야 이를 중우라 합니다.
범부나 현성의 무리를 평등하게 여겨 두 가지 마음이 없어야 이를 중우라 합니다.
또 수보리여, 중생이 혜견(慧見)의 청정함을 보고 탐ㆍ진ㆍ치의 때를 문득 사라지게 해야 이를 중우라 합니다.”
이때 모든 하늘[諸天]이 항상 수보리를 모시고 호위하면서 기쁨으로 항상 따르고 그를 받들어 모시며 그의 위신(威神)에 귀의했다.
그때 중우의 가르침을 듣고는 마음이 지극히 온화해져서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
이 모든 하늘의 무리가 발심을 하고는 머리를 땅에 대고 스스로 귀의하여 수보리의 발에 예배하며 자신을 책망하고 잘못을 참회하며 말했다.
“오직 원컨대 인자(仁者)시여, 우리들이 기회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족성자가 모든 천자에게 물었다.
“지금 모든 천자는 무슨 까닭으로 참회하고 수보리에게 귀의하십니까?”
모든 천자가 말했다.
“족성자여, 나의 몸으로 수보리를 모시고 호위한 지가 이미 12년이 되었으나 일찍이 이와 같은 상법(像法)과 중우지(衆祐地)의 설법을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것을 듣고 마음이 지극히 온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습니다.
이 때문에 나는 스스로 마음에 생각하기를,
‘토지가 있는 곳이면 가서 이와 같은 상경(像經)을 듣고 복종할 것이며,
또한 마땅히 이 중우지(衆祐地)의 청정한 행을 듣고는 이로써 모든 보살업을 받아들여 호위하며 함께 도에 귀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수보리가 모든 하늘[諸天]에게 도심(道心)을 낼 것을 권하면서 모든 하늘에게 말했다.
“모든 하늘은 지금 좋은 이익을 얻고 마음은 미묘한 법에 들었으니 내가 무엇을 지어 널리 펴겠습니까?
스스로 위험한 재난을 만나 도심을 어기고 잃어버렸으니 일체지를 받아들일 그릇이 없습니다.
불법의 우아한 가르침을 모든 하늘은 마땅히 깨달았으니, 설령 지금 나의 마음이 해탈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흥해야 하나, 지금은 이미 지혜의 종자가 없어서 보탤 것이 없습니다.
설사 또 모든 하늘이 마땅히 이와 같이 비상(比像)을 추모한데도 모든 착한 친우(親友)는 머리 숙여 모든 정사(正士)에 귀명(歸命)하고 이어서 옛날부터 지금까지 일찍이 없었던 법을 들었습니다.
이미 법을 듣고는 곧 봉행하여 어기거나 잃어버리는 바가 없습니다.”
[봉행]
이때 족성자가 모든 하늘에게 말했다.
“위없이 바르고 진실한 도는 매우 어렵고 어려워 가히 취할 수가 없는데 당신은 덕의 갑옷을 입게 되어 깊고 먼 현묘한 법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족성자는 모든 불세존의 도의 지혜를 즐거워하고 장차 다시 일으켜 세워서, 이 위없는 바르고 진실함을 봉행함으로 인하여 마땅히 해탈할 것입니다.”
또 하늘에게 물었다.
“무엇을 봉행이라고 합니까?”
하늘이 말했다.
“마음을 중생과 같이 하여 그들을 제도하며,
일체의 덮이고 무거운 짐에서 다 해탈하게 하고
널리 중생으로 하여금 고락(苦樂)을 만나지 않게 하는 것이 족성자께서 말한 봉행입니다.”
또 하늘에게 물었다.
“마음을 중생과 평등하게 함은 비인(非人)의 생각입니까?
중생은 티끌도 지옥의 속박도 없으며 또한 해탈도 없고, 5음에 의지하지 않고도 곧 무거운 짐을 버립니다.
그 모든 본래의 덕에는 망상이 없어서 중생을 교화시키되,
너와 나라는 생각이 없어서 비록 고락을 만난다 해도 보태거나 덜어내지 않습니다.”
이때 모든 하늘과 사람이 족성자가 발심을 권하는 것을 보고 즉시에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에 모든 하늘은 여러 가지의 꽃을 뿌리며 두 문 안의 뜰에 있는 족성자에게 공양하였다.
이때 수보리가 모든 하늘과 사람에게 말했다.
“또한 마땅히 아(我)를 참아 나의 뜻과 성품과 같이 하십시오.
혹 이르지 못하고 말한 바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모든 하늘과 사람에게 성문법을 행하도록 권합니다.”
모든 하늘과 사람이 말했다.
“수보리여, 지난번 널리 설하신 것은 무슨 잘못을 참회한 것입니까?
어떠한 중생의 성품이라도 섭수(攝受)하려면 하열[劣]한 말로 연설해야 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오직 수보리여, 지금 들음이 없는 수승함으로 연각(緣覺)을 사모하여 구하고 성문업(聲聞業)을 듣게 하는 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뜻은 묘원(妙願)을 품고 마음은 기갈(飢渴)에 있을 때 감미로운 음식을 먹되 잡독(雜毒)은 먹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수보리여, 수승한 묘의(妙義)를 듣는 것도 이 보살의 법이 현묘하고 아득하기가 이와 같아서입니다.
그런 성문학(聲聞學)은 불도에 이롭지 않으며, 마치 잡독과 같은 연각은 듣지도 않습니다.
또 족성자께서는 오히려 지난번에
‘지금 이 여인은 단정하고 아름다워 색상(色像)이 제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그를 보고는 마음이 트이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이때 그 여인이 수보리에게 말했다.
“현자께서 귀의할 바는 예(禮)로 익힌 탁발이니 다른 걸식은 마십시오. 내가 마땅히 베풀겠습니다.”
그때 그 여인은 자신의 집에 들어가서 온갖 맛있는 음식을 내어 와서 수보리에게 말했다.
“현자여, 이 걸식한 음식을 받되, 욕심을 품지 않고 또한 욕심을 떠나지도 않았다면 마땅히 음식을 드십시오.
성내거나 어리석음을 품지 말고 또한 함께하지도 말며, 번뇌를 떠나지도 말고 또한 함께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가령 현자 수보리여, 고습(苦習)을 끊지 않고 진증(盡證)에도 나아가지 않고 오직 도만을 행한다면 이에 걸식을 받으십시오.
또한 4의지(意止)ㆍ4의단(意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ㆍ8정도(正道)를 받들어 행하지 않는다면,
이에 걸식을 받으십시오.
만약 명(明)으로써도 아니며, 또한 무명(無明)으로써도 아니게 입증(立證)을 세우고,
행(行)ㆍ색명(色名)ㆍ식(識)ㆍ6입(入)ㆍ습갱(習更:觸)ㆍ통(痛:受)ㆍ애(愛)ㆍ취(取)ㆍ유(有)와 생로병사(生老病死)에 큰 고통과 우환이 없고, 합(合)과 불합(不合)을 식별하여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을 깨닫고,
명색(名色)은 형상(形像)이 없는 것과 같으며, 삼계를 건너서 6정(情)을 초월하고,
공행(空行)을 깨달아서 뜻을 해탈문(解脫門)에 두고,
습(習)이 생기는 바도 없고 망상도 없으며, 고통도 얻음이 없으며, 뜻한 바의 원으로 해탈문을 증득하여 근본이 없음을 펴서 애욕에도 이르지 않고,
받아야 할 바도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태어남도 없고, 이미 태어남도 없다면 모든 태어남을 깨달아서 유무(有無)를 분별하며,
노사(老死)는 말할 것도 없고 12품(品)을 깨달았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걸식의 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현자께서 범부를 따르지도 않고, 현성과 함께 함도 없어 법의 평등함을 끊지 않았다면 이에 음식을 받으십시오.
만약 태어남도 있지 않고 또한 사라짐도 없고 공(空)의 업을 행하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허공과 같이 평등하다면,
이에 음식을 받으십시오.
만약 현자께서 범지(凡地)도 초월하지 않고, 현성에도 처하지 않고,
만약 광명도 없고 또한 어둡지도 않으며,
태어남도 헤아리지 않고 생사도 얻지 않고 멸도(滅度)에도 이르지 않으며,
말에 정성이 없고 또한 허망도 없다면
이에 공양을 받으십시오.
모든 것을 다하여도 다하는 바가 없고,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고,
음욕의 모든 종자를 버려서 움직임이 없는 데로 들어가서 집착하는 바가 없이 고요한 선정을 행하며,
항상 중생에게 마음으로 해칠 생각을 품지 않으며,
일체의 법에 놀되 속박됨이 없으면,
이에 음식을 받으십시오.
본래 출가한 뜻을 이미 얻고, 법답게 성취하여 출가의 학업을 고루 베풀고,
또한 이런 것들로 해서 멸도에 이르렀다면,
이에 음식을 받으십시오.
만약 수보리여, 공(空)을 행함에는 뜻이 없으니 무욕(無欲)의 업으로 공에 순종하되,
공을 행하기에 힘쓰지 않고 중우(衆祐)에 매우 합당하다면
이에 음식을 받으십시오.
만약 중우라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문득 속임을 따르고 대성(大聖)을 따름이 아니니
만약 현자로 하여금 필경 중우도 아니며 또한 모자라지도 않으며,
법의(法義)를 봉행하되 나아가고 물러남이 없다면,
이에 음식을 받으십시오.”
이때 수보리는 오른팔을 펴고 머리를 땅에 대고 예를 올린 뒤 이런 말로 선전(宣傳)하였다.
“지금 누이께서 지성(至誠)으로 말한 것을 반드시 봉행하겠습니다.
여인의 말한 바는 내 몸을 위하여 평등한 말을 연설한 것과 같습니다.”
이 말을 마치고 곧 걸식을 받았다.
이때 여인은 수보리에게 음식을 베풀고 이 가르침을 편 다음 수보리에게 말했다.
“오직 현자여, 중우에 이르기가 어려우니 이를 준수하여 평등한 걸식을 받으십시오.
또 세인(世人)은 자만심이 많아서 이런 평등을 버립니다.
이런 까닭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청정하지 못해서이니, 마음에 진실한 믿음을 품고서 걸식을 받으십시오.”
이때 모든 하늘과 사람이 그 여인에게 말했다.
“어떠한 인연을 좇아야 일체의 법을 알고 마음으로 봉행하겠습니까?”
그 여인이 대답했다.
“모든 하늘의 뜻이 나아가는 바는 어떠합니까?
내 몸이 곧 남자임을 알겠습니까?
누구를 위하여 행하는 것이겠습니까?
이런 까닭으로 그 본인(本因)을 따른 것입니다.”
하늘이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 여인이 대답했다.
“이와 같이 모든 하늘이여, 항상 환(幻)과 같은 업(業)을 수행하여 이 몸이 통달한다면 어느 곳에서 내가 행하겠습니까?
오히려 메아리와 같을 것입니다.
또 모든 하늘과 사람이 모든 중생에 따라서 만약 허(虛)와 실(實)이 있는 이런 말로 가르침을 편다면 이 일체의 법은 다 평등함이 됩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말은 다 이름일 뿐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고 자연에서 말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걸식을 행하는 것을 말하고 장구(章句)를 가르쳤을 때 저 모든 하늘의 무리와 백천의 천인(天人)은 티끌[塵]과 때[垢]를 여의고 모든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그때 여인은 현자 수보리에게 사죄하였다.
“인자께서는 가서 공양을 마치면 마땅히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십시오.
우리들도 역시 그곳에 가서 경을 들을 것입니다.”
[계(戒)]
이에 수보리는 음식을 받고 나서 나열기성(羅閱祇城)을 나왔다.
마음에 들은 법을 생각하고는 흔연히 크게 기뻐하며 뜻은 어지러이 달리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내가 걸식한 음식을 마땅히 어느 곳에 놓아야 이 굳은 믿음이 죄의 어려움에 떨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였다.
이때 시중여법(施衆與法)이라는 보살이 있었는데, 현자 수보리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본말을 알고는 가서 그곳에 이르러서 수보리의 발아래 머리를 숙이고 앞에서 말했다.
“오직 수보리여, 이 공양으로써 은혜를 베풀어 보이시고 굳은 믿음으로 사용하시면 쟁송(諍訟)을 이루지 않을 것입니다.”
수보리가 말했다.
“인자이신 족성자께서는 어떠한 계(戒)를 세웠습니까?”
대답했다.
“일체의 법은 다 받음이 없습니다.
계란 다 얻을 수도 없고, 또한 어기는 [犯禁] 것도 없습니다.
또 수보리여, 나는 살생을 좋아하고 보시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사음(邪婬)을 익히고 항상 거짓말[妄語]을 행합니다.
또 양설(兩舌)을 범하고 널리 추악한 말을 퍼뜨리며, 교묘하게 꾸미는 말을 즐겨하며,
항상 화내는 마음을 품고 뜻에는 탐욕과 질투가 있고, 항상 삿된 견해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행하는 것이 있는 것은 다 법을 범하는 것이며,
행하는 바가 없어야 이에 평등함에 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수보리가 마음속으로 스스로 생각하였다.
‘지금 족성자가 베푼 말의 가르침을 들으니 이분은 불퇴전(不退轉)보살임에 의심이 없다.
나는 그가 말한 것을 물으리라.’
이때 수보리는 족성자에게 물었다.
“문득 이 음식으로 서로 은혜롭게 베풀고자 하나 입으로 스스로 선언하시니
오직 정사(正士)시여, 이 음식은 믿음으로 베푸는 음식이 아닌데도 악취(惡趣)로 돌아갑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