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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선계경 제3권
1.7. 조복품(調伏品)
어떤 것을 보살조복(菩薩調伏)이라 하는가?
조복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성조복(性調伏)이며, 둘째는 중생조복이며, 셋째는 행(行)조복이며, 넷째는 방편조복이며, 다섯째는 숙(熟)조복이며, 여섯째는 숙인(熟印)조복이다.
1) 성조복
성조복에는 착한 종자(種子)가 있어서 선법을 닦으며, 선법을 닦으므로 두 가지의 장애를 깨뜨리니,
첫째는 번뇌장이며, 둘째는 지혜장이다.
선법(善法)을 닦으므로 신심(身心)이 청정하고, 신심이 청정하므로 선우(善友)와 불보살을 만나든 만나지 못하든 능히 번뇌와 지혜의 두 장애를 깨뜨린다.
이것은 종기가 곪[熟]은 경우 의사를 만나든 만나지 못하든 모두 낫는 것과 같다.
비유하자면 와기(瓦器)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익었다고 말하며,
암라과(菴羅果) 등이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역시 익었다고 말한다.
모든 중생의 경우도 역시 이와 같다.
선도(善道)를 수집(修集)하여 그 결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할 경우,
이것을 숙(熟)이라 하며, 이것을 성조복이라 한다.
2) 중생조복
중생조복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성문의 성품이 있어 성문도(聲聞道)를 얻는 것이며,
둘째는 연각의 성품이 있어 연각도를 얻는 것이며,
셋째는 불성이 있어 불도를 얻는 것이며,
넷째는 인천의 성품이 있어 인천락(人天樂)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그 네 가지인데 이것을 중생조복이라 한다.
3) 행조복
행조복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근조복(根調伏)이며, 둘째는 선근(善根)조복이며, 셋째는 지혜조복이며, 넷째는 하(下)조복이며, 다섯째는 중(中)조복이며, 여섯째는 상(上)조복이다.
근조복은 근인연(根因緣)을 조복하기 때문에 수명이 길고 모습과 종성(種姓)이 뛰어나며 자재하고 큰 힘을 얻으며 말과 음성이 미묘하고 남자의 몸을 얻으며 또한 능히 이길 자 없음을 얻는다.
이 과보를 구족하게 성취한 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항상 중생을 위하여 고행(苦行)을 수집(修集)하며, 애초부터 마음에 우수나 회한이 없다.
이것을 근조복이라 한다.
선근조복은 그 성품이 악업을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오개(五蓋)가 경미하여 모든 악한 각관(覺觀)이 점점 약해져서 청정하고 순수하고 선한 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을 선근조복이라 한다.
지혜조복은 보살마하살이 지혜를 수집하기 때문에 심행(心行)이 광대(曠大)해서 경전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선과 악의 뜻을 풀이해서 사유 분별하여 널리 중생을 위하여 말하는 것을 말한다.
지혜를 수집하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마음대로 얻는다.
만일 근조복ㆍ선근조복ㆍ지혜조복을 구족한다면 능히 지장(智障)을 청정히 할 수 있으며,
근조복을 구족하면 보장(報障)을 청정히 할 수 있으며,
선근조복과 지혜조복을 구족하면 지장 및 번뇌장을 청정히 할 수 있다.
하조복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무량세 중에서 선법을 수집하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선근(善根) 지혜를 추구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인 바,
이 때문에 이름을 하조복이라 한다.
중조복은 무량세 중에서 선법을 수집하여 선근조복을 얻었으나 지혜조복은 얻지 못한 것으로서 이를 중조복이라 한다.
상조복은 위의 세 가지를 구족한 것으로서 이를 상조복이라 한다.
4) 방편조복
방편조복에는 스물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계증장(界增長)이며,
둘째는 현재인(現在因)이며,
셋째는 입어출가(入於出家)이며,
넷째는 초발(初發)이며,
다섯째는 비초발(非初發)이며,
여섯째는 원정(遠淨)이며,
일곱째는 근정(近淨)이며,
여덟째는 장엄(莊嚴)이며,
아홉째는 지심(至心)이며,
열째는 시식(施食)이며,
열한째는 시법(施法)이며,
열두째는 신통을 보여주어 신심(信心)을 생기게 하는 것이며,
열셋째는 법을 말하여 신심을 생기게 하는 것이며,
열넷째는 심밀장(深密藏)을 말하여 널리 법을 분별하는 것이며,
열다섯째는 하장엄(下莊嚴)이며,
열여섯째는 중장엄이며,
열일곱째는 상장엄이며,
열여덟째는 청법(聽法)이며,
열아홉째는 사유수집(思惟修集)이며,
스무째는 섭취(攝取)며,
스물한째는 가책(呵責)이며,
스물두째는 부대청설(不待請說)과 대청설(待請說)이다.
계증장은 착한 종자(種子)를 구족하는데, 착한 종자를 구족하기 때문에 타세(他世)에서 선근이 다시 증장하며, 현재의 법종자(法種子)를 수집하기 때문에 타세에서 법종자가 또한 증장한다.
이것을 계증장이라 한다.
현재인은 현재세 중에 설법이 잘못되지 않고 청법(聽法)이 잘못되지 않아 법대로 수지함으로써 이전 세상의 인(因)을 따라 현재인을 증장하고 현재인을 따라 미래인을 증장하며 또한 현재인이 현재인을 증장하는 것이 현재인이다.
입출가(入出家)는 선우(善友)와 불보살들을 친근하여 신심(信心)을 얻는 것이니,
신심을 얻기 때문에 세간법을 버리고 떠나서 출세간법을 받아 지녀 수행하는 것이다. 출세간법이란 보살계를 말한다.
만일 사문(沙門)이란 이름을 얻을 수 없으면 출가(出家)라고 하지 않으니, 욕법(欲法)을 끊어버리기 때문에 출가라 한다.
이와 같이 보살계를 받지 않은 이는 궁극적으로 영구히 욕법을 끊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애착을 끊는 것을 출가라 하며,
궁극적인 낙을 얻은 것을 출가라 하며,
즐겁고 쉽게 도를 행하는 것을 출가라 하며,
불법을 증장하는 것을 출가라 하며, 금계(禁戒)를 기꺼이 받아 지니는 것을 출가라 한다.
이것을 입출가라 한다.
초발은 처음 발심할 때에 생사를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다.
생사를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에 신심(信心)이 생겨서 도를 수집하여 불법을 증익한다.
이것을 초발이라 한다.
비초발은 발심한 뒤에 모든 부처님과 불제자를 친근히 하고,
금계를 받아 지녀서 독송하고 베껴 써서 널리 중생을 위하여 말하며,
나아가 상상선법(上上善法)을 증장하는 것이다.
이것을 비초발이라 한다.
원정은 예를 들면 보살의 금계를 받아 지니지 않아서, 독송하고 베껴 쓰고 해설하지 못하는 것이며,
가르치는 스승을 따르지 않고 게으르고 나태해서 무량겁이 지나도록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을 원정이라 한다.
근정이란 금계를 받아 지녀 독송하고 베껴 써서 중생을 위해 해설하고,
가르치는 스승을 따라 열심히 닦아 정진하여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니,
이것을 근정이라 한다.
장엄이란 지극한 마음으로 위없는 불도(佛道)를 열심히 구하는 것이다.
보리를 위하기 때문에 보살계를 받아 지니며,
왕사(王師)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화상(和上)을 높이며,
명칭을 위하기 때문에 보살계를 받아 지닌다.
이것을 장엄이라 한다.
지심이란 불법을 지극한 마음으로 계념(繫念)하여 의심의 그물이나 불인(不忍)의 마음이 없이 정법(正法)을 호지(護持)하고, 보살장과 보살 마이(摩夷)로써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스승ㆍ화상(和上)ㆍ장로[耆舊]ㆍ장숙(長宿) 및 유덕한 이에 대하여 깊이 공경하고,
삼보(三寶)에게 열심히 공양하되 쉼이 없으며,
깊이 삼보를 믿어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이것을 지심이라 한다.
시식이란 보살마하살이 굶주린 자를 보고 음식을 베푸는 것인데, 종전에 필요로 했던 것에 따라 모든 것을 공급한다.
이것을 시식이라 한다.
시법은 보살이 만일 일구일게(一句一偈) 나아가 반게(半偈)와 일부일장(一部一藏)으로 널리 중생을 위하여 그 뜻을 연설할 경우, 보리를 위하기 때문에 선을 행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을 시법이라 한다.
신통을 보여 신심을 생기게 하는 것이란, 보살마하살이 커다란 신통을 모든 중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인데,
연민을 하며, 중생의 마음을 청정케 하고자 하며,
중생에게 신심이 청정함을 알게 하여 중생에게 청정한 장엄(莊嚴)을 보여주며,
중생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신통이라 한다.
법을 말하여 신심(信心)이 생기게 하는 것이란, 보살이 이익이 있지 않음을 스스로 아는 것이다.
이타(利他)를 위하기 때문에 법을 풀어 말하며,
또한 남을 이익되게 하는 것에 기인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능히 자신의 죄를 멸하고 법을 풀어 말하며,
또한 남을 위하여 법을 말하면 역시 자신이 닦은 선을 증장한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
이것을 설법이라 한다.
심밀장을 말하여 널리 법을 분별하는 것이란, 보살마하살이 방편력(方便力)을 써서 능히 중생을 위하여 여래의 깊고 깊은 밀장(密藏)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중생으로 하여금 그 뜻을 이해하게 하고, 지혜로운 이와 선근(善根)을 증장하는 이를 위해 깊은 뜻을 말하기 때문에 이를 심밀장을 말하여 널리 법을 분별하는 것이라 한다.
하장엄이란 무상(無上)한 성현의 행을 지극한 마음으로 늘 행하지 못하는 것인데, 이것을 하장엄이라 한다.
중장엄이란 비록 지극한 마음으로 성행(聖行)을 수집한다 하더라도 계속하여 행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을 중장엄이라 한다.
상장엄은 항상 계속해서 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 이를 상장엄이라 한다.
청법이란 만일 위없는 불법을 수집하는 경우, 지극한 마음으로 십이부경을 들어 채택하여 이를 받아 지녀 베껴 쓰고 독송하며 해설하는 것을 청법이라 한다.
사유수집이란 법을 들은 뒤 신심이 적정(寂靜)하고, 그 뜻을 사유하고 의심을 깨뜨려서 정(定)ㆍ혜(慧)ㆍ사(捨), 세 가지 상(想)을 수집(修集)하는 것을 사유수집이라 한다.
섭취란 탐욕이 없는 마음으로 중생에게 법을 말하고, 제자를 받아 길러서 잘 교계(敎誡)하며, 음식과 의복을 베풀어주고 병이 들면 의약을 지급하며,
번뇌가 생기는 것을 알아서 그 병통에 따라 법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섭취라 한다.
가책이란 만일 일어나는 번뇌를 스스로 보아서 알 경우, 신심(身心)을 가책하는 것을 말한다.
번뇌가 일어나는 자는 자신도 이롭게 못하고 남도 이롭게 하지 못하여 경죄(輕罪)가 중죄(中罪)로 인정되고 중죄가 중죄(重罪)로 인정된다.
만일 중생이 마음이 어지러워 허방에 빠졌다면, 빠진 뒤에 또다시 떨어져서는 안 되며, 번뇌가 일어나면 당연히 조복해야 한다.
만일 제자가 조금이라도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보면 반드시 가책해야 하고 그가 하는 예배나 공양에서부터 양치와 세숫물에 이르기까지 받지 말아야 하며,
만일 큰 죄를 범하면 당연히 빈출갈마(擯出羯磨)로 벌한다.
가책이란 자신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가책이라 하는 것이다.
부대청설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깊은 뜻을 받아 지녀 독송하고 해설하며, 중생들에게 일어나는 번뇌를 깨뜨리고 중생들이 행하는 선법을 증장하기 위해 법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닌 것에 따라 말하고 법대로 머문다.
어째서인가? 보살이 만일 법대로 머물지 못하면 중생들이 업신여기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래 자신도 법에 따라 머물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가르친다고 하는가?
그대가 지금 막 딴 사람으로부터 법을 받고도 어떻게 도리어 남을 위해 설법하겠다고 하는가?”
이것을 부대청설이라 한다.
대청설이란 수지한 금계(禁戒)대로 열심히 닦아 정진해서 선근(善根)을 구족하는 것이며,
기꺼이 고요하고 한적한 곳에 처해서 언제나 모든 자들의 공경을 받으며,
풀어 말하는 것은 중생들이 모두 믿고 받아들이고, 뜻과 말을 알아서 잘 설법하는 것을 말한다.
만일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있다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부디 대사(大士)께서는 중생들을 조복하여 감로문(甘露門)을 열어젖히소서.”
이것을 대청설이라 한다.
이와 같은 스물두 가지를 누가 조복하는가?
소위 여섯 가지 지(地)에 주(住)하는 여섯 종류의 보살이니, 이러한 보살이 능히 중생을 교화하여 조복한다.
어떤 것이 이 여섯 가지 지인가?
첫째는 지극한 마음으로 전념하는 보리행지(菩提行地)이며,
둘째는 정심(淨心)으로 하는 보리도지(菩提道地)이며,
셋째는 법에 따라 하는 주지(住地)이며,
넷째는 정지(定地)이며,
다섯째는 필경지(畢竟地)이며,
여섯째는 성취보리도지(成就菩提道地)이다.
이것을 여섯 가지 지라 한다.
4) 속조복
무성(無性)의 중생을 조복하고자 인천(人天)의 낙(樂)을 말하여 퇴전(退轉)하지 않게 하며,
유성(有性)의 중생을 위하여 말해서 조복을 얻어 선법을 증장하게 하는 것을 숙조복(熟調伏)이라 한다.
5) 숙인조복
숙조복인(熟調伏印)이란 성문인(聲聞人)이 무량세에 선근(善根)을 수집하는 것인데,
이것을 하숙조복인(下熟調伏印)이라 한다.
또한 하숙조복인을 하연심(下軟心)ㆍ하장엄(下莊嚴)ㆍ하선근(下善根)이라고도일컫는데, 삼악도의 보과를 깨뜨리지 못하여 현재에 네 가지 사문과(沙門果)와 열반과를 얻지 못한다.
이것을 하숙조복인이라 한다.
어떤 것을 중(中)숙조복인이라 하는가?
가령 중심(中心)ㆍ중장엄ㆍ중선근을 얻어서 삼악도를 깨뜨리지만, 현재의 네 가지 사문과와 열반과를 얻지 못하는
이것을 중숙조복인이라 한다.
상(上)숙조복인이란 상심(上心)ㆍ상장엄ㆍ상선근으로 삼악도를 깨뜨리고 현재에도 능히 네 가지 사문과와 열반을 얻는 것인데,
이것을 상숙조복인이라 한다.
연각에도 역시 이와 같이 두 가지 승(勝)이 있다.
첫째는 도를 수집하는 승이고,
둘째는 스승이 없이 도를 얻는 승이다.
보살마하살이 여기에 주하여 보살행지에 전념하면 이것을 하숙조복인이라 하며,
제이지(第二地)에 주하면 중숙이라 하며,
제삼지에 주하면 상숙이라 한다.
초지(初地)의 보살은 그 마음이 미연(微軟)하고 장엄(莊嚴) 또한 마찬가지이니,
삼악도에 떨어져 수행이 이미 초아승기겁을 지났으나, 초아승기겁에서는 아직 무동(無動)ㆍ무상(無上)ㆍ청정의 삼십칠품을 구족하지 못한다.
중숙조복인이란 보살의 중심(中心)ㆍ중장엄(中莊嚴)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수행이 이미 제이아승기겁을 거쳐서 비록 청정한 부동전(不動轉)의 선을 얻어 삼십칠품을 구족하였으나, 아직 최대적정(最大寂靜)의 삼십칠품은 얻지 못한 것이다.
이것을 중숙조복인이라 한다.
상숙조복인이란 보살마하살이 상숙조복인에 주(住)하여 상심(上心)ㆍ상장엄으로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수행이 이미 제삼아승기겁을 경과하여 청정한 부동전의 선을 구족하며 대적정의 삼십칠품을 획득한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곧 보살의 무상도(無上道)이므로 대정부동순선최대적정(大淨不動純善最大寂靜)이라 하는데
이것이 상숙조복인이다.
하숙조복인에 세 가지가 있으니, 하하(下下)ㆍ하중(下中)ㆍ하상(下上)이며,
중숙(中熟)에 세 가지가 있으니, 중하(中下)ㆍ중중(中中)ㆍ중상(中上)이며,
상숙에 세 가지가 있으니, 상하(上下)ㆍ상중(上中)ㆍ상상(上上)이다.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조복(調伏)들을 구족하면, 능히 위없는 불법을 증장하여 중생을 교화하고 제근(諸根)을 조복해서 지혜가 맹리(猛利)하여 능히 중생을 위해 삼승(三乘)을 열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