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무언동자경 하권
[법을 물은 일도 없고 받은 적도 없다]
그때 그 법회에 있던 연화정(蓮華淨)보살이 무언보살에게 물었다.
“족성자에 속한 이로서 마음을 일으켜 여래께 질문하여 그에 대한 해답과 미묘한 행을 듣고 법을 받아 들여서 마음으로 기뻐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무언보살은 대답하였다.
“족성자여, 저는 처음부터 일찍이 법을 질문해 본 적이 없고 또한 법을 받아들인 적도 없는데
무슨 인연으로 법을 받아들여서 마음으로 기뻐할 것이 있겠습니까?”
연화정보살이 또 물었다.
“족성자여, 그렇다면 당신께서는 일찍이 여래로부터 법을 받아 듣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무언보살은 대답하였다.
“받아 듣지 않았습니다.”
연화정보살이 또 물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요?”
무언보살은 대답하였다.
“그 그릇[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연화정보살이 또 물었다.
“당신께서 강설하신 법을 담을 만한 그릇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무언보살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연화정보살이 또 물었다.
“당신은 어떠한 그릇입니까?”
무언보살은 대답하였다.
“저는 모든 법의 부류에 있어서 어떤 그릇도 아니고 또 기이한 것도 없습니다.”
연화정보살이 또 물었다.
“족성자여, 만일 그릇이 아니라면 어떤 인연으로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어 가장 올바른 깨달음을 이룩할 수 있겠습니까?”
무언보살은 대답하였다.
“도라는 것은 법의 그릇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연화정보살이 또 물었다.
“그렇다면 그 도라는 것을 관찰해 보면 불법의 그릇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무언보살은 대답하였다.
“가령 그 도가 불법을 여읜 것이라면 불법은 그릇이 아니고,
그 도가 불법을 여의지 않은 것이라고 하거나 또 불법이 바로 도라고 잘못 생각하거나 한다면, 또 그 도가 곧 불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족성자여, 저는 모든 부처님의 도와 불법을 저 번뇌[塵勞]를 여읜 것으로 여기고 싶지 않아 불도에 항상 뜻을 두지도 않았는데, 하물며 불법을 즐기면서 도를 여의겠습니까?
왜냐 하면 불법을 지닌 자는 번뇌를 여의지 않고 그 번뇌도 불법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니, 욕망과 번뇌를 깨닫는 것을 곧 도라고 합니다.
[다르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
저는 이 때문에 내 것[我所]이라고 잘못 생각하지 않고 불법을 구별하지도 않습니다.
그 다르다고 생각함은 곧 각각 다르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므로 다르다는 입장에서 도를 구해서는 안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다른 것에서 이런 모든 다른 점들을 구하고
또 설령 어떤 사람이 다르지 않은 것에서 구하더라도 이들을 구별해서는 안됩니다.”
연화정보살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을 다르다고 합니까?”
무언보살은 답하였다.
“나와 도가 달라서 같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다름이고,
4대(大)가 나[我]ㆍ사람[人]ㆍ수(壽)ㆍ명(命)과 다르다거나 마음과 의지가 다르다거나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르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곧 다름[異]이라고 합니다.
나라는 것도 그 자연은 본말(本末)이 청정하고 도라는 것도 그 자연은 본말이 청정하다고 이렇게 훤히 깨닫는다면 다름이 없다고 하는 것이며,
또 나ㆍ사람ㆍ수ㆍ명이라든가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도 그 자연은 본말이 청정하고 도라는 것도 그 자연은 끝내 청정하다고 이렇게 훤히 깨닫는다면 그것이 다름이 없다[無異]고 하는 것입니다.
설사 다르다고 해도 그 다름을 구할 수 없으니, 곧 이 4대(大)로 이루어진 나의 몸뚱이에서 일체의 법을 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구한다면 구한다고 하여도 얻을 것이 없고,
얻을 것이 없다면 그 중에 집착할 것이 없으며,
집착할 것이 없다면 있어야 할 곳이 없고,
있어야 할 곳이 없다면 일체의 법이 모두 머물 곳이 없고 근본 경계도 없습니다.
만일 근본 경계가 없다면 참된 근본 경계이고,
이 참된 근본 경계엔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경계도 없고 미래에 다가올 경계도 없고 유한한 경계도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경계마저 없으니,
일체 모든 법의 근본 경계가 모두 이와 같습니다.
만약 이 경계에 들어간다면 어떤 생각도 없고 생각이 없지도 않으며,
생사에 있지도 않고 멸도(滅度)하지도 않으면서 마침내 멸도하여 일체의 법을 훤히 깨닫게 되고,
만약에 이 법으로서 멸도하는 자는 곧 고요함을 얻어, 모든 멸도하지 못한 사람에게 멸도를 얻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세존께서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여 적멸한 해탈에 들지 못했거나 가르침에 수순하지 못하여 멸도를 얻지 못하고서 다른 사람을 개화하여 멸도를 얻게 하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 스스로 고요히 해탈하여 계율에 수순하고 멸도의 무위(無爲) 경지에 도달해야만 멸도하지 못한 이를 멸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