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녀소문경 제2권
4. 문보녀품(問寶女品)
[보녀의 전생의 인연]
그때에 현자 사리불이 세존께 여쭈었다.
“이 보녀는 더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발심한 지가 오래된 듯한데, 어떤 부처님께 그러한 큰 도를 배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이제부터 과거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겁의 오래고도 먼 세간에 유위(維衛)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란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셨으니, 그 세계의 이름은 청정(淸淨)이고, 그 불토의 의복ㆍ음식ㆍ가옥ㆍ누각은 마치 제4의 도솔천(兜率天)과 같으며, 그곳에 있는 76억의 보살들은 다 오직 한 가지 가르침만 받든 순수한 이들이어서 퇴전하지 않는 한편, 모든 다라니를 얻어 변재에 뛰어났느니라.
그리고 사리불아, 유위 여래ㆍ지진 부처님 당시에 복보청정(福報淸淨)이란 이름의 전륜성왕이 있어서 천 세계를 통솔하였는데, 그에게는 간직한 값진 보배가 한량없이 있었다.
또 그 복보청정 성왕의 궁중에 있는 8만 4천의 부인과 채녀(婇女)는 한결같이 궁에 있는 사람 가운데 가장 바르고 옥 같은 여인이었고, 성왕의 아들 천 명은 모두가 역사(力士)이어서 그 위의와 세력은 이루 말할 수 없었느니라.
그럼에도 그 성왕은 36억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에 걸쳐 큰 성인이신 유위여래를 공양하되, 모든 것을 보시하여 안락하게 지내시게 하였으며, 여러 보살들에 대한 의식ㆍ상좌ㆍ침구ㆍ약품까지도 다 공급하였느니라.”
사리불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큰 성인이시여, 유위여래의 수명은 얼마이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유위여래의 수명은 10중겁(中劫)이었으나 복보청정왕이 그 여래를 공양한 햇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느니라.
그런데 어느 때 왕은 궁중의 여러 왕자들과 권속을 비롯한 92해(姟)의 무리들과 함께 그 부처님을 둘러싸고 따르면서 엎드려 예배하고 백천의 값어치가 있는 명월주와 영락을 받들어 올리면서 합장하여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큰 성인이시여, 저희들이 몸소 모든 공양의 준비를 갖추었으니, 공양으로서 어찌 이보다 더 뛰어나게 여래를 받들 수 있겠습니까?’
사리불아, 유위여래께서 복보청정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느니라.
‘대왕은 아셔야 합니다. 이보다 더 존귀하고 훌륭하며 비교할 수 없는 다른 공양이 있는데 왕은 아직 그 공양을 베풀지 못하였습니다.
이 공양이야말로 왕이 앞서 베푼 공양거리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 억 배, 억만 배나 뛰어난 것입니다.’
왕은 다시 여쭈었다.
‘어떤 공양이옵니까?’
유위여래께서 그 대왕의 마음을 짐작하시고는 다음의 게송을 읊어 대답하셨다.
항하사처럼 무수한
그 억천의 불국토에
가득 찬 값진 보배로
억백천 겁에 이르도록
여래를 공양하여
이렇게 모은 복덕이라 해도
저 중생을 가엾이 여겨
도에 발심한 자로서
항하사처럼 무수히
억천 부처님을 섬기며
무수한 억겁을 동안 받든
그 복덕엔 미치지 못하리라.
부처님의 대비하신 도심(道心)
일곱 걸음만으로도 수승하시니
부처님을 이같이 공양함이
가장 더없는 존경의 길이네.
이 보시가 월등하고
이 계율과 인욕 한량없고
이 정진 굳건하고
이 선정과 지혜 흔들림 없음에랴.
그러므로 누구나 도에 발심하여
세간의 스승 되기를 바란다면
이 복덕 가장 한량없어
쌓고 또 쌓아 다함이 없으며
이름이 널리 퍼지는가 하면
권속이 모두 건전하고
또 재보와 세력을
마음대로 얻을 수 있으리니
전륜성왕이나 제석ㆍ범천의
그 훌륭한 위력(威力)으로
만약 환희심 내어 다른 생각 끊고
모든 신통의 지혜를 갖춘다면
온갖 나쁜 갈래를 소멸하여
8난(難)의 두려움 없애고
청정한 도를 더욱 자라내어
항상 천상ㆍ인간의 쾌락을 누리리라.
또 누구든지 더러움 여의고
더 없는 도에 뜻을 세우려면
모든 근기를 밝게 통달하여
성스러운 총명으로 어두움 없애며
여러 부처님 뵙고 받들어 섬겨
경전의 설법을 듣는 한편
모든 지혜를 힘써 구하기 위해
항상 그 도심(道心)을 넓혀야 하리라.
주저하거나 의혹됨이 없어
아첨을 떠나 항상 곧고 순박하고
중생을 가엾이 여겨 구제하되
그 수승한 도에 뜻을 두며
온갖 욕망과 쾌락을 버리고
법락(法樂)만을 즐겨 함으로써
온 세간에 아무런 집착 없고
그 수행을 물 위의 연꽃같이 하며
복덕의 지혜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바라밀을 힘써 구해야 하리니
이같이 도에 발심한다면
그 누가 큰 도를 세우지 못하랴.
이것이 곧 큰 횃불의 광명으로
뭇 어두움을 비추어 구제하는
가장 높고도 거룩한
중생들의 큰 도사(導師)이네.
그러므로 이 세간에 가장 뛰어나
약을 베풀어 모든 병 제거하고
도의 뜻을 건립(建立)함이
억천 겁을 지나도 다함이 없네.
사리불아, 그때 복보청정왕은 유위여래로부터 이 게송을 듣고 도에 발심하여 그 공덕을 찬탄하면서 스스로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쁨에 겨워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곧 더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발심하였다.
이에 궁중에 있는 태자와 관속을 비롯한 백관의 신하와 그 밖의 모든 권속들까지 다 왕을 시종하면서 다음의 게송을 읊었노라.
이제 세존께서
도의 뜻을 세우시어
인자한 마음을 일으켜
중생을 가엾이 여기시므로
저희들도 공경하고 존중하여
한결같이 도의 마음 내어서
그 마음을 굳게 하려 하오나
생사의 본제(本際)를 알지 못하여
그릇된 일에 사로잡히고
고뇌에 떨어져 허덕입니다.
이제 정성껏 정진하여
불도에 뜻을 두고
중생들에 착한 일 행하기 위해
변재와 지혜를 더욱 길러내며
거룩하게 통달하신 유위부처님을
알뜰하게 공양함으로써
그 한량없는 신통의 지혜 얻어
천상ㆍ세간의 안락을 받으렵니다.
저희들 범천ㆍ제석과 전륜왕은
다 함이 있는[有爲] 안락이므로
함이 없는 안락을 구하기 위해선
마땅히 이 도의 마음을 준수하며
그 심오한 선정에 들어
한량없는 이치를 생각하고
피안(彼岸)으로 건너기 위해
도 닦기를 또한 그렇게 하렵니다.
큰 성인의 신통 지혜는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어
일체의 지혜를 갖추셨으니
그 소행을 말하자면
부처님의 불가사의하신
열 가지 힘, 네 가지 두려움 없음과
여래의 모든 법이 그것인바
이 모두가 청정한 마음을 따라
넓고 그지없는 도를 얻으셨습니다.
억천 불국토를 움직여
두루 음성을 펴시더라도
중생들 그 음성 모두 들어 알고는
청정한 행을 닦으니
넓고도 더러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총명한 자가
이 도의 마음 낸다면
열 가지 힘 지닌 여래께
모든 칭찬을 받게 되며
나아가서는 모든 중생 위해
그 선지식을 비롯한
총명스런 지혜 있는 이로 하여금
다 도의 마음 내게 하리니
이같이 부처님 도는
상(想) 없는 지혜를 나타내므로
무수한 억천 겁에
그 모든 공덕을 널리 설하여도
부처님의 도를 향한 마음만은
언제나 다함이 없으십니다.
그때에 복보청정대왕이 이 게송을 읊어 찬탄하자, 92해(★)의 인민 대중과 후궁과 1천 명의 왕자들은 다 더없는 바른 진리의 도를 구하려는 뜻을 내었고,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14억의 하늘들은 권하여 돕는 음성을 내어 크게 도를 구하는 마음을 내었다.
그러한 뒤 전륜성왕은 다시 공경하고 정숙하게 10억 년 동안 유위여래를 공양하되, 모든 것을 베풀어 안락하게 모셨으며 청정한 범행(梵行)과 계율을 닦고 항상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경전을 들었고 그 권속들과 함께 가서 법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왕은 그 맏아들을 국왕으로 세운 뒤에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고 견고한 신심으로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다.
사문이 되고 나서는 곧 네 가지 다함이 없는 장구(章句)를 배워 차례로 찬탄하면서 낱낱 그 이치를 구하였으니, 이른바 네 가지란 지성(至誠)의 장구ㆍ법전(法典)의 장구ㆍ묘의(妙誼)의 장구ㆍ율령(律令)의 장구가 그것이다.
구절들은 억천 세에 걸친 선권방편(善權方便)을 다 갖추었으므로 왕은 이것을 배운 뒤로부터 일천 세계에서 삼매로 중생을 제도하였고, 이들은 모두 다 유위여래의 처소에서 사문이 되었다.
사리불아, 그 때의 복보청정이라는 전륜성왕이 어찌 다른 사람이라 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니 바로 이 보녀가 그였느니라.
이 보녀는 유위부처님께 처음으로 더없는 바른 진리의 도 구하는 마음을 내었던 것이다.”
그러자 사리불은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보녀는 무슨 죄가 있어 여인의 몸을 받았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보살은 무슨 죄가 있어서 여인의 몸을 받는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보살은 지혜의 신통과 착한 방편을 지니어 성스럽고 현명하기 때문에 일부러 여인의 몸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다.
사리불아, 너는 이 보녀를 여인으로 생각했느냐? 그러한 생각을 하지 말라. 성스러운 신통의 힘을 이어받아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바로 참다운 보살이니, 남자의 법이나 여인의 법이 없을 뿐 아니라 모든 법의 이치를 구족한다면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노라.
이 보녀는 남섬부주에 있으면서 9만 2천의 어린 여자들을 깨우치고 가르쳐 다 더없는 바른 진리의 도 구하는 마음을 내게 하였느니라.”
그때 보녀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기년(耆年)께서는 여인의 몸을 나타내어 중생들을 위해 법을 강설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지금 나 같은 사람은 남자의 몸도 좋아하지 않거늘 하물며 또 여인의 형상을 받겠습니까?”
보녀는 물었다.
“그대는 자신의 몸을 더럽게 여기고 싫어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근심하고 싫어합니다.”
보녀는 대답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은 일체의 중생을 뛰어넘어 짝할 이가 없는 것입니다.”
“무슨 까닭입니까?”
“사리불이여, 성문들이 더럽게 여기고 싫어하는 것을 보살은 조금도 근심하지 않습니다.
성문들이 더럽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섯 쌓임[五陰]과 네 원소[四大]와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入]입니다. 이것을 성문은 근심하지만 보살은 근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여러 갈래로 돌아다니면서 몸 받는 것을 성문은 근심하지만 보살은 근심하지 않으며,
생사에 허덕임을 성문은 근심하지만 보살은 한량없는 생사에 드나들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 근심하거나 싫어하지 않으며
공덕의 업을 성문은 게을리 하지만 보살은 아무리 많은 공덕을 쌓아도 그것을 만족하게 여기지 않고 근심하지도 않으며,
대중의 모임에 있기를 성문은 싫어하지만 보살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싫어하지 않으며,
자신의 번뇌를 성문은 싫어하지만 보살은 모든 중생들 번뇌의 욕심까지도 근심하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이와 같이 성문은 더럽게 여기고 싫어하는 것을 보살은 조금도 근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