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의보살경 제2권
[지계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 다함없다]
그때 사리불이 무진의 보살에게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미 보살마하살이 보시[檀]바라밀을 수행하여 다함이 없음을 기꺼이 말해 주었으니,
바라건대 그대는 이제 보살의 지계[尸]바라밀을 말해 주십시오.
보살이 얻는 다함없는 지계바라밀의 다함없는 뜻은 무엇입니까?”
무진의 보살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보살의 계율이 예순일곱 가지가 있는데 그 계율을 청정하게 닦는 것이 또한 다함이 없습니다. 그 예순일곱 가지를 말하겠습니다.
모든 중생을 괴롭히거나 해치지 않는 것이요,
다른 사람의 재물을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요,
다른 사람의 부녀(婦女)를 삿된 눈으로 보지 않는 것이요,
모든 중생을 속이는 일이 없는 것이요,
처음부터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니 자기의 권속에 만족할 줄 알기 때문이요,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니 거칠고 더러운 것을 참기 때문입니다.
꾸미는 말이 없으니 항상 착하게 말하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의 즐거운 일을 탐내거나 질투하지 않기 때문이요,
처음부터 성내거나 미워함이 없으니 나쁜 말을 참기 때문이요,
바른 소견을 가져서 삿되지 않으니 다른 도(道)를 천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을 깊이 믿으니 마음이 흐리지 않기 때문이요,
법을 믿고 따르니 법을 잘 관찰하기 때문이요,
스님들을 믿고 공경하니 성인의 무리를 존경하기 때문이요,
엎드려 절함이니 부처님을 생각하기 때문이요,
엎드려 절함이니 참는 성품을 본받기 때문이요,
엎드려 절함이니 스님들을 높이 공경하기 때문이요,
금하는 계율을 굳게 지키는 것이니 모든 것을 범하지 않고 나아가 조그마한 금계까지도 놓아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자람이 없는 완전한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다른 승(乘)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요,
뚫어지지 않는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나쁜 곳에 태어남을 여의기 때문이요,
거칠지 않은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모든 번뇌와 섞이지 않기 때문이요,
더럽지 않은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오로지 깨끗한 법을 자라게 하기 때문이요,
매우 깊은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뜻에 따라 회향하여 자재함을 얻기 때문이요,
찬탄할만한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슬기로운 이도 꾸짖지 않기 때문이요,
순수하고 선한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바르게 생각하여 알기 때문이요,
가책(呵責)하지 않는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모든 계율에 산란하지 않기 때문이요,
착하고 견고한 계율을 가짐이니 모든 감관을 잘 지키기 때문이요,
이름난 계율을 가짐이니 모든 부처님께서 생각하시는 바이기 때문이요,
만족할 줄 아는 계율을 가짐이니 만족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요,
욕심이 적은 계율을 가짐이니 탐내고 아낌을 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성품이 청정한 계율을 가짐이니 몸과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이요,
아란야(阿蘭若)의 계율을 가짐이니 시끄러움을 여의기 때문이요,
거룩한 씨앗[聖種]의 계율을 가짐이니 다른 뜻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위의(威儀)의 계율을 가짐이니 일체의 선근으로 자재함을 얻기 때문이요,
말한대로 계율을 갖는 것이니 사람이 기뻐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의 계율을 가짐이니 중생을 옹호하기 때문이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의 계율을 가짐이니 모든 괴로움을 참고 견디기 때문이요,
기뻐하는 마음의 계율을 가짐이니 게으르지 않기 때문이요,
똑같이 여기는 마음의 계율을 가짐이니 사랑하고 미워함을 여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살피는 계율을 가짐이니 잘 분별하기 때문이요,
단점이나 결함을 구하지 않는 계를 가짐이니 다른 이의 마음을 감싸주기 때문이요,
잘 거두는 계를 가짐이니 잘 지키고 보호하기 때문이요,
지혜를 베푸는 계율을 가짐이니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요,
인욕의 계율을 가짐이니 마음에 성냄이나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요,
정진의 계율을 가짐이니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요,
선정의 계율을 가짐이니 모든 선지(禪支)를 자라나게 하기 때문이요,
지혜의 계율을 가짐이니 선근(善根)을 많이 들었어도 싫증냄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문(多聞)의 계율을 가짐이니 널리 배워서 견고하기 때문이요,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계율을 가짐이니 보리를 도와 이루게 하기 때문이요,
악지식을 멀리 여의는 계율을 가짐이니 나쁜 도를 버리고 멀리 여의기 때문이요,
몸을 아끼지 않는 계율을 가짐이니 변하지 않음이 없다는 생각으로 관찰하기 때문이요,
목숨을 아끼지 않는 계율을 가짐이니 선근을 부지런히 수행하기 때문이요,
후회하지 않는 계율을 가짐이니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삿된 생활을 하지 않는 계율을 가짐이니 마음과 행동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초조해 하지 않는 계율을 가짐이니 끝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불타지 않은 계율을 가짐이니 착한 행업(行業)을 닦기 때문이요,
교만이 없는 계율을 가짐이니 마음을 낮추어 교만하지 않기 때문이요,
동요되지 않는 계율을 가짐이니 모든 욕심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이요,
높이지 않는 계율을 가짐이니 마음이 평등하고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부드럽고 조화로운 계율을 가짐이니 마음에 부대낌이 없기 때문이요,
조복된 계율을 가짐이니 괴롭히거나 해침이 없기 때문이요,
적멸(寂滅)한 계율을 가짐이니 마음에 번뇌[垢穢]가 없기 때문이요,
말을 따르는 계율을 가짐이니 말과 같이 행동에 옮기기 때문이요,
중생을 교화하는 계율을 가짐이니 거두어주는 법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요,
바른 법을 옹호하는 계율을 가짐이니 진실 됨을 어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대로 성취하는 계율을 가짐이니 모든 중생에게 마음이 평등하기 때문이요,
부처님을 친근히 하는 계율을 가짐이니 여래의 위없는 계율을 구하기 때문이요,
부처님의 삼매에 들어가는 계율을 가짐이니 모든 불법을 원만히 갖추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예순일곱 가지 청정하게 수지하는 계율의 다함없음’이라고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은 또 다함없이 청정한 계율 가운데 기대거나 집착함이 없으니, 이른바 나ㆍ너ㆍ중생ㆍ수명(壽命)ㆍ양육(養育)ㆍ장부[士夫]ㆍ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ㆍ땅ㆍ물ㆍ불ㆍ바람에 대해 그러합니다.
이 청정한 계율 속에는 눈에 대한 물질의 모양과 귀에 대한 소리와 코에 대한 냄새와 혀에 대한 맛과 몸에 대한 감촉과 뜻에 대한 법 등의 모양이 없고 또 몸과 마음도 없습니다.
이 계율은 정해진 모양이니 한결같이 공통되지 않기 때문이며,
또 이 계율은 나뉘어 다른 모양이니 방편으로 모든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이 계율은 공(空)한 모양이니 모양 없는 제(際)를 얻어 삼계(三界)를 여의지 않기 때문이며,
이 계율은 지음이 없으니 생사가 없다는 것을 아는 지혜[無生忍]이기 때문이며,
이 청정한 계율 속에는 이미 지은 것과 현재 짓는 것과 앞으로 지을 것이 없고 이 청정한 계율은 과거도 없어지지 않았으며 미래도 오지 않을 것이며 현재도 머물지 않습니다.
사리불이여, 이 청정한 계율 속에는 마음이 깨끗하여 더러운 것이 없고 알음알이가 머무르지 않고 생각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은 욕계(欲界)에 의지하지 않고 색계(色界)를 가까이 하지 않으며 무색계(無色界)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 청정한 계율은 욕심의 티끌을 내버리고 성냄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무명의 막힘을 없애며,
이 청정한 계율은 끊어지지도 않고 항상 하지도 않고 인연을 거스르지도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은 ‘나’라는 생각이 있지 않고 ‘내 것’이라는 생각도 버렸고 몸이라는 소견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은 붙여진 이름[假名]을 취하지 않고 물질의 모양에 머물지 않고 이름과 물질에 섞이지도 않습니다.
또 이 청정한 계율은 인(因)에 매이지 않고 모든 소견을 일으키지 않고 의심이나 후회에 머물지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은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머물지 않고 선근에 집착하지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은 불타는 번뇌가 없고 고요하여 모양을 여의며,
이 청정한 계율은 부처될 종자를 끊지 않으니 바른 법을 구하기 때문이며,
법 종자를 끊지 않음은 법의 성품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며,
스님의 종자를 끊지 않음은 함이 없음[無爲]을 닦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청정한 계율을 지닌 자는 계속 이어가서 끊이지 않기 때문에 다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범부의 계율은 생(生)을 받는 곳에 있기 때문에 다함이 있고,
사람 가운데서 10선(善)을 다하기 때문에 다함이 있으며,
욕계 모든 하늘의 복 갚음의 공덕이 다하기 때문에 다함이 있고,
색계 모든 하늘의 선정의 한량없는 마음이 다하기 때문에 다함이 있고,
무색계 하늘에서 들어가는 모든 선정이 다하기 때문에 다함이 있고,
외도와 선인(仙人)의 모든 계율이 신통을 잃어버려 다하기 때문에 다함이 있고,
모든 성문과 유학 무학의 계율은 열반에 들어가 다하기 때문에 다함이 있고,
벽지불의 계율은 대비심이 없어 다하기 때문에 다함이 있습니다.
사리불이여, 그러나 보살의 청정한 계율은 다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계율 속에서 모든 계율이 나오기 때문이니,
마치 종자가 다함이 없으면 열매도 다함이 없는 것처럼
이 보리의 종자가 다할 수 없는 까닭에 여래의 금계[戒禁]도 다함이 없는 것이며,
그래서 여러 보살들이 가진 모든 계율도 모두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그러므로 이것을 보살이 청정한 계율을 닦아 지녀서 다함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