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고경 상권
[중생은 누가 지었는가]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일체 중생은 누가 지었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중생이 스스로 지었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복을 짓는 이는 부처이고, 악을 짓는 이는 중생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최초의 중생은 누가 지었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상비비상 따위 무색계의 하늘은 누가 지었겠느냐?
어떻게 살며, 어떻게 머무르느냐?”
[업과 선]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들의 모든 업에 대하여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업을 지었습니다.
이와 같이 중생의 생사(生死)의 검은 것과 열반의 흰 것은 누가 지었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업이 지은 것이다.
업이 무량한 법을 일으키고 선(善)도 무량한 법을 일으킨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업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무엇이 선에서 일어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업에서 일어나는 것은 유이고, 선에서 일어나는 것은 해탈이다.”
[무생처과 선이 일어나는 것]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생명 없는 곳[無生處]에서는 어떻게 선에서 일어납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여여(如如)하여 다르지 않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선에서 일어난 경우 어떻게 생명 없는 곳에 이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업을 행해야 한다.”
[비롯함이 없는 부처님의 가르침]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누구의 가르침입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롯함이 없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일체의 ‘비롯함이 없는 부처님’은 누구를 교화하시고, 누구를 가르치십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비롯함이 없음’은 일체의 성문ㆍ연각이 생각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세간에 태어난 어떤 선비가 지혜롭고 견문이 많아 사리불(舍利弗)과 같다고 하자.
밤이 새도록 생각하여도 부처님의 비롯함이 없음을 알지 못하며, 누가 가장 먼저인지 열반에 들었는지 중간인지를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섭아, 대목건련 같은 이는 신통력으로 최초의 부처님 세계를 구하였으나 ‘비롯함이 없음’은 끝내 얻지 못했다.
이와 같이 일체의 성문ㆍ연각ㆍ10지 보살—미륵 등—이 모두 알 수가 없었다.
부처님이 본래 일어나신 것을 알기 어려운 것처럼 중생이 원래 일어난 것 또한 이와 같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지을 이[作者]도 없으며 받을 이[受者]도 없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인(因)이 짓는 자이며, 받는 자이다.”
[세간은 다함이 없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간은 다함이 있습니까, 다함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은 일찍이 다한 적이 없으며, 다할 것이 없으며, 다할 때가 없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만일 한 터럭으로 큰 바닷물을 찍어내면 능히 다하게 하겠는가?”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하옵니다. 능히 다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무량 아승지 대겁의 때에 계라바(鷄羅婆)라는 부처님이 있었는데, 세상에 나오시어 널리 법다운 가르침을 베푸셨다.
그때에 성 안에는 리차(離車)의 아들 일체세간락견(一切世間樂見)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가 전륜성왕이 되어 바른 법으로 백성을 교화하였다.
왕은 백천 권속과 함께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정례(頂禮)하고, 오른 편으로 3번 돌아 공양을 드린 뒤에 부처님께,
‘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보살도를 얻겠습니까?’라고 여쭈었다.
부처님은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전륜성왕이 곧 보살이니, 다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 중에 제석 범왕과 전륜성왕이 될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이란 곧 제석 범왕과 전륜성왕이니, 먼저 여러 번 제석 범왕이 되고 난 뒤에라야 비로소 전륜성왕이 되어 바른 법으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대는 이미 항하사 아승지 제석 범왕이 되었으므로 지금 전륜성왕이 되었습니다.’
때에 왕이,
‘제석 범왕은 어떠한 형상을 했습니까?’라고 여쭈었다.
부처님은 대왕에게 말씀하시기를,
‘제석 범왕도 지금의 그대처럼 머리에 하늘관을 썼으나, 그의 장엄이 그대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부처님의 색상(色像)이 장엄하고 뛰어나서 성문ㆍ연각ㆍ보살이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의 장엄하심처럼 그대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라고 하셨다.
가섭아, 그때에 전륜성왕이 다시 부처님께,
‘제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면 성불하겠습니까?’라고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깨달음을 얻는 데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는 법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령 대왕께서 그 복덕을 버리고 다시 범부가 되어, 한 터럭으로 큰 바닷물을 찍어내어 바닷물이 거의 말라서 남은 것이 소 발자취 같이 되면, 여래가 세상에 나오실 것이니 그 이름은 등광여래(燈光如來)ㆍ응공(應供)ㆍ등정각(等正覺)입니다.
그때에 지자재(地自在)라는 국왕이 있을 것입니다.
등광여래께서 왕에게 장차 부처를 이루리라고 수기(授記)하실 것입니다.
그대는 그때에 반드시 그 왕의 맏아들이 되어서 함께 수기를 받을 것입니다.
때에 그 여래께서,
’대왕이여, 그대의 이 맏아들은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큰 바닷물이 마르려 할 때까지 그대의 아들로 태어나, 그 중간에 작은 왕이 되지 않고 제석 범왕과 전륜성왕이 되어 바른 법으로 교화하였습니다.
지자재 대왕이여, 그대의 이 맏아들은 이와 같이 용맹정진했습니다.
지자재여, 보리는 얻기 어려우니, 이 인연 때문에 비유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자재여, 그대의 이 맏아들은 6만 명의 채녀(婇女)가 있었습니다. 단정하고 어여쁘며 영락(瓔珞)으로 장엄하여, 모양이 천녀와 같았으나 침 뱉듯이 그것을 버렸습니다.
애욕이란 무상하고 위태로워 항상 되지 못함을 알고,
‘나는 출가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집이 집 아님을 믿어 집을 버리고 도를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그 부처님께서 이 동자에게,
‘오는 세상에 부처님이 계시리니 명호는 석가모니이시고, 세계의 이름은 인(忍)이며, 너의 이름은 일체세간락견리차 동자(一切世間樂見離車童子)일 것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정법이 멸하려 할 때가 80년이 남으면, 비구가 되어 부처님의 명호를 지니고 이 경을 선양(宣揚)하되,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할 것이다.
백 년의 수명을 마치면 안락국에 태어나 큰 신력을 얻고, 제8지(地)에 머물러 한 몸은 도솔천(兜率天)에 있고, 한 몸은 안락국(安樂國)에 있으며, 다시 한 몸을 변화하여 아일다(阿逸多) 부처님께 이 수다라(修多羅)를 물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에 지자재왕이 아들에게 수기하심을 듣고 기뻐하며 춤추면서,
‘오늘 여래께서 내 아들이 제8지를 얻을 것이라고 수기하셨다’고 할 것이다.
때에 그 동자가 수기하신 말씀을 듣고 더욱 부지런히 정진할 것이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터럭으로 큰 바다를 찍어내어도 오히려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 뜻이 무엇인가?”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비유하자면 장사꾼이 돈을 세어 그릇 속에 두고 그의 아들이 울 때마다 한 푼씩 주어 그 그릇 안의 돈이 날마다 줄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도 큰 바닷물에서 한 방울 한 방울 줄어드는 것을 다 알며, 또한 다른 곳에 있는 것도 아십니다.
하물며 세존께서 중생의 큰 모임[大聚]이 다하는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다만 모든 중생은 줄어들지 않음을 일체의 성문ㆍ연각은 알지 못하고, 오직 부처님만 아십니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네가 말한 것과 같다. 중생의 큰 모임은 다할 때가 없느니라.”
[중생은 다함이 없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중생이 열반에 드는 것은 다함이 있습니까, 다함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은 다함이 없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중생은 다함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중생이 다함이 있다면 당연히 줄어듦[損減]이 있을 것이고, 이 수트라는 보람[義]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섭아,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은 모두가 항상 머무르시는 것[常住]이다. 이러한 까닭에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은 곧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가섭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 세존은 열반에 드셔도 끝내 사라지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집이 무너지면 허공이 되니, 참으로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의 열반은 곧 해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