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나찰집 하권
[무명]
보살이 말하였다.
“그 무명은 어디에 있는가?”
행이 말하였다.
“이 무명은 큰 비사사(毘舍闍) 번뇌 나찰에게 둘러싸여 항복받기 어렵습니다.
지금 어리석음[愚癡]과 맺힘[結]과 부림[使]의 무덤 사이에 있습니다.”
그때 보살이 행에게 무명의 처소를 알고, 용맹한 마음을 내어 그곳에 가서 우렁차게 말하였다.
“저 맺힘과 부림의 나찰과 번뇌의 귀신들이 설사 나를 이길지라도 죄의 형벌을 나누어 받을 것이다.
내가 만일 그를 이기면 반드시 그들을 무찌르되 번뇌인 맺힘과 부림과 악한 나찰들을 전멸시켜 자취도 없게 하리라.”
행이 말하였다.
“그대는 용맹하고 굳은 정진이 있어, 크고 두려움이 없는 금강삼매[大無畏金剛三昧]에 들어가면 해탈의 문이 스스로 그대를 위해 열릴 것입니다.
무명을 섬멸하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그때 보살이 사방을 둘러보다가 무명을 붙잡고 힐난하였다.
“너는 지금 번뇌인 맺힘의 습기[結習]와 모든 악의 무덤 사이에 살고 있지 않는가,
살고 있는가?
이 무덤 사이는 생사를 두려워하는 이는 싫어하고 천하게 여기는 곳이다.
전도된 티끌과 맺힘[結]과 부림[使]의 맹렬한 바람이 지혜의 눈을 가려서 보이지 않게 하고, 갖가지 아첨과 왜곡과 의심과 뉘우침의 더러운 잡초가 모여 있는 곳이다.
파계(破戒)한 시체와 5욕(欲)에 죽은 사람은 마디마디가 썩고 문드러져서 어지러이 이들 무덤 사이를 뒤덮었고, 각(覺)과 관(觀)의 큰 바람이 3독(毒)의 불길에 부니, 맹렬한 불꽃은 더욱 성하여지고, 악한 욕심과 아만은 날뛰어 멈추지 않는다.
뼈다귀의 무더기 속에서는 소리 내어 크게 웃고, 방일(放逸)한 시체들은 여러 가지 악한 율의를 쫓으니, 부정한 고름과 피가 흘러 그 땅을 더럽히는구나.
3유(有)의 기왓장과 독[㼜]과 고름집[坊膩嘶]이 깨어지고, 모든 선근을 끊어서 갖가지의 깨진 그릇이 되는 대로 땅 위에 흩어져 있다.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의 터럭은 바람에 날려 어지럽고 스스로의 부끄러움도 없고[無慚] 남부끄러움도 없으며[無愧], 찢어진 옷가지는 온 무덤 사이에 두루하였다. 번뇌인 맺힘과 부림의 추하고 껄끄러운 모래가 날고, 아흔여섯 가지의 사견(邪見)의 날짐승과 모든 악한 새매ㆍ독수리 따위가 무덤 사이에 깃들어 자고 있다.
혹은 다시 탐내는 중생이 있으니, 여우ㆍ이리ㆍ야간(野干)ㆍ삵ㆍ박쥐ㆍ쥐 따위가 무덤 사이에 구멍을 뚫고 있다.
또 계취(戒取)가 있으니, 몽둥이를 맞은 나무가 가지와 잎이 모두 떨어져서 무덤 사이에서 썩고 있으며,
혹은 법답지 않게 사건을 판결한 일이 있으니, 부서진 상(床)이 무덤 사이에 던져져 있다.
또는 못에 뛰어들거나 불에 들거나 가시 위에 눕거나 갖가지 고행을 하되 치성한 불꽃과 같이 무덤 사이에서 타고 있다.
혹은 자기의 몸과 힘과 그리고 목숨과 재물을 믿고 교만을 부리는 더러움이 무덤 사이에 가득하고,
혹은 혐의하고 한탄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가시덤불이 무덤 사이에 얽혔으며,
혹은 악한 깨달음의 파리가 선근을 무너뜨리고 부정한 구더기가 냄새를 피우고 더럽히며 시체에 모여 있고,
또는 5개(蓋)의 번뇌와 원적(怨賊)이 무덤 사이에 오락가락하고,
혹은 나와 내 것을 계교하는 주술사(呪術師)들이 무덤 사이에 모여 있다.
다시 차별된 견해와 갖가지 삿된 의논이 여우와 올빼미와 독수리와 같이 큰 소리로 절규하면서 무덤 사이에서 울부짖고,
혹은 나찰이 사랑의 올무를 조르고 있으며,
혹 어떤 나찰은 수면의 망치를 들고 5욕을 즐기고 있으며,
다시 한 손에는 세 갈래진 날카로운 창을 들었는데, 갖가지 선하지 못하고 잡되고 악한 빛이었다.
미친 듯이 크게 소리치고 부르짖고 외치고 억지로 웃어대니 두려움이란 모르는 듯하였다.
다시 어떤 나찰은 머리를 흔들고 몸을 뒤틀며,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며, 몸을 날려 뛰기도 하고 성내며, 손뼉을 치기도 하였다.
혹은 휘파람을 불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유희와 춤을 추기도 하였으니,
성내는 나찰이며, 원한을 맺는[俠怨] 나찰이며, 적은 악행(惡行)에 무거운 과보를 주는 나찰이며, 졸폭(卒暴)한 나찰이며, 탐질(貪嫉) 나찰이며, 만(慢)ㆍ만만(慢慢)ㆍ아만(我慢)ㆍ불여만(不如慢)ㆍ사만(邪慢)ㆍ대만(大慢)과 욕(欲)ㆍ비법(非法)ㆍ욕탐(欲貪)ㆍ악탐(惡貪)이니,
이렇듯 흉하고 험한 맺힘과 부림과 번뇌의 나찰들이 가히 헤아릴 수 없다.”
보살은 여러 맺힘[結]의 무덤 사이에 이르러서 이 무명의 갖가지 허물이 지혜의 눈을 덮고 몸을 가려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4제(諦)를 보지 못하고, 악한 갈래에 떨어지게 하는 것을 보고 다시 말하였다.
“이 무명은 생사의 넓은 들에서 앞잡이가 되고, 능히 생로병사의 불을 켜서 크게 모으니, 이는 모든 번뇌와 맺힘과 업의 모체이다.
열반의 문을 닫고 여러 가지의 나쁜 갈래를 열어서 능히 큰 모양을 이루어 삼계에 가득하고 일체의 처소에 두루하다.
방일의 큰 머리와 의심의 넓은 이마와 환혹(幻惑)의 추한 얼굴과 삿된 생각과 전염병[疱]의 코와 사견(邪見)의 눈과 막(膜)이 덮인 눈동자로 사방에 이르면서 번개를 일으키고 원한을 엿보다가 악으로 갚는구나.
털이 많고 탐내는 귀는 속이고 거짓되며,
간사하고 거짓됨은 깊고 넓은 눈썹이 되고,
성내고 어긋나서 날카로운 어금니가 되고,
탐욕과 추악한 짓은 최상으로 거친 입술이 되고,
질투하는 얼굴은 일그러지며,
뒤집힌 입술은 아래로 처지고,
삿된 생활과 아첨과 왜곡과 빈 마음으로 거짓되게 칭찬하며,
이양(利養)을 탐내어 날카로운 이빨이 되고,
예순두 가지의 소견으로 머리터럭을 삼고,
세 가지 사랑을 탐내어 긴 목구멍을 이루고,
여덟 가지의 해로운 사마귀[疣㾽]로 어깨와 팔을 삼고,
모든 악한 율의로 긴 손톱을 삼고,
결업(結業)을 참고 받아들임으로써 두 개의 젖을 삼는다.
족한 줄 모르고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는 것으로 배를 삼고,
졸음과 후회의 깊은 어둠으로 배꼽을 삼는다.
많은 욕탐(欲貪)과 애(愛)로써 음고(陰尻)를 삼고,
열여덟 가지의 여러 계(界)로써 두 넓적다리를 삼고,
법답지 않은 욕심과 악한 욕심으로 두 무릎을 삼고,
아견(我見)과 인견(人見)으로 다리와 발을 삼고,
부끄러움이 없는 큰 코끼리의 젖은 가죽으로 의복을 삼고,
창피한 줄을 모르는 푸르고 나쁘며 더럽고 기름때 묻은 거친 베옷[褐]으로써 이불을 삼아,
맺힘과 부림의 평상에 앉았으며,
모든 맺힘의 나찰이 시위해 있으니, 저 번뇌와 모든 악한 나찰에 처해 있다.
대중에게 비록 천 개의 입이 있더라도, 그 허물을 말하려면 다함이 없으리라.
또 어떤 나찰은 인륜(印輪)에다 시체를 봉함하고 곁에서 굴리게 하니, 세간의 지혜로운 이가 보기만 하여도 놀란다.”
그때 보살은 곱이나 정진을 더하여 가장 높은 일심(一心)의 선정을 얻고 큰 기쁨과 용기를 내니, 이내 차례차례 청정한 마음이 생겨서 움직이지 않는 지위를 얻었다.
굳게 선 다리로 곧 무명 나찰의 처소에 나갈 적에 번뇌가 없고 평정한 곳에 이르러 모든 진에와 혐의와 한탄과 독한 마음의 가시와 모래와 돌을 제거하고, 여덟 가지의 진토(塵土) 위에 자비의 비를 뿌렸다.
땅 위에 뿌리니 모든 선근이 돋아나서 맑게 무성하고, 부드러운 풀의 선근이 안정하게 머물러서 두 발과 네 가지의 포섭하는 법이 되었다.
발을 굳게 지켜 대중과 더불어 초월하였고, 선정의 왼손으로는 62견(見)의 어지러운 머리털을 움켜쥐었으며, 지혜의 오른손으로는 날카로운 칼을 뽑아 들고 모든 중생에 청하지 않는 마음으로 큰 사자후로 소리 높여 외쳤다.
“나는 무량한 부처님께 착한 법을 쌓고 모아 대승의 수레로써 일체를 건지고자 맹세하였다가, 무량겁 동안에 정진한 결과를 지금에야 성취하였다.
일체 중생이 나고 죽는 큰 불길에 태워지고 있으니, 내가 이제 그들을 위하여 맺힘의 도적을 소멸하고 항복시키며, 모든 행(行)의 혈맥을 끊어서 출세간의 도를 위하여 험난함을 뽑아 버리리라.”
무명 나찰이 이 소리를 듣고 목청을 돋워 팔을 흔들고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대범천왕과 마혜수라(摩醯首羅)와 비뉴(毘紐)와 제석과 사천왕과 해ㆍ달ㆍ별 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내 앞에서 제재를 받고, 바수선(婆藪仙)과 바수우류(婆藪優留)와 굴바리(掘婆梨)와 이렇듯 무량한 선인들도 모두 지혜와 덕으로 나의 세계를 벗어나려 했으나, 모두 나에게 미혹되어 나아가는 길을 알지 못하였다.
일체의 중생도 내가 모두 생사의 바퀴 위에 달아매어 존재[有] 안에 윤회하여 자재하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일을 모두 내가 하는데, 이 어떤 어리석은 어린애가 스스로 요량하지 못하고 나의 머리털을 잡는가?
그러나 모든 인간과 하늘과 아수라와 일체 중생들을 나의 용맹으로 없애고 흔들기를 멈추지 않는데, 너는 누구이기에 가볍게 뛰어서 나에게 이르러 내 앞에서 큰소리를 치는가?
선근이 일어남이 해가 처음 돋는 듯하니, 내가 예로부터 듣고 보지 못하였다. 일체 중생이 어리석음에게 눈이 멀었는데, 너의 혜안은 열려서 보는 것이 분명하고 살피는 것이 미묘함이 이와 같구나.
나고 죽는 괴로움의 바다에 물결이 드높은데, 뉘라서 빨리 구제하여 저 언덕에 이르게 하겠는가?
일체의 범부가 삿된 길에 빠졌는데, 뉘라서 인도하여 바른 길을 보이겠는가?
무명의 큰 어둠 속에 뉘라서 지혜의 횃불을 태워 깊고 어두운 곳을 훤히 밝히겠는가?
나의 명령은 삼계에서 모두 복종하여 능히 어기는 이가 없으니,
모든 선인과 외도와 일체의 무리가 모두 나의 세계를 달게 여겨 즐기고, 마혜수라와 대범천들도 나의 힘으로 항상하다는 생각을 내는데,
어떤 수승한 사람이기에 두려움이 없고 큰 담력과 용기가 있어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나의 머리털을 잡는가?
기특하고 기특하구나.
지금의 너는 반드시 부처의 종자에서 났을 것이다.
바른 관찰의 힘이 견줄 이가 없고 공덕과 큰 자비로 자체를 삼으니, 반드시 이는 보살이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하려는 것이리라.
그의 덕이 높고 장엄함이 수미산과 같을 것이니, 이 수승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체 세간에 능히 나의 머리털을 잡을 이가 없으리라.”
보살이 말하였다.
“너의 말이 과연 참되고 바르다.
나는 옛적부터 모든 선행을 닦았으니, 모두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너의 말과 같이 보살이라 함은 곧 나이다.”
무명이 말하였다.
“큰 마음의 중생이여, 그대의 지혜는 움직이지 않고 결정되어 원수와 친한 이를 구제하여 평등하고 모두 한맛이 되게 합니다.
마치 성한 불길이 마른 잎을 태우는 것처럼, 그대가 지금 지혜의 불로 나를 태우는 것이 그러합니다.
그대가 굳고 바르기에 나도 그대의 가르침을 따라서 감히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내가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로 인(印)을 친 곳에 너를 귀양 보내니, 머뭇거리거나 의심하지 말고 속히 떠나라.”
보살께서 이 인(印)을 말하자, 무명 나찰은 모든 번뇌의 악한 군사들을 거느리고 96종의 삿된 논리 가운데로 도망하여 숨어 들어가니, 그의 거처는 어리석은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