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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2권
1.2.4. 점돈연(漸頓緣)
『백유경(百喩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에 한 마을이 있었는데 왕성(王城)에서 오 유순이나 떨어진 거리에 있있다.
그 마을에는 맛이 좋은 샘물이 있었는데, 왕은 마을 사람에게 칙명하여 늘 사람을 시켜 날마다 그 맛좋은 물을 길어 보내게 하였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피곤하고 괴로워서 모두들 그 마을을 버리고 멀리 떠나 가려고 하였다.
그 때 그 마을 촌주(村主)가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떠나지 말라. 내가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왕에게 아뢰어 오 유순이나 되는 길을 삼 유순으로 고쳐서 너희들이 오고 가는 거리를 가깝게 하여 피곤하지 않게 해 주겠노라.’
그리고는 곧 왕에게 가서 아뢰였다.
왕은 그들을 위해 삼 유순으로 고쳐 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곧 크게 기뻐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것이 기뻐할 만한 일이 아닌 연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오 유순에서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비록 이 말을 들었지만 왕의 말을 믿었기 때문에 끝내 그 마을을 버리는 일에 수긍하지 않았다.
세간 사람들도 또한 그와 같아서 바른 법을 닦아 행하고 다섯 갈래의 나쁜 세계를 벗어나 열반성(涅槃城)을 향하다가도 곧 마음으로 염증을 내어 그것을 버리고 이내 나고 죽음의 멍에를 메고 다시는 더 나아가지 못한다.
법왕(法王)이신 여래에게는 큰 방편이 있으시어 일승(一乘)의 법을 셋으로 분별하여 말씀하선다. 소승(小乘)의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행하기 쉽다고 생각하여 선을 닦고 덕을 키워 나고 죽음의 바다를 건너려고 한다.
그런 뒤에 어떤 사람이
‘삼승이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곧 일승만 있다’고 하는 말을 들어도,
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믿기 때운에 끝끝내 버리는 것에 수긍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저 마을 사람들과 같아서 이것 역시 마찬가지이니라.”
또 『화엄경(華嚴經)』에서 말하였다.
“불자들아, 버유하면 마치 해가 뜰 때 먼저 일체의 큰 산왕(山王)부터 비추고 다음에 여러 큰 산들을 비추는 것처럼 금강보산(金剛寶山)을 비춘 연후에 일제 대지를 널리 비춘다.
그렇지만 햇빚은
‘내가 마땅히 먼저 여러 큰 산왕부터 비추고 나서 차례대로 하여 마침내는 대지까지 널리 비추리라’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저 산과 땅이 높고 낮은 데가 있기 때문에 먼저 비추고 나중 비추는 것이 있을 뿐이다.
여래ㆍ응공(應供)ㆍ등정각(等正覺)도 또한 이와 같아서 한량없고 끝없는 법계의 지혜 일륜(日輪)을 성취하고는 항상 한량없고 걸림이 없는 지혜의 광명을 놓아
먼저 보살 등 여러 큰 산왕을 비추고 다음에 연각(緣覺)을 비추며,
그 다음엔 성문(聲聞)을 비추고 차례대로 결정된 선근 중생들을 비추어서 호응해 오는 것에 따라 교화를 한다.
그런 연후에 일체 중생들과 나아가 사정(邪定)에 이르기까지 다 비추어서 미래 세계를 요익(饒益)하게 하는 인연이 되지만,
여래의 지혜일광(智慧日光)은
‘내가 마땅히 먼저 보살부터 비추고 나아가 사정에 이르기까지 다 비추리라’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큰 지혜의 일광을 방출하여 일체를 널리 비출 뿐이다.
불자들아, 비유하면 해와 달이 세간에 출현하여 마침내 깊은 산과 깊숙한 골짜기까지 널리 비추지 않음이 없는 것처럼,
여래 지혜의 일월(日月)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일체를 널리 비추어 밝고 분명하지 않음이 없다.
다만 중생들이 희망하고 있는 선근(善根)이 같지 않기 때문에 여래 지혜의 굉명이 갖가지로 차별이 었는 젓이다.”
또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만약 네 가지 법을 여의고 열반을 증득한 사람이 었다면 이런 이치는 없느니라.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착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이요,
둘째는 온전한 마음으로 법을 듣는 것이며,
셋째는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을 붙들어 매는 것이요,
넷째는 법대로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 때문에 법을 들은 인연은 대반열반(大般涅槃)에 가까워질 수 있느니라. 왜냐 하면 법안(法眼)이 열리기 때문이다.
세간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눈이 없는 사람이요[범부 사람에게 비유한 것임],
들째는 눈이 하나만 있는 사람이며[성문인(聲聞人)에게 비유한 것임],
셋째는 눈이 둘 다 있는 사람이다.[여러 보살에게 비유한 것임.]
말하자면 눈이 없는 사람은 항상 법을 듣지 못하고,
눈이 하나뿐인 사람은 비록 잠시 법을 듣기는 하나 그 마음이 머물지 않으며,
눈이 둘 다 있는 사람은 온전한 마음으로 법을 듣고 받아서 들은 대로 수행한다.
법을 들였기 때문에 세간에 이와 같은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5. 구법연(求法緣)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의 법은 관대하고 넓어서 그 제도(濟度)하심이 그지없다. 그러나 지극한 마음으로 도를 구하면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마침내 장난삼아 한 것까지도 복은 황당하게 버려짐이 없다.
옛날 어느 때에 어떤 늙은 비구가 이미 나이가 너무 많아 정신이 혼미하고 막혔으므로 여러 젊은 비구들이 갖가지로 설법하는 것을 보고 또 네 가지 과위[四果]에 대한 말을 듣고는 마음으로 부러워하고 숭상하여 젊은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총명하고 지혜롭구나. 부디 네 가지 과위를 나에게도 주기 바란다.’
여러 젊은 비구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 말하였다.
‘저희들에겐 네 가지 과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음식이 필요하니, 좋은 음식을 얻은 뒤에야 그것을 드리겠습니다.’
그 때 늙은 비구가 이 말을 듣고 환희하며 곧바로 갖가지 맛있는 음식들을 차려 놓고 젊은 비구들을 초청하여 네 가지 과위를 구걸하였다.
여러 젊은 비구들은 그 음식을 먹고 나서 다시 서로 짜고 늙은 비구를 희롱하여 말하였다.
‘대덕(大德)이시여, 당신은 이 집의 한쪽 모퉁이에 앉으십시오.
마땅히 당신에게 과위를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늙은 비구는 이 말을 듣고 나서 기뻐하면서 그들의 말대로 한쪽 구석에 앉았다.
여러 젊은 비구들은 곧 가죽 공으로 그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면서 말하였다.
‘이것이 곧 수다원과(須陀洹果)입니다.’
늙은 비구는 그 말을 듣고 나서 생각을 잡아 매어 흩어지지 않게 하여 곧바로 초과(初果)를 얻었다.
여러 젊은 비구들은 다시 희롱하며 말하였다.
‘비록 그대에게 수다원과를 주었지만 그러나 그것 때문에 일곱 번 나고 일곱 번 죽어야만[七生七死]합니다. 다시 다른 모퉁이로 옮겨 앉으십시오.
다음에는 마땅히 당신에게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주겠습니다.’
그 때 늙은 비구는 초과를 얻었기 때문에 마음이 더욱더 증진(增進)하여 곧 다른 자리로 옮겨 앉았다.
여러 젊은 비구들은 다시 가죽 공으로 머리를 툭툭 치면서 말하였다.
‘당신에게 두 번째 과(果)를 드립니다.‘
그러자 늙은 비구는 더욱더 생각을 오로지하여 곧바로 두 번째 과를 증득하였다.
여러 젊은 비구들은 또 희롱하며 말하였다.
‘당선은 지금 이미 사다함과를 얻었으나 아직도 나고 죽음에 오가는 어려움이 남있습니다. 그대는 다시 다른 자리로 옮겨 앉으십시오.
우리가 마땅히 당신에게 아나함과(阿那含果)를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늙은 비구는 그들의 말대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여러 젊은 비구들은 다시 공으로 머리를 툭툭 치면서 말하였다.
‘저희들이 지금 당신에게 세 번째 과를 드립니다.’
그러자 늙은 비구는 이 말을 듣고 나서 기뻐하면서 배나 더 지극한 마음이 생겨 즉시 아나함과를 증득하였다.
여러 젊은 비구들은 다시 희롱하며 말하였다.
‘당선은 지금 이미 돌아오지 않는 과를 증득하였지만 그러나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에서는 번뇌가 있는 몸[有漏身]을 받아 덧없이 변화하여 무너질 것입니다.
생각마다 곧 괴로움뿐이니, 당신은 다시 자리를 옮겨 앉으십시오.
다음에는 마땅히 당신에게 아라한과(阿羅漢果)를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늙은 비구는 그들의 말대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젊은 비구들은 다시 가죽 공을 가지고 그의 머리를 툭툭치면서 그에게 말하였다.
‘저희들이 지금 당신에게 네 번째 과를 드립니다.’
그 때 늙은 비구는 일심으로 생각하여 곧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그는 이렇게 네 가지 과를 얻고는 매우 크게 기뻐하면서 여러 가지 맛좋은 음식과 갖가지 향과 꽃을 차려 놓고 젊은 비구들을 초청하여 그 은덕(恩德)을 갚았다.
그리고는 젊은 비구들과 함께 도품(道品)의 번뇌 없는 공덕[無漏功德]을 논하였는데, 여러 젊은 비구들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 때 늙은 비구가 비로소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미 아라한과까지 증득하여 마쳤다.’
그러자 여러 젊은 비구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들 이에 앞서 희롱했던 죄를 사과하고 뉘우쳤다.
그런 까닭에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선을 생각해야 하느니라. 나아가 희롱하는 것까지도 오히려 실제의 과보를 받거늘 더구나 지극한 마음이겠는가?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어떤 여인이 있었는데 총명하고 지혜로워서 삼보(三寶)를 돈독하게 믿었다. 항상 승가의 차례대로 한 비구씩 청해 집으로 오게 하여 음식을 공양하였다.
훗날 어느 때에 문득 한 늙은 비구가 자기 차례가 되어 그의 집에 이르렀는데, 연로(年老)하여 근기가 둔할 뿐만 아니라 본디 밝은 지식도 없었다.
재식(齋食)을 마치고 나서 여인은 지극한 마음으로 설법해 주기를 청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앞에 앉아 눈을 감고 조용히 있었다.
그러자 비구는 자신이 설법할 수 없음을 알고 그가 눈을 감고 있는 틈을 타서 달아나 절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여인은 지극한 마음으로 유위법(有爲法)은 무상(無常)하고 괴롭고[苦]공(空)한 것이어서 자재(自在)롭지 못한 것이라고 사유(思惟)하고는 다시 깊은 마음으로 관찰하여 즉시 수다원과를 증득하였다.
이미 과를 증득하고 난 뒤에는 절에 가서 그 비구들 찾아 은혜를 갚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비구는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고 그녀들 저버리고 도망쳤었기 때문에 배나 더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 더욱더 깊이 몸을 숨겨 피하였다.
그러나 이 여인이 간절히 찾아 마지않았으므로 그제야 비로소 스스로 나타났다.
여인은 그들 보고 나서 도과(道果)를 얻게 된 인연을 갖추어 이야기하고 재(齋)를 열어 공양을 올려 은혜를 갚으려고 했다.
늙은 비구는 그 말을 듣고 매우 부끄러워하여 깊이 스스로를 가혹하게 절책한 끝에 그도 또한 수다원과를 획득하였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법을 구해야 한다.
만약 지극한 마음을 가지고 구하면 틀림없이 얻을 것이니라.”
또 『집일체복덕삼매경(集一切福德三昧經)』에서 말하였다.
“오랜 옛날 과거 구원(久遠) 아승기겁 이전에 어떤 선인(仙人)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최승(最勝)이었다. 그는 산림(山林) 속에 살고 있으면서 다섯 가지 신통을 갖추고 항상 자비한 마음을 행하였다.
훗날 어느 때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다만 자비한 마음만 가지고 중생들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많이 들음 [多聞]을 쌓아야 중생들의 번뇌와 삿된 견해를 멸하고 바른 견해가 생겨나게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곧 그는 성읍의 마을을 다니면서 곳곳에서 설법하는 스승을 찾았다.
그 때 천마(天魔)가 와서 이 선인에게 말하였다.
‘지금 나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한 게송이 있다.
그대가 지금 만약 가죽을 벗겨 종이를 만들고 피를 내어 먹을 만들며, 뼈를 잘라 붓을 만들어 이 게송을 베껴 쓸 수만 있다면 마땅히 그대를 위해 말해주리라.’
최승 선인의 그 말을 듣고 나서 생각하다가 말하였다.
‘내가 한량없이 많은 백천 겁 동안 언제나 일 없이 남을 위해 내 몸을 잘라서 한량없이 많은 고통을 받았으나 전혀 아무런 이익이 없었다.
내가 지금 마땅히 견고하지 못한 이 몸만 버린다면 묘한 법을 쉽게 얻을 것이다.’
그리고는 기뻐 뛰면서 곧 예리한 칼로 가죽을 벗겨 종이를 만들고 피를 내어 먹을 만들고 뼈를 꺾어 붓을 만든 뒤에 합장하고 천마를 향하여 부처님의 게송을 말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천마는 이를 보고 나서 근심스럽고 마음이 초췌(燋悴)해져서 곧 숨어 버렸다. 선인이 이것을 보고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나는 지금 법을 위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가죽을 벗겨 종이를 만들고 피를 내어 먹을 만들었으며, 뼈를 잘라 붓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니 나의 이 지극한 정성이 헛되지 않은 것이라면 다른 세계에서 큰 자비를 가진 사람으로서 능히 법을 설할 수 있는 사람이 마땅히 제 앞에 나타나 주십시오.’
이렇게 말했을 때 여기에서 동쪽으로 서른두 개의 국토를 지나 다른 부처님의 국토가 있었는데, 그 국토의 이름은 보무구(普無垢)였다. 그 나라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 부처님의 명호는 정명왕(淨名王)이었다.
그 부처님께서 갑자기 그의 앞에 머물러 계시면서 큰 광명을 놓아 최승의 몸을 비추니, 고통이 즉시 없어지고 그 몸도 전과 같이 회복되었다.
그 부처님께서는 곧 그를 위하여 일체의 복덕을 모으는 삼매[集一切福德三昧經]를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최승은 그 법을 듣고 막힘없는 말재주를 얻었다.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여 마치시고는 되돌아가시더니 다시는 나타나지 않으셨다.
최승 선인은 이런 말재주를 얻고 나서 여러 중생들을 위하여 묘한 법문을 널리 설하여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로 하여금 삼승(三乘)의 도에 머물게 하였고 천 년을 지낸 뒤에는 목숨을 마치고 정명왕(淨名)부처님의 보무구(普無垢) 국토에 태어났다.
그는 법을 공경했기 때문에 지금 부처가 된 것이다.
부처님께서 정위(淨威)에게 말씀하셨다.
‘옛날에 최승이란 사람은 바로 지금의 내 몸이다. 그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든 능히 공경하여 법을 구하면 부처님께서는 그 사람을 위해서 열반(涅槃)에 드시지 않을 뿐더러 법도 또한 멸하여 없어지지 않게 하신다.
아무리 다른 국토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언제나 부처님을 직접 뵈올 수 있고 바른 법도 들을 수 있느니라.’”
[『열반경』에서 설산(雪山)동자가 반 구절의 게송을 위해 몸을 버린 것과 같은 것이나, 『대품경(大品經)』에서 살타(薩陀)보살이 법을 구하기 위해 뼈를 잘라 골수들 뽑아낸 것 등의 이와 같은 인연들이 한량없이 많아 이루 다 갖추어 설할 수가 없다.]
[自述] 때로는 도속(道俗)들 간에 학문도 보살것없고 지식도 적으면서도 지혜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설령 닦고 배우고 싶어하더라도 내전(內典)에 온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직 속서(俗書)와 외도들의 전적(典籍)만을 흠모할 뿐이다.
그런 까닭에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내가 멸도(滅度)한 뒤에 어떤 성문(聲聞) 제자가 있으리니, 어리석어 계율을 깨뜨리고 투쟁하기만을 즐거워하면서 십이부(十二部) 경전을 버리고 갖가지 외도들의 전적(典籍)만을 읽고 외우며 글과 게송이나 짓고 일체의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받아 비축하면서 이것이 부처님께 들은 법이라고 말한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좋은 전단향 나무를 가지고 평범한 나무와 바꾸는 것과 같고
금을 가져다가 유석(鍮石)과 바꾸는 것과 같으며,
은을 가지고 백랍(白鑞:납)과 바꾸는 것과 같고,
비단을 가져다가 누갈(氀褐))과 바꾸는 것과 같으며,
감로(甘露)를 가지고 매우 독한 즙액과 바꾸는 것과 같느니라.”
또 『바사론(婆沙論)』에서 말하였다.
“가령 어떤 사람이 해를 불 때에 눈이 부셔 분명하게 보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외도들의 논서를 생각하고 구할 때엔 혜안(慧眼)을 깨끗하지 못하게 할 것이요,
어떤 사람이 달을 보면 눈이 맑아져서 깨끗하게 볼 수 있는 것과 같아서 부처님의 법이 담긴 경론(經論)을 생각하고 구할 때엔 혜안이 더욱 맑고 깨끗하게 된다.
만약 외도와 속서를 생각하거나 구하면 마치 미후(獮猴:원숭이의 일종)를 때리는 것과 같아서 오직 깨끗하지 못한 것만 나을 것이요,
만약 부처님의 법을 생각하고 구하면 순금을 제련하는 것과 같아서 오래 제련할수록 더욱더 깨끗해 지느니라.”
또 『보살선계경(菩薩善戒經)』에서 말하였다.
“보살이 여래의 올바른 경전을 읽거나 외우지 않고 세속의 전적이나 문(文)ㆍ송(頌뀔)ㆍ서(書)ㆍ소(疏) 따위를 독송하는 사람은 죄를 얻는다.
범하는 것이 아닌 것은 만약 논의(論議)하기 위해서거나 삿된 견해를 깨뜨리기 위한 경우와 또는 이분(二分)은 불경을 읽고 일분(一分)만 외서(外書)를 읽는 경우이다.
왜냐 하면 외전(外典)은 곧 허망한 법이고 불법은 진실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요,
세간의 일을 알아서 세상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기 위한 까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글로써 증명해 보면 부처님 법을 배우는 사람 이 만약 한결같이 내전(內典)은 폐지하고 외전만 찾으면 곧 죄를 얻는다.
비록 이치를 알고 행하는 것이어서 다만 잠깐 익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외도를 항복시켜 반드시 그들로 하여금 다시 염증을 느껴 떠나게 하리니, 내업(內業)을 정진하고 닦아서 힘써 더더욱 증장시켜야 한다.
만약 치우치게 탐착(耽著)한다면 바른 법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지론(地持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보살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산 것에 대하여 버려두고 배우지 않으며 도리어 외도의 사론(邪論)과 세속의 경전만을 익히면 이것을 범했다고 말한다. 많이 범하게 되면 이렇게 범함으로 해서 염오(染汚)가 일어난다.
만약 가장 총명한 사람이 속히 받아 배워서 부동지(不動智)를 증득하여 날마다 항상 이분은 부처님 법을 수학(受學)하고 일분은 외전(外典)을 수학하면, 이것은 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세속의 경전이나 외도의 사교(邪敎)에 대하여 사랑하고 좋아하여 버리지 못하거나 버릴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이것은 범했다고 말한다. 숱하게 많이 범하면 이렇게 범함으로써 염오가 일어난다.”
1.2.6. 감복연(感福緣)
『보요경(普曜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어떤 현인(賢人)이 이 경전을 듣고는 합장[叉手]하고 스스로 귀의하면 그는 곧 게으름의 근본이 되는 여덟 가지 일을 버리고 여덟 가지 공훈(功勳)을 성취할 것이다.
무엇이 그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몸이 단정하고 색상이 좋음을 얻는 것이요,
둘째는 힘이 강성(强盛)함을 얻는 것이며,
셋째는 권속이 번성함을 얻는 것이요,
넷째는 한량없는 말솜씨를 체득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학문을 빨리 성취하여 출가함을 얻는 것이요,
여섯째는 소행(所行)이 청정한 것이며,
일곱째는 삼매 선정을 얻는 것이요,
여덟 째는 지혜의 밝음을 얻어 비추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다.
또 어떤 법사가 자리를 펴고 이 경을 외우면 여덟 가지 자리[八座]의 복을 얻을 것이다.
무엇을 그 여덟 가지라고 말하는가?
첫째는 장자(長者)의 자리를 얻는 것이요,
둘째는 전륜왕(轉輪王)의 자리를 얻는 것이며,
셋째는 천제(天帝)의 자리를 얻는 것이요,
넷째는 자재천(自在天)의 자리를 얻는 것이며,
다섯째는 나한(羅漢)의 자리를 얻는 것이요,
여섯째는 보살(菩薩)의 자리를 얻는 것이며,
일곱째는 여래의 자리를 얻는 것이요,
여덟째는 법륜을 굴려 일체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는 자리들 얻는 것이다.
또 어떤 법사가 이 법을 선포할 때 그를 잘한다고 찬탄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여덟 가지 깨끗한 행(行)을 얻는다.
어떤 것을 여덟 가지라고 말하는가?
첫째는 말과 행동이 서로 호응하여 어긋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그 말이 지성(至誠)스러워서 거짓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대중들이 모인 곳에 있으면서 진설하여 속임이 없는 것이요,
넷째는 말을 하면 사람들이 그 말을 믿고 영원히 버리지 않는 것이며,
다섯째는 말하는 것이 유연(柔軟)하여 조금도 거칠지 않은 것이요,
여섯째는 그 말소리가 슬프고 온화하여 마치 애닲기가 난새[鸞]와 같은 것이며,
일곱째는 몸과 마음이 때[時]를 따르고 음성이 범생(梵聲)과 같아서 모임 가운데에서 사람들이 들으면 의견[諮]을 받아들이지 않음이 없는 것이요,
여덟째는 그 음향(音響)이 부처님과 같아서 중생들의 마음에 드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쓰는 이가 있으면 여덟 가지 큰 창고를 얻을 것이다.
어떤 것을 그 여덟 가지라고 말하는가?
첫째는 뜻의 창고를 얻어 일찍이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마음의 창고를 얻어 경법(經法)을 분별하여 이해하지 못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가고 오는 창고를 얻어 일체 부처님의 모든 경법을 널리 이해하는 것이요,
넷째는 총지(摠持)의 창고를 얻어 일체 것을 들으면 모두 알고 기억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말재주의 창고를 얻어 여러 중생들을 위하여 경전을 널리 설하면 모두 기뻐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이요,
여섯째는 매우 심오한 법의 창고를 얻어 장차 바른 법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도의법(道意法)의 창고를 얻어 일찍이 삼보의 법에 대한 가르침을 단절(斷絶)하지 않는 것이요,
여덟째는 법의 창고를 봉행하여 문득 생겨남이 없는 법인[無所從生忍:무소종생법]을 얻는 것이다.”
또 『도무극집경(度無極集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비구는 열심히 정진하고 법을 잘 지켜 그가 외우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듣는 사람 치고 환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어떤 일곱 살 먹은 한 어린아이가 성 밖에서 양을 치다가 비구가 경전 외우는 소리들 멀리서 듣고 곧 정사(精舍)로 가서 그 비구에게 예배하고 그 경전을 들있다.
그 때 색(色)과 공(空)을 설명하자 그 아이는 들으면 곧 깨달아 알고 곧 바로 비구에게 질문하였으나 응답하는 것이 옳지 않았으프로 어린아이가 도리어 비구를 위하여 그 뜻을 해설해 주었다. 그것은 예전엔 듣지 못했던 것이어서 이 어린아이의 지혜가 비범(非凡)함을 이상스럽게 여겼다.
그 때 어린아이는 거기에서 떠나 소를 쫓아 산에 갔다가 호랑이를 만나 해를 당하였다.
이 어린아이는 목숨을 마친 뒤에 장자의 집에 태어났다.
부인이 아이를 배었을 때 입으로 반야바라밀을 줄줄 이야기하면서 아침부터 초저녁까지 조금도 게을리하거나 쉬지 않았다.
그 장자의 집에서는 이 부인을 괴상하게 여겨 호귀병(呼鬼病)이라고 불렀다.
그 비구는 그 집에 가서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비구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이것은 귀신병이 아니라, 다만 존귀한 경전을 설명할 뿐입니다.’
부인이 비구에게 나아가 예를 올리고 잇따라 다시 그에게 설법하되, 여러 가지 의심나고 어려워서 납들이 미칠 수 없는 것까지도 다 해설하였으므로 많은 스님들이 기뻐하였다.
달이 차자 부인은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합장하고 꿇어앉아 바라밀을 설명하였고, 그 부인은 아이를 낳은 뒤에 본래 모습대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비구가 말하였다.
‘이 아이는 참다운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잘 기르고 보호하십시오. 이 아이가 훗날 자라면 마땅히 일체 중생의 스승이 될 것이니, 우리들은 모두 다 그 가르침을 따르고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 때 아이의 나이 일곱 살이 되었는데, 도법을 다 갖추어 여러 대중들보다 뛰어나고 지혜바라밀[智度無極]로서 경전 중에 잘못되고 탈락된 것을 모두 산정(刪定)하였다.
아이는 언제 어디를 가든 가는 곳마다 문득 사람들을 개화(開化) 시켰고 장자의 집 어른과 아이 오백 명의 사람들도 다 이 아이에게서 글을 배웠다.
팔만 사천이나 되는 사람들도 모두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의 마음을 내고 오백 비구들은 아이가 설하는 법을 듣고 번뇌가 다 끊어졌으며, 마음에 깨달음 이 생겨 뜻으로 대승(大乘)을 구하여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그 때 그 아이는 바로 지금의 내 몸이요, 비구는 바로 가섭부처님이었느니라
또 『사리불처태경(舍利弗處胎經)』에서 말하였다.
“어머니가 사리불을 배었을 때 어머니도 또한 총명해졌었다.”
『고승전(高僧傳)』에서 말하였다.
“어머니가 나집(羅什)을 배게 되자 어머니로 하여금 총명해지도록 하여 옛날에 하루에 천 개의 게송을 외웠고, 아이를 가진 뒤에는 하루에 이천 개의 게송을 얻어 처음에는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이루고 나중에는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증득하였다.”
『승천왕경(勝天王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어떤 뱀사가 이 경전을 유통(流通)하면 이 땅은 곧 여래가 다니시는 땅이니, 그 법사에 대해서는 마땅히 선지식(善知識)이라는 마음을 내고 존중하는 마음은 마치 부처님을 존중하는 마음처럼 하며, 이 법사를 보면 공경하고 기뻐하며 존중하고 찬탄하라.”
또 말하였다.
"내가 만약 일 겁이나 혹은 일 겁이 좀 못되도록 머물러 있으면서 이 경전을 설법하여 유통하면 그 법사의 공덕은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이 법사가 다니는 곳이면 선남자나 선여인은 마땅히 피를 내어서 땅에 뿌려 먼지가 일어나지 않도록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공양한다 해도 족히 많은 것이 되지 못하니, 여래의 법은 받아 지니기 어렵기 때문이니라
또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경전의 이름을 듣고 네 갈래 악한 세계[四惡趣:地獄ㆍ餓鬼ㆍ畜生ㆍ修羅]에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변 이러한 이치는 없느니라.
만약 어떤 중생이라도 이 경전의 이름을 한 번만 들으면, 일체의 악함과 무간(無間) 지옥의 죄업(罪業)을 다 멸하여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또 말하였다.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경 이름을 한 번만이라도 들으면, 그 이후로 칠겁 동안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또 말하였다.
만일 여래께서 항상 머물러 조금도 변함이 없음을 알거나 혹은 항상 머문다
[常住]는 두 글자의 음성을 듣거나 만약 이 경전을 한 번만이라도 들으면 그는 곧 천상에 태어나고 뒤에 해탈할 때에는 여래께서 항상 머물러 변함이 없음을 확실하게 알 것이다
또 『화엄경(華嚴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일찍이 없었던 한 글귀의 법을 들으면 그것은 삼천대천세계의 귀중한 보배를 다 얻는 것보다 낫고,
이 보살이 한 게송의 바른 법을 듣고 그것을 최상의 재물이라고 생각하면 그는 전륜성왕의 지위를 얻는것보다 더 나을 것이다.”
또 『법화경(法華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법화경』을 받아 지녀서 읽거나 외우거나 해설하거나 쓰고 베끼면 이 사람은 마땅히 팔백 눈의 공덕과 천이백 귀의 공덕과 팔백코의 공덕과 천이백 혀의 공덕과 팔백 몸의 공덕과 천이백 뜻의 공덕을 얻을 것이다.”
또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내가 열반한 뒤에 만약 누가 이와 같은 대승의 미묘한 경전을 듣고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면, 이들은 미래 세상의 백천억 겁 동안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또 말하였다.
“만일 한 항하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님의 처소에서 마음을 내면, 그 뒤에는 곧 악한 세상에서도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이 경전을 사랑하고 좋아할 것이다.
남을 위해서 분별하여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못할지라도 만일 두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님 처소에서 마음을 내면, 그런 뒤에는 곧 악한 세계에서도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바로 알고 믿고 좋아할 것이며,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울 것이다.
또한 남을 위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만약 세 항하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님의 처소에서 마음을 내면, 그런 뒤에는 곧 악한 세계에서도 이 법을 비방하지 않고 나아가 마침내는 이 경전을 베껴 쓸 것이다.
비록 남을 위하여 그 깊은 뜻을 해설하지는 못할지라도 만약 네 항하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님의 처소에서 마음을 내면, 그 뒤에는 곧 악한 세계에서도 이 경전을 비방하지 않고 나아가 마침내는 경전을 베껴 쓰며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십육분 중에 일분의 뜻쯤은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다섯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님의 처소에서 마음을 내면, 마침내는 악한 세계에서도 남을 위하여 십육분의 팔 정도의 뜻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여섯 항하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님의 처소에서 마음을 내면, 마침내는 악한 세계에 이르러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십육분의 십이분 정도의 뜻을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만일 일곱 항하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님의 처소에 마음을 내면, 마침내 악한 세계에 이르러서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십육분의 십사분 정도의 뜻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방위를 곱하변 일백이십(一百二十)이 되며 일백이십 방위에 각각 세(世)를 곱하되 세마다 십세(十世:과거의 三世, 현재의 三世, 미래의 三世와 現前一念을 加한 것)가 있으니, 삼십세(三十世)에 사십방(四十方)을 곱하여 일천이백이 된다고 하여 여섯 감관마다 각각 일천이백 공덕이 있다고 하였다.
팔백 눈이란 눈은 앞면과 좌우는 곁으로만 보므로 결국 두 변만 보게 되어 팔백이 되고 귀는 사방 소리를 다 들으므로 일천이백이 되며 코도 사방 냄새를 다 맡으므로 일천이백이 된다고 하였으니, 나머지는 유추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여덟 항하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님의 처소에서 마음을 내면, 마침내 악한 세계에 이르러서도 경전을 베껴 쓰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권유하여 베껴 쓰게도 하며, 스스로도 잘 듣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권유하여 들은 것을 이해하게도 하며, 설법한 대로 수행하기도 하고 능히 그 의미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