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미증유인연경 하권
[선왕의 공덕과 과보]
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시방의 성현들이 중생의 인연ㆍ과보를 밝게 안다 하시니
저의 아버지 선왕(先王)께서는 외도를 섬기어 그 계율을 지니고, 술ㆍ고기와 오신채(五辛菜)인 파ㆍ마늘을 끊고 범천(梵天)ㆍ해ㆍ달ㆍ물ㆍ불을 섬기었으며, 항상 보시를 실천하여 범천의 복을 구하시고, 해마다 소 천 마리의 우유를 들여 바라문에게 보시하였으니, 40년 동안을 계산하면 4만 마리 소가 됩니다.
모든 바라문은 그들의 우유인 타락[酪]ㆍ생소(生酥)ㆍ숙소(熟酥)ㆍ제호(醍醐) 따위의 맛있는 것을 먹었나이다.
이러한 공덕이라면 어느 하늘에 태어났겠나이까?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셔서 분별하여 가르쳐 주시고, 모든 수행하는 이들이 두루 듣고 알게 하옵소서.”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앞의 왕의 과보는 지금 지옥에 있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좋은 때를 만나지 못하고 착한 벗[善友]을 만나지 못했으며, 좋은 방편이 없었기 때문에 비록 공덕을 닦았지만 죄를 면하지 못했느니라.
그러나 보시한 공덕은 없어지지 않아서 죄가 끝나면 복을 받게 될 것이니라.
[복을 닦는 까닭]
대왕이여, 사람이 복을 닦는 것은 죄와 더불어 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니라.
함께 합치지 않으려는 까닭에 모름지기 방편을 써서 죄를 소멸케 할지니라.
어떤 것이 방편인가?
선지식(善知識)이니라.
어떤 것이 선지식인가?
바른 소견을 가진 사람이니라. 이를 착한 벗이라 하니 항상 바른 가르침[正敎]으로 그의 마음을 잘 다스리느니라.
어떤 것이 바른 가르침인가?
이른바 무상(無常)ㆍ공(空)ㆍ고(苦)ㆍ무아(無我)와 12인연 따위를 관찰하여, 나고 죽는 데 얽힌 이가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닦는 것이니
괴로움을 보고 습기를 끊으며, 적멸(寂滅)을 증득하여 도를 닦으며, 6바라밀과 네 가지 무량한 마음[四無量心]을 닦는 것이니,
이것이 방편으로 모든 감관을 잘 다스리는 것이니라.
감관이 잘 다스려진 까닭에 정혜(定慧)를 성취하고,
지혜를 성취한 까닭에 마음이 바르고 곧으며,
마음이 바르고 곧은 까닭에 능히 정진하고,
정진하는 까닭에 경계하고 삼가는 마음을 내며,
경계하고 삼가는 마음이 끝끝내 있기 때문에 정혜가 밝아지고,
정혜가 밝아지기 때문에 만행(萬行)에 임할 때 걸림 없이 통달하고,
행이 걸림이 없기 때문에 해탈이라 하는 것이니,
마음이 해탈한 것이 열반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선지식이라 부르느니라.
대왕이여, 마땅히 아십시오. 밝은 스승이 잘 인도하니, 큰 인연으로 가벼이 못할 것이니라.
대왕은 이제 성현들을 만났으니 모두 전세의 인연과 과보로써 법을 듣고 깊이 믿으며, 또 남들도 알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노니 밝은 사람은 만나기 어려우며, 항상 있지도 않으며, 그가 태어나는 곳은 친척까지도 경사를 입느니라. 그러므로 반드시 반야 지혜를 닦을지니라.”
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의 말씀을 듣고 지혜와 방편이 이미 마음에 익었나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재화와 복이 같지 않다’ 하시니,
저의 부왕(父王)은 어떠한 나쁜 일이 있어서 괴로운 과보를 받았나이까?”
[선왕의 여섯 가지 죄]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먼저 대왕에게는 여섯 가지 죄가 있으니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첫째는 오만하고 질투하고 폐단으로 일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즉각 채찍을 들어 벌을 주니, 인욕(忍辱)하지 않은 까닭이니라.
둘째는 보물을 탐내고 사랑하며, 일을 판단하되 공평하지 못하니, 드디어 천하로 하여금 원한을 품게 한 까닭이니라.
셋째는 사냥과 놀이를 좋아하여 백성을 괴롭히니, 중생들의 사랑하는 목숨을 해친 때문이니라.
넷째는 궁녀들을 구속하여 자유롭지 못하게 했으니, 큰 괴로움을 준 까닭이니라.
다섯째는 여색(女色)을 탐내어 새것을 얻으려 옛것을 싫어했으니, 보살피기를 고르지 못하게 하여 원한을 맺은 까닭이니라.
여섯째는 바라문을 두려워하여 술ㆍ고기ㆍ오신채를 몰래 먹었으니, 책망을 들을까 봐 두려워 거짓을 행한 까닭이니라.
이것이 여섯 가지 일이니라. 이러한 죄업으로 지옥에 태어났느니라.”
[10선행법을 성취하는 법]
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그러하다면 부처님께서 나오시기 전에 제자에게도 그러한 죄가 있었사오니, 어떻게 하여야 10선행법을 닦아 걸림 없이 성취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먼저 말한 것처럼 해가 돋을 때 모든 어둠이 사라지나니 아직 남은 어둠이 있겠느냐?”
“등불의 광명도 오히려 어둠을 물리치는데, 하물며 햇빛의 위력이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왕의 복덕으로 부처의 설법을 듣고 지혜를 성취하니, 마치 햇빛이 온갖 어둠을 없애는 것과 같으니라.”
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의 부왕께서 섬기던 바라문의 스승은 부지런히 지혜를 닦아 고행을 익혔으며, 복을 구하기 위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았나이다.
혹은 바위 위에 누워 다섯 가지 열(熱)로써 몸을 쪼이고, 혹은 음식을 끊어 하늘에 나기를 구하고 혹은 많은 나무를 쌓아 산 채로 몸을 태우고 혹은 발을 고이고 해를 향해 입을 벌리고, 혹은 높은 나무에서 노끈으로 다리를 매고 거꾸로 떨어지고, 혹은 가시에 누워 돌을 안고 가슴을 짓찧었으니, 이렇듯 온갖 고행을 하였나이다.
고행한 공덕과 복덕의 인연은 어디로 돌아가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 행이 괴로우면 괴로운 과보가 있고 행이 즐거우면 즐거운 과보가 있으니 그대는 듣지 못했느냐?”
왕이 여쭈었다.
“세존께서 모든 제자들을 제어하시어 계율을 지니게 하시는 것은 괴로움이 아니옵니까?
대체로 사람이 시장할 때에 곧 밥을 얻지 못하면 번뇌가 끝없이 일어나고, 분노가 불길처럼 타올라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며, 성내는 마음과 죽이려는 생각을 일으켜 수가라를 죽이려 하였으니, 이러한 일로 여러 세상에서 괴로움을 받으면, 어찌 괴로움이 아니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예전에 오전의 음식을 금한 것은 모든 비구가 외도의 법을 버리고 나의 법으로 출가하여 도를 닦는데, 앞서 고행을 익히던 굶주린 마음 때문에 모든 제자들이 아름다운 음식을 만나면 식탐을 내어 과식하고, 먹은 것이 소화되지 않아 병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느니라.
그러므로 음식을 제재한 것이지 굶주리는 고행으로 복을 구한 것은 아니니라.
또 절도(節度) 있게 먹는 사람은 비구들이 밤낮이 없이 사방으로 걸식하며, 먹기를 때도 없이 하여 외도들에게 비방 받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구담 사문은 도가 정교하다고 자랑하면서 어찌 외도들만도 못한가’라고 하기 때문에
음식을 조절케 한 것이지 주리는 고행으로써 복을 구하라는 것은 아니니라.
요약해서 말하자면, 제정한 계율들은 바야흐로 어리석고 방편이나 지혜가 없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지혜로워서 때와 장소를 아는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니니라.
내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반야 지혜는 곧 해탈이니, 슬기로운 이[智者]가 받을 것이고, 성인이 실천할 바이니라.”
왕이 이 말씀을 듣고 더욱 기뻐하여 다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였고, 온갖 대중도 모두 그렇게 하였다.
[경의 복덕과 경의 이름]
그때 바사닉왕이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오늘의 이 대중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의심의 매듭이 풀리니, 마치 햇빛이 어둠을 헤치고 밝은 천지를 보는 것과 같나이다.
이러한 공덕의 은혜는 갚기 어렵사오니, 모든 제자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공양을 베풀어야 지금 세존의 무거운 은혜를 갚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왕과 모든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감로법[甘露敎法]의 은공은 참으로 보답하기 어려우니라.
설사 어떤 사람이 항하(恒河)의 모래 수처럼 많은 겁에 마음을 다하여 불보ㆍ법보ㆍ승보에게 의식과 와구와 질병의 약을 받들어 섬긴다면 그대의 뜻에 어떠한가?
그의 복이 많지 않겠는가?”
왕이 여쭈었다.
“심히 많아서 헤아리지 못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감로법은 정묘하여 헤아리기 어려워서 거칠고 미세한 것을 막론하고 제도하니, 하늘이나 세상 사람의 복덕으로는 갚지 못하느니라.
오직 한 가지 일로써 보답할 수 있으니, 무엇이 한 가지인가?
항상 자비로운 마음으로 자기가 아는 대로 더욱 열심히 교화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그의 신심으로 지혜를 이루도록 교화하는 데 다함이 없게 할지니라.
비유하자면 한 등불로써 무량한 등불을 켜는 것과 같이 할지니, 이렇게 행하는 이만이 스승들의 소중한 은혜를 갚는다 하리라.
대왕이여, 스승들이 해탈시켜 주신 은혜를 갚고자 할진대 도리어 지혜로써 중생을 해탈시킬지니 이렇게 행하는 이는 3세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이요, 한 스승만을 공양하는 것이 아니니라.”
왕은 또 합장하고 여쭈었다.
“성스러운 교법을 선전하여 중생을 깨우치고 바른 소견을 수행하여 성스러운 도를 수행케 하면 그 복이 어떠하옵니까?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셔서 중생을 깨우쳐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스승에게 법을 듣고 한 구절이나 한 뜻이라도 널리 교화하여 한 사람일지라도 믿지 않는 이는 믿게 하고 알지 못하는 이는 알게 하면, 이러한 공덕은 한량없고 그지없어 범부들의 능히 알 바가 아니니라.
대왕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천 년 동안 음식ㆍ의약ㆍ좋은 의복으로 불보ㆍ법보ㆍ승보에게 공양하면 그 복이 많지 않겠는가?”
왕은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 없으리라고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선남자와 선여인이 스승에게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널리 교화하여 한 사람일지라도 믿고 알도록 하면 그 복덕이 저보다 더하여 백천만억의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무슨 까닭인가?
법에 맞게 교화하는 공덕이 한량없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법의 가르침[法敎]을 부지런히 선전하여 일체 인민을 교화하면 그 복이 한량없으리라.
아난아, 내가 지금 이 더할 나위 없는 묘한 법으로써 너에게 부탁하니 선포하고 교화하여 중생들을 제도하면 곧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이니라.”
아난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맡기시니, 이름을 무엇이라 부르오리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은 『미증유설인연경(未曾有說因緣經)』이니, 마땅히 부지런히 수행할지니라.”
그때 바사닉왕과 기타 태자와 부인과 후궁과 사부제자와 제석ㆍ범천과 8부용신과 80만 인간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여 제각기 발심하고, 세 가지 해탈문(解脫門)을 향하여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가서 법에 맞게 받들어 실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