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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초일명삼매경 상권
[일광요 삼매]
이구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일광요(日光耀)삼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에 뭇 보배로 된 목욕하는 못에는 여덟 가지 맛이 나는 물이 맑고 고요하게 가득 찼고 푸른 연꽃ㆍ붉은 연꽃ㆍ노랑 연꽃ㆍ횐 연꽃이 심어져 있으며, 둘레와 난간은 모두 7보(寶)로 만들어졌다.
그 주위는 상서로운 꽃이 있으며, 밑은 금모래[金沙]가 깔려 있고 자신의 몸이 그 안에서 재미있게 노는 것을 보면서, 지혜의 정[慧定]을 이루고 총지를 증득하여 밝히므로, 초월하는 지도무극(智度無極)을 이루느니라.
여기에 다시 열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지혜를 근원으로 삼고, 지(智)의 힘을 최상으로 삼으며,
바른 소견을 으뜸으로 삼고, 평등한 뜻[等意]을 수승한 것으로 삼으며,
몸의 모든 덕을 닦고, 모든 부류에 들어가 거룩한 진리[聖諦]의 상(相)을 갖추며,
평등한 상(相)을 이루고, 지혜로워 음개(陰蓋)가 없으며,
모든 지나간 소견을 제거하고, 불기법인을 얻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의 일이니라.
6정(情)을 관(觀)하되 본래 처소가 없어서 어디서 온 것도 없고 어디로 가는 것도 없으며,
본래 자연 그대로요 공(空)한 것인데 연(緣)을 만나 일어나는 것일 뿐이니,
비유하면 하늘에서 비가 오되 용(龍)으로부터 나오지도 않고 물로부터 나오지도 않으며 땅으로부터 나오지도 않고 용의 마음으로부터 나오지도 않아서,
모두 인과 연이 합하고 만나야 비로소 이 비를 내리게 하는 것처럼,
6정의 모든 입(入)도 역시 그와 같아서 오히려 인과 연으로 성립되는 것이요 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라.
생사도 그와 같으니,
비유하면 그림 그리는 이가 그림의 대상인 사람ㆍ방ㆍ집ㆍ코끼리ㆍ말ㆍ탈것 등을 그릴 때,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그 대상의 형태나 솜씨가 나타나지 않다가
벽판(壁板)과 소필(素筆)과 채색(彩色)의 기구 등 온갖 연(緣)이 두루 합하고 만나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과 같으니라.
선악(善惡)도 그와 같이 인과 연이 합하여 성립되느니라.
또다시 도(道)를 행하는 데에도 10선의 행과 6도를 인(因)하는 것이니, 무극(無極)의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일심ㆍ지혜ㆍ선권방편이 합쳐져서 성취할 뿐이니라.
부처님 몸에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부처님 몸을 떠나지도 않고,
마음과 뜻에 생각이 없어 자연 그대로 허공과 같으며,
차츰차츰 대자(大慈)에 들어가고 또 대비(大悲)와 희호(喜護) 등의 행을 닦되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고 언제나 온갖 중생을 위하면서 또한 구함도 있지 않으며,
몸의 행을 삼가하고 말을 조심하며 겸손하면서 순하며,
마음속의 생각은 부드럽고 아첨이 없고 질박(質朴)하면서 삿됨이 없느니라.
또 여섯 가지의 일이 있어서 빠르게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無上正眞道]를 얻느니라.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언제나 부처님께 의지하여 머무르고 바르고 참된 도(道)에 들어 마음이 다시 되돌아가지 않으며,
속뜻의 행[內意行]에 대하여 스스로 환히 깨달아 알고,
착한 벗을 만나서 그에게 일을 맡기며,
뜻하는 원[志願]이 너그러우면서 만족하지 않고,
마음이 화합하지 않음이 없고, 지혜가 결핍됨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여섯 가지이니라.
보살이 도를 수행하되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에 기대지 않고 안과 밖에도 기대지 않으며,
근본이 되는 법의 가르침에 따르면서 보살의 깊고 묘한 행을 어기지 않고,
대자(大慈)를 멈추지 않으면서 대비(大悲)도 잃지 않으며,
세간의 결핍한 바에 따라 그들을 구제한다.
도를 닦아 바르게 교화하면서 삿되게 가르치지 않으며,
한마음으로 지혜를 향하여 어리석음에 가려지지 않고,
6쇠(衰)는 마치 허깨비ㆍ요술ㆍ그림자ㆍ메아리ㆍ아지랑이와 물속의 달과 같고, 꿈속에서 본 것은 홀연히 그 처소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줄을 밝게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일광요(日光耀)삼매이며 감동한 바가 많은 유순법인(柔順法忍)이니라.”
[제리의 삼매]
이구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일러 제리의(諸利義)삼매를 이루었다고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의 온갖 보배로 된 목욕하는 못에 그 좌우를 자세히 살피며, 지옥의 고액(苦厄)을 제도하여 넓은 들판에서 노닐게 하며, 기특한 취락(聚落)의 총지에 이르므로 곧 초월한 권도무극(權度無極)을 이룬다고 하느니라.
이에 다시 열 가지의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모든 뜻하는 행에 들어가고 중생을 건립(建立)하며,
끝없는 대자비와 두루 한 연민을 근본으로 삼고 심성(心性)이 부드러우면서 싫증을 내거나 게으르지 않으며,
제자(弟子)와 연각(緣覺)의 승(乘)을 버리고, 관(觀)하는 바가 자세하고 참되며,
도의 마음을 인도하면서 다스리고 모든 신통과 지혜로써 불퇴전을 세우고, 넓은 지혜를 깨달아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의 일이니라.
언제나 바른 지혜로써 삿된 견해를 멀리 여의고,
자연히 도를 닦으면서 세속에 미혹되지 않으며,
미묘하고 끝없는 법에 깊이 들어가면서 널리 세속에 들어가며,
세속에 대하여도 속되지 않고 도에 대하여도 의지함이 없으며,
생각이 성스러운 가르침에 이르러 중생을 개화하고,
노(老)ㆍ병(病)ㆍ사(死)로 언제나 신변을 수호하며,
6정을 물리치고 6쇠에 떨어지지 않으며,
7사(邪)를 좇지 않고 언제나 7각(覺)을 섭수하느니라.
마음은 삿되지 않음을 분명히 알아 정진하면서 폐지하지 않고,
법에 수순하여 어기지 않고 기뻐하면서 한(恨)하지 않으며,
신근(信根)이 헷갈리지 않고 안온하면서 위태롭지 않으며,
뜻이 안정되어 어지럽지 않고,
재(財)를 믿고 지(智)를 믿되 본래 계재(戒財)가 없다.
소승(小乘)의 참괴재(慚愧財)에 떨어지지 않고 삼계에서 아직 제도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재물을 부끄럽게 여기고 지혜가 넓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기며,
재문(財聞)을 널리 들어 짝할 이가 없고 지극히 깊고 먼 지혜로 재시(財施)를 보시하며,
대도(大道)의 지혜재(智慧財)로써 지혜에 들어가 널리 온갖 중생을 제도하느니라.
열 가지의 일이 있어서 불퇴전에 이르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도무극이 있음을 듣고는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고,
부처님의 존재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으며,
법(法)의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고,
성중(聖衆)의 존재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으며,
도(道)의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는다.
보살의 존재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으며,
법신(法身)의 존재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고,
세속의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으며,
사람의 존재 유무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지 않고,
목숨이 있고 없는 것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거나 하지 않으며,
수명이 있고 없는 것에 마음이 동요하여 물러나거나 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시방으로 날아가서 모든 하늘과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며,
법(法)으로써 근본을 삼고 도(道)로써 근원을 삼으면서 나[我]를 헤아리지 않으며,
혹은 지옥으로 들어가서 고통을 구제하기도 하고, 혹은 날짐승ㆍ길짐승에 들어가서 어리석음을 깨우친다.
혹은 아귀(餓鬼)에 들어가서 굶주림의 독을 위로하면서 배를 채워 주고, 세속 인연을 따라 가르치고 교화하면서 저마다 그 처소를 얻게 하며,
세속의 법에 오염되지 않고 깨끗하기가 마치 햇빛과 같고 밝기는 마치 둥근 달과 같으며,
보살은 불퇴전을 얻어서 많은 변화를 능히 행하고 깨우쳐 제도할 바 있는 데서는 문득 많이 보전하여 제도하며,
모든 고뇌가 있는 이에게는 모두 큰 안락을 얻게 하고, 모든 지혜 없는 이에게는 모조리 다 지모(智謀)를 넓히게 하니,
이것을 바로 제리의(諸利義)삼매를 이룬다고 하느니라.”
[현재제불목전립 삼매]
이구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현재제불목전립(現在諸佛目前立)삼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달이 다 차서 둥근 보름달일 때 뭇 어둠이 다 사라지는 것처럼,
모든 하는 일도 그와 같이 정성껏 잘 수행하고 청정히 하면 원하는 바가 성취되어 불국토를 이루게 되고 중생을 가르쳐 교화하는 것이다.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에 사자와 사슴 왕이 머리에 비단을 이었는데 그 몸이 높고 커서 위력으로 여러 짐승을 다스리는 것처럼,
끝없는 8만 4천의 모든 총지문을 이루므로 곧 초월한 지혜를 성취하느니라.
이에 다시 열 가지의 일이 있느니라.
한마음의 정의(定意)로 삼매에 들어, 상념(想念)이 없으며,
오로지 한 뜻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모두 끊으며,
모든 것을 구하지 않고, 법이 모두 공(空)한 줄 알며,
삼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위(無爲)를 좋아하지 않으며,
유위(有爲)를 헤아리지 않아서, 법신을 이해하여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그 향한 방소(方所)에 현재 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을 들으면 언제나 그 방소를 생각하면서 부처님 곁에 모인 사부대중과 그들을 위하여 경법을 설하시는 것을 관하며,
4대(大)는 공하여 땅은 마치 거품 더미와 같고, 물은 마치 아침이슬과 같으며, 불은 마치 번갯불과 같고, 바람은 마치 부치는 부채와 같다고 관찰하며,
4대는 인(因)과 연(緣)이 합하여 이루어졌을 뿐, 본래 아무 것도 없다고 분별하느니라.
스스로 몸의 모습을 관하면서 온갖 감관은 본래부터 실체가 없다고 자세히 살피고, 스스로 통양(痛痒)을 관찰하면서 본래부터 통양은 없는 줄 알며,
스스로 사상(思想)을 관하되 온갖 사상을 자세히 살피면서 본래부터 사상은 없는 줄 알고 스스로 그의 뜻을 관하면서 본래부터 뜻이 없는 줄 아느니라.
이미 공(空)하다고 관한지라 온갖 것은 없다고 보며,
여덟 가지 재난을 가엾이 여기고 세간의 여덟 가지의 일인 흥성[盛]ㆍ쇠망[衰]ㆍ훼방[毁]ㆍ칭찬[譽]과 이름이 있고[有名] 이름이 없는[無名] 것과 근고(勤苦)와 안락(安樂)에서 벗어나며,
여덟 가지 삿됨을 버리고 여덟 가지 바름[正]에도 머물지 않으며,
평등하게 있고 없음[有無]에 처하면서 역시 머물지 않으며,
4등심(等心)인 자ㆍ비ㆍ희ㆍ호를 행하고,
4은으로 중생을 제도하며 인애(仁愛)를 은혜로이 베풀고 이롭게 하되 평등하게 하느니라.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모든 다른 상념(想念)이 없으면,
5음이 곧 끊어지고 6쇠는 처소가 없으면서 마음이 곧 안정을 얻으며,
4대를 보지 않고 사람도 보지 않으며,
천(天)ㆍ지(地)ㆍ인(人)ㆍ물(物)도 보지 않아 영원히 보는바가 없을 것이니,
이렇게 오래오래 하여야 비로소 시방의 부처님을 뵙게 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물이 흐리면 그 밑이 보이지 않지만 오랫동안 멈추어 움직이지 않고 고용해지면 맑아져서 훤히 보이듯이,
보살도 그와 같이 정(定)에 들어 상념이 없고, 관하되 보는 바가 없으면,
5음과 6쇠가 환해진 것이 마치 구름이 걷히면 해나 달빛이 나타나는 것과 같이 시방의 부처님을 뵙게 되느니라.
다시 그것을 관하면서
‘내가 부처님께로 간 것인가? 부처님께서 나를 위해 오신 것인가?’라고 하면,
이는 마음이 곧 스스로 생각한 것이니, 본래 부처님도 또한 오시지 않았고 나도 또한 가지 않은 것이니라.
비유하면 밝은 거울이나 맑은 물이나 깨끗한 기름에서 형상이 보이고 그림자도 보이되 그 영상(影像)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은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이 시방의 부처님을 뵙되 역시 가고 옴이 없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꿈속에 고향으로 돌아가 스스로 부모ㆍ형제ㆍ처자를 보았으나 깨고 나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시방의 부처님을 뵈었으나 삼매에서 깨고 나면 도무지 본 바가 없는 것이니라. 그 까닭은 32상과 80종호는 본래 없으며 다만 화현(化現)이기 때문이니라.
형상이 없고 처소가 없는 것은 마치 허공과 같이 따로 알 수 없는 것이니, 어느 것이 허공이겠느냐?
법신도 그와 같아서 처소가 없어야 비로소 온갖 근원을 보고 통달할 수 있으며, 앉아서 시방을 보되 오고 가지도 않느니라.
이것이 바로 현재제불립목전(現在諸佛目前立)삼매이니라.”
[혜광요 삼매]
이구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혜광요(慧光耀)삼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에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법왕(法王)의 가르침을 베풀고 임금의 아들과 보신(輔臣)과 백천 권속과 영종(營從)들이 허공 가운데서 모든 보배 꽃을 가지고 그의 몸을 가리는 것을 본다.
그지없는 총지문(總持門)을 행하여 60만해(萬姟)의 모든 총지의 지혜를 이루므로 곧 초월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니,
비유하면 마치 명월신주(明月神珠)가 모든 궁하고 모자란 것을 가득 채우고 넉넉하게 하는 것과 같이 완전히 갖춘 모든 법으로 중생에게 가르쳐 주되 온갖 사람을 따르면서 그에 상응하게 무진덕장(無盡德藏)을 베풀어 주느니라.
이에 다시 열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법으로써 보시하고, 계율로써 불순(不順)을 거두어 취하며, 인욕으로써 강포(强暴)를 다스리고, 정진으로써 태만을 섭취(攝取)하며, 일심으로써 산란을 섭취하고, 지혜로써 사지(邪智)를 섭취한다.
선권(善權)으로써 때를 따라 대승(大乘)으로 교화하고, 대도(大道)를 천명하여 넓히며,
8난에서 노닐며 8사행(邪行)을 해탈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모든 것에 편파(偏頗)된 행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열 가지이니라.
여덟 가지 불가사의에 머무르면서 보살을 버리지 않고 삼계는 마치 허깨비와 같아 진실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스스로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헤아려도 오고 간 곳을 보지 않아서 가고 머무름에 따라 저마다 스스로 이루어지게 하느니라.
삼계는 마치 아지랑이와 같은 것이니, 여름에 사람이 없는 넓은 들판을 갈 때 멀리서 보면 큰 강에 물이 흐르고 그 곁에는 나무가 자라 여러 가지의 열매가 아주 무성해 보인다.
그 사람은 배고프고 목마르고 더운 데다 피로하여 다시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인데도 그곳으로 가고자 하여 몇 리를 달려가 가까이 다가가지만 도무지 물은 보이지 않고, 아지랑이가 걷히게 되자 물이 없는 것과 같으니,
달인(達人)은 자주 보았는지라 물이 없음을 알므로 달려가서 구하지 않느니라.
중생은 삼계가 허깨비와 같은 줄 분명히 모르고 내가 있고 수명이 있다고 여기다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의 온갖 내용은 무상하다는 것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하고 깨달아서 다시는 미혹되지 않는다.
보살은 온갖 처소와 삼계는 마치 변화와 같고 요술과 같으며 그림자나 아지랑이와 같고 꿈이나 물속의 달과 같은 줄 알며,
본래부터 없음을 모두 아는지라 집착도 없고 속박도 없으며 해탈도 없으므로 온갖 것에 구함이 없다.
마치 어미가 제비 여러 새끼들을 먹여 살리는 것과 같이,
보살도 그와 같이 일체 중생을 깨우쳐 교화하되 역시 내버려두는 바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비유하면 마치 길잡이가 장사꾼들을 많이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올 적에 흉악한 도적을 만나지 않고 편안하게 집에 도착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혜광요삼매의 정(定)으로써 일체 중생을 도와 음(婬)ㆍ노(怒)ㆍ치(癡) 3독(毒)의 어둠을 버리게 하고 3승(乘)을 열어 보이되 대승을 근본으로 삼아 저마다 처소를 얻게 하느니라.
비유하면 의왕(醫王)이 여러 사람들의 질병을 보고 그 병에 따라 약을 주매 그 병든 사람들이 낫지 않음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혜광요삼매로써 널리 중생의 5도의 우환과 3독의 혹독한 고통을 보고 큰 자비로써 그들을 깨우쳐 교화한다.
무극(無極)의 지혜를 바르게 가르쳐서 발심한 이나 아직 발심하지 않은 이라도 받들게 하고, 견고하게 정진하면서 회향한 이는 일생보처에 올라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이르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혜광요삼매의 정(定)이니라.”
[용맹복 삼매]
이구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엇을 용맹복(勇猛伏)삼매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치 전륜성왕이 공조(功祚)가 한량없고 위덕(威德)이 높고 뛰어나 자재(自在)를 얻어 온갖 법에 걸림이 없는 지혜를 얻음이 마치 허공에 때[垢]가 없어 청정한 것과 같다.
먼저 상서로운 삼천 불국토의 여래의 형용은 황금빛 얼굴이요, 그 광명은 모지고 둥근데 셀 수조차 없는 범덕(梵德) 억백 나술(那術)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위하여 경을 설하신 것을 보면서,
한량없는 총지문을 행하여 항하 모래만큼 많은 백천해(百千姟)의 총지를 이루었기에 곧 초월한 성지(聖智)를 성취한 바가 많으니라.
이에 다시 열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일체지(一切智)에 뜻을 두면서 좋아하거나 싫어함이 없고,
유위에 머무르지 않고 무위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널리 인자한 마음으로 행하여 중생들을 위해 평등하게 베풀며,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평등하게 행함이 마치 허공과 같으며,
제자라는 생각이 없으면서 보살이라는 생각도 없다.
또한 세속에 대한 마음도 없고 도(道)에 대한 뜻도 없으며,
언제나 큰 지혜로써 중생을 수순하여 교화하고,
온갖 내는 데에 들어가되 또한 내는 바가 없으며,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나타나되 법신을 버리지 않고,
마음이 나[我]와 열반에 평등한 것이니,
이것을 바로 열 가지 일이라 하느니라.
몸과 입으로써 말하거나 행한 바가 있지 않고,
마음은 언제나 안정하여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으며,
욕계(欲界)에 나타내어 모든 욕진(欲塵)을 제도하고,
욕심의 자연(自然)에 대해서도 집착하는 바가 없으며,
온갖 것에서 구하지 않음은 마치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다.
색계(色界)를 나타내되 빛깔의 자연에 대해서도 구하거나 바라는 것이 없으니,
마치 참기름이 물과 합쳐지지 않는 것처럼 빛깔과 빛깔 없는 것을 관하되 스스로 본래부터 없는 줄 살피고 또한 살필 바도 없느니라.
무색계(無色界)를 나타내되 빛깔이 없는 것은 자연이어서 뒤도 없고 앞도 없으니,
마치 불길은 허공을 태우지도 못하며 또한 더하거나 덜함도 없고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가고 오는 곳이 없는 것과 같아서
삼계에 홀로 걸으면서 세 가지 처소를 초월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나는 새가 허공을 날아다니되 거리끼는 바가 없는 것과 같이
삼계를 제도하고 해탈하되 각각 본래의 뜻을 따르면서 속히 깨우쳐 알아 대승(大乘)에 이를 수 있게 하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의왕(醫王)이 여러 가지의 약을 가지고 저마다 병에 따라 먹게 함으로써 풍한과 열병을 곧 낫게 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불법의 약으로써 음ㆍ노ㆍ치의 병을 치료하여 남음이 없게 하므로 그 마음이 청정하여 형상도 없고 이름도 없느니라.
마치 용맹하고 씩씩한 군대의 장군이 악한 역적을 토벌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큰 자비로 중생을 교화하여, 모든 생사를 윤회하는 이[周旋者]와 이에 어두운[闇昧] 사람과 예순두 가지 소견의 모든 사악한 의심의 그물[羅網]에 떨어진 이와 그리고 예순두 가지의 모든 바르지 않은 법을 지닌 모두에게 뜻을 일으켜서, 각자 6도(度)와 대자대비와 뭇 행의 요긴한 것을 좇아 대승에 이르게 하느니라.
비유하면 뱃사공이 견고한 배를 조정하여 왔다 갔다 하면서 뭇 사람을 건네주어 각자 원하는 곳에 이르도록 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용맹복삼매의 정(定)으로써 한량없는 생사의 고뇌를 제도하고 해탈하되, 성문에게 나타나 그 마음을 따라 깨우쳐 주느니라.
연각에게 나타나서는 근본을 좇아 가르쳐 주며,
부처님 몸을 나타내어 세 가지 도의 가르침을 열며,
혹은 큰 법의 끝없는 지혜인 대승의 깊은 법을 나타내기도 하거니와 3악도(惡道)도 없고 또한 3승도 없느니라.
비유하면 마술사가 대중 가운데서 자기 자신의 몸을 죽게도 하고 불에 타게도 하며 짐승에 먹히는 일을 나타내면, 대중들은 모두가 두려워하여 저마다 안타까워하면서 크게 물건을 내주며 그의 몸이 회복되기를 바라지만,
그 마술사는 얻은 보물이 많은 것을 보고 즉시 땅에서 일어나 본래대로 회복되어, 본래 죽은 것도 아니고 다시 살아난 것도 아닌 것과 같다.
보살도 그와 같이 중생의 생사 5도를 깨우치고 교화하되 보살이 되기도 하고 성문이 되기도 하며 연각이 되기도 하고 천상에 나기도 하며 갑자기 열반을 나타내기도 하면,
여러 사람들은 슬피 통곡하면서 그가 멸도하여 없어졌다고 여기기도 한다.
홀연히 다른 지방의 성문과 연각으로 나타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이 하면,
이미 멸도하여 다시는 존재하지 않은 것이 마치 불에 타 없어져서 다시 그곳에 없어 불에 타 모두 없어져 버렸다고 여긴다.
보살이 비록 열반을 나타내면서 법신과 합쳐졌다 하더라도 역시 오고 간 것도 없으며 다시 중생에 따라 나타내 보이면서 교화하는 것이니,
보살 대사(大士)는 그것을 통달했기 때문이며 법신을 환히 알기 때문이니라.
비유하면 마치 햇빛이 물속이나 그리고 군ㆍ나라ㆍ현ㆍ읍ㆍ언덕ㆍ마을 등을 비추지만,
해의 궁전[日殿]은 내려오지 않고 또한 움직여 옮아오지 않으며,
인간 세상에 있어서도 그 광명 모조리 다 이르지만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은 것과 같다.
보살도 그와 같이 삼계에 나타나되 또한 가고 오고 돌아다닌 것도 없으며, 온갖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되 역시 제도한 바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용맹복(勇猛伏)삼매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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