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해일륜_5. 구경에 하나가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究竟爲一質問)
묻기를,
“일체중생이 다 깨치면 한 덩이를 이룰 것이니 어찌하여 그러합니까? 비유하자면 수은水銀 한 병을 가져다가 방 안에 퍼뜨리면 백천 개가 될 것이고, 한곳에 쓸어 모으면 하나가 될 것이니, 일체중생이 다 깨치면 한 덩어리가 되고 말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과거 모든 성현이 모두 한 뭉치가 되었다가 퍼뜨려 놓으면 여러 낱낱이 되고 마는 것이니, 누구라 누구라 하는 과거 모든 성현이 모두 하나로부터 여럿이 되어 나온 것이지만, 가상假相으로 나는 누구이니 누구이니 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이것은 참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대체로 비유라고 하는 것은 그 종류種類를 따라 말한 것이고, 전체를 통틀어 비유한 것이 아니다. 물 가운데의 짠맛은 본연성이 단멸斷滅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있지만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어서 일체의 이름과 모양이 없는 데 비유한 것이다. 전기의 성질(電氣性)에 비유한 것은 허공계에 가득하여 이름과 모양이 없고 삼세 고금이 없으며, 전파電波가 인연(緣)을 따라서 전기등의 불도 켜고 전보도 하며 전화도 하고 무선전신無線電信으로 먼 만 리 밖에서 서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본래 법신이 법계에 충만充滿하여 인연을 따라 일체를 성취하는 데 비유한 것이고, 촛불 비유와 수은 비유는 하나가 많은 것이 되고 많은 것이 하나가 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허공의 달이 일천의 강물에 비치는 것은 석가진신釋迦眞身이 허공의 달과 같고 응화신은 강물에 비친 달과 같은 것이며, 또 중생의 몸과 마음(情器)이 차별이 있을지라도 그 성품은 차별이 없다는 비유이다.
이 비유가 분명한데도 그대가 어찌 알지 못하고 수은 한 덩어리를 흩으면 여러 낱낱의 방울이 되고 떡방아를 찧어 가루를 반죽하면 한 뭉치가 되는 것과 같아서, 과거에 깨친 자와 미래에 깨칠 자들이 모두 개성個性이 없어지고 한 덩어리가 된다고 하면, 너도 없고 나도 없을 것이며, 과거에 모든 응정등각應正等覺과 모든 정사正士의 차별이 없어 모두 떡 반죽하듯이 한 덩어리가 되고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그 근원根源이 똑같이 하나라고 정한다면, 어찌 외도外道들이 말하는 것이 확실히 잘못된 상견(死常)이 아니겠는가? 그대의 말대로 하면 과거에 모든 대각과 모든 정사들의 ‘원인 되는 수행 자리(因地)’에서 발심發心하여 무량겁에도 불도를 닦아서 차례로 오십오위五十五位를 밟으면 각각 등정각을 이루신 역사歷史가 따로 있을 것이 없으며, 또 석가釋迦다, 미륵彌勒이다, 미타彌陀다, 관음觀音이다 할 것도 없을 것이다.
가령 따로 있다고 할지라도 방편적方便的으로 가상적假想的으로 있을지언정 그 실상은 한 덩어리에서 나온 것이라 할 것이니, 이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름과 모습(名相)도 지을 것이 없는데, 무슨 망상과 사견을 일으키는가? 그러나 묻는 데 대하여 대답을 아니할 수 없다. 비록 본원각성本源覺性이 하나라고 할지라도 개성은 뚜렷하게(歷歷) 분명分明하다. 비유하자면 밝은 구슬 천 개를 놓고 이 구슬의 체성과 이 구슬의 투명透明한 것이 추호秋毫도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 구슬을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혼합하여 한 덩어리를 만들어 놓고 같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방 안에 촛불 하나 켜 놓으면 광명이 그 방 안에 가득하고, 두 개를 켜든지 백 개 천 개까지를 켜 놓아도 그 광명이 낱낱이 다르지 않고 낱낱이 광명이 가득하지만, 이 촛불 광명이 저 촛불 광명을 서로 장애하지 아니하고 각각 방 안에 가득하며, 비록 가득할지라도 합쳐진 것도 아니며 서로서로 섞인 것도 아닌 것과 같다.
그렇지만 우리의 성품도 그리하여 용성의 깨친 편으로 알아보면 용성의 광명 체성이 허공계虛空界와 법계法界를 다하여 사무쳤으며 과거 삼세 모든 성현도 자증분自證分의 입장에서 보면 낱낱이 모두 그러할 것이다.
또 인드라망의 구슬(帝網珠) 주렴珠簾과 같아서 이 구슬 광명의 체성에서 저 백천 구슬 광명 체성이 낱낱이 다 나타나며, 낱낱의 구슬에도 하나하나 그와 같이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 깨달은 자의 광명 체성도 서로 거듭거듭 함께 나타남(重重互現)이 이와 같다. 그러나 석가나 미륵이나 미타든지 관음이든지 문수든지 보현이든지 각기 자수용삼매自受用三昧에 들면 서로 보지 못하며 서로 알지 못하는데, 이 부사의不思議한 경계境界를 깨치지 못하고 망정과 억견으로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