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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석개재에서 답운치까지(11.04.02. 토)
유난히 더디게 찾아온 봄.
기다리던 봄이 오니 괜스레 마음이 달뜨고 몸이 들썩거립니다.
낙동정맥 구간도 눈이 지켜운 강원도 땅에서
이제 봄기운이 막 돋아오는 경상도로 들어간다.
5회차 산행
○ 일 시 : 2011.4.1 22:00~16:30
○ 구 간 : 석개재~용인등봉~삿갓재~한나무재~진조산~굴전고개~답운치
○ 구간진행시간 생략
3월이면 봄을 기다리고 4월이면 완연한 봄을 기대한다. 그러나 기다림과 기대와는 달리 3월은 여전히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며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그래도 4월인데... 지난구간 보다는 눈의 깊이가 깊지 않을 것으로 예상해본다.
요즘 일어나는 주변 일들은 구제역 여파에 치솟는 물가, 불안정한 중동사태, 일본 대지진 관련 소식까지 이어지면서 ‘봄은 왔으되 봄이 아니다’는 말이 실감나는 나날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기운을 만끽하기엔 나라 안팎의 사정이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지만, 산으로 떠나는 발길은 그만큼 정맥 마루금이 내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이리라.
연속종주인지라 마음을 다잡아본다. 저녁10시 시청후문 집결. 차량2대로 나눠 타고 경부고속도로 건천IC로 빠져나와 7번 국도로 내달린다. 02시20분 답운치에 차량1대를 안전지대에 주차해두고 잠시 쉬었다 스타렉스 밴으로 자리를 옮긴다. 여대원 2명 뒤편자리(짐칸)에 배낭을 등받이로 의존하고 최대한 편안한 포즈를 잡는다.
산천은 어둠이 쫙 깔려 분별이 어렵다. 가끔 오가는 차량 불빛이 비추는 곳만이 잠시 형체를 보이고는 사라진다. 이리저리 자동차 바퀴의 회전은 곡예를 하면서 고갯길을 유유히 빠져 나갈 때 쯤 1조장 뒤 창문을 두드린다. 저녁 식사 준비물을 답운치에 주차해 둔 차에 옮겨야 하는데 그대로 실었다며 차를 돌리자고 한다. 시간상 여유도 없을 뿐 아니라 구불구불 고갯길을 돌아가는 여정이 만만치 않은지라 먹는 것은 일단 접어두고 우리가 오늘 걸어야 하는 긴 산행에 무게를 두어야하고 또 운전에 피곤한 몸을 조금이라 쉬어야 걸을 수 있다는 묵시적인 합의에서 석개재로 계속 나아간다.
06시 석개재. 잔잔한 여명이 고개마루를 살포시 덮고 있는 동쪽 하늘 산마루에 고운님의 눈썹 같은 하현달이 걸려있다. 오늘구간은 석개재에서 답운치까지 약 23.5km로 하루산행거리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중간탈출을 시도한다 해도 첩첩산중 산간오지이므로 그만큼 교통편도 여의치 않으므로 당일로 산행을 마무리한다는 각오로 스틱을 치켜세워 모으고 낙동정맥 종주구호를 대장님 선창으로 힘차게 질러본다. “부산시청산악회 낙동정맥 야!!!“
천리에 달하는 낙동정맥이 강원도 땅을 벗어나 경상도로 접어드는 구간이어서인지 초입에는 잔설이 조금 붙어 있고 북서쪽 사면은 그대로 떡하니 하얀 눈 천국이다. 일단은 발걸음이 가볍다. 길은 폭신하니 그지없이 좋다. 상쾌한 공기에 지저귀는 산새소리 정녕 이 아름다운 곳에 우리가 걸어가고 있다는게 꿈인겨 생시인겨? 임도는 마루금 오른쪽으로 바짝 끼고 나란히 진행되고 있다. 유순하게 이어지는 임도에 얇게 깔려 있는 눈길이라 생각하고 내려선다. 이럴수가... 푹 푹 오른발 왼발 정신없이 빠져들어간다. 순간 생각지도 못한 현상에 정신을 가다듬고 길옆으로 빠져나와 스패츠를 착용하고 길게 펼쳐져 있는 눈밭 길 임도에 도전장을 던진다.
한바탕 눈과의 전쟁을 치루고 나니 힘이 쫙 빠진다. 편편하고 바람불지 않는 곳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몸무게에 비례하는 눈길 걸음은 우리의 무게님을 가로채 버렸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길을 보니 생각과는 일정상 시간이 많이 차이가 나겠다. 힘을 비축해야 난관을 뚫고 나가지 싶어 꾸역꾸역 음식을 입속으로 넘겨본다.
임도는 정맥에서 곁가지를 친 오른쪽 능선을 향해 산허리를 타고 넘는다. 왼쪽으로 마루금을 알리는 표지기가 나풀거린다. 서너 발자국 위가 정맥 마루금이다. 임도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마루금으로 접어든다. 눈 덮인 산죽군락을 넘어서자 정맥은 서서히 묘봉을 향해 고개를 곧추 세우기 시작하고 하늘에는 하얀 가루가 떨어진다. 싸락눈이다. 저 앞 둥그스럼하게 자리를 틀고 있는 묘봉이 시야에 잡히기 시작한다.
남녘의 산하는 온통 싱그러운 연초록 옷을 갈아입은 지 오래건만 이곳 강원도 땅은 아직 동면에서 깨어날 생각도 없나보다. 그만큼 봄이 더디게 오고 있는 것이다. 오름길 연속으로 이어진다. 눈이 녹은 곳에는 얼어붙어 발밑은 자꾸 제자리걸음이다.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 매섭게 얼굴을 할퀴고 지나고 손끝은 아려오지만 눈앞에 펼쳐진 상고대의 장관이 고개 내밀어 첩첩산중 오가는 이 없는 이곳을 찾는 이방인들을 신기하다는 듯 맞이한다.
힘겹게 밋밋한 둔덕을 이룬 작은 봉우리에 올라선다. 오른쪽으로 묘봉이 지척으로 건너다보이고 언뜻 묘봉을 향하여 직진으로 이어질 것 같지만 정맥은 여기서 동쪽 아래로 꺾어지며 방향을 틀고 있다. 아름드리 굵직한 신갈나무 사이로 발걸음을 버티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본다. 유순한 오름길이지만 발밑은 힘겹다. 눈이 가득한 희미한 산길 흔적을 쫓아 이리저리 잡목을 헤치고 올라서니 커다란 헬기장이 있는 묘봉이다.
눈과 한판 승부에 지친 산죽은 완전 패배한 모습으로 고스란히 누워있다. 발을 이리저리 옮겨 보지만 어느 곳이나 푹푹 빠진다. 한바탕 치고 오르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작은 둔덕을 이룬 산봉에 올라선다. 용인등봉이다. 진눈개비가 날리더니 주변은 하얀 도화지다. 유명한 응봉산 용소골로 떨어지는 용의 등날 용인등이다. 오늘은 응봉산의 또 다른 비경을 내어주지 않는다.
정맥이 완만히 내려서더니 움푹 팬 고스락 임도가 나있는 삿갓재에 이른다. "국유림 사용허가지역" 임을 알리는 나무말뚝이 서 있다. 임도는 여기서부터 정맥과 나란히 이어져있다. 마루금을 오른쪽으로 살짝 빗겨가는 임도를 따르기로 한다. 편하게 신나게 걸어 나간다. 임도는 바로 앞 봉 우측 어깨를 휘돌아 다시 마루금과 접하게 된다. 현호씨 마루금으로 올라서더니 잠시 후 휘돌아 만나는 임도로 나타나는 걸로 봐서 마루금이 지름길인 셈이다.
너른 임도길. 점심을 먹기로 한다. 오가는 이 없는 깊고 깊은 산중에서 점심도시락을 펼쳐놓는다. 눈앞에 펼쳐진 하얀 세상을 바라보며 서로 잔을 돌리고 가져온 음식들을 먹어보라 권하고 진행해야 할 길에 대해 의논도하고 지나온 구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 웃음꽃을 피어본다. 넉넉한 점심시간을 마치고 또 발길을 재촉한다.
소광, 석포, 전곡으로 갈라지는 길목을 알리는 표석이 서 있는 임도 삼거리다. 왼쪽이 울진군 서면 소광리 방면이고, 전곡리쪽으로 향하는 임도는 또다시 마루금과 나란히 잇게 되는 길로 양쪽 모두 바리게이트가 가로막고 있다. 어떤 용도로 이 깊은 첩첩산중에 이렇게도 임도가 잘 관리되고 있는 걸까?
이리저리 정맥을 넘나들며 이어지는 임도는 예전 삼척 가곡 쪽의 광산에서 채취한 광물을 철도가 있는 봉화 쪽으로 이송하기 위한 임도였는지, 아니면 울진 쪽의 아름드리 황장목을 운반하던 길이었는지. 오도카니 선 이정표석 뒤로 정맥 표지기가 길을 밝히는 숲으로 접어들어 보지만 눈 범벅에 질려 우리는 임도를 따라 계속 휘돌아간다.
골바람이 휘몰아치면 뒹구는 낙엽들이 한쪽으로 완전 모여드는 임도 안쪽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 빛바랜 정맥 표지기가 길을 밝히는 숲으로 접어든다. 산죽 밭이라 해야 하나 농원이라고 해야 하나 온통 산 전체로 퍼진 조릿대가 성성한 봄을 재촉하고 있다. 저 아래 임도에서 올려다 볼 때 병풍처럼 도열해 있던 암릉을 따르지 않고 오른쪽(서쪽)사면을 타고 우회를 한다. 오늘 산행의 절반지점인 1136봉을 옆으로 지난다.
대형버스도 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넓게 닦여져 있는 임도는 전곡 쪽으로 내려서고 있다. 도로를 가로질러 다시 숲을 파고 올라선다. 왼쪽 아래로 소광리 마을이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 임도와 계곡으로 내려서는 나지막한 안부를 지나고 타다만 고사목 한 그루가 밑동만 남아 정상을 지키고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소나무가 빙 둘러가며 자란 헬기장 흔적을 통과, 밋밋한 능선을 따라 완만한 둔덕을 가뿐하게 오른다. 오른쪽으로 쭉 뻗어 곁가지를 친 능선이 임도 쪽을 향하고 있고 정맥은 정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능선 우측으로 넓은 낙엽송 군락지가 나타난다.
934.5봉. 한나무재로 이어지는 임도가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다음구간 이어야 할 통고산이 뚜렷하게 시야에 잡힐 정도로 전망이 시원한 곳이다. 한 차례 내려선 후 이어지는 가풀막을 힘들게 올라서고 시멘트로 만든 헬기장을 가로지른다. 다시 심한 내리막 경사에 모두 한풀 꺾인 자세로 내려선다. 맨 뒤 사람이 내려올 시점을 기준으로 5분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배낭을 등받이로 하여 벌러덩 눕는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빛받이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누운 자세에서 하늘을 쳐다본다. 나뭇가지 사이 파란 하늘이 더 높게 보인다. 잘생긴 소나무 한그루 그 자태를 뽐내며 가지를 쫙쫙 펼쳐 불어오는 바람을 품안에 감싸 안는다. 우리와 반대쪽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반갑다. 물음을 시작한다. 어디서 오십니까? 답운치요. 몇 시쯤에 출발하셨는지요? 어림잡아 답운치에서 여기까지 3시30분 걸음이란다. 이건 선수 기죽이는 축지법인가. 아무리 계산을 하여도 그리 빨리 올수 있는가? 의문에 사로잡힌다. 그럼 이 곳은 어디메뇨?
조금은 희망을 가지고 가볍게 일어나 걸음을 재촉한다. 한 무리의 인파가 몰려온다. 서로 반갑다는 인사를 나누기 바쁘다. 한분이 우리에게 소식을 전한다. 앞으로 조금 더 가면 멧돼지가 덫에 걸려 있다한다. 상상의 뇌를 펼친다. 크기가 얼마나 클까? 누가 그랬을까? 그럼 인가가 가까이에 있다는 말, 돼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조그마한 돼지면 우리가 잡아가자... 이런 잡다한 생각도 잠시 “꽥~”,“꽥~” 풀어달라고 소리가 조금씩 가까이 들린다. 걸음을 멈춰 소리 나는 곳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려본다. “엄마야, 저게 뭣고? 멧돼지다. 크기가 동막골 영화에서 본 그 장면이 연출된다. 덩치가 어마어마한 게 어찌 저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했을까? 올무에 주둥이가 끼어 발버둥만 치고 있다.
우리의 조과장님 그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리려는데 묶여 있는 돼지가 그대로 덤벼든다. 순간 보고 있는 우린 발걸음이 뒤로 후퇴된다. 오금이 조여 온다. 올무에 묶인 채 얼마나 발버둥을 쳤으면 주변에 흙이 움푹 파헤쳐져 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잔인함에 마음이 아프다. 크기가 상상을 초월한 멧돼지의 무게와 돈을 환산해본다. 저렇게 얼마나 버틸까?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렇다고 풀어 준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질지 모를 뿐 아니라 풀어줄 용기도 방법도 없다. 그냥 발걸음을 돌린다.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가도 가도 한나무재는 나타나지 않고 발걸음은 무거워진다. 차가운 바람 한점 주변을 스쳐 지난다. 구불구불한 오름의 길이 힘겹다. 언뜻 비쳐지는 임도, 신나게 떨어져 내리니 임도가 정맥을 가로지는 한나무재다. 왼쪽은 소광리, 오른쪽은 넓재로 이어지는 길이다.
된비알을 치고 오른다. 방치된 헬기장 하나를 지나친다. 또 하나의 헬기장 더 지나친다. 올라서야 할 진조산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진조산(眞鳥山) 오름길. 산 이름이 진조(眞鳥)라서 인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보이지 않는 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맑게 한다. 아니 분명 새는 몸을 숨기지 않았건만 우리는 그 새를 보지 못한다. 산과 산속의 모든 것은 나를 향해 열려있건만 그 속에 들어 제대로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하는 어리석음! 그저 정맥의 산길 따라잡기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 문득 측은해지기까지 한다. 언제쯤이면 산을 제대로 느끼고, 산과 함께 호흡하며 그 산을 닮아 갈 수 있을는지?
헤드랜턴을 밝힌다. 굴전고개를 지나서도 길은 계속되는 내리막이다. 일반적인 고개의 개념인 잘록이 라기 보다는 그저 산허리를 넘어서는 산간임도인 셈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산자락에 붙게 되면 길 왼쪽으로 돌담이 가지런히 쌓여있고 잣나무조림지 평탄한 길이 이어지고 적송도 눈에 띈다.
잠시 내려서는 지점 왼쪽으로 거대한 낙엽송 조림지의 나무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다. 작고 완만한 산봉 두어 개를 더 넘어서자 바로 앞으로 송전탑이 건너다보이더니 이내 송전탑용 작업도로로 내려서고 송전탑을 지난다. 저 앞으로 36번 도로가 관통하는 답운치 고개가 어림된다. 주변은 어두워지고 차량의 불빛으로 감을 잡는다. 송전탑을 지나자 가파른 내리막이 시작되더니 곧 키를 넘는 산죽군락이 마루금을 덮고 있다. 배수로 홈통같이 패인 능선 길을 구르듯 내려서니 캄캄한 답운치에 도착한다.
남자대원 3명을 답운치에 남겨두고 통고산자연휴양림으로 자가용을 움직인다. 휴양림안내소에서 예약된 물푸레나무, 층층나무 방 키를 건네받고 희미한 가로등 불빛을 따라 휴양관으로 오른다. 늦은 시간 이방인들을 반기는 환한 불빛이 반갑다. 끝과 끝으로 나눠줘 있는 방 배치. 연락을 자주해야 하는 반경이 조금은 멀지만 그나마 쉴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휴양림에 인원을 내려주고 조과장님 답운치 남은 대원들과 석개재 차량회수를 위해 그대로 내달린다.
방을 배치 받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점. 손과 발만 씻고 자리에 누워 대원들 오기를 기다린다. 얼마쯤 지났을까? 인기척에 눈과 몸이 동시에 일으킨다. 시간은 자정을 가리키고 있다. 무거운 몸을 다시 일으켜 달콤하고 컬컬한 소주 반에 고기 반으로 고픈 배를 채운다. 끝.
첫댓글 산행기를 읽으니 종주 산행의 만족, 고달픔과 애환 등을 몸으로 느껴집니다. 즐겁고 안전한 산행으로 완주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