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요양원 / 김복순
푸른 물감을 칠하고 있는 들판과 마른가지에서 피어나는 꽃들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소생을 보여주는 봄은 희망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계절이다. 돌아온 꽃들을 바라보면서 지나간 나의 시절을 돌아본다. 나는 지금 생의 어느 계절쯤에 서 있는 것인지를 나에게 물어보는 시간, 언제부턴가 앞으로 살아갈 날 보다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며 회한에 젖는 날이 많아졌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타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겨지고 있는지? 이런 생각들은 고심하고 힘들어 하던 것들이 별일 아니었음을 깨닫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일까? 실행하지 못했던 것들이 앙금처럼 가슴 밑바닥에 가라 앉아 있다가 마음을 희뿌옇게 흐려 놓기도 한다. 내 머리에 내리기 시작한 서리를 감추느라 염색을 시작하면서 깨달음이 많아 진 것 같다. 자녀들을 출가 시킨다는 친구들의 청첩장이 바쁘게 날아든다. 벌써 할머니가 되어 스마트폰에 손주들 사진을 담아 다니며 자랑하는 친구들도 늘어간다. 그들의 모습에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읽는다.
지난여름 친정어머니가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간에 약봉지를 달고 병원 문지방이 제 집 인양 드나들었지만 정신 줄을 놓고 장기간 병원신세를 지게 된 건 처음이라 우리 형제들의 입에선 요양병원 얘기가 오르내렸다. 그 동안 부모님의 노환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을 해보지를 않았다. 두 분 다 건강이 좋지 않는데도 지금의 무탈한 그 모습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유지 될 것처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몸의 기본적인 움직임마저 간병인에게 의탁해야 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요양병원에 대해 생각하고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요즘은 자고 나면 늘어간다는 교회보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느는 것이 요양병원이라고 한다.
큼지막한 간판에 孝자를 쿡쿡 눌러 쓴 간판은 멀리서도 쉽게 찾을 수가 있다. 산부인과 병원이 사라지고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돋보이는 요양병원이다. 우리나라도 복지국가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쓴 약이 목에 걸린 듯 씁쓸한 신물이 가슴속에서 올라오기도 한다. 백세시대라고들 말한다. 팔순이 넘은 노인들도 자녀와 같이 사는 분들 보다 혼자 지내는 분들이 더 많다. 내 부모님도 그렇다. 나도 그렇게 될 것이다. 혼기를 앞둔 아이들이 제 둥지를 만들어 떠나면 알맹이 쏙 빠진 껍질 속에서 아이들이 주었던 웃음과 희망을 꺼내 보면서 살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자식을 보험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식들의 장래만큼 자신들의 노후도 걱정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불과 십년 전만 해도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모시느라 힘들어 하는 이웃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때는 자식 된 도리를 저버리지는 않았다. 요즘은 주위에서 너무 쉽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보내버린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집에서 모실 수 있는데도 쉽게 요양원에 보내버리는 경우도 많이 본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불효자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내 몸에서도 관절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난다. 내가 지금 이렇게 바쁘게 열심히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내 몸이 고장 나면 나도 요양병원으로 보내질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하고, 내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이 할 수 있는 단계인데도 무조건 시설에 의존한다는 것은 깊이 생각 해 볼 문제 같다. 자식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외면해 버리고 시설에 맡겨버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어버이들이지 않는가?
이웃의 팔순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많은 재산을 나눠 주었다. 미국 유학까지 마친 자식들도 있다. 그 덕택에 부유하게 살고 있지만 요양원에 보내졌다. 감옥 같은 요양원이 싫다고 했다. 음식도 입에 맞지 않고, 자식들이 면회를 와야만 외출을 할 수 있다며 돈이 있어도 쓸 일이 없다 한다. 주름진 미간 사이로 눈물을 보인다. 거동은 할 수 있으니 집에 있어도 되는데 혼자 두기 불안하고 자식들이 불편하여 그런 것이라고 하며 웬만하면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내지 말라고 일러준다. 나도 내 부모님이 수족이 불편하게 되면 그렇게 할 것 같아서 많이 슬프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 가정의 일인데 사회와 시설에 맡겨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힘들어 하는 아버지를 생각해서 요양병원에 한 달이라도 계셔 보라고 했더니 어머니는 너나 가라며 화를 내고 서운해 하신다. 거동은 불편하지만 정신은 맑아서 속이 많이 언짢으신 모양이다. 너나 가라며 아침마다 전화에 화풀이를 하는 어머니에게 죄송스럽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다. 제사 때나 가면 뭣하나? 살아생전 한번이라도 더 찾아봐야지 하는 때늦은 결심을 하면서도 내 살기 바빠서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내 몸도 벌써 이곳저곳에서 적신호가 온다. 엊그제는 할머니들이 신는 납작한 구두를 샀다. 아직까지도 나는 높은 구두를 좋아해서 외출 할 때면 하이힐을 신었는데 요즘 들어 발이 불편하고 힘이 든다. 단화를 신기 시작하면 이제 하이힐과는 영영 이별일 것만 같아 신고 다녔는데 벌써 내 머리도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계단을 오를 때 무릎 관절이 힘들어 하는 걸 보면 나도 노인대열에 포함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일까?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면 내가 절실하게 꿈꿔오던 것들, 마음속에 접어두고 살았던 것들이 후회되어 밀려올 때가 있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내 생의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질 때면 일 분 일초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겠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모두 제 자리에 두고 갈 것이라는 생각마저 해본다. 어느 자리에서 멈출지 모르지만 옷 한 벌이면 족 할 것이다. 어느 가수의 ‘꽃마중’이란 노래를 들으면 또 슬프다. 고려장을 하러가는 아들의 지게에 앉아 행여 아들이 내려갈 길을 잃을 까봐 솔가지를 꺾어 표시를 하는 어머니의 모성이 애달프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요양원을 묶어보면서 효의 근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식도리인지를 헤아려본다. 내안의 불효부터 점검해본다.
김복순: 문학광장 등단, 문학광장 문인협회 회원, 평택 문인협회 회원 , 가곡작사[너와 나의 거리]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