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좋다는 느낌
김승일
부원장님이 머리를 다 자르고 길이가 어떠냐고 묻고 좋아요
샴푸하시고 더 봐 드릴게요 좋아요 부원장님의 조수는 내 머리
를 적시며 물 온도 어떠세요 좋아요 압은 어떠세요 좋아요 왜
웃으세요 아내와 극장에 가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불이 나면
도망가야 되면 비상구는 여기, 여기, 여기, 여기에 있습니다 아
내는 항상 결정한다 저 출구로 도망가자 좋아 그러자 저 문이
제일 가까워 좋아 그러자 왜 웃는 거야 집에 오면 고양이가 나
를 반긴다 어디에 갔다가 왔어 네가 좋아 다녀왔으면 간식을
줘야지 나는 네게 간식을 주는 게 좋아 영화는 어땠어 좋았어
왜 좋았어 집에 오면 네가 있으니까 날씨는 어땠어 좋았어 오
늘 만난 사람들은 어땠어 좋았어 왜 웃는 거야
사랑하는 것이 죽을병에 걸리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있어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버리고 그거 알아? 사랑하는 것이
죽어갈 때 떠난 여행에서는 좋은 게 별로 없어 내가 입은 옷은
날씨에 어울리지 않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체가 절단당한
채로 살고 있는지 목격하게 되지 엄지손가락이나 팔이나 다리
같은 거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사랑하는 것이 죽지 않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돋아나지 않을 것들을 목격하면서 가
끔은 자기 자신의 옷이나 신체를 잃어버리기도 하면서 밤에는
일기를 쓰는 거야
그런 여행 중에는 웃지 않아 신체를 잃어버려도 웃지 않지
일기를 쓰는 동안에도 내가 쓴 일기가 마음에 들어도
계속 여행을 다닐 수는 없어서 사랑하는 것이 죽었는지 아닌
지 알지 못한 채로
돌아와서 문 앞에 서서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는 거야 가끔
이런 일이 생기곤 해 맞지 않는 열쇠를 구멍에 넣고 빙빙 돌리
는데 잘 돌아가지 않는데, 이 열쇠가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데 그런데도 힘을 잔뜩 줘서 열쇠를 돌리는 거야 열쇠가
휘어버리고 빙빙 돌아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해결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열쇠가 뚝 끊겨버리고, 토막 난 톱니 부분이 열쇠 구멍에서
빠지지 않고 잠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 거야
네가 이미 죽었는지 어떤지도 열쇠공을 불러야 하는지 아닌
지도
그는 얼마나 오래 문 앞에 서 있을까? 내가 아는 것은 그가
여행에서 돌아왔다는 거야 열리지 않는 문을 두고 다시 여행을
떠나지는 않을 거라는 거야 내가 신이라면 그래서 천국이나 지
옥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다면 나직하게 중얼거릴 거야
좋겠다
하지만 나는 신이 아니지
신에 가깝지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