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이른은 목(穆)이요 시호(諡號)는 문충공(文忠公)이다. 고려 인종때 통훈대부로 삼가현감(三嘉縣監)을
지내시고 이자겸(李資謙)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르고 평란공신(平亂功臣)으로 공신축(功臣軸)을 하사 받으시고 가수군(嘉樹君, 경남 합천군에 있었던 신라와 고려시대의 지명)과 함풍군(咸豊君. 현,咸平)에 봉(封)해졌다.
이후 함평(咸平)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다. 오랜 세월의 거듭과 변천으로 소홀히 해 궐향(闕享:제사를 지내지 아나함)해 오다가 1987년 묘역을 단장하고 갖추었으며 위토 답도 마련하여 묘비도 세워 양력 8월 15일 처음으로 제사를 올리니 경향 각지에서 600여분의 자손들이 참배하여 시조(始祖)에 대한 숭모(崇慕)와 음덕(蔭德)이 있었다. 이어 2003년에는 묘역을 넓히고 갖추었으며 2007년에는 묘를 더 크게 사토(莎土)하였다.
제사는 매년 음력 2월 그믐날 모셔 오다가 2008년 부터는 양력 3월 네째주 토요일에 모시고 있다. 한편 불행하게도 시조(始祖)의 일대기는 실전(失傳)되어 자세히 전해 오는 것은 없으나 다행히 후세들의 여러 문헌과 서울대학교 규장각등에서 자료를 찾아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고려통일대전에 모실수가 있었다.
함평노씨 시조 문하시중(門下侍中) 문충공(文忠公) 목자(穆字) 할아버지의 윗 줄기는 강화노씨(江華魯氏) 세거 해동록(世居海東錄)에 동정공(東政公) 노 계(魯 啓)를 시조로 43세(世)이시니 강화 노씨에서 분관(分貫)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시조의 묘는 옛 삼가북면(三嘉北面) 시죽전(矢竹田) 좌좌원(左坐原)이라 기록 되어 있으며 현재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성리 산 81번지 마을뒤 장엄한 악견산(岳堅山)기슭에 자손만대의 명당에 남향으로 내외분 쌍분으로 모셔져 있다. 한편 묘역 암석에는 가수군 노공 유적지(嘉樹君 魯公 遺跡地)와 독락대(獨樂臺)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사당(祠堂)은 나주시 문평면 거평사(居平祠)와 무안군 해제면 학산사(鶴山祠), 영암군 서호면 관봉사(冠峯祠) 그리고 경기도 파주시 고려통일대전(高麗統一大殿)에 배향(配享)되어 있다.
- 본 자료의 원고는 진사공파 29세손 노점석님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첫댓글 사진은 지난 3월 28일 노목시조님의 묘소에 참배드렸던 사진이군요~!! 모두 선남선녀 종친이십니다~존경스럽습니다~ 함께하 수 있어서 정말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