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정서와 소나무
글 / 이동섭 (상주대학교 산림자원학과 교수)
우리 민족은 ‘소나무 아래에서 태어나 소나무와 더불어 살다가 소나무 그늘에서 죽는다’라고 할 정도로 소나무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관을 맺고 있다. 소나무는 우리 생활에 물질적,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일본이 조엽수림(照葉樹林) 문화, 유럽이 자작나무 문화라 한다면 우리나라는 소나무 문화라고 하겠다.
소나무는 솔과 나무가 합쳐진 솔나무에서 ㄹ이 탈락된 말이다. 솔은 나무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수리 〉 술 〉 솔로 변천한 형태이다.
소나무는 한민족의 나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전국의 산야에 가장 많이 분포해 있다. 그러면서 한민족이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나무이다. 일상생활을 통해서 가장 많이 접하는 공간이 집이요 정원이다. 우리의 전통가옥은 소나무로 지었으며 정원에 심어진 여러 종류의 나무 중에서 빼놓지 않는 것이 소나무이다. 한때는 향나무가 으뜸자리를 차지한 적도 있었지만 근래에는 소나무가 조경수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무덤을 보호하고 장식하는 나무 역시 도래솔이라 하여 또한 소나무가 아닌가?
우리 민족은 ‘소나무 아래에서 태어나 소나무와 더불어 살다가 소나무 그늘에서 죽는다’라고 할 정도로 소나무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관을 맺고 있다. 따라서 일본이 조엽수림(照葉樹林) 문화, 유럽이 자작나무 문화라 한다면 우리나라는 소나무 문화라고 하겠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에, 아니 소나무가 지닌 특성에 자석처럼 이끌리고 상합하는 일치점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한국인의 심성에 닿아 있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소나무는 성주신, 동신, 수호신이다
성주는 가신(家神) 중에서 집을 관장하는 최고의 신이다. 성주풀이는 집안의 안전과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성주받이의 성줏거리에서 그 집의 대주(垈主 가족의 대표되는 남자주인)로 하여금 성줏대를 잡게 하여 성주를 내려 좌정시키는 절차가 있다. 이때 잡는 성줏대는 소나무 가지이다. 이것은 집을 지은 나무의 상징이며 성주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 민속에서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목은 대부분 소나무였다. 마을 전체의 수호신 역할을 소나무가 한 셈이다. 산에 있는 산신당의 경우에는 예외 없이 소나무였다. 이처럼 소나무는 신성한 나무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신이 내릴 때는 높은 소나무 줄기를 타고 내린다고 믿었다. 그래서 ?G장자?H에는 하늘에서 받은 본성을 지켜 땅 위에 홀로 겨울이나 여름에 푸르러 있는 것은 소나무와 잣나무뿐이라고 했다. 소나무는 하늘에서 받은 본성을 그대로 보전하기 때문에 스스로 믿어 두려워하지 않는다. 신목으로서의 소나무는 신성수(神聖樹)이므로 함부로 손을 대거나 부정한 행위를 하면 재앙을 입는다고 믿었다.
소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이다
새해 덕담으로 보통 수복강녕(壽福康寧)을 든다. 첫째가 오래 사는 일이다. 소나무는 장수하는 나무이다. 예부터 십장생(十長生)이라 하여 해, 산, 물, 돌, 구름,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등과 함께 소나무를 장수를 상징하는 나무로 삼았다. 그리고 옛날에 신부는 소나무 가지 위에 볏이 붉은 단학 한 쌍이 다정하게 기대어 있는 수를 놓아 신방을 장식했다. 병풍에도 십장생을 그려서 가까이 한 것은 모두가 돈독한 사랑과 오래 살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오랜 세월을 전제한 풍치수 정원수로서의 소나무는 묵을수록 그 진가를 보여준다. 조선시대의 민화, 청화백자, 화각 장식에는 십장생으로서의 소나무가 많이 그려졌었다. 특히 민화 속에 나오는 소나무는 도교적 불로장생(不老長生) 사상과 어울려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집을 짓는 주요 자재(춘양목, 황장목)로서 소나무는 천년을 간다고 했으니 장수하는 나무임에 틀림없다.
소나무는 절개와 지조의 나무이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우리의 애국가에도 소나무가 나온다. 모진 비바람과 눈서리가 휘몰아치는 자연의 역경을 이겨내고 항상 푸른빛을 띠는 소나무의 기상은 굳은 절개와 의지를 상징한다. 난관을 극복하는 강인한 의지와 씩씩한 기상을 소나무를 통해 볼 수 있다.
우리의 전통혼례상에는 소나무와 대나무를 꽂아놓는데 이것은 신랑과 신부가 소나무와 대나무처럼 굳은 절개를 지키라는 뜻이다. 흔히 송죽 같은 절개, 송백 같은 절개라고 할 때 그것은 절개와 지조를 일컬음에랴. 그래서 소나무를 초목의 군자라고 일컫지 않던가. 이러한 연유로 선인들은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소나무, 매화나무, 대나무를 들었으며 ?G논어?H에서도 ‘날씨가 추워진 뒤에라야 송백(松柏)이 시들지 않음을 안다.’고 하였다.
소나무는 엄동설한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잘 견디기 때문에 늘 푸름과 싱싱한 기상을 지녀서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했다. 송학문호의 소나무나 자경전 외벽담의 소나무도 그렇지만 추사 김정희의 ?E세한도?F에 나오는 소나무는 소나무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걸작품으로 평가되지 않던가? 무엇보다 우리 산수화의 대부분이 소나무를 그리고 있음은 자연의 역경 속에서도 항시 푸름을 간직하고 꿋꿋한 절개와 굳은 의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윤선도는 ?E오우가(五友歌)?F에서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하고 거기에 달을 더하였다.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난다/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은 글로 하여 아노라.”고 읊었으며, 성삼문은 충절의 노래로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고 읊었다. 또 송이는 시조로 “솔이 솔이라 하니, 무슨 솔만 여기난다./천심 절벽에 낙락장송 내 긔로다./ 길 아래 초동의 접낫이야 걸어 볼 줄 있으랴.”라고 노래했다. 이처럼 문학에 있어서 소나무는 절조, 절개, 절의, 의지, 충신으로 유교적 덕목을 상징하는 나무로 그려졌다.
소나무는 액막이와 정화의 나무이다
우리의 세시풍속에는 소나무와 관련된 것이 많다. 정월대보름 전후에 소나무 가지를 문에 걸어놓는다. 이는 잡귀와 부정을 막기 위해서다. 동지 때 팥죽을 쑤어 삼신과 성주에게 빌고 병을 막기 위해 솔잎에 팥죽을 묻혀 사방에 뿌린다. 액막이를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출산 때나 장 담글 때 치는 금줄에 숯, 고추, 백지, 솔가지 등을 끼워놓는데 이것들도 잡귀와 부정을 막기 위함이다. 아기가 아플 때 삼신할머니께 빌기 전에 바가지에 맑은 냉수를 떠서 솔잎에 적셔 방안 네 귀퉁이에 뿌린다. 이것은 소나무가 제의나 의례 때 부정을 물리치는 도구로서, 제의 공간을 정화하고 청정하게 하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홍만선의 ?G산림경제?H에서도 집 둘레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으면 생기가 돌고 속기(俗氣)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다.
소나무는 신이(神異)한 신화, 전승의 나무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소나무는 요정 피티스의 화신이라고 한다. 그녀는 목신 판과 북풍의 신 보레아스에게서 동시에 사랑을 받는다. 그런데 판의 사랑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보레아스의 바람에 날려가고 말았다. 이를 불쌍히 여긴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 의해 소나무로 되었고 한편으론 판을 피하기 위해 변신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이스트미아제에서는 승리의 상징으로서 소나무 가지로 만든 고리를 증여하였으며, 로마인은 산림과 황무지의 신 실바누스의 나무라고 보았다. 소나무는 미국에 이주한 청교도들의 표장(標章)이었으며 소나무를 각인한 소나무화폐(pine tree money)를 주조하였다.
우리나라에도 신이한 설화가 있다. 이미 잘 알려진 속리산 법주사 입구의 정이품송은 세조가 행차할 때 가지를 올려 연(輦)이 무사히 지나가게 되어 하사받은 벼슬이며, 강원도 영월 장릉 주위에 있는 소나무들은 모두 장릉을 향해 굽어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읍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억울한 단종의 죽음을 애도하고 충절을 나타낸 것이라고 전한다. 강릉의 향토지인 ?G임영지(臨瀛誌)?H에는 임진왜란 때 대관령 산신(김유신 장군 신)이 팔송정의 소나무를 노적가리와 군사들의 무리로 보이게 하여 왜적을 퇴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소나무는 풍류, 풍치의 나무이다
소나무는 살고 있는 곳에 따라 보는 이의 운치를 다르게 한다. 기암괴석이 첩첩이 쌓인 바위틈에 자란 소나무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며 쭉쭉 뻗어 오른 군집의 소나무는 싱싱한 기개를 만끽케 한다. 그런가하면 굽고 휘고 비틀어진 나무를 보면 고뇌하는 모습과 함께 고상한 멋이 느껴진다.
소나무는 온몸으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갈라진 붉은 비늘은 고아한 운치를 더해 주어서 사진작가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소나무숲에 바람이라도 일양이면 솔 소리는 청아한 가락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쓸어준다. 솔가지는 춤추듯 너울거리고 풍류와 풍치를 더해 준다. 두보는 “물 건너 성긴 소나무에서 피리소리가 난다”고 하였는데 솔 소리를 피리소리로 환치시킨 청각적 이미지가 새롭다. 가지가 축 늘어지고 키가 큰 소나무를 일컫는 낙락장송(落落長松)이나 구름의 그림자와 파도소리라는 뜻을 지닌 운영도성(雲影濤聲)이란 말도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의 그림자를 형용한 말이니 모두가 소나무의 풍치를 이르는 것이다. 김동리는 ?E송찬(松讚)?F이라는 글에서 “오오 솔이여, 솔은 진실로 좋은 나무, 백목지장(百木之長)이요, 만수지왕(萬樹之王)이라 하리니 이 위에 또 다시 무슨 말을 더 하겠는고.”라고 하였다. 이처럼 소나무는 동신목으로, 수호신으로서, 장수하는 나무로서, 절개와 지조의 나무로서, 액막이와 정화의 나무로서, 신이한 신화 전승의 나무로서, 풍류와 풍치의 나무로서 한국인의 정서에 닿아 있다. 즉 수호, 장생, 지조, 절개, 기상, 탈속, 정화, 명당, 풍류를 상징하는 나무로서 한국인의 정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에는 민족과 함께 수난 받은 나무(소나무 기름을 채취하기 위해 관솔을 따고 밑둥치에 V자로 상처를 입혔다.)였으며 배고픈 시대에는 송기를 꺾어먹으며 허기를 달랬으니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나무였다.
친근하면서도 낯선, 저 진귀한 나무에게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신세지고 있다.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관해 사유하는 철학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무에 관한 사색을 공들여 길어올린 로베르 뒤마의 저서(나무의 철학)는 모든 형태의 인간중심주의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서 자연주의의 오솔길 저편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나무이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소나무의 철학론을 정립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