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는 훨씬 넓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푸스팬의 집’ 원장 몰리 펭기파람반 수녀의 첫 마디였다.
푸스팬의 집은 성모자헌 애덕의 도미니꼬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여자 아이들을 위한 그룹 홈(Group Home)이다. 1988년 인도에서 수녀회에 입회해 가톨릭계 중학교 영어교사로 근무하던 몰리 수녀가 선교사로 처음 한국 땅에 발을 디딘 건 지난 2000년이었다. 지금은 푸스팬의 집 원장을 맡아 어느덧 부모에게 버림받은 여자 아이들의 어머니이자 선생님이 되어 있다.
아직 이름이 생소한 푸스팬의 집은 성모자헌 애덕의 도미니꼬 수녀회 창립자인 프랑스의 마리 푸스팬(Marie Poussepin) 수녀의 이름을 따 2008년 9월 문을 열었다. 문을 열었다고 하지만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회복지시설들과는 모습부터 다르다. 경기도 부천 역곡동 주택가에 자리한 평범한 빌라가 푸스팬의 집이다. 푸스팬의 집 현관문에는 ‘천주교 교우의 집’이라는 교패만 붙어 있어 일반 신자 가정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푸스팬의 집에서 생활하는 여자 아이들은 영유아 시기에 부모의 이혼, 방임, 학대, 빈곤, 유기 등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으로 엄마, 아빠의 얼굴조차 제대로 모른 채 자라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하루 세 끼를 못 먹는 것만이 가난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가난보다 보이지 않는 가난, 마음의 가난이 더욱 큰 가난입니다.”
몰리 수녀는 푸스팬의 집 아이들을 단란한 가정의 아이들 못지않게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 위해 종교 기관과 시민단체 등에 후원 요청을 다닌다. 도움을 주는 이들이 적지 않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못해도 물질의 작은 축복도 누린다.
푸스팬의 집 아이들을 딱하게 여긴 후원자들은 몰리 수녀에게 “아이들에게 맛있는 거 사주세요. 예쁜 옷 입혀주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아이들이 뼛속 깊이 느끼는 ‘마음의 가난’을 공감하고 채워주는 모습이다. 아직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마음의 가난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다.
“제가 한국에 와서 1년에 놀라는 때가 두 번 있어요. 바로 설과 추석입니다. 한국이 인도처럼 큰 나라는 아니어서 자식들이 부모를 찾아가기가 수월하다고 해도 명절만 되면 민족 대이동을 하는 모습은 놀랍습니다.”
몰리 수녀가 명절마다 놀라는 이유는 푸스팬의 집 아이들은 명절에 갈 곳도 없고 찾아오는 이들의 발걸음도 뚝 끊기기 때문이다. 그는 “명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묻는 말에 눈물만 흘려야 하는 아이들보다 더 가난한 모습은 없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푸스팬의 집 아이들이 학교에서 감내해야 하는 소외감도 물질적 가난을 초월한 영적 가난의 실체다.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과 푸스팬의 집 아이가 같은 반이라는 사실을 알면 집단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어머니 역할을 하는 제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바로 찾아가 아이가 상처 받지 않게 조용히 해결하곤 합니다.”
푸스팬의 집 원장으로서 몰리 수녀가 한시도 잊지 않고 노심초사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아이들의 부모를 찾아주는 일이다. 푸스팬의 집 아이들은 모두 엄마 아빠가 있다. 어디 있는지 모르고 소식이 닿지 않을 뿐이다.
“아이들의 부모를 찾는 데는 몇 년씩 적잖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부모가 만나 다시 가정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마음의 가난에서 벗어나는 확실한 길이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부모를 찾아주려고 갖은 고생을 다합니다.”
몰리 수녀는 사회복지 사업에 힘을 기울이는 한국교회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복지시설 건물을 짓고 물질적 후원을 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레지오나 빈첸시오회 단원만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신자라면 누구나 마음의 가난, 보이지 않는 가난을 겪는 이들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문의 032-674-0545 푸스팬의 집
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댓글
검색 옵션 선택상자
댓글내용선택됨
옵션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