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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타이베이 훌리 스토리
자랑스런 훌리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여행을 끝으로 대학생 신분으로 배낭여행을 가는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복잡했습니다.
군대도 다녀오고 이젠 20대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는 몸이라 그런가 봅니다.
타이완으로 가는 저가 항공사는 없는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마일리지로 공짜로 가는거라 크게 상관없이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했습니다.
타이베이로 향하면서 가슴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인 여행기에 앞서, 타이완에 대해 잘 모르는 훌리들을 위해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몇 초간 살짝 흔든 국기가 외교정세까지 뒤흔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
김태희보다 이쁘다며 훌리들의 마음을 훔쳐간 쯔위가 자기 나라 국기를 흔들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문제가 커졌을까요?
이번 일을 이해하기 위해 정원사가 되어 식물원에서 식물을 가꾸며 남은 여생을 보냈던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11년 국부 쑨원이 이끈 신해혁명으로 마지막 황제 푸이가 쫓겨나고 청나라는 멸망합니다.
이어서 아시아 최초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탄생합니다.
당시 푸이의 스승이었던 영국인 존스턴은 ‘자금성의 황혼’이란 책으로 청나라의 최후를 생생하게 글로 남깁니다.
(돤치루이) (장개석과 모택동)
하지만 대륙 곳곳에 군벌이 난립하여 중국 대륙은 혼란스러웠고,
이에 쑨원은 소련과 연대하고 공산당을 포용함으로써 제1차 국공합작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그렇게 중화민국 내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은 경쟁과 협력을 함께하며 군벌과 싸웁니다.
(일본제국의 국민들에겐 천황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만 해도 장개석의 중화민국은
승전국이자 UN 5대 상임이사국중 하나로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이후 국민당과 공산당은 중국의 앞날을 논의하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1947년 내전이 시작됩니다.
당시 부패와 군기 문란으로 군사력이 공산당 세력과 대등하지 못했고 민심까지 떠나자,
결국 1949년 12월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으로 완전히 쫓겨납니다.
1949년 베이징 천안문에서 모택동은 중국의 새로운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합니다.
이후 섬으로 밀려난 중화민국은 점차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갑니다.
1971년 UN은 당시 중화민국이 갖고 있던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와
중국을 대표하는 권한을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넘기기로 결정합니다.
헤게모니 법칙 앞에서는 영원한 적은 없습니다.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이제 타이완은 더 이상 국제무대에서 국가가 아니게 됩니다.
이후 타이완은 국제 행사에서 자신들의 국기인 청천백일기를 쓰지 못하고
국화인 매화 문양을 깃발에 그려 사용하고 있습니다.
2012년 런던에 결려있던 청천백일기는 하루가 되지 않아 철거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 사건에 분노한 타이완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몬테비오 협약을 만족하지만,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서운함을 게양대를 찾아 국기를 들거나 인증샷을 찍어 달래기도 했답니다.
이런 세계 흐름속에서 타이완의 든든한 친구였던 일본은 큰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중화민국이란 말을 사용하지 못하고 ‘중화대북’(Chinese Taipei)이라는 명칭을 쓰게 됩니다.
즉 'China'라는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독점하게 됩니다.
(장개석과 박정희)
타이완에게 단교 쓰나미가 밀어 닥치기 전, 한국과 타이완은 아주 긴밀한 사이였습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정처 없이 떠돌던 대한민국에게는 유일한 후원자로 장개석의 중화민국이 있었고
한국전쟁 당시, 반공전선의 최후의 보루로 혈맹을 다짐하며 어려운 시기를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1992년 한국은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아래 타이완과의 단교를 결정합니다.
(1992년 8월 24일 서울 명동 대사관 직원들이 청천백일기를 내리고 있다.)
옛 친구를 소중히 하겠다는 노태우 대통령의 말과 함께, 타이완은 우리들 기억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이번 쯔위 사태는 타이완 대선과 맞물리면서 겉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되었습니다.
친중 노선을 탔던 마잉주 총통은 비교적 양안관계를 잘 유지하며 중국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타이완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 후보 '차이잉원'이 당선되면서,
쯔위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쯔위가 사과한 일에 대한 반발 여론이 독립을 추구하는 지지자들을 자극했다는 겁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차이잉원과 쯔위를 모르는 타이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실 타이완 혐한류 시위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양수쥔 선수가 실격패 당하면서 발생되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타이완 미디어의 거친 발언들이 한몫했다고 합니다.
현재 중국은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 문제로 가뜩이나 시끄러운데,
지리적으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인 타이완에 친일, 친미, 그리고 독립을 추구하는 정당이
총통 선거에서 승리하니 심기가 불편할 것입니다.
게스트하우스는 시먼띵 거리 근처에 있었습니다.
시먼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눈앞에 시먼홍러우란 건물이 보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지어진 타이베이 최초의 극장입니다.
이 건물 말고도 타이완 곳곳에서 일본제국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명동과 비슷한 시먼띵입니다.
일본인, 한국인 관광객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롱샨쓰로 향했습니다.
타이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품은 사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피해 사원에 모여들은 주민들에게 많은 모기 떼가 나타나 극성을 부리자
주민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날 밤, 미군 폭격기가 롱샨쓰에 폭탄을 퍼부었고 마을사람들은 무사했다고 합니다.
불교와 도교가 조화를 이루는 사원이 정말 신기하고 멋있었습니다.
원숭이 해를 맞이해 원숭이 전등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원내에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간절히해야 이루어지니까요.
롱샨쓰를 구경하고 바로 옆에 있는 화시찌에예스라는 야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거기서 '삥랑'이란 친구를 만났습니다.
석회가루와 함께 씹으며, 각성과 약간의 환각증상이 있다고 합니다.
'삥랑미인'이라 불리는 상인이 야한 옷차림으로 손님을 유혹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심에서는 그냥 평범한 옷차림에 파는 상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좀 멀리 시골로 내려가보니 정말로 야한 옷을 입고 삥랑을 파는 상인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구강암의 원인이고 체내에서 배출되지 않는 성분이 있으니 되도록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ㅎㅎ;;
화시찌에예스 거리입니다.
이곳은 다른 야시장과 달리 뱀이나 자라 같은 동물로 보양식을 파는 식당들이 많이 있습니다.
살면서 처음 본 사탕수수를 하나 사서 먹어봤습니다.
정말 달콤하고 맛있었지만, 단물만 먹고 찌꺼기는 뱉어야 해서 좀 더럽게 먹었습니다.
타이완 편의점에 가면 항상 간장에 삶은 달걀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편의점에 들어가면 이상한 냄새와 습기가 많아 좀 불쾌했습니다.
타이완 야시장 곳곳에는 이런 옛날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시장을 찾은 어린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정겨움이 있었습니다.
음식명은 잘 모르겠지만, 흰팥죽?에 밀가루 튀김을 넣어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굉장히 달아서 많이 먹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쫑즈
우리나라 국화빵이나 붕어빵처럼 타이완 야시장에 가면 이걸 만들어 파는 상인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안에 들어가는 밭, 크림, 타로 등등 선택할 수 있었고, 저는 그중 타로를 선택해 먹었습니다.
꿀맛 ㅇㅈ? ㅇㅇㅈ!
저는 다시 시먼띵으로 돌아왔습니다.
영화의 거리답게 영화를 홍보하는 포스터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거리의 예술가
처음으로 하프 연주를 들었습니다.
시먼띵 거리를 거닐고 있었는데 갑자기 노점상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알고보니 시먼띵 거리에서 노점은 불법이라 단속이 떴다하면 구석으로 도망가는 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영등포, 강남 노점상들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아쫑미엔시엔'이란 음식점입니다.
앉아서 먹을 자리가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리 곳곳에 서서 먹고 있었습니다.
실수로 사진을 지워버려 인증샷을 올리지 못하게 됐습니다. ㅠㅠ;;
처음으로 국수를 숟가락으로 퍼먹었습니다. 곱창 국수? 같습니다.
시먼홍러우 뒤편에는 술집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다음날 아침까지 안하고 새벽 1시까지 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맥주 한잔 하려고 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국뽕 상점이 보였습니다.
다시는 대한민국을 무시하지마라!
숙소 근처 거리
숙소로 돌아와 타이완 맥주와 파파야를 샀습니다.
파파야는 졸라 맛없었습니다.
어제 저녁 일찍 자서 그런지 새벽 5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더 자고싶은 맘은 없어서 바로 샤워하고 아침을 먹으러 시먼띵 거리로 갔었습니다.
하지만 일본과 달리 문을 연 가게는 단 한곳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편의점에 들러 라면을 샀습니다.
라면가격이 2000원이 넘어 약간 창렬 같았습니다.
라면맛은 그냥 장조림맛?이었습니다.
타이완에선 어떤 음료수를 팔고 뭘 마실지 이것저것 고민하다 이 음료수를 샀습니다.
맛은 홍차 + 꿀 이었습니다. 그냥 그렇저렇 마실만 했습니다.
타이완 지하철은 6:00부터 운행합니다.
사실 롱샨쓰로 가려고 했는데 지하철을 잘못 타 '타이베이즈우위엔'이란 곳에 도착했습니다.
여행 예정에 없던 곳이지만 이런 맛에 여행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타이베이 식물 정원입니다.
입구에 들어스면 울창한 나무 가로수가 펼쳐집니다.
타이완에선 일본제국의 흔적을 어딜가나 볼 수 있습니다.
좀 이해하기 힘든 동작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많았습니다.
정원 안에는 조그마한 식물원이 있었습니다. 안에는 이처럼 날지못하는 새들이 좀 있었습니다.
멍청해 보이면서 통통하니 귀요미였습니다.
한국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붕괴했지만 이곳 타이완은 일제시대 건물들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제국주의 심장에 서있다는 사실에 한동안 멍하니 종통푸 건물을 바라봤습니다.
사진 가장 왼쪽 위에 중국의 반대에도 바티칸을 방문한 천수이볜 전 총통이 보입니다.
종통부 정면에는 10차선 도로인 '케타갈란대로'가 있습니다.
사실 이 도로의 전 이름은 '제서우로'로 장제스의 장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십년간의 국민당 정권의 장기집권을 처음으로 무너뜨리고 총통이 된 천수이볜은
원주민의 슬픈 역사를 기리는 의미로 부족명을 따서 지금의 도로명으로 바꿔버립니다.
도로, 건축 노역에 강제로 원주민들을 동원하고 저임금으로 가혹하게 혹사시킨 일본에 대해
원주민들이 우서공학교 운동회를 습격하여 일본인을 살해했습니다.
이후 일본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원주민들을 학살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우서사건'이라고 합니다.
사실 사건이 벌어지기 전, 원주민 혼인 잔치에서 한 사건이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일본인 경찰 간부가 연회장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와 친분이 있던 원주민 청년이 그를 연회장으로 초대했다고 합니다.
신랑이 이 간부에게 술을 권했지만 경찰 간부는 짐승같이 더러운 자에게 잔을 받기 싫다며 거절합니다.
그리고 이 간부는 계속 술을 권하는 신랑을 곤봉으로 내리칩니다.
경찰 간부는 물론 처벌받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228 평화 공원'입니다.
항일전쟁을 치르고 본토에서 타이완으로 쫒겨온 중화민국은
언어, 문화 면에서 일본사람에 가까운 본성인들이 거슬렸다고 합니다.
당시 본성인들은 "늑대가 가고, 돼지가 왔다"면서 부패한 국민당과 군부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찔렀고,
2월 28일 한발의 총성이 도화선이 되어 대규모 규탄 시위로 확산되었습니다.
당시 무허가 담배를 팔던 여인을 때리고 이를 말리던 청년이 경찰의 발포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후 격양된 시만들이 경찰서와 방송국을 점거하여 전 본성인들이 궐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중화민국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수많은 지식인과 본성인들을 사살했습니다.
공원에는 228 사건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건축물 또한 있었습니다.
'타이베이228찌니엔관'으로 향했습니다.
우리돈으로 대략 800원 밖에 안했습니다.
동아시아 '충격과 대응'의 역사는 라디오를 통해 흘러든 히로히토 천황의 목소리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불법이었던 담배들 같았습니다.
중국으로부터 독립 노선을 주장하는 '범록연맹'이란 당은 중앙 정부와의 마찰이 항상 빚어졌던 것 같습니다.
이젠 범록연맹의 차이잉원이 당선되었고, 앞으로의 타이완 역사는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합니다.
'궈리타이완보우관'
일본 식민지 당시 '타이완총독부박물관'이었다고 합니다.
'똥먼'
우리나라 동대문 같이 도심속에서 홀로 여기가 성터였다고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궈리쫑쩡찌니엔탕'
1975년 4월 5일 장개석이 서거하자 타이완 화교들이 기부금을 모아 건립했다고 합니다.
사실 몇년 전만 해도 '국립타이완민주기념관'이라고 이름이 바뀐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유는 타이완 독립을 추구했던 전 '천수이볜' 총통이 이름을 바꿨다고 합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타이완 최고 대학인 '국립타이완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최연소 변호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타이완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메이리다오 사건'을 계기로 정치 스타가 되어 총통까지 되었지만,
지금은 뇌물수수 혐의로 콩밥을 먹고 있습니다.
장개석이란 인물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달리 해석하기에는 자질이 좀 부족했나 봅니다.
'궈찌아투슈관'
국립중앙도서관으로 굉장히 크고 웅장했습니다.
국가희극원과 국가음악청
이곳이 백일섭 선생님이 더위를 피하셨던 곳입니다.
매시 정각에 멋진 퍼포먼스를 합니다. 9:00부터 이 거대한 문이 열립니다.
퍼포먼스는 사진으로 찍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아름답고 멋있는 순간은 눈으로 간직하는 겁니다.
제2의 국부인가? 독재자인가?
타이완 근현대사의 밝고 어두운 면이 교차하는 역사의 공간입니다.
일본군은 '찌롱'이란 항구를 통해 타이완에 입성했습니다.
이곳이 '타이베이 중앙역'입니다.
타오위엔 공항에서 버스를 타면 이곳에 도착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타이완에 오면 쩐쭈나이챠를 꼭 먹어봐야 합니다.
우기때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타이완은 사진처럼 대부분 건물들이 보도를 덮고 있습니다.
또한 지진에 버티기 위해 건물들이 붙어있습니다.
화덕 만두를 하나 사서 먹었습니다. 먹을만 했습니다.
저는 '신베이터우'로 향했습니다.
'베이터우원취엔보우관'
일본제국은 일본군의 치료를 목적으로 이곳 온천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이 사진은 '스투베이터우펀관'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베이터우원취엔보우관' 내부에는 이처럼 다다미방이 넓게 있습니다.
이곳에서 일본군 장교들이 전쟁중 잠시 타이완에 와서 휴양을 했다고 합니다.
신베이터우역에서 좀 걸으면 족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여행책자에는 잘 없어서 그런지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은 베이터우를 내려오자 마자 역으로 가버렸습니다.
대부분 이곳 주민이었습니다. 한국인인 저를 다들 쳐다보는데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일본 여자는 구별하기 쉬운게 특유의 핑크색 볼터치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곧바로 딴쉐이로 향했습니다.
'딴쉐이라오찌에'
이 시장에는 대왕카스테라를 파는 가게가 많습니다. 먹어보진 않았습니다.
여러 열대과일을 팔고 있었습니다.
'마시에통샹'
단수이에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이며 서양식 Alehia University까지 설립한 인물입니다.
'위완탕'이라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오뎅 속에 고기가 조금있는 음식입니다.
말할 수 없는 비밀...
'홍마오쳥'
타이완 북부를 점령했던 스페인에 의해 건설된 요새입니다.
공사중이라 내부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곳의 주인은 정말 많이 바꼈습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마지막 깃발이 타이완이 결국 현주인이 되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녀우찐쉬에탕'
이 건물부터 Alehia University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란 영화로 더욱 유명해졌고 웨딩 촬영을 하는 예비부부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이 말할 수 없는 비밀 영화 촬영지 '딴쨩까오지쫑쉬에'입니다.
평일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워런마터우'
딴쉐이 끝에 있는 곳이며 걸어서 가긴 꽤 멀어서 홍마오쳥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속에서 외로운 훌리는 이번해 취업은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도쿄의 오다이바에서 바라봤던 석양보다 멋있었습니다.
이곳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 음식점들이 즐비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스린 야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사진 바로 앞에 있는 '리엔우' 과일을 사먹었습니다.
맛은 2% 부족할때 복숭아 맛이랑 비슷했습니다.
참 많이도 먹었습니다.
다시 찾은 시먼띵
위 사진은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수입니다.
타이완은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일본 문화에 친숙한 것 같았고 일본 음식, 간판, 노래 등등이 넘쳐났습니다.
솔직히 한류 열풍이라 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정신차려 대한민국!!
숙소 근처에는 이처럼 작은 사원이 있었습니다.
아침 6시 첫차를 타고 다시 롱샨쓰로 향했습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기도를 통해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습니다.
도착했을 때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사원을 돌면서 기도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식으로 기도를 하는 모습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간절하고 진실되게 기도를 하는 이분들을 보고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안녕~~
저는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화시찌에예스로 향했습니다.
노점상에게 국수 같은 것을 시켜먹었습니다.
북어국과 비슷한 국물 맛에 좀 거칠고 딱딱한 소면?과 함께 먹었습니다.
먹으면서 주변 분위기가 좀 심상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침부터 이쁘게 치장하고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이 꽤 있었는데 느낌상 ㅃㅊ 같았습니다.
먹으면서 좀 무서워서 후딱 먹고 빨리 자리를 떠났습니다.
'화샨 1914 원츄앙위엔취'
문을 닫기 전까지는 주류 제조공장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라고 해서 허물지 않고 리모델링해서 미래의 유산으로 남기는 타이완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지하철 역 광고판으로 많이 홍보 하길래 어디일까 궁금했는데 이곳에 있었습니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내부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공원에는 각자 개성있는 방식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로 분주했습니다.
아까 먹은 국수 하나로는 배가 차지 않아서 근처 식당에서 한끼 더 먹기로 했습니다.
식당에는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만져도 딱히 반응이 없어서 서운했습니다.
왼쪽은 콩국물에 설탕을 넣어서 조금 달았고 오른쪽은 그냥 평범한 만두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튀지지 않은 호떡과 모양만 다르지 맛은 똑같았습니다.
세 음식 모두 다해서 4000원도 되지 않았습니다.
분주한 출근시간
출근시간이라 하지만 솔직히 우리나라에 비하면 한산했습니다.
져우펀과 찐꽈스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1. 타이베이 기차역 ~ 뤠이팡 기차역으로 이동해서 져우펀과 찐꽈스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법.
2. 타이베이 동부, 쫑샤오푸싱역에서 1062번 버스를 타는 법.
두번째 방법이 비용은 약간 비쌌지만 그래봐야 4100원 정도이고
여행 책자에는 찐꽈스까지 100분정도 걸린다고 되어 있었지만
비수기라 그런지 길이 막히지 않아 찐꽈스까지 1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성수기라면 첫번째 방법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일단 져우펀을 지나 찐꽈스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찐꽈스에는 일본식 가옥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광부도시락입니다.
당시 광부들이 먹었다기엔 너무 맛있었습니다.
가격이 좀 창렬이었지만 기념으로 도시락통은 가져갈 수 있어서 기분 좋았습니다.
얼마나 간절해야 이런 지옥속에서 하루하루 버틸수 있는 걸까요?
1933년 이곳에 체류하던 일본인들이 지은 것으로 덴쇼다이진이라 해서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을 모신기 위한 신사라고 합니다.
타이완 사람들과 인도네시아에서 포로로 잡혀온 영국군들은 광산에서 일하기 전, 이곳에 와 참배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돌기둥만 남아 있습니다.
태양신은 일본 황실의 조상신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고 그와 관련된 '삼종의 신기'라는 유물에 대한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만, 실제로 삼종의 신기가 출토되지 않았으며
정말 일본 황실이 태양신의 후손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태양신의 후손이라 여겨지기 시작한건 제국주의의 상징 히로히토 천황부터 입니다.
추가로 '삼종의 신기'란 20세기 일본 사람들이 가장 갖고 싶어했던 가전제품
세탁기, 냉장고, TV를 말하기도 합니다.
찐꽈스 풍경이 한눈에 펼쳐졌습니다. 저기 가운데 황금색 사원까지 걸어갔습니다.
가자가자 훌리~!!
누가 살던 집이었을까요?
아래는 인양하이라고 광물질 때문에 청색 바다와 황색이 확연히 구분됩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일본식 목조 건물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이곳은 광부들이 치료받던 병원의 옛터라고 합니다.
혼자 배낭여행을 오면 일행을 신경쓰지 않고 가고싶은 길을 즉흥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저는 다시 찐꽈스로 걸어갔습니다.
찐꽈스에서 버스를 타고 져우펀으로 왔습니다.
져우펀은 금광이 발견되면서 부를 차지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마을입니다.
밤에오면 붉게 켜진 홍등이 매우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관광지입니다.
또한 영화 '비정성시'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일본인에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유명세를 탄 지우펀은
타이완 사람에겐 ‘비정성시’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장소입니다.
영어 제목으로는 ‘A City of Sadness’이듯이 어떤 슬픔을 얘기하는 영화입니다.
먼저 저는 져우펀을 소개하기 앞서, 간단한 타이완의 역사와 비정성시 영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격동의 20세기, 동아시아 역사에 엄청난 충격을 준 일본제국의 왕 히로히토.
1945년 8월 14일 오후, 그는 직접 국민들에게 발표할 종전칙서를 궁중에서 녹음했습니다.
일부 군인들은 천황의 녹음테이프를 강제로 압수하고 무력을 행사했지만,
이미 내각의 분위기와 천황의 마음은 군부를 떠났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예정대로 종전칙서는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었고,
일본 국민들은 처음 듣는 천황의 목소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스포주의>
비정성시 영화는 라디오를 통해 흐르는 히로히토의 목소리로 시작됩니다.
조상님들께 바치는 기도가 간절해서 였을까요?
51년간의 일본통치로부터 해방과 함께 임아록 가문은 아들을 얻는 경사까지 겹칩니다.
임아록에게는 함께 장사하는 장남 문웅, 일본 군의관으로 집을 떠나 소식이 없는 문상,
불량배가 되어 말썽을 일으키는 문량, 그리고 귀머거리인 문청까지 모두 네 아들이 있습니다.
문청은 깡패 가문의 아들에 귀머거리이지만 성실하고 착한 성품으로 열심히 사진관을 운영합니다.
그는 개혁주의 지식인 오관영과 교류하고 그의 동생 관미와 사랑하게 됩니다.
문웅과 문량은 상해범죄 조직의 유혹으로 배를 제공하고 밀수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한편 일본에 징용되었던 전력이 문제가 되어 고발당해 임아록 가문은 당국에 이권을 빼앗깁니다.
이유는 타이완으로 건너온 국민당 정권이 매국노에 대한 법을 수시로 바꿔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당국에 잡혀갔던 문량은 아버지의 재력에 석방되지만 심한 고문으로 미쳐버리고 맙니다.
담배 상인의 죽음으로 시작된 2.28 사건이 터지자, 오관영과 문청은 타이베이로 향합니다.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관미는 떠나는 이들을 걱정합니다.
그날 저녁, 부상당한 본성인들이 병원으로 몰려들고 오관영과 함께 떠났던 문청도 돌아옵니다.
그리고 라디오를 통해 중화민국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본성인이 아니면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타이완의 현실 속에서 지식인 오관영은 그저 바라만 봅니다.
그리고 무법지대 타이베이로 문청을 데려가는게 위험하다 판단한 그는 문청을 다시 관미 곁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 오관영은 부상당한 채로 마을로 돌아오고
그의 위원회 지식인들 모두 행방불명 되거나 감옥에서 생을 마칩니다.
문청 또한 마을로 찾아온 정부 관료에 의해 옥에 갇히지만 또 한번 아버지의 재력에 힘입어 홀로 빠져 나옵니다.
오관영은 깊은 산골에서 본성인들을 계몽시키기 위해 전단지를 몰래 배포하고 마을사람들을 가르칩니다.
남몰래 이들을 지원했던 문청은 직접 이들을 도우기 위해 오관영을 찾아가지만,
오관영은 이 일에 문청은 적합하지 않다 생각하고,
신념이 있다면 어느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도 현실과 저항할 수 있다며 문청을 타이릅니다.
그리고 그를 돌려보내며 중매의 위기에 빠진 관미와 결혼할 것을 부탁합니다.
장남 문웅은 상해조직과의 싸움에서 칼에 맞아 죽고, 이에 격분한 임아록도 칼을 들고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상해조직의 두목에게 총에 맞아 사망합니다.
오관영의 노력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비밀스럽게 오관영을 도왔던 문청은 자신도 곧 잡힐 것임을 알기에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고 목적 없는 기찻길에 오릅니다.
그리고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문청은 끝내 잡히고 맙니다.
1949년 12월, 대륙은 공산화가 되고 중화민국은 타이완으로 완전히 철수하여 임시수도를 타이베이로 정합니다.
지우펀의 고불고불한 산길과 미로처럼 복잡한 계단에 뿌옇게 비쳐지는 홍등은 고통과 분노에 찼지만,
보고도 행동할 수 없고 들어도 외칠 수 없었던 타이완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문청은 그런 타이완을 대변하며 살아남은 자들은 계속해서 살기위해 밥을 먹는 장면과 함께 영화는 끝이 납니다.
'아메이챠져우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의 영감이 되었고 비정성시의 촬영장으로 이용되었던 찻집입니다.
알아서 포즈까지 취해줍니다.
달달하니 맛있었습니다.
'셩핑시위엔'
금광이 폐광되면서 관객들도 모두 떠난 영화관입니다.
'위위엔'이라고 타로, 감자, 고구마 등으로 빚어 끓인 떡?에 시럽을 뿌려 먹는 음식입니다.
져우펀에서 유명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습니다.
이후에 계속 져우펀에 남아 야경을 감상하려고 했지만
져우펀에 너무 일찍 도착해서 아쉽지만 다른 곳을 더 방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바로 '찌롱(基隆)'입니다.
1895년 일제 강점기 시절 근대적인 항구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타이완 남부를 연결하는 북쪽 철도의 기점이며 일본과 잇는 항구로 매우 유리한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을 통해 당시 히로히토 황태자가 입성했습니다.
이곳 인구는 일본인이 25% 이상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한적하고 조용한 항구도시였습니다.
솔직히 그렇게 매력적인 관광지는 아니어서 훌리 여러분은 생략해도 되는 관광지라고 생각합니다.
'먀오커우예스'
다른 야시장과 달리 신선한 해산물로 요리한 음식들이 눈을 즐겁게 했고 정갈하게 정돈된 모습이 특징이었습니다.
'여우판'
이 음식은 이곳 찌롱 야시장에서만 파는 음식 같았습니다.
맛은 간장 마늘 찹쌀밥?이었습니다.
게살스프입니다. 짭쪼름하니 맛있었습니다.
게튀김에 라면 스프? 같은걸 뿌려주었습니다. 매콤하니 먹을만 했습니다.
찌롱의 야경. 스마트폰의 한계가 드러나는 사진입니다.
찌롱 안녕~~~~
계륜미 맞나?
다음날 아침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샀습니다.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출발해 뤠이팡역에 도착했습니다.
아침을 먹지 않아서 많이 배고팠습니다.
여유가 좀 있어서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뤠이팡역 근처 시장으로 걸어갔습니다.
뤠이팡역 모습
뤠이팡역 맞은편 바로 눈앞에 시장이 있습니다.
용과를 하나 사서 먹었습니다.
맛은 2% 부족할때 음료보다 덜 달았습니다. 대부분 그냥 물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멋진 산과 그 사이로 달리는 철로, 오밀조밀 모여 있는 가옥들, 탄광업이 몰락하면서 버려진 폐광 등등...
핑시시엔은 타이베이에서 당일치기 여행으로 가장 적합하고 매력적인 관광지입니다.
보통 허우똥, 스펀, 핑시, 찡통 정거장이 관광객들이 많이 내리고 올라타는 장소입니다.
먼저 저는 허우똥 정거장에 내렸습니다.
옆에는 바로 '마오춘'이라는 마을이 있으며 고양이가 많이 살아 '고양이 마을'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나른해 보이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졍메이챵'
'석탄으로 나라를 부하게 하자'는 붉은 글귀가 새겨져 있는 석탄 선별공장입니다.
여행기간 동안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었습니다.
핑시시엔 열차는 보통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합니다.
일단 내리면 다음 열차가 언제 도착하는지 확인하고 관광해야 합니다.
'스펀'
좁은 철로를 따라 천등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각자의 소원을 적어 천등을 띄우는데 재수가 없으면 건물 옆에 걸려 불에 타버립니다.
저도 하나 날려볼까 했지만 교토에서 이미 소원을 빌어서 굳이 할 필요를 못느꼈습니다.
저 멀리 날아가는 천등은 도대체 어디에 떨어질까 궁금하기도 했고,
맑은 하늘에 날아가는 모습이 정말 이뻐서 한동안 지켜봤습니다.
마을에 도적떼가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돌아가면, 이를 알리기 위해 천등을 띄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검은 광물의 시대가 끝나고 흔적만 남은 옛 탄광마을에 소원을 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립니다.
스펀 정거장에서 '스펀푸뿌'까지 걸어갔습니다.
'스펀푸뿌'로 가는 길목에 '쓰관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냥 작은 강물입니다.
'스펀푸뿌'
솔직히 이 폭포를 보러 스펀역에서 보도 30분정도 떨어진 곳까지 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뤠이팡역에서 1일 왕복 티켓을 사지 않고 스펀역까지만 티켓을 끊고,
스펀푸뿌에서 출발하는 795번 버스를 타고 '핑시'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795번 버스는 스펀푸뿌 ~ 스펀역 ~ 찡통 ~ 썬컹 ~ 무쨔역으로 이동합니다.
연두부 음료수를 마셨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저는 795번 버스를 타고 핑시에 도착했습니다.
다만 버스는 핑시역에서 정차하지 않고 '핑시라오찌에' 끝에서 정차합니다.
핑시에서도 천등을 날릴 수 있으며 스펀보다 한적하고 장애물이 없습니다.
핑시라오찌에 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져우펀을 다녀왔으면 솔직히 핑시시엔 옛거리는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찡통'
'찡통훠쳐짠'
핑시시엔 철도의 종착역입니다.
1929년에 지이진 일본식 목조 기차역으로 80년 넘은 역사를 간직한 수수한 정거장입니다.
천등 뿐만 아니라 대나무 막대에 소원을 적어 빌기도 합니다.
그냥 고소한 밀가루 반죽입니다.
구아바입니다. 아오리 사과맛이 났지만 그렇게 맛있진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795번 버스를 기다리고 무쨔역으로 가면 됩니다.
산악지형이 너무 험난해서 예정된 시간보다 5분에서 10분정도 지연되는 것 같습니다.
무쨔역 이전에 '썬컹'이라는 취두부 마을이 있으니 여유가 있으면 들러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 다리가 좀 아프기 시작해서 포기했습니다.
궈푸찌니엔관역 근처 사진입니다.
ICE MONSTER에서 망고 빙수를 하나 시켜먹었습니다.
양이 좀 많았지만 어차피 물이니 혼자 다 먹었습니다.
'궈리궈푸찌니엔관'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모두에게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쑨원의 기념관입니다.
시모노세키조약입니다.
이 조약에 의해 일본제국은 청나라로부터 타이완을 빼앗습니다.
'용캉녀우러우미엔'
용캉찌에에 가면 이곳을 꼭 들려야 한다고 합니다.
양지고기와 힘줄이 절반씩 들어있는 국수를 시켜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마지막날 아침 '따안썬린꽁위엔'을 찾아갔습니다.
여러 방식으로 체조를 하며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어르신들이 많았습니다.
아침으로 편의점에서 타이완 과자는 뭐가 있을까 둘러봤습니다.
타이완 편의점에는 대부분 일본과자가 70%, 한국과자가 20%,
그리고 타이완 과자가 나머지를 차지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타이베이101타워 근처에 있는 '쓰쓰난춘'을 방문했습니다.
장개석과 함께 이주했던 국민당 군인들과 그 가족들이 살았던 마을입니다.
주말에는 이곳에서 시장이 열리는데 평일이라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무슨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타이베이101타워'
8층씩 총 8단으로 올려졌다고 합니다. 정말 크고 웅장했습니다.
타이베이 서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저 멀리 궈리쫑쩡찌니엔탕이 보입니다.
88층에는 댐퍼라고 진동완충장치가 있습니다.
출구로 나가면 옥 장식물을 파는 전문점이 있습니다.
가격이 상당히 비쌋지만 중국인들은 개의치 않고 많이들 사갔습니다.
타이베이 중앙역 근처에 있는 '홍스푸미엔스짠'에서 국수를 시켜 먹었습니다.
타오위엔 국제공항 내부 사진입니다.
4박 5일이 금방 지나간거 같아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ㅠㅠ;;
끝까지 읽어주신 훌리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첫댓글 좋은글 써줘 감사합니다^^!
오 재밌다
여행기 정독했다. 사진 퀄도 좋고
다시 수정된 거 읽다가 갑자기 내 닉네임이 나와서 깜놀ㅋㅋ
개쩐다 몇시간 걸렸음 작성하는데
퀄리티 ㅎㄷㄷ하네
나도 2.29-3.3 3박4일동안 타이페이 갔다왔는데 ㅋㅋㅋ 티웨이 탔는데 김포-송산이라 김포빨리갈 수 있고 송산도 시먼딩까지 20분이면 가서 좋앗다. ㅋㅋㅋ 비행기값은 30정도?
소름돋네 루트나랑 비슷한데 어쩌다 한번쯤봤을듯...근데 난 수목원인가 식물원 저기안가고 임가화원 갔는데 한국인여자들밖에없더라..난 예스진지 택시투어함 남자3명이서가서...그리고 타이페이전망대는 별로볼게없고 101타워를 볼수있는 그앞에 샹산 있거든. 등산이 좀힘들긴한데 야경좋아서 현지인 한국인 다 많이가더라
그 기차 따로안하고 예류갔다가 스펀들려서 기차구경하고 등날림. 3.1에 예스진지다함. 한국인존나많음
지우펀 일본인존나많ㅎ더라 눈도호강함
잘썼네,,,근데 사진 50개 이상은 어떻게 넣은겨?
나도 대딩떄는 여행가면 너처럼 진짜 별거 다 사진찍고 그랬는데,
직장인 되서는 여행가면 대부분 택시타고 다니고 막 걸어다니면서 사진찍는 횟수도 줄어듬.
잘 읽었다.. 오랜만에 훌천에서 정독해서 읽은 글이네.. ㅎㅎ .. 예전 추억도 생각나게 해주고 ~ 땡큐
대만여행하고온 기분이네요 진연희, 계륜미 등등 대만 여배우들 덕분에 대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언제 직접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ㅋㅋㅋ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3.09 00:53
사진으로 타이완 잘 여행 하였어요....
크,,,작년에 헤어졌던 여자친구랑 갔던 기억이 다시금 새록새록 생각남...
공부 많이 하고 갔네.. 잊고 있던 기억이 살아난다 고맙당
나도 삼월중순에 갔다 왔었는데 그 때 기억나고 좋다.. 음식은 별로 입에 안맞았지만 ㅋㅋㅋㅋ 잘만들었네 잘보고감!!
역시 헬조센보다 훨씬 낫구나. 갓타이완 자유 중궈 장제스의후손 우리완
잘봤다 ㅎㅎ 난 9월말에 대만 간다. 네 여행기 참고해서 다녀야겠네 ㅋ
지금 지우펀에서 일박을 할까말까 계속 고민중ㅎㅎ
난 이번엔 좀 여유있게 돌라고ㅎ 첫날 스펀 진과스-지우펀1박 다음날 지우펀더보고 예류갔다가 시내로 돌아가서 3박은 시내구경ㅎ
존나 재밌었다 다음 글 또 기대한다 타이완 가따온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