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을 요양병원으로 옮긴지 벌써 4년이 지났다. 처음에 치매증상이 나타나자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장인어른이 수발을 드셨다. 그러다가 장인어른이 돌아가시면서 자녀들이 돌볼 형편이 되지 않아 시설이 좋다고 알려진 시립요양병원으로 모셨다. 장모님을 입원시키고 병문안을 다녀올 때마다 한동안 아내와 처갓집 식구들은 ‘착한 우리 어머니가 왜 이런 곳에 계셔야 하냐?’면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병원 문을 나서면서 몹시 마음 아파하는 아내에게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도 10여 년간 알츠하이머병을 앓기도 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등을 쓸어주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노인들은 대부분 치매환자들이다.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좀처럼 호전되는 것 같지 않았다. 장모님은 입원하실 때만 해도 가족들을 알아보셨고,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지난날에 있었던 일을 하나씩 들추어 새김질하곤 하셨다. 그러나 점점 퇴행하여 요사이는 자녀들에 대한 기억마저도 말끔히 지워버리셨는지 딸들이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아도 입을 열지 않으신다. 그동안은 침상에 앉아서 어린 아기처럼 요양보호사들이 건네는 음식을 받아 잡수셨는데, 지금은 병상에 누운 채 호스를 통해 미음을 공급받고 있다. 그러니까 병원을 다녀오는 날이면, 힘이 빠져 휘청거리는 아내의 모습이 바람 따라서 흔들거리는 허수아비처럼 보였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발표한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81세로 세계 상위권이다. 이는 40년 전에 비해 29년이나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이 보고서에서는 30년 후면 120세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병석에 누워 가족도 알아보지 못한 채 목숨을 이어가는 삶을 누가 바람직스럽게 생각하겠는가? 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가는 횟수가 북유럽 사람들은 일 년에 2.3회인데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14.2회라는 보고서도 있다. 의료진의 도움과 투약에 의존해서 오래 사는 것은 결코 반길 일이 못된다.
요양병원에 들어서면 초점 잃은 눈동자와 코 속으로 삽입한 대롱을 매달고 질긴 생명력과 씨름하면서 침상에 미라처럼 누워있는 노인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노후에는 서녘 하늘을 물들이는 낙조처럼 살아갈 것을 기대하던 나의 꿈도 사라지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해진다. 앙상한 팔다리를 가누지도 못하면서 대·소변마저도 다른 사람이 처리해야 하는 어른들, 표정도 없고 핏기도 없는 얼굴에 도움을 받지 않고는 이동할 수 없는 사람들, 모두다 꺼져가는 모닥불에 사위어드는 삭정이처럼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눈에 보이는 것만큼이나 병동의 여닫는 문소리마저도 수용소의 육중한 철문처럼 울림이 깊어 이제는 병원을 찾아가는 발걸음도 썩 내키지 않는다.
우렁이는 제 몸속에다 알을 품고서 부화한다. 어미 몸속에서 깨어난 새끼들은 제 어미의 살을 갉아먹으며 자란다. 어미의 살이 다 없어질 즈음이면 어린 우렁이들은 어미 몸 밖으로 나온다. 마침내 어미 우렁이는 껍질만 남아서 물 위에 둥둥 떠오른다. 침상에 누워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가진 것을 모두 다 자식들에게 내어주고 빈껍데기만 방죽 위로 떠오른 우렁이처럼 보였다.
수컷 가시고기는 암컷이 둥지 속에 낳아놓은 알에 정액을 뿌려 수정시킨다. 그리고 부화할 때까지 다른 물고기들이 기웃거리면 달려가서 쫓아내며 보금자리를 지킨다. 먹지도 않고 잠도 못자면서 알을 보호하고, 새끼들이 부화하면 다른 물고기에게 먹힐까봐 노심초사하면서 초병노릇까지 해낸다. 그러는 동안에 가시고기는 몸뚱이가 부딪쳐서 짓이겨지고 지느러미는 너덜너덜하게 바뀐다. 휠체어에 몸을 묻은 할아버지들의 등 뒤로는 새끼들을 지키다가 기력이 다해 스러지는 가시고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는 치매를 앓는 노인이 68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치매환자 곁에서 수발을 들려면 누군가는 생업도 포기해야만 한다. 어려운 가정경제를 꾸려나가려고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집에서 환자를 보살피는 일은 이제 엄두도 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치매환자 돌봄 센터나 요양기관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 요양시설이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스런 일이고, 재활기관에 위탁해서 전문가들에게 환자를 맡기는 것이 효율적인 치료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3월 19일에 KBS 프로그램 『강연 100°C』에서 정원복 씨의 「어버이 살아실 제」라는 강연을 들으면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씨는 대구에서 109세 된 어머니를 홀로 모시고 살고 있다. 1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단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아들을 몰라보고 누구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정씨는 크게 충격을 받았단다. 그래서 어머니의 치매치료를 위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팔을 낀 채 산책을 다니면서 등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증상이 차츰 호전되어가는 것을 깨닫고는 100세가 넘은 노모를 모시고 대구 근교에 있는 산을 찾기 시작하여 한라산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객석에 앉아서 정씨의 강연을 듣던 방청객들은 뜨거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아나운서가 정씨의 어머니인 문대전 어른에게 다가가서 마이크를 건네며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하시는 것을 보면서 나의 입에서도 절로 탄성이 나왔다. 요양병원에서도 치료가 불가능한 병을 극진한 사랑으로 호전시킬 수 있었던 아들의 효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정원복 씨의 강연을 들으면서, 사랑이란 부모가 자식을 껴안는 내리사랑만이 아니라, 부모를 섬기는 치사랑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미물의 습성에서 유래한 반포지효(反哺之孝)처럼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효심도 진정한 사랑이다. 정씨의 강연은 모든 일에 효율성만을 생각해 왔던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한 시간이었다.
(그린에세이 제21호 2017년 5,6월호 수록)
첫댓글 박영진 선생님, 고생이 많으시죠? 노인 문제는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연명 치료가 길어질수록 고통도 늘어나는 것을 생각하면 할 말이 없어지더라요. 저도 지난 연말에 엄마를 떠나보냈답니다:: 장모님께서 마지막 시간들을 산뜻하게 보내시다 가셨으면 좋겠네요~~^^*
아픔이 크셨겠군요. 위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