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배령 입장 인원은 하루 최대 600명이다. 인터넷 선착순 300명과 팬션 숙박객 300명으로 구분하여 접수한다. 명단은 사전에 파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터넷조와 숙박조로 구분하고 엑셀작업을 통해 성명을 가나다 순으로 정리해 놓으면 탐방객은 조별로 도착하는 순서대로 서서 기다리다가 제 차례가 오면 신분증만 대조하면 끝이다.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대선이나 총선투표도 그리하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숙소별로 명단을 불러주고 몇 차례씩 반복해서 호명하며 또 호명 순서대로 줄을 세우며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투표소에서 투표하듯 도착 순서대로 신원 확인하면 신속하게 입장할 수 있게 되고 단체입장에 따른 탐방길 병목현상도 줄어들게 될 것을...
이런 이야기를 관리센터 안내요원과 나누어 보았더니 돌아오는 답변이 기가 막힌다. ''아~ 그런 문제는 그 쪽 가이드가 잘만 하면 해결됩니다.'' 결국 돌아온 답변은 '네 탓이니, 너나 잘 하세요' 였다.
에피소드 2. 정상 표지석을 여러 개 세워야 하나?
탐방구간 동안 몇 군데서 병목현상을 빚어 지체되긴 했으나 비교적 통행이 용이하여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상 고원지대에 이르니 줄이 길게 늘어져 있고 좀체로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표지석 앞에서 사진촬영하느라고 지체된다는 것이 전해졌다.
그러자 누군가가 표지석을 여기저기 세워 놓으면 인원이 분산되니 이런 북새통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불평을 토하였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고, 다시 다수의 사람들이 동조하면서 급기야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이란 생각이 지배하게 되었다.
과연 그럴까? 나는 이제껏 정상 표지석을 여기저기 세워놓은 걸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설사 몇 군데 세워놓았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다 사진을 찍으러 덤빌 것이므로 표지석마다 붐빌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민주주의 혹은 대중 민주주의의 폐해가 떠올라 토로해 보았다.
에피소드3. 단체는 개인보다 우선권이 있는가?
표지석 앞에서의 긴 행렬은 좀처럼 쉽게 줄어들지 않았고 비바람까지 세차지자 사람들은 조금씩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독사진을 찍지 말라는 고함소리도 터져 나오고 한번 찍으면 내려오라는 주문도 들렸다.
몇 몇은 대오를 이탈하여 앞으로 가서 표지석 앞이 아닌 옆에서 찍고는 돌아가는 현상도 생겨났다.
그러는 와중에 예닐곱 정도되는 인원이 우루루 앞으로 나가는데 옆에서 찍지 않고(장소가 협소하여 단체가 옆에서 찍기도 힘들긴 했다) 단체로 표지석 위로 올라가 찍었다. 찍어 줄 사람이 없으니 맨 앞에서 대기 중이던 내게 부탁을 하므로 찍어 주었다.
당연히 뒤에 줄서 있던 사람들로부터 원성이 터져나왔고 단체는 독사진 안찍고 단체사진만 찍으니 괜찮다는 대응을 하는 등 잠시 옥신각신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줄을 서야 한다는 대의명분과 단체가 먼저 찍고 빠져주면 효율적이라는 편의주의가 충돌하는 장면이었다. 단체측에서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않은 과오는 있지만 양측 누구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대의명분만 따지게 되면 조직 전체가 비효율로 인한 피해를 감내할 수 밖에 없고, 편의주의를 택하면 조직 전체로는 득이될 수 있겠으나(먼저 조직 전체의 합의를 끌어내는 게 필요함)
합의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기 때문에 불평등, 불공정 시비에 빠지게 되고 조직 전체의 이익과 개개인의 이익 간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남게 된다.
쉽게 판단하고 쉽게 결론 내릴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복잡다기한 이해관계로 얽혀지고 있으므로 점점 이러한 문제에 더 많이 노출되고 갈등이 증폭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래서 정치가 필요한가 보다. 정치가 개인의 이해관계와 뗄 수 없는 관계인 이상 개인은 정치를 혐오하더라도 결코 정치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지론이 성립된다. 참 복잡하고 어렵다.
에필로그
이쯤 해서 이번 산행기는 접으려 한다. 이번 산행에 참여한 인원이 무려 87명이란다. 군대도 아니고 중대병력이나 되는 인원을 인솔하여 행사를 진행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은 해본 사람이면 통감할 것이다. 더우기 연령층도 다양하고 여성까지 포함된 집단이어서 고려할 사항과 변수가 훨씬 많다.
무엇보다 청천동문 집단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김상철 산악회장님의 영도력이 훌륭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내려오면서 석식을 구계 휴게소에서 잔치국수로 해결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점심을 닭백숙으로 든든하게 떼웠기 때문에 저녁을 가볍게 하면서 시간도 단축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항상 안전하고 행복한 산행을 위해서 사전답사는 물론 이런저런 세세한 준비로 고생이 많을 것인데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집행부에게 경외심을 표한다.
아, 참! 잊을 뻔 했네. 특별히 김원봉 산행대장님께 감사 멘트를 전한다. 지난번 진안 운일암반일암 산행 시 아내가 하산하면서 무릎이 아파 힘들었을 때 산행대장님이 스프레이 파스를 듬뿍 뿌려주기도 하고 '뒷꿈치부터 내딛기' 등의 하산 요령까지 가르쳐주어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그 배려와 친절이 참 고마웠다.
공기의 중요성을 잘 알면서도 고마움을 잊고 지내기 쉽듯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 온 회장님, 대장님과 총무님에 대한 고마움을 이 지면을 통해 빌어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