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출렁이는 엄마의 조각보는 넓고 푸른 깊은 바다였다.
길쭉하고 둥그렇고 뾰족하고 울퉁불퉁한 돌과 모래, 풀, 물고기, 그리고 우뚝 솟은 “삶의 절벽” 어깨께도 보듬어 안고자 파도치는 “모성”의 바다였다. 무한한 무엇이었다. 조각보는 외롭지 않다. 조각들이 어깨 겯고 빛나고 있어 그 고난의 년대에서도 희망은 찬란하였다. 조각보는 또박 또박 걷는 막내의 걸음발이었으며 때 되면 오물오물 밥 먹는 셋째의 입술이었으며 초롱초롱 빛나는 둘째의 눈빛이었으며 엄마도와 설거지하는 맏딸의 손놀림이었다. 아버지의 해학 넘치는 유머에 앵돌아졌던 마음 잊어버리고 터지는 엄마의 웃음소리였으며 출근하신다며 나가셨다가 도로 들어오셔 식장 위에 월급봉투를 올려놓는 아버지의 큰 손이었다.
오늘 방벽을 장식하고 남은 베천 조각들을 주우려니 갑자기 땀에 미끄러지는 바늘을 쥐고 한 땀 한 땀 조각 천을 잇던 엄마가 떠오른다. 내가 시집갈 때 혼수로 넣어주신 미색바탕에 부분부분 삐쭉삐쭉한 연록색조각천을 잇대어 다름으로 맵시를 내고 복판에 노랑나비를 달아준 네 귀가 둥그스레한 모시조각 밥상보는 밥상을 덮을 때마다 내 삶의 “모서리”까지 덮어주었다. 질서가 있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반듯하지 않아서, 같지 않아서” “다름의 미학”을 펼쳐보이던 한결같지 않던 조각보, 그 어수룩한 조각보는 타고난 안목으로 예술과 철학을 담은 엄마만의 조각보였다.
아롱다롱 엄마의 예쁜 가슴 닮은 듯, 알락달락 엄마의 감성을 모아놓은 듯 보송하여 한 수의 시처럼 읊어지기도 했던 조각보…… 해마다 음력설이 되면 엄마는 손수 지은 조각보라며 너희들이 요구대로 골라가지라며 봉긋이 솟아오른 꽃보를 네 자식한테 풀어 놓으시곤 하였다. 그때마다 막내인 내가 먼저 착착 개어놓은 나름 아름다운 조각보들을 펼쳐보며 더 고운 걸로 가지려고 법석을 떨었다. “엄마, 난 이걸 가질래요. 네모반듯하지 않은 거.”“나는 이 거” “나는 저 거” 오빠 언니들은 제가끔 고운 걸로 골라 안고 싱글벙글 할 때면 엄마의 얼굴에도 전례 없는 미소가 피어올라 명절분위기는 한결 더 짙어만 갔다. “옷을 마르고 던져지는 조각 천들은 이미 모양이 잡혀져 있어서 좀 어눌하게 붙여진 것도 있네라.” 그랬었다. 엄마의 조각보는 반듯한 것도 있지만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이 아닌, 선이 조금씩 삐뚤어지고 네 각도 둥그스레 주름 잡힌 것도 있었다. 그땐 헝겊이 귀할 때라 구부러진 천조각도 자르면 아깝다고 맞춰가며 잇다보니 그러하였을 것이다. 행여 삐뚤게 이은 선이 미워 보일까봐 마음 한 조각이래도 더 덧대었을 엄마였지 싶다. 어떤 모자람도, 헤아림도, 넉넉함도, 공존도, 자연스러움도 볼 수 있었던 엄마의 조각보는 시선을 압도하는 반듯함 대신 제각각 특출한 조각 천들의 “연출”덕분에 조각 보선들이 더 매력적이었다. 옷을 마르고 떨어져나간 천의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엄마만의 절묘한 감수성으로 각기 다른 색과 선을 불규칙의 구성미(큰 조각이 작은 조각을, 고운색이 미운 색을 감싸다)로 조각보를 조화롭게 지어내셨던 엄마의 솜씨와 탁월한 미적 감각에 나는 문득 문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수룩해서 더욱 멋진 엄마의 조각보 정취를 내가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조각보 한 장에 세상의 이치까지 깨닫게 했던 조각보를 쓰자니 내 무딘 필이 안쓰럽다. 엄마는 우리가 입다 다 판난 옷들도 가위로 성한 부분을 잘라내어 모아두었다가 쯤 날 때마다 조각보를 지었다. 그 때 솔기부분의 실이 풀리지 않도록 이중으로 홈질해서 솔기를 감싸던 엄마의 손놀림을 지금 보는 것 같다. 던져지는 서러운 조각 천들이 엄마의 손을 통해 서로 가슴을 부빌 때 엄마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그리운 마음을 이어 붙여 조각보를 넓혀간 엄마, 엄마가 넓힌 것은 조각보만 아니었으리. 고아로 살아온 날의 그 아프고 그립고 외롭던 삶의 이야기를 한 땀 한 땀 엮었을 내 엄마, 산다는 건 그저 갖가지 천 조각을 이어 맞춰 조각보를 짓는 일이란 걸 진작부터 알았을 엄마는 서로 다른 천 조각들이 하나로 녹아져 하나의 완정된 조각보가 됨을 보면서 “한 조각 한 조각”의 가족성원들이 서로의 색상을 모아 예쁜 한 장의 “가족보”가 되지기를 얼마나 바랐을까. 가정의 화목과 안녕을 바라는 엄마의 기도는 바늘이 되고 실이 되고 천이 되어 우리가정의 아름다운 “가족보”를 지었지 않았나 싶다. 엄마의 일상에는 조각보가 소리 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는 생의 고단함도 지그시 조각보 속에 감추고 조각 천과 조각 천을 잇듯 의지의 바느실로 얼핏 느슨해지려는 마음을 “가족보”에 꽁꽁 박음질해 나갔으리라. 아버지가 일본군대에 강제로 뽑혀간 후로 부터 조각보를 짓기 시작해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는 바느질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가 뇌혈전증에 걸려 내가 당신의 똥오줌을 받아내는 날에도 엄마는 반짇고리를 뒤적이며 조각 천을 찾아 나의 뒷잔덩에 붙여놓았다. 각양각색의 천 조각들이 반짇고리에 흩어져 차례를 기다리는데 엄마는……
생의 마지막 날까지 삶을 기운 내 엄마, 엄마는 조각보였다. 뒤집어보면 이음새가 따닥따닥한 조각보가 엄마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