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전국에 계신 족구인들과 결혼하신 분, 혹은 연애하고 계시는 분들께 바칩니다.
남편은 소방공무원이다.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직업. 그 날은 눈이 심하게 쏟아지던 날, 밤새도록 일하고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고 오는 그 이의 모습에 난 따뜻한 아침밥상을 내온다. 아침밥을 먹은 그 이는 피곤한지 곤히 잠든다. 곤히 잠든 그 이의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눈도 오는데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행여나 그이가 깰까봐 최대한 조용히 세탁기도 돌리지 않고 청소기도 돌리지 않으며 편안한 잠자리가 되도록 신경을 쓰다가 나도 모르게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보니 그 이가 없어졌다. 그 이는 동호회에 족구하러 간 것이다. 하루 종일 일하고 다음날 아침밥 먹고 단잠을 잔 후 족구하러 가는 그 이의 모습을 본 게 벌써 몇 해 이던가. 게다가 눈까지 와서 오늘은 그래도 나와 함께 있어주려니 했건만. 정말 이 남자와 이혼서류라도 꾸며야 할까?
-어느 족구인의 아내의 일기장.
내 남자친구는 매일 같이 야근에 출장으로 우린 간신히 주말에만 만나 연애하는 주말연인이다. 또다시 돌아온 주말, 어딜 가자고 할까? 무엇을 할까? 설레이는 마음에 그에게 전화를 했더니 내일이 대회라서 지금까지 못한 연습을 해야한단다. 지난 주엔 양평에서 대회라더니 이번 주엔 횡성에서? 아주 그냥 전국적으로 돌아다닌다. 꿈같은 연애를 위해 일주일을 기다렸건만. 양가에서 결혼 얘기가 오가는 우리. 정말 이 남자와 결혼해야 할까?
-어느 족구인의 여자친구의 일기장.
족구인과 결혼하신 전국의 많은 사모님들, 남편보기 정말 밉상이죠? 쉬는 날 함께 아이를 봐주었으면, 함께 어디 나들이라도 가 주었으면, 이도저도 싫으면 그냥 함께 있어주기만이라도 바라실텐데. 쉬는 날엔 아침식사와 함께 부리나케 사라져 버리는 남편. 또 족구하러 갑니다. 족구만 하고 오면 다행이지. 끝나면 회식이다 월례회다 해서 술 마시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또 당구치고 노래방 갔다오고 들어오면 벌써 저녁 늦은 시간. 내가 아내인지 식모인지 헷갈릴때도 많으시겠죠.
족구인과 사귀고 있는 여자 분들은 또 어떠십니까? 주말에 오붓한 데이트를 그리지만 맨날 운동장에서 룰도 잘 모르겠는 이상한 운동이나 하고 있는 남자친구. 이제 이 경기만 하면 끝나고 가겠지? 좀만 기다려 볼까? 그런데 웬걸, 끝낼 생각은 하지 않고 또 3세트 경기하자고 먼저 나섭니다. 아 저 인간을 확 그냥! 패고 싶으시죠?
같은 족구인으로 말씀 드립니다. 족구인 여러분~! 족구도 좋고 운동도 좋지만 그래도 가정에도 충실하고 여자친구도 잘 챙기시는 멋진 남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 바로 전형적인 우리 한국 남자들은 운동을 해도 꼭 아내의 속을 썩인답니다. 하지만 여러 사모님들, 그리고 여자 친구 분들! 우리 족구인에겐 공통적인 장점이 있답니다. 그건 우리가 즐기는 족구라는 종목의 특성과 일맥상통하기도 하답니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 족구인들의 공통적인 장점 한 번 들어 보세요.
1. 족구인들은 희생적입니다.
족구는 기본적으로 어떤 종목 인가요? 자기 몸을 던지고 여기저기 뒹굴어 가며 죽어가는 공을 구하는 종목입니다. 통증을 참고 자기 몸을 던지지 않고는 결코 공을 살려낼 수 없답니다. 그게 다른 종목과 족구가 가장 크게 다른 점입니다. 족구인들은 이를 일컬어 ‘족구 정신’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버리는 대신 팀을 위해 공을 살리는 것이죠. 그래서 족구인들은 대부분 희생적입니다.
2. 족구인들은 이타적입니다.
공을 살려내도 그냥 살려선 안 됩니다. 다음 공을 동료가 편안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래야 우리 공격수가 효과적인 공격을 해서 점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자신이 몸을 던져 살려낸 공이 동료들이 받기 어려운 곳으로 간다면 몸을 던진 보람은 사라지게 되겠죠? 그래서 몸을 날려 공을 받아내는 찰나의 순간에도 족구 선수들은 공이 갈 방향과 공을 차는 강도를 신경써야 한답니다. 자신의 몸을 던지는 희생 다음으로 동료들을 위한 배려가 자리하는 거죠. 족구 선수들은 자신이 실수를 하면 ‘미안, 미안’, ‘내 실수야’라고 동료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동료들이 어렵게 살린 볼을 자신의 실수로 놓쳤으니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겠죠? 그래서 족구인들은 이타적입니다.
3. 족구인들은 남들을 절대 무시하지 않습니다.
족구에는 다른 단체 구기종목과 너무 다른 가장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누구든 공을 딱 한 번만 터치 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리시브, 토스, 스파이크를 모두 할 수는 없습니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마이클 조던과 같은 선수들은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자신이 수십미터를 드리블해 가서 골을 넣으며 점수를 얻을 수 있지만 족구에선 절대 불가능 합니다. 제 아무리 뛰어난 공격수라고 할 지라도 토스가 나쁘면 제대로 된 공격하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제아무리 뛰어난 세터라도 정확한 리시브가 올라오지 못하면 제대로 된 토스를 하기 힘듭니다. 또 상대의 강력한 스파이크를 온몸을 던져 받아내는 수비수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공격수도 점수를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족구인들은 절대 남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4. 족구인들은 성실합니다.
족구는 가볍게 넣는 페인트도 강력한 넘어차기 뛰어차기도 모두 1점입니다. 농구는 3점포가 있고 야구에는 만루홈런이 있지만 족구는 손쉬운 득점도 힘껏 때린 멋진 넘어차기나 뛰어차기도 모두 1점입니다. 즉 족구는 스코어를 껑충 뛰어 넘을 수 없죠. 온 몸을 던져 실수를 줄이면서 차곡차곡 1점씩 쌓아여만 이길 수 있는게 족구입니다. 거북이 같은 성실함과 꾸준함이 필요한 종목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족구 선수들은 놀음, 도박등을 하지않고 성실하답니다.
다른 종목의 동호인들을 인격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은게 아닙니다. 운동종목이 신체적인 특성 뿐만이 아닌 인격과 품성 형성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자신있게 이야기합니다.
“혹시 족구인과 결혼하셨습니까? 정말 잘 하셨습니다.”
“혹시 족구인과 사귀고 계십니까? 결코 놓치지 마시고 결혼까지 하세요. 아마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첫댓글 족구 조아~~~ 족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