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중에는 어릴 적, 고구마 서리를 하다 주인에게 쫓겨 높은 철조망도,
돌담도 훌쩍 뛰어 넘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나중에 보면 “어떻게 저런 울타리를 뛰어 넘었을까?”
하지만, 원래 그런 능력이 우리에겐 있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이 불가능한 노르웨이의 깊은 협곡에 있는 독일의 중수(重水)공장을
폭파하는 전쟁영화를 본 적이 있다. 사형이 확정되어 집행만을 기다리는 죄수들 중에서,
칼 잘 쓰는 자, 폭파전문가, 명사수 등 굉장한 솜씨를 가진 이들에게
“이번 작전을 성공시키면 무조건 살려준다.”고 제안한다.
이왕 죽을 몸인 이들은 작전에 참가하고, 훈련을 받는데
외줄타고 올라가는 훈련에서 꾸물거리자, 교관은 발밑에서부터 실탄을 발사한다.
그렇게도 못 오르고 허우적거리던 그들은 다람쥐처럼 올라간다.
우리는 평소 자신의 능력의 10%만 활용한다고 한다. 26세 때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여 수백 년 내려오던 뉴턴의 불변의 학설을 뒤집은 아인슈타인!
그는 변변한 연구실도 없이 스위스 베른연방 특허국에 근무하면서 이 이론을 연구하였다.
얼마나 난해한 이론인지 세계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동경대학교 이학계열 천명의 학생들에게
이 이론을 강의하면 3명 정도만이 이해한다고 한다.
그런 아인슈타인도 우리보다 5%정도 더 머리를 활용했다 한다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옴).
1952년 이스라엘 대통령직을 거부한 그는 정신이상자도 아니며,
오늘날 학자에 의하면 I.Q는 175정도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이 주신 능력을 왜 사장하고 쓰지 않는가? 선교라는 말만 하면 우리는 무조건 꽁무니를 뺀다. 우선 나부터......
100년이나 일찍 이 땅에 신자들의 힘으로 들어오고,
만명의 순교자를 낸 천주교는 왜 오랜 세월 동안 개신교에 주눅이 들어있는가?
2006년5월 정부(통계청)가 발표한 주택 ․ 인구 센서스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 4,800만명 중 53%정도는 종교를 가지고 있고,
천주교는 10년 전에 비해 74.4% 증가한 514만6천명,불교는 3.9% 늘어난 1,072만6천명,
개신교는 1.6% 감소한 861만6천명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 20년간 천주교 신자의 증가율은 175.9%, 개신교는 32.3%로 집계되었다.
“1000만 성도가 넘는다.”던 개신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그 행태도 비교가 되지 않는 천주교의 신자증가율에 종교계는 충격을 받았다.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사무총장 배영호신부님은 이런 결과에 대해 “조사과정에서
공식 등록된 신자와 일반인이 천주교에 호감을 갖고 신자로 답변했을 가능성이 크다.
교적 상 신자 수는 470만명이 안된다. 정부발표 보다 48만명이 적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정부통계에는 그런 사람들이 대거 포함되어 실제 신자 수보다 부풀려 졌으니,
왜 그들은 그런 대답을 했을까?
그것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도 심정적으로는 천주교에 기울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또 하나는 개신교쪽에서 가톨릭으로 많이 옮기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이도 사형이 확정되면 머리가 하얗게 된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온통 그 생각으로 말이다. 너무 극단적인 예이지만, 우리가 사형이 확정되어 집행만을 기다리는 상황인데
우리에게 1년의 기간을 주면서 선교하여 5명을 입교시켜 영세시키면 무조건 살려 주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적어도, 아주 적어도 48만명의 “나는 천주교 신자다.”고 답변했던
그들 만이라도 우리는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가톨릭신자의 증가율에 우리는 놀랐다.
왜, 왜?..... 우리는 선교를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까.
아직도 전 국민의 47%는 종교가 없다.
※ P.S-둔율동 성당 홈피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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