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이렇게 수준 높은 카페가 있어도 되는 거예요?”
장인(丈人)이 떠나시기 전이었습니다. 사범학교 출신으로 교육계 관리직에 몸 담았던 그 분께서 ‘한 끼 못 먹으면 평생 못 찾아 먹으니 꼭 챙겨 먹어라.’란 말을 농담조로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카페 ‘시월(詩月)’을 문 열기 전이었습니다. 돈벌이가 시원찮은 큰아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식당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달이 벌어 아파트 한 채 구입하기 힘들고, 다니는 직장 월급으로 후일을 기대해봐야 별 볼일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삼겹살집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식당들이 코로나로 문 닫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그것도 삼겹살 거리가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청주, 그 청주시 변두리에 삼겹살집을 내겠다는 것을 주변 분들이 극구 말렸습니다. 떼돈 벌 것 같은 창업을 말렸지만 한국 젊은이들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카페 ‘시월(詩月)’을 오픈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수익보다 문화를 생각하는 카페로 알려졌으면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시, 소설, 책 등은 학구적인 냄새가 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관심을 두고 접근하기 힘든 일입니다. 하루 밥 한 끼 챙겨먹는 것도 힘든데 무슨 놈의 커피(차)를 마시냐는 투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밥과 커피(차)의 거리는 하늘과 땅과의 거리만큼이나 먼 거리입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하늘과 땅은 서로 손잡고 있으며, 땅은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은 땅을 이웃으로 여깁니다. 책을 볼 수 있는 자리, 문학을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 조용히 카페 문을 열었습니다. 투자비용을 생각하면 그래도 수입이 나야할 텐데 -. 지난 6일로 문 연 지 석 달이 지났습니다. 하루 매상 목표를 5만원(겨울은 3만원)으로 잡았지만 5만원에 못 미치는 날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문 닫는 요일 없이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종일 카페에 누군가는 앉아서 손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이라든지, 먼 곳 약속을 하지 못하는 생활이 되었습니다. 이것에 따른 자녀들의 불만도 폭발하곤 합니다. 예전에는 심심풀이 삼아 멋진 카페로 놀러가기도 하고, 박물관, 문화유적지, 미술관을 들랑거렸는데 그런 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한다는 말이 내년 2022년에는 한 주에 하루 쉬는 것을 생각해 보자고 하였습니다. 실질적으로 카페를 운영하는 부사장님의 말씀이 그러지 않아도 손님 뜸한 카페에 하루 문 닫으면 운영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던 손님도 그렇고 일부러 멀리서 찾아온 손님에게 미안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카페 문지기로서 텅 빈 카페에 앉아 사람 모습 보기 힘든 앞길을 볼 때는 외딴 산골짜기, 들녘 부근에 자리 잡은 카페를 상상해봅니다. 일부러 사람이 찾아가지 않으면 종일 빈 가게로 있어야 할 곳이 우리나라 카페 중에는 부지기수로 많을 것입니다. 생업으로 붙들고 있는 카페였다면 정말 아들 말마따나 식당으로 개업해서 한 끼 밥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현명하고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학과 관련된, 좋은 글 씀을 젊은 꿈으로 갖고 살아온 제 자신이 그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러면서 백년 이상 갔으면 하는 꿈같은 바람을 갖고 문을 열다 보니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조석으로 카페 내부 모습과 주변을 살펴보며 보다 문화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업이 무엇일까 궁리합니다.
어제 아침에는 창밖에 ‘가을! 단풍처럼 시의 아름다움을 품 안에 -’란 글귀가 있는 희귀시집 전시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다니는 사람이 볼 수 있게 걸었지만 그것을 보고 카페에 들어와 커피(차)를 마시면서 책을 살펴볼 사람은 극히 드물 것입니다. 하지만 카페 ‘시월(詩月)’이 존재하는 의미를 찾을 때 이런 행사는 아주 소중하고, 가치 있고, 미래를 향한 즐거운 몸짓이라 할 수 있습니다.
커피(차)는 마시지 않아도 됩니다. 커피(차)를 문화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커피(차)를 매개로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혼자 마시는 커피(차)라도 커피(차)를 마시면서 사색을 한다면 커피(차)는 색다른 삶의 향을 풍기는 음식이 됩니다. 한 잔에 3천 원 하는 카페 ‘시월(詩月)’의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나라, 그것도 충청도에서 태어나고, 생각하고, 세상과 부딪치며 시를 써서 한국 문단의 큰 줄기를 이룬 시인들의 시집이 어떻게 생겼나 엿보는 시간은 예사롭지 않는 시간이 될 것이며, 문화를 품 안에 끌어들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밥 한 끼 먹은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밥은 굶지 않고 생활한다면 카페 ‘시월(詩月)’에서 시집 표지를 보면서 학창 시절에 배운 시를 떠올리는 것은 괜찮은 삶을 만드는 방법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지역에 이렇게 수준 높은 카페가 있어도 되는 거예요?
란 누군가의 질문에 부응하는 카페 ‘시월(詩月).
작은 공간이지만 문화의 플랫폼으로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카페 ‘시월(詩月)’의 정체성에 응답하는 ’희귀시집‘ 전시에 많은 이들이 참여한다면 ‘시월(詩月) 문지기는 신바람 나는 하루하루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