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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시험이 다가오는 지라 교원들은 팽이처럼 바삐 돌아쳤다. 7시 반이면 무조건 등교했으며 7시에 교실에서 학생들을 맞이하는 교원들도 많다. 해가 동산마루에서 멀리 떨어진 하늘 중천에서 여유부리며 흐느적거리는 8시 반에 줄레줄레 출근하는 공무원이나 사업단위 일꾼들과 차이가 많다. 하늘 아래에서 제일 위대하고 신성한 직업이 교원이라 했는데 그 위대함이 출근시간에도 체현되었다. 특히 겨울이면 어두운 방에서 눈을 부비적거리며 일어나 점착제라도 바른 듯 자꾸 감겨지려는 눈을 억지로 뜨고 아침을 대충 먹고 겨우내 굶은 호랑이에게 쫓기듯 총총 학교로 달려가야 했다. 하지만 한 하늘 아래서 남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출근시간 때문에 불평을 부리는 교원들은 거의 없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것은 눈을 깜빡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되었고 몸에 밴 습관이 되었다.
요즘 교원들 속에서 부엉이 그림 한 장이 돌개바람처럼 돌아다니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개학 초기엔 정갈하고 깔끔한 모습에 안경을 척 건 씩씩하고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부엉이가 기말시험 때엔 두 볼이 홀쭉해져 축가고 눈빛마저 뿌옇게 되었으며 머리와 기름기 돌던 몸의 털이 거의 다 빠져나간, 초췌하기 이를 데 없을 뿐더러 늙기까지 한 모습으로 변한 그림이다. 이 한 장의 그림은 교원들의 학기 초와 학기 말의 일상을 대조적으로 생동하게 그려냈다. 교원들은 요즘 유행처럼 저마다 부엉이 그림을 자신의 위챗 모멘트에 올려 고단한 교원생활을 반영해 보이기도 한다. 이 역시 기말시험이 교원들에게 주는 압력과 그로 인한 고충을 사회와 학부모들에게 털어놓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정령이가 초등학교 3학년 아들 성함이를 앞세우고 막 학교 대문에 들어서는데 당직실에서 웬 사람이 나와 정령이 앞을 막았다.
- 정령아!
깜짝 놀라 머리를 들어보니 웬 남자가 마주 서있는 지라 정령이는 흠칫 몸을 떨며 멈춰 섰다. 낯선 남자를 바라보는 눈길은 의문과 의혹으로 가득 차있었다. 마주 선 남자는 얼굴이 퍽 수척하고 파리하며 눈확이 푹 꺼져 들어간 60대 즈음의 낯선 남자였다.
- 저를 부르신 것 같은데 혹시 절 아세요?
- 그럼 알지, 알구말구.
자신을 안다는 말에 정령이는 그 남자를 찬찬히 여겨봤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 미안한데요. 전 전혀 모르겠는데…… 누구시죠?
- 저, 저…… 난 박광훈이라 하는데 니 애비 되는 사람이란다.
순간 의문에 차있던 정령이의 표정은 한 겨울날 스피드 스케이팅을 해도 꺼지지 않을 얼음장처럼 굳어졌다. 머릿속엔 삽시에 갓 부화되어 개울에서 오글거리는 올챙이처럼 수많은 의문부호들이 나타나 마구 휘젓고 다녔다. 머릿속 밑바닥에 조약돌이 깔려 있는지 이름 모를 풀뿌리가 자라 엉켜있는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진탕처럼 흐려졌다.
‘아버지? 나한테 친아버지가 있었던가?’ 35살까지 살아오면서 친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러본 기억이 없었다. 적어도 지난 일을 희미하게라도 기억할 수 있는 그 어느 때부터인가 아버지라는 말 한 마디 해본 적 없었다. 인생 사전에서 아버지란 명사를 아주 지워버렸다. 가끔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면 자신도 돌 틈에서 빠져나온 손오공이 아닌 한 생부가 있을 거라고, 아니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마저 자신과 무관한 그 누군가의 일로 생각되었을 뿐이었다. 생부는 자신의 성장 과정에 실오리 만 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으니 있어도 없는 거나 다름없고 없다 해도 아쉬울 거 없는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자신 앞에 나타난 사람이 아버지라 해도 놀랍지도 반갑지도 않았다. 그리고 미덥지도 않았다.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 사람 잘 못 본 것쯤으로 생각되었다. 허구픈 웃음이 나오려 했다. 참았다. 또한 참고 있었다.
- 엄마, 빨리, 지각하겠어.
아들 성함이가 손을 잡고 두어 번 흔들어서야 정령이는 정신이 펄쩍 들어 흘깃 교실 쪽을 향해 보았다.
- 저 일이 바빠서 먼저 가봐야겠습니다. 실례합니다.
정령이는 그 남자 앞에서 가벼운 목례를 하고 성함이 손을 잡고 교실 쪽으로 향해 잰 걸음을 놓았다. 등을 쏘아보는 그 아버지란 사람의 눈길을 따갑게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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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 들어서서 무슨 정신으로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나눠줬는지 모른다. 요즘은 기말복습자료가 얼마나 많은지 하루에 해야 할 시험지만 해도 산더미만 하다. 어문, 수학 시험지를 번갈아 가면서 한 장을 하고 나면 또 다른 한 장을 시켜야 했다. 하고 또 해도 무엇인가 못해서 부족한 느낌이 들었고 또 더 시켜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다. 애들도 시험지를 보기만 해도 벌초를 기다리는 무덤만큼이나 싫어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한 학기를 좋은 성적으로 총화 짓기 위해 싫어도 해야 했고 억지로라도 해야 했다.
시키는 것까지는 어려운 일이 아닌데 시험지를 일일이 훑어보고 정리하는 게 힘들었다. 시험지를 통해 학생들이 소화를 못하거나 아리송해 하는 전형적인 문제를 찾아 집중강의를 해야 하니깐.
하여 교원들끼리는 수업하러 교실에 들어갈 때는 전쟁판에 들어간다고 했다. 이미 교원들 사이에선 잘 통하는 말이었다.
오늘 하루 무슨 정신으로 “전쟁”을 해냈는지 정령이도 정신이 없었다.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나누어 주면서도 아버지라 자칭하던 사람이 머릿속에 자꾸만 떠올랐다. 아침에 봤을 때만 해도 어리둥절한 김에 남이라고 혹은 남처럼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뿌리치고 교실에 들어섰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자꾸 그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환각처럼 나타나고 힘없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여태 땅에 잦아든 듯 머리카락 한 오리마저 안 보여주다가 현재 량씨 부모님의 뒷바라지 하에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취직한 뒤 결혼하고 애 낳고 잘 사는 마당에 찾아온 것이 화났다. 고요한 가슴에 지워질 줄 모르는 파문이 자꾸 일어나고 있었다. 불안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다. 소나기 오기 전 하늘의 먹장구름이 당장 내려앉을 듯 한 갑갑함이 밀물처럼 가슴 속에 몰려들었다. 학생들이 시험문제를 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도 불안한 생각이 불쑥불쑥 갈마들어 정령이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잠시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숨통이 막혀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답답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아주 지워버리고 꿈에서마저 부르기 저어했던 아버지란 사람이 거짓말같이 나타나 정령이의 마음은 마구 들쑤셔놓은 벌 둥지가 된 것 같았다. 흐트러지고 복잡한 마음을 한 곳에 모으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다리에 착 달라붙은 찰거머리마냥 잘 떨쳐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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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을 마치고 정령이는 성함이를 데리고 학교 대문을 향해 걷고 있었다. 하루 동안 머리가 터질 정도로 공부하고 또 숨쉬기도 부족할 만큼 짧은 십 분이란 휴식시간마저 운동장에서 망아지처럼 뛰노느라 배고프고 지쳤는지 성함이가 칭얼댔다.
- 엄마, 나 배고파.
-그래, 알았어. 집에 가서 밥 해줄 테니 얼른 가자꾸나.
성함이는 마음이 조급해났는지 엄마가 해준 맛있는 저녁을 먹을 생각에 힘이 생겼는지 깡충깡충 앞장서서 뛰었다.
그러는 성함이를 쫓아 정령이도 부지런히 걸었다.
- 박정령! 정령아~
익숙한 목소리에 정령이는 흠칫 몸을 떨었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또 아버지란 사람이 정령이를 부르고 있었다. 퇴근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렸거나 아님 퇴근시간에 맞춰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 사람이 눈에 띄는 순간 정령이는 피하고 싶어졌다. 물처럼 땅 속에 스며들어 버리거나 바람처럼 휙 스쳐 지나고 싶었다.
- 왜 또 찾아 오셨어요? 저에게는 당신 같은 아버지 없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는데 저는 박씨가 아니라 량씨거든요. 량정령이요. 뭣때문에 절 찾아오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 다시 볼 일이 없으니 그만 돌아가세요. 그리고 다시 찾지 말아주세요. 저에겐 아버지란 량씨 아버지 단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루 수업을 마치고 아무리 지쳐도 체력보완 차원에서 성함이 손을 잡고 20여분씩 걸어 집으로 돌아가군 하던 정령이었지만 오늘은 길옆에서 손님을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무작정 올라탔다. 일초라도 기억하기 싫은 아버지란 그 사람을 빨리 피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 엄마, 오늘은 안 걸어가요? 운동을 위해서라도 걸어야 한다면서요? 그리고 운동은 견지해야 한다면서요?
성함이가 올롱한 눈으로 말없이 택시를 잡아탄 엄마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 그래, 엄마도 지치고 또 너도 배고프다면서. 빨리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 정령아, 정령아~
떠나는 택시를 향해 부르는 소리를 뒤로 하고 택시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차 뒤를 따라오면서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령이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백미러로 차 뒤를 따르는 사람을 본 택시기사가 정령이 얼굴을 흘깃 쳐다보더니 브레이크를 슬쩍 밟았다가 다시 속도를 냈다. 차는 눈 깜짝할 사이 물결을 이루는 차들 속으로 스며든 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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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정령이가 다섯 살 나던 해였다. 정령이 부모님들은 무슨 일인지 늘 옥신각신 다투더니 끝내 이혼했다. 너무 어려서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정령이는 옷 보따리 하나 달랑 든 엄마 손에 이끌려 외할머니 집에서 얹혀살게 되었다.
외할머니와 이모 그리고 엄마의 사랑을 받으면서 근심걱정 모르고 자라던 정령이한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쳐왔다.
이혼 후 자주 앓음 자랑을 하던 엄마가 병원에서 한 달 남짓 치료하다가 저 세상으로 떠났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죽음이란 무엇인지 몰랐던 정령이는 엄마가 보이지 않자 저녁마다 엄마를 찾아 자지러지게 울면서 잘 염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얼굴이 새파래날 때까지 악을 바락바락 쓰면서 울어댔다.
날이 지나면 울음을 그치겠지 했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딸을 가슴에 묻고 한숨에 눈물을 하루 세끼 밥 대신 먹으면서 살다시피 한 외할머니에게 정령이의 울음소리는 그야말로 가시가 되었고 비수가 되었다. 토악질하면서 울어대는 정령이에게 지쳤는지 외할머니마저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외조카 때문에 엄마까지 잃겠다고 생각된 정령이 이모는 할 수 없이 엄마 몰래 정령이 손을 잡고 정령이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날은 하늘에서 무슨 명절이라도 맞았는지 떡방아를 찧어 채에 치듯 온 종일 떡가루 같은 눈을 푸실푸실 날렸다. 이모로부터 아버지에게 데려다 준다는 말을 듣고 정령이는 무작정 좋아했다. 훈춘에서 연길 가는 버스에 앉아서도 가만있질 못했다.
- 이모, 나 정말 아빠한테 가는 거야?
- 그럼, 아빠한테 가는 거야.
- 아빠한테 가면 엄마도 만나는 거야?
- ……
- 이모, 아빠한테 가면 엄마랑 같이 살 수 있는 거지?
철모르는 어린애의 물음에 이모는 대답 대신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는 척 하면서 가만히 눈물을 훔쳤다. 이 어린 것이 엄마가 얼마나 보고팠으면 이럴까 싶었다. 마음 같아선 다시 정령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결혼도 하지 않고 온전한 직장 없이 살아가던 정령이 이모는 언니의 죽음과 엄마의 비통 그리고 이로 인한 모든 어려움과 아픔을 혼자 감내하기엔 너무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령이까지 키운다는 건 무리였다.
당시 연길 한 직장에서 꽤 잘 나가던 박광훈은 연락도 없이 애를 데리고 사무실에 나타난 정령이 이모를 보고 놀랐다.
- 어? 이게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 그렇게 됐어요.
정령이 이모는 박광훈이 따라준 차 한 모금 마실 사이도 없이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박광훈의 얼굴은 까맣게 죽어갔다. 박광훈은 이혼하면서 애를 전처에게 보내고 자신은 아무 부담 없다는 조건으로 한 처녀와 갓 결혼한 처지였다. 결혼 전에 애는 죽어도 돌아올 일이 없고 달라 해도 전처가 안 줄 것이며 또 와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다. 그러면서 생활비 일 전 한 푼 보탤 일이 없으니 새 가정을 꾸려 잘 살 일만 남았다고 가슴 벽을 퉁퉁 치면서 장담했다. 그렇게 새로 맞은 아내 앞에 정령이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정말 애를 데리고 후줄근한 모습으로 집에 들어선다면 아내가 엉덩이를 훌훌 털고 도망갈 것 같았다. 결혼 전에 박광훈이 말한 대로 안 한다면 같이 살지 않을 테니 알아서 하라고 으름장 같기도 하고 협박 같기도 한 말을 아내가 한 적 있기에 하늘이 조각난대도 집에 데려갈 수 없었다.
박광훈의 눈앞에는 아내가 정령이를 보고 베개며 옷가지들을 마구 뿌려 던지며 행악질하고 보따리 싸고 나가는 장면이 비디오마냥 스쳐 지났다. 임신 삼주 밖에 안 된 아내 앞에 정령이를 데려가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미지수였다. 박광훈은 신혼의 행복과 평온을 정령이로 인해 깨지고 싶지 않았다.
박광훈은 정령이를 데리고 연길 시내에 있는 가까운 친척집에 찾아갔다. 잠시 친척집에 두고 해결책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한편 아빠 따라 아빠 집에 가면 엄마랑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던 정령이는 낯선 집이라 겁에 잔뜩 질려 박광훈의 목을 꼭 끌어안고 놓을 염을 하지 않았다.
- 아빠, 빨리 집에 가자. 엄만데 가자.
- 정령아, 오늘은 안 되고 내일 가자. 오늘은 여기서 하룻밤 자야 돼.
- 그럼 아빠도 같이 자는 거야?
- 그럼, 그럼. 아빠도 같이 자지. 그러니까 어서 자.
친척집 거실 바닥에 자리를 펴고 정령이와 가지런히 누운 박광훈은 정령이에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그리고 정령이의 등을 토닥토닥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시선은 자꾸 벽에 걸려 있는 벽시계에 옮겨졌다.
눈 오는 날 황소처럼 느리게 달리는 버스를 몇 시간 타고 오느라 피곤했던지 정령이는 자리에 누운 지 얼마 안되 쌔근쌔근 코를 골았다. 이를 갈다가도 배시시 웃는 모습이 달콤한 꿈이라도 꾸는 듯했다.
박광훈은 딸애가 잠이 들었음을 확인하고 살며시 팔베개를 했던 팔을 빼냈다.
문득 정령이가 눈을 뜨면서 박광훈의 팔을 잡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박광훈은 등을 두드려 주었다. 다시 쌔근쌔근 깊은 잠이 들자 박광훈은 정령이를 두고 도둑고양이마냥 살금살금 문을 나섰다. 그리고 급히 택시를 타고 하남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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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박광훈은 한밤중에 자다가 옆자리가 비어 내내 울어댄 탓으로 눈이 꿀종지만큼 부은 정령이를 데리고 친척집 문을 나섰다. 아무 것도 모르는 딸애에게 기차역 앞마당에서 파는 얼음찔광이를 쥐어주고 기차에 올랐다.
도문 역에서 목단강행 기차를 갈아탄 박광훈은 기차에서 파는 막대사탕을 사주었다. 아빠랑 엄마한테 가는 줄로 여긴 정령이는 달달한 사탕을 쪽쪽 빨아 먹으면서 여겨 듣지도 않는 박광훈을 쳐다보면서 수시로 쫑알댔다.
-아빠, 우리 이제 엄마랑 만나서 어디 놀러 가는 거지? 난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천안문 갈 거야. 그리고 바다에도 갈 거야. 바다에는 무서운 상어랑 있다는데 난 하나도 안 무서워. 엄마, 아빠가 있기에 상어가 날 피해줄 거야.
박광훈은 딸애가 쫑알대는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직도 흰 눈이 군데군데 쌓인 밭에는 몇 마리 소들이 먹잇감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 중 송아지 한 마리가 어미 소의 젖무덤을 짓궂게 뚜지고 있었다. 아무리 빨아봤자 입에 들어오는 게 별로 없는지 송아지는 가끔 젖꼭지를 문 주둥이로 어미 젖무덤을 쿡쿡 들이박았다. 먹잇감을 찾지 못하게 애먹이는 송아지가 몹시 불편하고 얄밉겠는 데도 어미 소는 발길질 한 번 하지 않고 잠자코 들이대고 있었다. 때로는 코로 흰 김을 내 뿜으면서 벌겋고 기다란 혀로 송아지의 몸뚱이를 여기저기 핥아주었다.
몇 시간을 달려 목단강에 도착한 박광훈은 또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려 녕안현 한 농촌에 이르렀다.
인가가 70여 호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었다. 조선족과 한족이 어우러져 사는 촌이었는데 입쌀과 수박이 잘 되는 고장이었다.
미리 연락이 닿았는지라 한 한족 사람이 버스 정류장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한족 사람을 따라 한 농가에 이르렀다. 검은 테안경을 건 한 한족 남성과 빨간 바탕에 하얀 꽃이 잔뜩 핀 천으로 만든 옷을 입은 그의 아내인 듯한 여자가 그들을 반겨주었다. 1미터도 더 되게 높게 한 구들은 아침부터 군불을 땠는지 뜨끈뜨끈했다. 방 안은 나무연기거나 요리할 때 탄 듯한 식용유 냄새 비슷한 것이 진하게 감돌고 있었다. 어느 때 회칠한 건지 희었을 것 같은 벽이 마분지 색처럼 누르끼레했다.
부부는 눈매가 유달리 똘망똘망한 정령이를 보더니 얼굴에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정령이는 겁을 잔뜩 먹었고 박광훈은 정령이의 손을 더 꼭 잡아주었다.
구들 위에는 볶은 낙화생이며 해바라기씨 그리고 낙화생 사탕을 수북이 담은 그릇이 놓여있었다.
- 이름이 정령이지? 어서 와 사탕 먹어.
한족 여성이 정령이 손을 잡으려 하자 정령이는 털이 부수수하고 다리가 여러 개인 징그러운 송충이를 피하듯 아빠 뒤에 몸을 옹송그리고 숨었다. 아빠 옷자락을 잡고 빠끔히 두 한족 내외를 바라보는 정령이의 눈은 겁에 잔뜩 질린 채 유리구슬처럼 동그랗게 커졌다.
- 괜찮아. 이 아줌마가 너 예쁘대. 사탕이랑 맛있는 거 많이 줄 거야!
박광훈은 두려움에 떠는 정령이를 무릎 위에 앉혔다. 그리고는 낙화생 한 알 쥐어 껍질을 발라내 정령이 입에 넣어주었다.
정령이는 아빠가 낙화생을 입에 넣어주자 탕개가 좀 풀리는지 오독오독 씹어 먹었다.
박광훈과 한족 부부는 정령이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수없이 주고받았다.
저녁이 되자 닭을 잡고 물만두를 빚었다. 아빠 옆에서 뜨끈한 물만두와 닭다리 살을 맛있게 먹은 정령이는 그제야 좀 안심되는지 이 방 저 방 기웃거렸다. 그러면서도 얼마 안 가 아빠 옆에 쫑드르르 달려와 무릎 위에 앉아 목을 꼭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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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잠에서 깬 정령이는 아빠가 보이지 않자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온종일 차에서 지쳤는지 이리저리 뒹굴면서 단잠을 잔 정령이의 솜털처럼 보드랍고 가느다란 머리카락들이 이리저리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정령이가 복잡한 시장 바닥에서 길 잃고 헤매는 어린이마냥 두 눈이 황~ 해서 이 방 저 방 찾아다니면서 아빠를 찾자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한들한들 사정없이 휘날렸다.
한족 부부가 정령이 뒤를 따라 다니면서 링링아, 링링아 하고 불렀지만 한어를 알아들을 리 없는 정령이는 두 눈이 화등잔만 해서 아빠 찾기에 여념 없었다. 어느 방이나 샅샅이 뒤져보고서야 아빠가 없어졌음을 알아차린 정령이는 양쪽 구들 사이에 낸 복도처럼 생긴 땅바닥에 앉아 울어댔다.
- 아빠, 앙~ 아빠~ 아빠~ 앙앙앙……
어린 정령이의 눈에선 눈물이 왈왈 흘러내렸다. 얼마나 악을 쓰고 울어대는지 이마가 촉촉이 젖어들면서 보드라운 머리카락들이 이마에 찰싹 들어붙었다.
정령이의 울음소리가 얼마나 처량하고 가슴을 파헤치는지 한족 부부마저 얼리고 닥치다 못해 마주 앉아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리고 사랑을 듬뿍 주면 엄마 아빠 부르면서 참한 딸로 될 줄 굳게 믿었다.
하지만 이들 한족 부부의 생각은 틀리었다. 아빠가 간 걸 알고 나서 정령이는 낮에는 물론 한밤중에도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아빠를 찾아 울었다. 어찌나 울어대는지 목이 다 쉬었다. 울다 지쳐 이불을 들쓴 대로 잠에 빠져 잠깐 토끼잠을 자고 또 소스라쳐 깨나 악을 바락바락 쓰면서 울었다.
한족 부부의 집은 정령이 울음소리로 매일 초상난 집 같았다. 옆집과 앞뒤 집에서마저 애가 너무 악착스러우니 키울 애가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악착스러운 애를 키웠다간 집에 뭔 재앙이 떨어질 줄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당시 농촌에는 애들이 너무 악을 쓰고 울면 불길하다는 속설도 있었다.
하여 한족 부부는 일주일도 못 견디고 할 수 없이 정령이를 이웃 촌의 아들만 셋 되는 조선족 집에 데려다 주었다. 하지만 그 집에서도 정령이는 밤낮없이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댔다. 하여 3일 만에 정령이를 또 다른 한족 집에 보냈다.
이렇게 정령이는 한 달 사이에 6집이나 옮겼다. 맷돌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 정령이는 결국 돌고 돌아 맨 처음 왔던 한족 부부네 뒷동네로 오게 되었다.
성이 량씨인 한족 내외는 40대 후반이었는데 아들 둘 있었다. 정령이의 딱한 사정을 대충 안 량씨 내외는 정령이가 너무 불쌍했다. 남들이 딸은 따뜻한 솜옷과 같은 존재라면서 자랑할 때마다 침 흘릴 지경으로 부러워했던 량씨 내외는 정령이는 하늘이 내려 보낸 딸이라고 하면서 금싸락 같이 생각해주었다. 그들은 정령이가 어떻게 울던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얼리면서 개그까지 총동원하면서 정령이 웃기기 작전에 나섰다. 정령이는 량씨네 가족들의 웃기는 모습에 울다가도 눈에 눈물을 대롱대롱 단 채 웃기도 하고 또 울다가 동작을 따라 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운명을 알아채고 운명 앞에서 더는 항거할 힘이 없음을 느꼈던지 아니면 보기만 해도 서글서글하고 착한 인상을 주는 량씨 내외가 믿음직하고 친절해보여 경계심을 내려놓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울음을 그친 후에도 한동안 새초롬하니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올롱한 눈으로 량씨 내외 행동을 주시하고 또 두 한족 오빠들이 고무총으로 잡아온 참새를 먼발치에서 구경하던 정령이는 차차 새 가족들에게 다가갔다. 한족 오빠들이 노릇노릇하게 구운 참새고기를 입에 넣어주면 오물오물 씹어 먹곤 고소한 맛에 더 달라고 고사리 손을 쏙 내밀기까지 했다. 두 오빠들은 서로 자기 손에 쥐어졌던 참새고기 살점만 발라 정령이 입에 넣어주었다. 애들은 쉽게 친해졌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참새고기를 주고받는 작은 행동으로 벌써 한 형제가 되었다.
량씨 부부는 정령이를 자신들의 성을 따라 량정령으로 호구에 올렸다. 그리고 집에선 애명 삼아“링링”이라고 불렀다. 정령이가 처음으로 배시시 웃던 그날부터 량씨네 집은 웃음으로 차 넘쳤다. 량씨 내외는 물론 두 한족 오빠들까지 밥을 먹을 때는 반찬을 집어 정령이 밥그릇에 얹어주었고 밥부터 그릇, 물, 수저에 이르기까지 한어를 한 마디씩 배워주었다. 원래 예쁘장한 생김처럼 영리한 정령이는 량씨 가족들과 잘 어울렸고 또 막내로서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정령이가 8살 되던 해, 량씨 부부는 동네에 있는 촌 소학교 조선족 애들 반에 입학시켰다. 현숙하고 부드러우며 얌전한 조선족 여성미를 갖추고 고양하며 전승해가라는 욕심에서였던 것이다. 하여 정령이는 집에서는 한어를, 학교에서는 조선어를 배우면서 성장했다.
녕안 조선족중학교를 졸업하고 연변대학까지 나온 정령이는 훈춘시 사업단위 초빙시험에 수석으로 합격되어 한 조선족실험초등학교에 취직하고 그 뒤 정부에서 공무원으로 있는 착한 신랑을 만나 알콩달콩 잘 살고 있었다.
그리고 해마다 설 명절 때면 흑룡강에 있는 한족 부모들한테 찾아가서 명절을 쇠기도 하였고 또 여름방학이면 아들 성함이에게 시골 체험을 시키느라 양부모네 집에 보내기도 했다. 양부모들도 방학마다 외손자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7
휴일이었다. 다망하고 숨통을 조여 주던 기말시험을 치르고 맞는 첫 휴일이었다. 모처럼 시름 놓고 쉴 수 있고 마음껏 여유를 부려도 될 만 한 날이었다.
은빛가루 한 자루를 방안에 쏟아 부었는지 겨울 햇볕이 창문으로 마구 들어와 집안은 한결 따사롭고 밝았다. 평화롭고 온화한 하루를 늦잠으로 늦장을 부리면서 한 달 동안 고생했던 피곤을 풀기 위해 정령이는 이불 속에서 꿈지럭거리면서 일어날 염을 하지 않았다.
“따르릉……”
휴대폰소리가 급촉하게 울렸다.
-늦잠을 자려 했더니 누구지?
정령이는 중얼거리면서 침대머리에 놓였던 휴대폰을 들었다.
담임을 맡아서부터 휴대폰을 꺼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과 한밤중에도 연락할 때가 있었고 연락할 일이 없더라도 만약의 경우를 위해 꺼놓을 수 없었다.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가 나타났다.
-여보세요? 량령령입니다.
-뭐 량령령?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정령이도 무슨 말이 나올 지 기다렸다. 몇 초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갑갑해났다.
- 정령아, 아버지다. 좀 만날 수 있겠니?
순간 정령이는 가슴이 막혀났다. 며칠 전에 그렇게 매몰차게 대했으니 이젠 다시 더 볼 일이나 마주칠 일은 없을 것으로 짐작했는데 전화가 오다니? 참으로 한심했다. 할 말을 잃을 정도로.
- ……
- 너한테 아버지 노릇을 못해서 미안한 줄 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만나고 싶으니 나올 수 있겠니?
- ……
- 네가 날 만나기 싫어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냥 사형수의 마지막 요구처럼 생각하고 들어주면 안 되겠니?
- 뭐라구요? 사형수요? 잘 살고 있을 거잖아요?
- 암튼 만나서 얘기하자. 내 마지막 소원이라 생각하고 들어주렴.
- 난 만날 일도 그리고 할 얘기도 없어요.
- 토프레소카페 2층에 오렴. 거기서 기다리마.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런 줄 알아라.
나이가 들어도 참으로 제멋대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정령이는 대충 씻은 뒤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고 나왔다. 북방의 겨울 날씨치고 너무 포근했다. 하지만 정령이는 오싹해나면서 몸이 저도 모르게 흠칫 떨렸다.
총총 걸어 토프레소커피숍 2층에 올라가니 며칠 전에 학교 앞에서 만났던 수척한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더 했는지 며칠 전보다 얼굴이 더 마르고 창백해 보였다.
정령이가 맞은 켠에 앉자 고구마라떼 두 컵이 올랐다. 그 분이 정령이가 좋아하는 차가 무엇인가 묻지도 않고 시킨 것이었다. 정령이는 흠칫 놀랐다. 어렸을 때부터 정령이는 고구마를 너무 좋아했었다. 량씨네 집에 입양된 후 량씨 부모님들은 정령이가 고구마를 좋아한다고 겨울철이면 맛있기로 소문난 교하고구마거나 산동고구마 한 가마니씩 사다 김치 움에 저장해두고 매일 한두 개씩 쪄 먹이거나 잿불에 구워 먹였다. 그렇게 고구마를 많이 먹고서도 싫증을 느낄 줄 모르는 정령이였다. 마주 앉은 분이 알고 시킨 것 같아 흠칫했다.
-자, 뜨끈한 고구마라떼 마시거라. 겨울엔 그래도 고구마라떼를 마시면 속이 훈훈해나고 달착지근하지.
박광훈은 옅은 안개처럼 김이 몰몰 피어나는 컵을 입가에 가져다댔다. 가볍게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무겁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훈훈한 커피숍 분위기와는 달리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는 이름 모를 냉기가 싸하게 감돌았다. 정령이는 눈길을 찻잔에 떨어뜨린 채 한참을 들여 보다가 홀짝하고 들이마셨다. 탁자 위에 찻잔을 다시 놓았다가 또 집어 들었다. 어색한 분위기에는 그렇게 하는 게 유일한 대처법인 듯 자주 찻잔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박광훈은 그러는 정령이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볼수록 눈이 부옇게 흐려왔다. 맥주를 건배하듯 차를 한 모금 쭈우욱 들이마셨다. 그리고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무엇인가를 꺼내 상 위에 놓았다. 정령이의 눈길은 여전히 찻잔에 머물러 있었다.
- 정령아, 듣거라. 나 이제 잘 살면 반년이나 살런지 할 거다. 죽음을 마주하고 폭발시간을 기다리는 시한폭탄처럼 정해진 생명을 하루하루하루 소모하다가 큰 맘 먹고 너한테 찾아온 거다.
순간 정령이는 몸을 오싹 떨었다. 냉정을 찾고 흩어지려 하는 정신을 바로 차리고 찻잔에서 눈길을 돌려 박광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박광훈을 쏘아보는 눈길엔 보이지 않는 독기가 활활 풍겨 나오는 것 같았다. 정령이가 입을 열었다.
- 그러니 죽을 때가 다가오니 저한테 찾아온 건가요? 돌아가시기 전에 저를 만나본다는 것마저 짐이 될 텐데요?
- 사실 난 죽기 겁나다. 난 60밖에 안 됐다. 죽기엔 너무 아쉽고 억울하고 무섭다. 나 지금 신부전 때문에 매일 혈액투석으로 하루하루를 버겁게 생명을 지탱해가고 있단다. 오직 신장이식수술을 해야만 살 수 있단다. 장기기증센터에 등록해두었으나 나와 맞는 신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구나. 이 카드에 돈 10만 위안이 들어있는데 이 돈 가지고 날 살려주면 안 되겠니?
- 뭐요? 그러니 제 신장을 이식하려는 건가요? 참 아버지란 사람이 염치가 있기나 한 거예요? 듣자니 날 키우려니 생활비 아까워서 그리고 새 장가를 들고 나를 키우기 싫어 남한테 줬다면서요? 버렸으면 버렸지 이제 와서 자신의 목숨을 살리겠다고 찾아오다니요? 아버지라는 사람이 이게 말이 돼요?
정령이의 목소리는 늦가을 바람에 간신히 붙어있던 나뭇잎이 바르르 떨듯 떨려났다. 몸까지 떨려나면서 목이 잠기려 했다.
박광훈은 머리를 푹 숙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 정령아, 전에 일은 정말 미안한데 그때는 내가 새 가정을 일구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단다. 그래도 내가 아버지가 아니니?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
- 아버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 그럼 한 가지만 물을게요. 그 당시 저도 이 세상에 하나뿐인 딸이 아니었어요? 그랬음에도 버린 사람이 누구였어요? 다시 말하는데 저한텐 아버지 없어요. 저를 버린 순간부터 저는 아버지 없는 아이였어요. 그리고 분명히 말해두는데 저의 신장은 바라지도 말아요.
정령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슴 속에서 감주 같은 것이 부글부글 괴어올랐다.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젊은 남녀가 정령이의 돌발적인 행동에 의아한 눈길을 날렸다. 그 눈길에 얼굴이 따끔해났다. 정령이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었다.
- 새 가정을 이뤘으면 자식들도 있을 거 아닌가요? 그러면 자식한테 얘기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 그게…… 그게 실은 아들 하나 있는데 나하고 맞지 않는단다. 혈액형과 조직적합성항원인지 뭔지 잘 안 맞아서. 그래서 생각다 못해 널 찾아온 거란다.
- 참, 양심은 두었다 어디 쓰는 건가요? 불리하면 버리고 유익하면 찾아오는 그런 양심 때문에 벌 받은 건 아닌가요? 벌 받아 싸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 정말 미안하다. 애비란 사람이 해준 것도 없이 이제 와서 너한테 이런 과분한 요구를 제기해서. 그래 난 벌 받은 거야. 벌 받아 싸지.
- 과분한 걸 알면 하지 말았어야죠. 그러니 다신 이런 요구를 하지 말아요. 그냥 없던 일로, 안 들었던 일로 할게요. 먼저 일어날게요. 그리고 은행카드에 있다는 십만 위안은 신장이식수술에나 보태요.
칼로 싹뚝 자른 듯 한 정령이의 말에 박광훈은 머리를 푹 숙였다. 편한 자리에 앉았음에도 그의 몸은 불편하고 불안한 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령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찻값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왔다. 어쩐지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체할 수 없이 마구 흘러 나왔다.
화과산 와이석에서 태어난 손오공도 아니고 부모님이 사랑해서 태어난 것이었을 텐데 양육비가 아까워 그리고 새 가정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식을 버린다는 아버지가 세상에 자기 아버지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니 아버지란 사람이 너무 저주스러웠다. 특히 길가에 툭툭 걷어차이는 돌멩이처럼 이 집 저 집 6집이나 굴러다녔단 걸 생각하니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생각하기도 싫은 그 어려운 유년시절을 털어버릴 수만 있다면 정령이는 추운 겨울에 두만강 얼음구덩이에 뛰어 들어서라도 그 상처투성이였던 기억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8
무슨 정신으로 흑흑 흐느끼면서 집에 돌아왔는지 정령이도 잘 모를 일이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정령이는 옷을 벗지도 않은 채 침대에 털썩 엎드려 엉엉 울었다.
게임 중이었던 남편 승재가 화들짝 놀라 정령이에게 다가왔다.
-당신 웬일이야? 좀 전에 전화 받고 나가는 것 같더니 누구랑 싸운 거야?
정령이의 어깨는 물결치듯 세차게 오르락내리락 했다. 슬프게 흐느껴 우는 소리가 승재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 여보, 무슨 일인데 그래? 어서 말해. 말해야 알 거 아니야?
그제야 정령이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얼굴은 눈물로 씻어낸 듯 범벅이 되었다.
승재가 정령이의 두 어깨를 감싸 쥐면서 물었다.
- 무슨 일이야? 혹시 당신 부모님한테 안 좋은 일 생긴 거야?
남편이 한 부모님이란 말에 정령이는 울음을 그쳤다. 소매로 눈물을 쓱쓱 닦았다. 승재가 침대머리에 놓여 있던 휴지통에서 휴지 한 장을 꺼내 정령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 여보 나 어떡해요?
- 뭐 어떡하긴? 이 든든한 남편이 다 받쳐 주는데 뭐가 걱정이야.
- 저 그런 게 아니라…… 실은, 실은……
- 실은 뭔데 자꾸 말을 아끼는 거야?
승재가 재촉해서야 정령이는 일의 자초지종을 말했다.
- 당신 말해 봐요. 세상에 아버지란 사람이 이럴 수 있냐 말이에요.
- 당신 몸이 당신 것이 아니란 거를 명심해. 기억에서 지워버렸던 분인데 뭐 신장을? 안 돼. 난 반대야. 그리고 뭐 십만 위안? 십만 위안가지고 당신 신장을 달라고? 참 어이없다. 왜 잘 사는 우리 집에 이렇게 혼란을 가져다준대? 그것도 아버지란 사람이.
- 나도 전혀 줄 생각이 없어요. 남보다 못한 사람한테 왜 소중한 신체 일부분을 떼어주게요.
승재는 정령이를 가슴에 꼬오옥 품어주었다. 남의 집에 입양되었음에도 늘 밝고 생기발랄한 것이 정령이의 매력이었다. 그래서 더 사랑해주고 싶었다. 정령이에게 이 세상 가장 따뜻한 남편이 되어 정령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 정령이 신장을 제 잘 살겠다고 자식을 버린 생부한테 하늘이 무너져도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9
생부와의 만남이 있은 뒤 정령이는 일상이 즐겁지 않았다. 그 일을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자신을 일깨워주고 또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 해도 어쩐지 잘 안 되었다. 지워버리려 할수록 수척한 생부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그럭저럭 겨울방학을 무겁게 지내고 있는데 어느 하루 녕안으로부터 정령이 한족 양부모님이 찾아왔다.
방학마다 손자 성함이를 데리러 온다는 이유로 30년 가까이 친딸마냥 키워준 정령이를 보러왔다.
양부모님은 올 때마다 크고 작은 주머니를 가득 만들어왔다. 팥으로부터 옥수수쌀이며 좁쌀, 지어 이름난 향수 입쌀까지 한 주머니 메고 왔다.
정령이와 승재가 무거운데 가져오지 말라 해도 막무가내였다. 연변 쌀이 아무리 맛있어도 암석 위에 쫙 깔린 흑토에서 재배한 향수입쌀 맛은 이 세상 최고라면서 우격을 부득부득 쓰고 가져 오군 했다. 지어 산 토닭과 토달걀 한 광주리까지 가져오는데 보물단지처럼 가슴에 꼭 껴안고 오느라 해도 털렁거리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오노라면 한두 개씩은 깨지기 마련이었다. 깨진 달걀을 보면서 딸 가족들에게 한두 알이라도 적게 먹이게 된다면서 양부모들은 아쉬워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조선족이 섞여 사는 동네에서 살면서 뜯개말이라도 대충 해오던 양부모님은 정령이를 키우면서부터 가을걷이 뒤에 이삭줍기 식으로 조선어를 배우군 했었다. 그래서 웬만한 말은 조선어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일부는 알아듣기만 하고 할 줄 몰라도 정령이와 승재 그리고 손자 성함이의 손짓과 표정만 봐도 뜻을 알아차렸다.
- 정령아, 혹시 니 무슨 일 있나?
- 아니예요. 엄마, 일은 무슨……
- 내 니 엄마다. 니 얼굴색이 안 좋다. 무슨 일이 있구나.
아버지도 정령이의 기색을 살피더니 정령이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때 핸드폰소리가 울렸다. 정령이가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란 말 한 마디만 하고 정령이는 상대방의 말을 기다렸다.
상대방에서 전화를 끊었는지 정령이도 핸드폰을 껐다. 굳어진 얼굴색이 안 좋은 일이 생겼음을 말없이 설명해주었다.
- 여보 또 뭔 일이야?
- 그 쪽 아들한테서 전화 왔어요. 더 악화된 상태라구. 이제 더 지체하다간 신장이식수술도 못한다구 하네요.
- 안 된다 했지? 왜 쓸데없이 전화 받아 가지구 그래. 아예 받자마자 끊어 버려야지.
남편 성재가 길길이 뛰었다.
- 니들 싸우니?
딸과 사위사이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감내한 량씨 부부가 다그쳐 물었다.
승재는 최근 있은 정령이 생부 이야기를 꺼냈다. 조용히 듣던 량씨 엄마가 손사래를 쳤다.
- 안돼. 정령이 우리 하나밖에 없는 딸인데 안 돼, 안 돼.
량씨 엄마는 누가 당장 딸을 빼앗아 가기라도 하듯 정령이를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 엄마, 괜찮아요. 난 엄마의 딸이에요. 언제 어디서나 엄마의 딸!
모녀간을 애모쁘게 지켜보던 량씨 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정령아, 니가 우리 딸 해서 정말 고맙다. 넌 우리한테 너무나 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준 거다. 나도 니가 신장 하나 없는 걸 원치 않는다. 하지만 사람 목숨은 구해야 하지 않겠니? 니가 어릴 때 니 아빠가 우리 마을에다 널 버렸지만 니가 이제 와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거절하면 너도 아버지를 버린 거나 같은 거다. 에이. 그럼 우리 정령이도 널 버린 니 친 아빠와 다를 거 하나도 없다 알겠니?
량씨 아버지는 정령이에게 천천히 말했다. 량씨 아버지의 무게 있는 말에 모두들 침묵을 지켰고 승재와 량씨 엄마는 깊은 한숨을 몰아쉰 뒤 머리를 푹 숙이고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아버지, 난 그래도 싫어요. 나는 아버지한테 내 신장을 주라면 줬지 그 분한테는 못 줘요. 그 분이 나한테 뭐 해줬어요?
- 정령아, 그럼 못 써. 고와도 좋고 미워도 좋다. 그 아빠 아니면 니 있을 수 있니? 난 우리한테 너처럼 착하고 예쁜 딸을 준 데 대해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그 분이 아니면 우리 어디서 너 같은 딸 그리고 사위와 손자를 얻나?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게 젤 큰 은혜란 걸 잊지 말아야지. 안 그러니?
정령이는 70이 넘은 량씨 아버지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 유유히 흐르는 두만강도 발원지가 있고 가없이 넓고 깊은 동해바다도 시작이 있듯 모든 것이 근원이 있는 법이다. 정령이 존재도 실은 생부가 아니라면 찾아볼 수도 불러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도리를 너무 뻔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령이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 받은 상처와 마음속에 새겨둔 증오가 너무 깊고 컸기에 자신의 신장을 용서 안 되는 생부한테 떼어주기엔 너무 벅차고 달갑지 않았다.
- 아버지, 친아버지 없다면 내가 없다는 걸 알아요. 근데 날 버린 그날부턴 아버지가 아니었어요. 그러니 더 말하지 마요. 내게 친인이란 아버지,어머니와 두 오빠 그리고 우리 가족이에요. 다른 사람은 전혀 중요치 않아요.
- 정령아, 후회하지 말라. 이 말만 잘 기억해둬.
량씨네 부모님은 이틀 후 성함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온 집안의 엔도르핀이자 엄마 아빠한테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존재였던 성함이까지 없으니 집안은 텅 빈 것 같았다. 마음의 갈등으로 종잡기 힘들고 버거워서인지 성함이가 없는 집안은 음침해나기까지 했다.
정신을 다른 데 팔면 어수선해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정령이는 빨간 등산복을 입고 문을 나섰다. 거리에는 크고 작은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길 양쪽에서 걷고 있는 행인들의 얼굴은 추위에 빨갛게 상기되었지만 모두 아무 근심 걱정도 없이 사는 듯 행복해 보였다. 그들의 가벼운 걸음걸이와 밝은 표정이 그걸 증명해주는 듯싶었다.
정령이는 25만 명 인구를 갖고 있는 이 자그마한 변경도시에서 자신이 떨쳐버릴 수도 깨버릴 수도 없는 돌산을 맘속에 품고 있는 것 같아 서글퍼 남을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 세상은 공평하다고 하던데 정령이는 자신에게만은 세상이 너무 불공평해 보였다. 남들이 다 있는 친부모가 없는데다가 생부한테서 버림을 받았다가 어찌어찌해서 잘 살만 한 이 시점에 생부란 사람이 다시 나타나 장기 하나 떼어달란다. 정말 너무 혹독한 요구였다. 건강한 신장 두 개를 다 갖고 있어도 친부모 없는 아픔을 메워주기에는 한창 거리가 멀 것인데 그 건강한 신장마저 가만히 놔두려 하지 않았다. 눈물이 흘러나와 두 뺨을 적셨다. 정령이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눈물이 흐르고 싶은 대로 실컷 흐르게 하고 싶어졌다.
정령이는 발길 가는 대로 터벅터벅 걷기만 했다. 차량이 적은 길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아버지, 아버지”하고 목 놓아 우는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깜짝 놀라 울음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까만 천으로 만든 꽃을 단 영구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뒤로는 대형버스며 크고 작은 승용차들이 줄을 지어 따랐다. 행렬이 옆을 지나면서 섬뜩한 냉기를 쫘아악 뿌렸다. 정령이는 흠칫 몸을 떨면서 저도 모르게 피했다.
발길이 닿는 대로 차량이 적은 삼림산대로 역전 앞거리를 벗어나 정처 없이 걷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장의소로 가는 도로와 연결된 거리까지 걸어왔다.
가슴을 파헤치는 듯 한 가족들의 슬픈 울음소리가 정령이의 마음을 호미로 빡빡 긁어내리는 듯했다. 애간장이 다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갑자기 성함이를 데리고 떠난 량씨 아버지 생각이 났다. 전화를 넣어보니 벌써 집에 도착했단다. 성함이는 사촌형제들이랑 마을 뒤쪽으로 참새 잡으러 나갔단다.
우렁우렁한 량씨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서도 정령이는 왜인지 가슴 한구석이 불안해나기만 했다. 힘없고 메마른 생부의 낮다란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정령아, 미안하지만 난 살고 싶단다.”
그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정령이 머릿속을 쩌렁쩌렁 울려놓았다. 정령이는 입술을 힘주어 한 번 감빨고는 까만 가죽장갑을 낀 손을 으스러지게 거머쥐었다. 잠깐 후 장갑을 벗은 정령이가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내일 조직적합성항원검사인지 뭔지 하러 갑니다.
정령이는 자신이 누구라는 설명도 하지 않고 그냥 한 마디만 하고 전화를 툭 껐다.
스스로도 놀랐다. 어디서 이런 용기와 결단이 생겼는지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단 한 가지만은 조금 알 것 같았다.
10
정령이가 입원한 병실 안은 조용하다. 수술 후 엇갈아 가면서 시중하던 양 엄마와 남편이 이젠 완쾌되다시피 한 정령이를 두고 집에 잠깐 다녀갔던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홀로 병실에 있게 되었다. 정령이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병상에서 내려와 신기 편한 슬리퍼를 신었다. 환자복 위에 등산복을 걸치고 한 손으로 옆구리를 짚은 채 병실 문을 나섰다. 그리고 자신의 병실과 얼마 안 떨어진 한 병실 앞에 멈춰 섰다. 병실 문이 닫혀 있었지만 출입문 한 가운데 낀 한 조각의 유리를 통해 병실 안이 들여다보였다. 누워 링거를 맞고 있는 박광훈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은 여전히 수척해 보였으나 전보다 혈색이 돌아 불그스름했다. 눈에도 한결 정기가 돌았다.
박광훈의 모습을 지켜보는 정령이는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기쁨 같은 건 더더욱 느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슬픈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박광훈의 피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두 사람의 몸에서 조용히 흐르고 있는 피라는 이 빨간 액체가 세상이 두 조각난다 해도 정령이가 박광훈의 딸임을 증명해주었고 또 저 수척한 박광훈이란 사람이 자신의 생부라는 것을 깨우쳐줄 뿐이었다. 이런 깨우침이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정령이는 알 수 없었다.
생부의 병실 앞을 소리 없이 떠나는 정령이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마음이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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