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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히브리어 חֲנוֹךְ, 현대 히브리어 H̱anokh, 티베리안 히브리어 Ḥănōḵ, 아랍어: إدريس ʼIdrīs[*], 영어: Enoch)은 히브리 성경과 구약 성경에 의하면 아담의 계보(Generations of Adam)에 속한 인물이다.[1] 구약 성경의 창세기 5장에 따르면, 에녹은 아담의 6대손이며, 아담의 셋째 아들인 셋의 5대손으로 카인의 계보가 아닌 셋의 계보에 속한다. 또한, 에녹은 야렛(Jared)의 아들이며 성경의 최장수 인물인 므두셀라(Methuselah: 969년을 살았다)의 아버지이며 노아의 증조 할아버지로 나온다.[1] 구약 성경의 창세기 4장에는 "에녹"이라는 동일한 이름을 가진 다른 인물이 나오는데 이 인물은 카인의 아들이다.[3]
창세기 5장에는 각 인물들이 주로 누구의 자식이며 몇 해를 살다가 죽었는지가 기술되어 있는데, 죽음에 대해서는 "죽었다(died)"라는 낱말이 명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에녹의 경우는 이와는 달리, "죽었다(died)"는 낱말을 사용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것이다(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t; for God took him)" (창세기 5:24, 공동번역 & KJV). 전통적으로, 이 진술은 에녹이 아담의 다른 자손들과는 달리 죽음을 겪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예를 들어, 신약 성경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에녹은 믿음으로 하늘로 옮겨져서 죽음을 맛보지 않았습니다(By faith Enoch was translated that he should not see death)"라고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11:5, 공동번역 & KJV). ----------------------------------------------------------------------------------------- 에녹(Enoch) - 하나님과 동행한 자
인적 사항 1. 아담의 7대손이며 야렛의 아들. 2. 최장수자 므두셀라의 아버지. 3. '에녹'은 '신임자', '가르친다'라는 의미.
시대적 배경 아담의 직계 후손으로 노아의 홍수 이전의 시기. 인류가 계속 번성하고 있었음.
생애 주요 사건 성경에는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표현된 사람이 두 명 있다. 바로 노아와 에녹이다. 또 육신이 죽지 않고 승천한 사람도 두 사람인데, 한 사람은 엘리야이고, 또 한 사람은 바로 에녹이다. 그런데 위의 두 가지 증거를 동시에 얻은 자는 에녹뿐이다. 불과 몇절(창5:18-24)에 걸친 짧은 기록을 통하여 성경이 그의 생애에 대해 보이는 두 가지 관심사는 땅위에서의 거룩한 생활과 영광스런 퇴장에 관한 것이다. 1. 하나님과 동행함 -- ㄱ. 에녹과 관계된 몇 마디의 성구 중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기록이 두 번임(창5:22,24). -- ㄴ. 경건한 생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히11:5) 2. 승천함 -- ㄱ. 365년의 생을 삶. -- ㄴ.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워짐(히11:5)
성격과 업적 1. 경건한 자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경건치 않은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예언함(유14,15절). 2. 최장수의 축복을 누린 아들 므두셀라(969세; 창5:27)를 낳음. 3. 경건한 생활을 함. 4.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 5. 승천하여 복된 종말을 맞이함.
교훈 1.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그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함으로 우리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이러한 순종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삼상15:22). 2. 누구든지 에녹처럼 산 사람은 죽음에서도 에녹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선한 사람의 죽음에 평화가 있고 승리의 감격이 있음은, 곧 하늘로 옮기워질 것에 대한 소망 때문일 것이다(눅23:43). 3. 에녹은 어두운 세상에서 경건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세속의 물결 속에서 시달리고 있는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해주는 경건한 생활 태도이다(마5:13).
핵심 성구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4)
----------------------------------------------------------------------------------------------------- 에녹(창 5:21~24)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 육십 오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1~24) 성경에는 에녹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가인의 아들 에녹입니다. 그는 타락 계보를 이어갔던 인물이며,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이름을 따라 에녹이라 하였습니다. 또 다른 에녹은 셋의 계보로, 야렛의 아들이요 인류 최장수 인물 므두셀라의 아버지입니다. 특히 그는 너무나도 위대한 신앙의 선조였습니다. 믿음 장인 히브리서 11장에도 그의 이름이 나옵니다. 에녹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했음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창6:22) 여기서 ‘동행’ 이란 단어는 히브리어 ‘할라크’ 로 ‘산책하다’라는 뜻입니다.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뜻합니다. 하나님 신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신앙은 예배 신앙 계보의 축복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에녹은 셋의 계보로, 셋은 예배신앙을 가진 인물이었고 에녹에게서 보듯 그의 후손들이 축복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신앙이야말로 최고의 축복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녹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33:11) 모세의 이야기인데요. 그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친구가 되어 함께 산책하듯 친밀한 교제를 나눴습니다. 하나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도 ‘나의벗(사41:8)’ 이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에녹이나 모세, 아브라함 같은 이들은 세상과는 이별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감으로 세상과는 멀어진 것입니다. 세상 이별 신앙입니다. 므두셀라를 낳았음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창5:21) 므두셀라의 이름 뜻은 ‘예배’ 라고 합니다. 에녹이 철저히 하나님 신앙으로 살았더니, 그에 버금가는 신앙을 아들에게도 주신 것입니다. 이는 자녀 축복을 의미하며, 역시 예배 신앙 계보 축복입니다. 철저한 하나님 신앙은 자녀 축복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는데 여러분은 인생 칠십 년 중 얼마나 하나님과 동행하셨습니까? 에녹처럼 자녀 출산 후에 교회 신앙에 철저했습니까? 에녹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에녹같이 하나님과 동행한 삶은 자녀 축복, 가문 축복으로 열매 맺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개인이나 가정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시 128:1~6)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자식의 자식을 보며 그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고 그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다 하나님 신앙의 결과요, 예배 신앙 후손의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데려가심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4) 여기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는 휴거의 예표입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고중에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휴거되면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꼭 에녹처럼 온전히 하나님과 동행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끌어 올려’ 는 원문상 ‘잡아채다’, ‘강탈하다’라는 뜻인데 이 모든 표현이 우리가 휴거하여 영원히 살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영생하는데, 이 또한 예배 신앙 계보 축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녹 같이 하나님 신앙으로 이 세상에서는 자녀 축복을, 죽어서는 영생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에도 분문 24절과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히 11:5) 그런데 에녹이 이 같은 영생의 축복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다음 말씀이 이 사실을 입증합니다.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11:5)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입니까? 다른 말로 하자면 여러분은 하나님 신앙을 가진 자입니까? 그렇다면 에녹처럼 위대한 신앙 선조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에녹처럼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되는, 영생의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당시 사람들과 비교할 때에 에녹은 365세 라는 비교적 짧은 생을 살았습니다. 아담은 930세, 셋은 912세, 에노스 905세, 게난은 910세, 에녹의 아버지 야렛은 962세를 살았는데, 유독 에녹만큼은 단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신 것일까요? 사실 이 땅은 고통의 장소입니다. 우리도 짧은 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합니까? 감사하게도 천국은 고통이 끝나는 장소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4) 천국은 눈물이 없는 곳입니다. 사망도 애통하는 것도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녹을 빨리 데려가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에녹 같은 경우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사랑하시기에 이 땅의 고통 가운데서 건져 내신 것입니다. 빨리 저 천국으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에녹같이 영원히 살게 되는 축복 곧, 영생의 축복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 에녹(Enoch) (창5:18-24).
뜻 : 바친다 [1] 셋의 계보 아담의 7대손에 해당. 므두셀라의 아버지(창5:18-24). 그는 하나님과 동행 하였다(창5:24). 죽지 않고 승천했다(히11:5).
[2] 가인의 아들(창4:17).
[1] 셋의 계보 아담의 7대손
1. 에녹이란 분은 최초의 사람이셨던 아담의 7대 손으로 야렛의 아드님이십니다.
그 이름은 '순종하는 자, 시작한다, 바친다, 가르친다,'라는 뜻으로 그 이름에 걸맞은 생애를 살아가신 분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분들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된 분은 두 분입니다. 에녹과 노아라는 분입니다.
창세기 5장 21-24 : "에녹은 육십 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 육십 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6:9-10 :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그리고 죽임을 당하지 않고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분도 두 분입니다. 에녹과 엘리야라는 분입니다.
열왕기 하 2:11 :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이렇듯 에녹이란 분은 65세부터 시작하여 300년 동안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으며, 이 땅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고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분입니다. 이 분이 삼백 육십 오 세를 사시는 동안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고 사셨던 분입니다.
2.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 5 : "믿음으로 에녹은 죽임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이란 분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삼백 육십 오 세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려 올라갈 때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자녀를 낳고 생활을 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라고 하면 우선 신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이 죄 많은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령하려면 불교에서 말하는 출가(出家), 즉 가족을 비롯한 맺어진 인연의 줄을 끊고 홀로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도를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천주교의 신부나 수녀님들처럼 수도원으로 가든지, 비록 세상에 살아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오해는 소위 믿음 좋다고 평을 듣는 일부 개신교의 성도님들에게도 나타납니다. 믿음이 좋다는 분들 중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남다른 은혜를 받고, 색다른 영적인 체험을 했기 때문에 자신은 신령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택하사 영적인 사명을 감당하도록 역사 하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령하게 살고 영적인 사명을 감당한다면서 가정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우습게 보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사랑은 신령한 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방을 따로 써야 한다고 고집하게 됩니다. 툭하면 보따리를 싸들고 기도원으로 올라가거나, 은혜가 역사 한다는 소문을 따라 이곳 저곳을 쏘다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시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라고 하는 증거를 얻고 살아가신 에녹이란 분을 보십시오. 하나님과 동행하고 살면서도 자녀를 낳았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주어진 생활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에녹이란 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문제를 피하여 도피하는 것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문제 많은 세상에 살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람들 속에 살면서 괴롬과 죄를 이겨나가는 것이 바른 성도의 자세입니다.
찬송가 543장 2절을 보시면,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서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쓰던 찬송가는 가사가 달랐습니다. '괴롬과 죄가 많은 곳 나 어이 여기 살리까...'라고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찬송가를 새롭게 개편하면서 왜 이 가사를 바꾸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올바른 믿음을 가진 성도라면 괴롬과 죄가 많은 세상, 괴롬과 죄가 많은 가정, 괴롬과 죄가 많은 그 사람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구원받은 성도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괴롬과 죄가 많은 세상, 괴롬과 죄가 많은 가정 속에서 괴롭과 죄가 많은 그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그 사람에게서 '이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란 증거를 받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 복음 5:16 :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3. 에녹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하나님의 사람들 한 분 한 분의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그 중에 에녹이란 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믿음의 증거를 가지고 죽임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려 올라가신 분으로 소개하면서, 그 분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6 :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賞)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을 수 있는 믿음은,
첫째, 하나님이 반드시 계신 것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나아가면 반드시 상(賞)을 주시리라고 믿어야 합니다.
사실 성도가 믿노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바라 볼 때의 행동과 혼자 있을 때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전혀 딴판일 수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쉽게 살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사실 말이지 우리의 헌금 생활이나 봉사 생활이 자원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들을 의식해서 억지 춘향이 식으로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에녹이라는 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볼 때나 보지 않을 때나 생활이 한결 같았습니다. 틈만 나면 육신의 편함을 좇고 쾌락을 좇는 사람들과는 달리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말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힘쓰고, 이를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에녹이란 분은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힘쓰는 만큼 복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한 만큼 축복이 된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 세신 바된 하나님, 주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도 기억하시고 30배, 60배, 100배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생활에 신바람이 났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녹이란 분에 비해서 과연 성도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의 시간이 기다려지고 기대가 넘치십니까? 상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성도 여러분의 봉사와 헌신에 신명이 나고 신바람이 나십니까?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에녹이란 분은 므두셀라를 낳은 65세부터 죽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림을 받을 때인 삼백 육십 오 세가 될 때까지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시다가 죽임을 당하지 않고 들림을 받은 분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에녹이란 분하고 나하고는 하늘과 땅차이라고 생각하시면서 기가 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바로 구원받은 성도 여러분이 에녹과 같은 분이라고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요? 에녹이란 분이 65세 이후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했듯이, 구원받은 성도는 몇 살 때부터 하나님을 믿게 되었든지 간에 그때부터 세상 끝날 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태 복음 28:20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또 구원받은 성도는 에녹이란 분처럼 죽음으로 생애를 끝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모두 부활의 영광을 입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서 15:51-52 :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는 에녹이란 분처럼 들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6-17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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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의 생애 창세기 5:21, 유다서 14,15 김준식목사
창세기 5:21 에,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히브리서 11:5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우리는 창세기 원역사시대로 거슬러 들어가서 그 시대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환경과 삶과 생각들을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3, 4장의 시대를 통과해 왔습니다. 창세기 3, 4장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였습니다. 그 골짜기를 통과해서 셋의 의의 후손의 세계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창세기 5장을 너무나 좋아 합니다. 그래서 많은 묵상을 했었는데, 여러분은 창세기 5장의 놀라운 신비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들을 살펴보면, 신구약 성경의 메세지인,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인 종말론적 인간 구속사의 내용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사람들의 이름을 그들의 아버지가 지었을 텐데, 하나님의 족보에 올려질 이 사람들의 이름을 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시하셨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국 사람들의 이름에 그 이름의 의미가 있듯이, 히브리인들의 이름에도 그 이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ADAM- MAN SETH - APPOINTED ENOSH - MORTAL KENAN - SORROW 하나님께서 사람, 아담에게 지목하시기를 너는 죄를 지었음으로 슬프게도 죽게 될것이다라는 메세지입니다.
그런데, MAHALALEL - THE BLESSED GOD JARED - SHALL COME DOWN ENOCH - TEACHING METHUSELAH- HIS DEATH SHALL BRING LAMECH - DESPAIRING NOAH - COMFORT AND REST
축복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가르치시기를, 그의 죽음은 절망에 처한 인생들에게 위로와 안위를 베푸실 것이다란 메세지를 이 열사람들의 이름 속에 넣어 주셨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창세기 5장 속에 숨겨두신 암호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
1. 에녹의 족보
에녹은 유다서 14 말씀에 보면 아담의 7세 손이라 했습니다. 에녹은 당대의 선지자요 선견자로서 하나님의 종말계시를 받아 그의 365세의 삶 중에 300년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전파한 삶이었습니다. 에녹은 65세 때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또 그의 나이 252세 때에(창 5 : 21과 25절을 비교해 보라) 노아의 아버지인 손자 라멕을 보았습니다. 에녹이 승천할 때 손자 라멕의 연령은 113세 였습니다.
에녹으로부터 시작해서 4세 손인 노아집안은 하나님의 심판의 메세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삶이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 에녹의 심판계시가 증손자 노아의 대에서 노아 방주를 통하여 성취 됩니다. 그러므로 므두셀라와 라멕은 에녹이 어떻게 경건한 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동행했던 가를 친히 보았습니다. 그들은 경건한 에녹의 감화로 자라 난 아들과 손자였음이 분명합니다.
2. 에녹의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원인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이때부터 에녹의 삶이 획기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21절에,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을 했다고 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뜻입니다. 언제부터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까? 성경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므두셀라를 낳을 때에 에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므두셀라가 태어나는 전후에 무슨 일을 행하셨습니까? 에녹에게 므두셀라를 주실 때에 그에게 특별계시를 주신 것이 확실합니다. 그 특별계시란 장래에 될 일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장래에 될 일’이란 장차 언젠가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것과 장차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에녹이 물심판에 대한 계시를 받은 후부터는 그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았을 때에 홍수 심판의 계시를 받았을 것이라는 두 가지 증거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므두셀라라는 이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므두셀라는 두 단어로 구성되었 습니다. 무트는 심판, 죽음을 의미하며, 살라트는 보낸다라는 뜻입니다. 므두셀라 라는 이름의 뜻은 므두셀라를 보내면 이 세상에 심판이 있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이 단어의 뜻을 찾으면 명사는 ‘창을 던지는 사람’, ‘던지는 무기’, 투창, 동사로서 기본어근으로 '보내 버리다' 도중에 가져가다, (멀리, 밖으로)인도하다, 되버리다, 주다,포기하다, 보내다, 내던지다 등 여러가지 많은 뜻이 있습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 중 ‘창을 던지는 자’란 의미를 두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이름의 뜻은 기능적인 이름입니다. 옛날의 전쟁은 먼저 적군과 아군이 마주서서 항오를 벌리고 두편에서 대표자를 내보내어 서로 싸우게 하는데 자기들의 대표가 이기면 사기가 충천해저서 그 날의 전쟁은 대표자가 이기는 쪽 군대가 그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을 때 이스라엘 군대가 불레셋 군대를 이겼던 것처럼 말입니다. 창을 던지는 자는 대표자로서 이 자가 이기면 자신의 군대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창 던지는 자가 죽으면 세상이 끝난다는 말입니다. 므두셀라가 죽으면 세상도 끝난다는 말입니다.
또한 ‘보내버리다’라는 뜻에서 무엇을 보내 버린다는 말입니까? 에녹이 하나님께로 부터 홍수심판의 계시를 받았을 때에 그의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로 지었을 때, 이 세상이 이 아들을 떠나 보내면 세상에 큰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적 의미로 지은 것입니다. ‘이 사람을 떠나 보내면 이 세상에 큰 물이 임할 것이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므두셀라라고 이름을 지었다면, ‘므두셀라’라는 이름을 부르고 듣는 것만으로 종말에 관한 멧세지를 듣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이 세상을 보내버린다는 말입니다. 이 세대를 보내고 새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머튜 헨리의 창세기 주석 번역본 상권 P192).
에녹과 그의 부인이나 동생이나 이웃 친구들이 ‘므두셀라'라고 이름을 불렀다면 이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에 큰 비가 와서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뜻으로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므두셀라의 삶은 예언적 삶이요, 969년 동안 긴 삶을 살게된 것도 심판을 예고하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시대의 큰 홍수 심판은 노아시대에만 주어진 것이 아니고 증조 할아버지 에녹시대 때부터 계산하면 1000년 이상 동안 하나님께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물심판을 예고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평균연령이 900세 임으로 그들 당대에 일어날 일이었음) 마치 마지막 심판은 불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2천년 전부터 예고하고 있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두번째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을 때에 물심판에 대한 계시를 받았을 것이라는 증거로써 유다서14,15말씀에,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리라.’에서 에녹이 선지자로서 먼 훗날 우리 세대에 일어날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과 불심판을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께로부터 먼 훗날에 있을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 사건과 불심판의 사실을 보았다면 그 하나님께서 그 당시의 물 심판을 왜 보여 주시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는 일을 계기로 그의 삶이 완전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 원인은 이렇게 먼 훗날의 불심판과 성도들의 부활과 주님의 재림과 당시의 물심판을 보고 알게 됨으로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은 믿음의 삶이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요 어떠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이 계시를 받기 전에는 에녹도 모든 사람들과 같이 세상에 관심을 두고 세상적으로 잘 살아 보고자 힘쓰고 애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물로 심판받고 불로 태워 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에녹은 그 때부터 세상에 대한 미련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천국만을 사모하며 하나님께 온 정성을 드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계시의 사실을 철저히 믿고 하나님 뜻대로 살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3. 에녹의 그리스도 재림복음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던 그의 생애 중에 그가 행한 선지자적 사명이 놀랍게도 그리스도의 재림의 복음을 전파 했던 것입니다. 유다서 14,15에서 에녹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예언하기를 주께서 수 많은 거룩한 자와 함께 오신다고 했으며, 말세에 사는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이 임하기 훨씬 이전, 에녹이 살아가든 시절에도 인류의 죄악이 매우 심각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같은 죄악 중에서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이나 동행하는 생활을 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 역사 초기에 왜 이같은 인류 종말에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경종이 필요했습니까? 이 해답은 인류의 역사는 오직 에덴에서 천국까지의 여정(旅程)이기 때문에 인류 초기로부터 모든 인간은 천국에 소망을 두어야 하며, 그 천국이 성취되기에 앞서 반드시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엄숙하게 받아야 할 경종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장차 흰 보좌 심판대에서 주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에녹은 죄악으로 만연된 세상을 향하여 주의 재림으로 인류의 역사는 마감되고 인류가 소망하는 새로운 시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찾아온다고 하는 소망을 외친 것입니다.
에녹, 므두셀라, 라멕 그리고 노아의 활동은 거의 아담의 생존시란 점에서 아담이 인류에게 미친 신앙적인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케 합니다. 창세기 5 장에서 아담의 후손들의 계보 상에 나오는 연대를 토대로 계산한다면 아담은 노아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라멕의 나이 56세시까지 생존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아담은 에녹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로 말미암은 최종적인 심판의 복음을 들었을 것이며, 에녹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까지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라멕의 예언대로 장차 노아 시대에 홍수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실 것이란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의 자손들은 이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별도의 문명 사회를 이루는 생활에 적응해 왔으며 하나님이 없는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아담의 마음을 슬프게 했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 초기 시대의 에녹은 예수 재림을 전했는데 진짜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세대에 사는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전하지 않고 있는 이상한 세대입니다.
4. 에녹의 승천은 성도들의 휴거를 보여줌
데살로니가 전서 4:15-17절에 일어날 일을 바울 사도가 본 것같이 에녹도 보았던 것입니다. 에녹이 말세의 메시야 재림을 보았던 것은 말세를 사는 우리의 삶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주께서 수많은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공중강림하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공중강림 하실 때에 부활한 영혼들을 데리고 오시는 것을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에 부활한 성도들과 살아남은 성도들이 순식간에 변화되어 하늘로 들림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전한 에녹은 그 당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산채로 들림을 받음으로,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이 순식간에 변화되어 들림 받는 체험을 에녹이 먼저 몸소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전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복음 이 사실이라는 것을 몸으로 증거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어떻게 산채로 들림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나 의심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해답으로 성경은 에녹과 엘리야와 예수님의 들림받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에녹은 인간이 지구상에 창조된 초기의 인물입니다. 아담의 7세손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아합 왕때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서 세 번이나 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에녹의 승천은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엘리야의 승천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승천도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에녹의 승천은 창세기 5:24, 열왕기하 2: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사도행전 1:9-11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고린도전서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여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을 축원드립니다.
-----------------------------------------------------------------------------------------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들 <에녹과 엘리야>
성경의 최대 기적은 신이 아닌 인간이 자기 삶을 사다가 어느 날 죽지 않고 하늘로 들리어 올라갔다는 기사이다. 에녹과 엘리야, 이 두 사람만이 산채로 승천했다는 것이다.
1) 에녹은 아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간단하게 기술하고 있어 큰 관심 없이 넘어가기 십상이다.
그러면 어떻게 에녹은 인류최초로 하나님과 300백 년 동안이나 동행하다가 휴거(들려올림)할 수 있었을까?
그 신비의 한 자락을 성경은 우리에게 귀띔 해주고 있다.
창세기 5장의 아담의 계보를 보면 누가 누구를 낳고 '몇 세를 살다가 죽었더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에녹의 족보기록은 특이하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365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세기5:21-24)
죽었다는 말이 없이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고 기록되어 있다.에녹이 죽지않고 하늘로 올라간 이야기는 신약성경에서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있다.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라고 하였으며 "에녹은 하늘로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고 하여 동행과 휴거의 원인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 밝히고 있다.
그런데 에녹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을까? 이에 대하여 유다서에서는 그가 세상 끝 날에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을 정죄하는" 심판을 예언하며 살았다고 밝히고 있다.(유다서 1;14-16)
하늘로 들리어 올라가는 에녹(Enoch translated into Heaven)ㅣ제럴드 멀더 호잍(HOET, Gerard MULDER)ㅣ 1728년ㅣ"성서인물" 동판화(Engraving, Printed in "Figures de la Bible")ㅣ헤이그(The Hague)
에녹은 무슨 심판에 대하여 예언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동행하는 삶을 살았을까?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아들을 낳았다.
이 이름은 하나님이 지어준 이름이다. 히브리어로 '므두'는 '심판하다 또는 보내다'이고 '셀라'는 '그가 죽을 때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므두셀라'는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의미다. 즉, 에녹은 아들 므두셀라가 죽는 날에는 이 땅에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실제로 계산해 보면 므두셀라가 969세를 살고 죽은 해는 그의 손자 노아가 600세가 된 해로서 대홍수 심판으로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멸망한 해였다. (창세기 7:11)
이러한 종말을 예감한 그는 죄인의 심판과 종말이 임박했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예언하며 하나님과 300년 간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2)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예언자 850명과 대결하여 승리를 거두고 비를 내리게 한 위대한 예언자이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죽은 지 오래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와 함께한 모습을 보고 제자들이 심히 두려워 했던 일도 있다.(마 17:1-8)
구약성서 마지막 장에서 말라기 선지자는"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고 예언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유월절 저녁상에 쓴 나물과 함께 엘리야의 잔에 포도주를 부어놓고 밤새도록 엘리야 오시기를 고대하며 창문을 열어놓고 기다린다.
이런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의 승천장면은 영화 속 한 장면같이 생생하다. 스승인 엘리야와 함께 요단강 가를 거닐던 엘리사 앞에 홀연히 불타는 수레와 불말들이 나타나 스승과 자기 사이를 갈라놓더니 엘리야가 자기 눈앞에서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는 모습을 목도하였다. 그는 놀라 소리쳤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나이까?'
산채로 천국으로 승천한 사람은 정녕 에녹과 엘리야 두 사람 뿐인가?
아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신약성경에만 331번이나 언급된 분명한 사실이며 주의 재림 시에는 성도들도 승천하게 된다고 약속하셨다 .성경은 예수 재림을 역사의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마지막 종점을 이루는 한 사건으로 소개하고 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 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엘리야와 에녹이 승천하는 모습을 그린 성서화를 감상하면서 세상 종말의 때에 나의 모습이 되기를 상상하며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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