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82년생 김지영》을 읽고
- 장 동 석
아직도다. 아직도… 여성에게 씌어진 굴레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52년생 나도 그랬고 딸 뻘인 82년생 김지영도 관습에서 허덕인다. 여성으로 성장해서 결혼을 했고 결혼을 하면서 시댁이라 부르는 남자 집안에 편입 되었다.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들씌어진 질서 안에서 ‘나’는 실종되고 ‘새아가’라는 이름으로 노동을 요구받았다.
적어도‘52년생 나는 그랬다. 단출한 작은집의 맏딸로 태어나 집안일이라고 해본 적이 없는 딸로 살다가, 4대가 사는 큰집으로 시집을 왔다. 애당초 대가족 살림살이를 우습게 본 나의 선택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부터 나를 기다린 건 산더미 같은 집안일이었다.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포함 아홉 명 식구들의 일상생활을 위하여 시어머니 뒤를 쫒아 다니고 일이 더디다는 지청구도 들으면서 하루를 살아내었다. 새벽 6시부터 밤 9시까지 수북이 쌓인 생활의 찌꺼기를 씻고 빨고 새로 만들며 보냈다. 그러면서 여성이 떠안은 노동의 부당성과‘나’라는 자아가 충돌하며 내면의 피를 흘렸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여전히 90대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30대 자식들에게 쩔쩔매는 낀 세대를 관통하는 여성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왜 그런가. 아직도 50년대 여성이 짊어졌던 짐으로 휘청거리는가. 차라리 책 서두에 언급되었던‘빙의’가 주제가 되어 스릴러로 혹은 샤머니즘으로 끌고 나갔으면 마음이 덜 아팠을 게다. 딸 또래인 김지영을 며느리로만 생각해서 추석 음식 차림을 야무지게 시키는 시어머니는 52년생 나보다 몇 살 어리다. 김지영이 빙의된 친정 엄마의 말투로 속엣말을 했을 때 책장은 긴장감으로 넘쳤다.
여성들의 어록인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가 떠올랐다. 우리 대한민국 여성들은 시어머니로부터 끝임없이 시집살이를 당했음에도 여전히 며느리에게 같은 관습을 고집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정보화시대를 살아가는 오육십 대 나이의 시어머니도 며느리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전하다. 내 딸은 고생했다고 친정에 와서 푹 쉬게 하고 같은 또래 며느리에게는 며느리 역할을 요구한다.
“사돈 어른, 요즘 젊은 애들 사는 게 다 그렇죠.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주셔야죠.”
빙의된 김지영 친정 엄마의 말을 통해 쏟아낸 말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다. 1978년생 조남주. 내 큰 딸 나이다. 작가는 작가가 겪었을 여성문제를 자료를 제시하며 문제 제기한다. 나의 큰딸도 제2의 김지영이다. 유치원 교사인 딸은 올해도 김장을 세 번이나 했다. 우리 집, 유치원, 사돈댁 김장이다. 딸은 몸살을 앓으면서도 김장 행사를 해냈다.
“어머니, 경희 힘들어요. 김장을 세 번이나 해야 되요.”
처갓집 김장을 거들어 준다고 고무장갑을 끼고 무채를 버무리던 맏사위가 한 마디 할 때야 겨우 눈치를 챘다. 딸이 비명을 지르지 않으니 그려러니 했다. 친정 엄마인 내가 무심했다. 딸에게 미안해서 김장의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내년부터는 우리 집 김장에 오지 말라고 선언했다. 절인 배추 서른 포기만 사서 평일 날 큰딸이 출근하고 없을 때 남편과 오물조물 하리라.
130포기 김장을 하던 52년생 내가 보인다. 새벽 세 시에 부스스 떨고 일어나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찬바람 부는 마당 수돗가에서 물을 받아 배추를 씻던 모습이 보인다. 시어머니와 옆집 살던 작은 시어머니까지 함께 씻으면 새벽빛이 희미하게 밝아왔다. 바람은 떠나지 않고 마당을 쓸고 고무장갑 낀 손은 감각이 없이 꽁꽁 얼었다. 해마다 치르던 연례행사였다.
나도 성실한 김지영처럼 마음 속 말을 토해내지 못 하고 왜 꼭두새벽에 배추를 씻어야만 하냐고 웅얼거렸다. 시집간 딸을 아끼는 김지영의 시어머니처럼 나의 시어머니도 시집간 딸에게 다 버무려 김치 통에 넣은 김치를 가져가게 했다. 딸이 힘들다는 이유였다. 나도 그랬다. 친정에 가면 집에 왔다는 이유로 빈둥거리며 올케가 차려주는 밥을 먹었다. 결혼은 시누이 올케라는 계급장을 단 순간부터 신분이 바뀐다. 딸도 시집에 가면 똑같이 겪게 된다. 시어머니는 이런 딸을 아파한 것뿐이다.
책은 2015년 가을을 현재형으로 1982년부터 과거로 회귀해서 다시 2015년 현재로 돌아온다. 그 단락에는 현재를 사는 여성들의 녹녹치 않은 삶이 들어있다. 52년생 나는 결혼과 함께 잘 다니던 중견 기업인 제약회사에 사표를 냈다.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 시대에는 결혼을 하면 집에 들어앉아 살림을 하는 ‘당연성’이 보편화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 82년생 김지영들은 축적된 재능으로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승진을 꿈꾸나 육아가 발목을 잡는다. 버티고 버텨 보다가 다른 대안이 없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상실감은 심각한 우울증까지 동반한다. 여기에 작가는 사회 문제로 대두된 여성 혐오를 곁들여서 1500원짜리 커피조차 눈치를 보며 마셔야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작가는 실제 자료를 근거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김지영들에게, 혹은 남성들에게 묻는다. 엄마가 되었기에 직장을 포기하고 기자가 되고 싶은 꿈도 포기한 지영이를 들이대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당차게 묻는다,
나는 시중에서 잘 팔리는 이 소설이 반갑다.《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대한민국 여성, 그녀 김지영들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육아라는 족쇄로 쩔쩔매다가 출산을 포기하는 세대이다. 유능한 여성 인재를 활용 못하는 정부는 저출산 해결 문제로 이 책을 활용해야 한다. 아직도 52년생 나의 시대를 82년생 김지영이 겪고 있다는 생각에 가련한 마음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