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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아산 UBF 특강 제 7 강 메시지(이마태 목자)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라
말씀 : 갈라디아서 6:1~10
요절 :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혹시 ‘중꺾마’ 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을 해나갈 때 쉽게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방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면 낙심이 됩니다. 그만 포기할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우리 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요, 내 존재의 이유라면 어떻게 하나요? 이 시간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받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통해 꺽이지 않는 믿음얻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오늘 말씀의 배경은 갈라디아 교회입니다. 갈라디아는 지금의 튀르키에 앙카라지역으로 이 지역에 이방인들이 중심이 되어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바울의 사도권도 문제삼았습니다. 이들은 율법 지키는 것을 대단히 뿌듯하게 여기며 빠르게 자기 의에 빠져들어갔습니다.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율법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성도들을 정죄하였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도 이들의 영향을 받으며 율법과 절기를 지키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행위를 자랑하며 타인의 연약함에 대해서 쉽게 지적하고 비난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이 자기 내면을 돌아보고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얻는 믿음을 지켜나가기 바라였습니다. 우선 사람이 만일 명백하게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그러한 자를 바로잡아 주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때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분노하고 화를 내면서 사람자체를 공격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교회를 깨뜨리기 원하는 사단의 농간에 빠지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은혜로 신령하게 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온유한 심령으로 사람을 대해야합니다. 죄지은 사람이 자기 잘못을 돌아보고 회개하기까지 그 사람에 대해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유지해야합니다. 또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범죄한 일을 통해 자기 자신을 살펴볼 줄 알아야합니다. 나에게 그런 문제는 없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혹 같은 문제로 자신도 넘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그렇게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를 살피고 조심한다 한들 연약하고 허물많은 죄인입니다. 혼자서 다 커버가 안됩니다. 그렇지 않나요? 저는 그렇습니다. 제 딴에는 상대를 위한다고 하는 말인데 전혀 그 사람의 상황에 어울리지 않고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 일에 빠져있다가 다른 이와의 중요한 일정이나 약속을 잊어버리고 놓치기도 합니다. 요즘 세상은 정보가 쉽고 빠르게 전파됩니다. 조금만 실수하여도 입방아에 오르고 득달같이 달려드니 살아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참 무겁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은 주의 자녀들입니다. 잘못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은 결코 그리스도의 법이 아닙니다. 서로 용서하고 연약한 부분을 감당하고 동역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하사 주의 자녀 삼으신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되어갑니다. 하나되는 교회를 이루고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모임이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되는 하나님의 교회로 서로의 짐을 지고 감당하여서 이 시대에 주의 사랑을 나타내는데 잘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잘하는 사람의 특징은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보여지는 행실이 그럴 듯 하다고 내가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 여기고 다른 사람을 종 삼으려고 나서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행위를 내세우기보다 내 속에 있는 것을 들여다 보아야합니다. 그럴 때 함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는 자신, 큰 소리 낼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유대 율법주의자들들은 자신들은 잘한다, 자기들이 우월하다는 생각에 빠져 스스로를 속이고 갈라디아 성도들을 자기 밑에 두려는 악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이런 사람에 메여서는 안됩니다. 속이는 사람에게 헛된 기대를 가지며 그들의 행실을 쫓아갈 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도리어 받았던 은혜마저 잃게 될 수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대신 각각 자기의 일을 살필 것입니다. 눈으로 나타나는 것을 포함하여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말씀에 비추어보아야합니다. 내 존재가 가진 연약함 죄악됨을 발견하고 이를 진실하게 예수님께 들고 가면 예수님께서 크신 사랑으로 용서해주시고 주를 믿는 믿음 한가지로 자녀삼아주십니다. 자기를 살피는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죄사함을 힘입어 믿음으로 산 것에 대해 스스로 뿌듯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은혜이니 남에게 자랑할 것은 못됩니다. 지속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주님의 은혜를 붙들어 계속해서 믿음의 길을 꿋꿋하게 걸아나가는 것은 각각 자기의 몫입니다. 이 짐을 잘 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럴 때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도와주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교회에는 주께서 세우사 말씀을 가르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주의 종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여야합니다. 육체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들여다보지 않고 자기 짐은 지지 않으면서 리더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또 불평불만이 많습니다. 작은 약점을 붙들고 늘어지며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예수님의 말씀 맡은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해야합니다. 그도 사람이기에 가질 수 있는 약점과 실수가 있다면 덮어주고 채워줄 것입니다.
1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을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집중하여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는데 힘쓰기보다 자기 자신을 살피고 들여다 보는 것이 유익합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생각못한다고 합니다. 인생의 방향이 없어서 헤메이던 시절에는 간절하게 주님께 매달리고 나의 문제들을 회개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고 삶의 방향도 잡아갑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취업하고 나서 또 장래방향이 뚜렷하게 보이고 나서 처음의 그 마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방향이 없어 방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몰라라 하거나 왜 그러고 사느냐? 정죄하고 자기를 높이려 한다면 더 이상 그 인격과 삶에 발전이 없습니다.
각각 자기 짐을 져야합니다. 말씀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시작입니다. 그럴 때 자신이 주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인 것을 날마다 고백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시간과 마음을 드릴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취업도 하고 방향도 생겼다고 마음 놓지 않고 주의 은혜없이 하루도 살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겸손히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을 배우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 자기 짐이 버거워 허덕이는 다른 이의 짐도 함께 지는 쪽으로 성숙해져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2.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
7절을 보십시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안계신다, 계셔도 잘 모르실거야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려 하여도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다 알고계시며 공의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콩을 심은 곳에서 팥이 날 리 없고 팥 심은 곳에서 콩 날 리도 없습니다.
8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지금 내 삶이 육체를 위하여 심고 있는지 성령을 위하여 심고 있는지 살펴야합니다. 내가 무엇을 위하여 심고 있느냐에 따라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인생은 심고 거두는 것임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거두고 있는 것은 예전에 내가 뿌린 것이 있어서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가 거두는 것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심고 뿌리는 것에 달렸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심고 좋은 것을 뿌리는 삶을 다시 시작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심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주의하여 심어야 합니까? 우리는 그동안 특강을 통하여 여러 가지 우리가 심어야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가치관이 영적인 것을 더 귀하게 여기고 우선하여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가치관을 지금 심어야 합니다. 영적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앞으로의 좋은 것을 거두기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를 통하여서는 우리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돌아보고, 죄인으로써의 자기 발견을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심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죄인으로써의 자기 인식, 갈 곳을 모르고 할 일이 없어서 빈둥거리던 자로써의 깊은 자기 발견을 심고 그런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사는 것이 앞으로 좋은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로보니게 여인을 통하여 믿음의 말, 겸손한 말을 하는 것도 우리가 지금 심어야 하는 중요한 것임을 배웠습니다. 말은 공중에서 사라지지 않고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심겨지고 우리가 말한 것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다 듣고 하나님께 매일 보고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말, 함부로 평가하는 말, 다른 사람을 깔보고 얕보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경외심이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을 심으면 장차 나쁜 것을 내가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말을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것을 심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말은 좋은 마음에서만 나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심어 쉽게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는 우리의 죄를 마음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누가복음 5장의 베드로는 자기의 경험주의와 합리주의적 생각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깊은 데 그물을 내리는 순종을 심었습니다. 그럴 때 물고기를 많이 잡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만나는 은혜를 거두었습니다. 우리가 나의 인생에 영적으로 실제적으로 가장 좋은 것을 심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영생의 열매 맺어가기를 기도합니다 .
그런데 성령의 열매가 당장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을 위하여 자기 삶을 드리는 사람도 당장은 어렵고 힘들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바울이 어떠했습니까?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감옥에 보내기 위해 다메섹까지 찾아갔습니다. 가는 길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더이상 율법을 지키라 전하지 않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육체를 위해 심는 인생에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인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유대인들로부터 죽인다는 위협을 받고, 또 유대인 아닌 사람들로부터 자기들의 욕심과 자기 의를 건드린다고 흠씬 두들겨 맞아 죽을 지경에 까지 이르기도 했습니다.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자 그 여종들로 돈 벌던 주인들이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알고는 바울을 고발하였고 바울은 매를 맞고 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렇게 환난을 견디며 전한 복음을 들어 생명을 얻게된 성도들마저 다시 에전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고, 심지어는 바울의 약점을 문제 삼아 비판하였습니다. 나중에 보면 바울 곁에 누가와 디모데, 디도 같이 믿음이 깨끗한 몇 사람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였는지, 지금도 얼마나 많은 생명이 구원에 이르는 성령의 열매가 거두어지고 있는지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믿고 따라야 할 바가 무엇입니까?
9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는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선을 행하되 꾸준히 계속 끝까지 행할 것입니다.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믿음의 가정은 결혼한 부부들만 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가정들이 교회가 되어 믿음으로 자라나는 성도들을 품고 예배드리고 교제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가 된 공동체, 나아가 이 과정에 있는 초신자들까지 아울러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회가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되 특별히 하나님께서 보내어 함께 하도록 하신 동역자, 형제 자매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생명의 열매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는 한 사람을 보시고 때가 되었을 때 의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크게 높여주신 일들이 성경에 잘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가 그러하였고 요셉이 그러하였으며 다윗이 그러하였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바울이 그러합니다. 또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살아있는 증인들입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하루 아침에 쉽게 되지 않습니다. 죄악 가득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고 선을 행하며 살 때 낙심을 겪을 일은 많습니다. 선을 행하고도 욕먹을 수 있고 선을 행하는데 방해받고 조롱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을 때, 많은 핍박과 고난이 따라 왔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전에는 겪지 않아도 되었던 일들입니다. 믿고 나니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마치 파도같이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밀려왔습니다. 하나 지나가고 나면 또 밀려오고 하나 지나가면 또 다른 어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이번 주에 낙심되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내면이 잘 보이지 않고 그에게 필요한 말씀을 전해주지 못하여서 낙심이 됩니다. 보내주신 학생이 있어 대학원생으로 받기위해 연구과제를 신청하였는데 떨어졌습니다. 낙심이 됩니다. 나는 늘 부족함 투성이인데 한 영혼을 제대로 도울 수 있을까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생각할 때 “포기”라는 단어가 불쑥불쑥 떠오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거두게 하신다 하십니다. 제가 이 말씀을 믿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겸손히 예수님을 배우겠습니다. 대단한 일 하려하지 말고 예수님을 닮아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말을 하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절제하기도 하며 실제에서 나를 내어주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며 계속 꾸준히 끝까지 이 길을 갈 때 하나님의 때에 한 영혼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에 이르는 성령의 열매맺게 하시고 오직 주님께 영광돌려드릴 수 있게 하실 줄 믿습니다.
아산 UBF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다고 된 줄로 여기지 말고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길로 계속 나아가야합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께서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죄의 길을 가던 내가 구원얻고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예수님을 배우며 겸손의 씨, 순종의 씨를 계속해서 뿌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로 생명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우리 주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드립니다. 아멘!
요절 :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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