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직 마음만 있고 대상은 없다.(唯識無境)
2) 세상은 마음이 만들었다.
사실 ‘세상은 내가 보는 것처럼 그렇게 있지 않다’는 내용을, 앞에서 인식의 측면에서는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유식무경의 가르침은 이러한 인식의 측면에서 그치지 않는다. 앞서 계속 언급한 ‘세상은 내가 본 것처럼 그렇게 있지 않다. 즉 내가 본 것은 세상 자체가 아니라 내가 본 세상이다’라는 말은, 내가 인식하기 전의 세상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식무경’의 가르침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인식하기 전의 세상도 또한 마음이 만든 것이라고 본다. 뿐만 아니라 마음을 떠나서 결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다 마음이라고, 다시 말해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고 설명한다. 이 점이 대승불교와 다른 가르침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여기서 다른 가르침에는 부파불교 등도 포함된다.
참고로 대승불교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요즈음 말하는 근본불교, 아함경 등의 가르침)과 다른 것이 아니다. 유식 논사들도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아함경> 등을 근거로 삼는다. 즉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모두 <아함경>을 인정한다. 다만 대승불교에서는 <아함경>에 대한 부파 불교의 견해와 해석을 비판할 뿐이다. 평소 일체유심조나 유식무경 또는 만법유식 등을 대할 때, 나름대로 이해한다.
그러나 ‘마음이 세상 자체를 만들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결코 쉽지 않다. 세상에 마음이 세상을 만들었다니!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유는 여럿 있다. 그 가운데 ‘마음’을 세상을 인식하는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 정도의 상식에서 이해하는 점도 있다. 그런데 일체유심조 등에서 마음은 의식 등을 포함해서 또 다른 식을 말한다. 그것은 유식사상에서 등장하는 제8식, 제7식이다.
어디선가 들었을 아뢰야식 또는 말나식 등이다. 그 가운데 제8식이 근본식으로서 세상을 드러나게 하는 근본적인 마음이다. 제8식이나 제7식에 대한 설명은 차차 하게 된다. 정리해보자. ‘유식무경’, 오직 식뿐이고 (바깥)대상은 없다. ’ 여기서 ‘없다’는 말은 ‘세상은 내가 본 것처럼 그렇게 있지 않다’는 의미이지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을 부정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갑자기 더 나아간다.
내가 보기 전의 세상도 마음이 만든다. 그리고 이 세상은 마음을 떠나서, 마음 밖에 결코 있지 않다. 인식된 것이나 인식되기 전의 것이나 모두 마음이 만들고 마음속에 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내 마음이 만든 세상을 내 마음이 본다’는 이야기다. 미리 유식 교리를 가져와 설명하자면, 제8식이 만든 세상을 다시 제7식, 제6식, 제5식이 거듭 나타내고 받아들인다. 이때 제8식은, 보통 우리가 식 또는 마음을 말할 때 쓰는 ‘인식한다’ 또는 ‘분별한다’는 의미보다 폭이 넓다. 우리가 사용하는 마음이나 식의 의미가 확대된다.
즉 제8식은 세상을 드러내고 유지한다는 특징도 있다. 제8식을 잠깐 언급하는 것은, 현재 알고 있는 용어의 개념만 가지고는 유식의 바다에 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 이해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제8식 등에 대해서는 이후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고, 다시 유식 논사들의 이야기로 흐름을 찾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