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쟁의 종말>, 로버트 프랭크, 안세민 옮김, 웅진하우스, 2012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의 큰 뿔은 종족 안에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의 도구입니다.
뿔이 클수록 싸움에 유리하므로 돌연변이를 통해 그 크기를 기웁니다.
그러나 이 뿔은 말코손바닥사슴의 기동성을 떨어뜨리고,
그로 인해 외부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기 쉽게 만드는 약점으로 작용합니다.
<경쟁의 종말>에서는 사슴의 비유를 통해 '자유시장의 무한경쟁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만약 수컷들이 합심하여 뿔의 크기를 줄인다면 오히려 전체 종족의 생존율도 더욱 높아질 텐데,
그 어떤 수컷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유시장 아래에 살아가는 우리도 서로 협력하고 합의하여 불필요한 경쟁을 줄인다면
우리 삶을 지금보다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풍요로움이란 물질적 풍요를 넘어서는 삶의 질을 의미합니다.
이웃과 인정이 살아있는 사회, 그 속에서 느껴지는 풍요로움!)
따라서 말코손바닥사슴처럼 당면한 나만의 이익을 위해 경쟁하기보다
더 큰 이익,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한 양보와 타협을 생각해야 합니다.
경쟁이 아니라 분배를 정치적 목적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상식적으로 복지관은 경쟁이 아닌 평등, 즉 분배에 가치를 두고
지역주민이 서로 더불어 살게 돕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 평가를 앞두고 각 복지관이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이 떠오릅니다.
(서로 경쟁하는 모습, 이는 최근 만난 여러 선생님께서 평가를 준비하며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평가를 앞두고 사업계획서나 간단한 업무양식도 선뜻 공유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서로 이기기 위해 사슴이 뿔의 크기를 키우듯 복지관의 규모를 키우는 것 같습니다.
감당하지 못할 공모사업에 쉬지 않고 지원합니다.
공짜로 주는 물품(금품)이면 일단 지원하고 봅니다.
그러니 하면 할수록 일은 더욱 늘어납니다.
너무 바빠 복지관의 정체성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 보입니다.
힘든 현실을 탓하지만, 변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없다고 합니다.
말코손바닥사슴의 커다란 뿔이 종족 안에서의 싸움에서는 이기게 했을지 몰라도,
울창한 숲에서의 기동력을 떨어뜨렸습니다.
이렇게 거대해진 복지관(사업)은 우리 안에서의 평가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을지 몰라도,
지역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지 못합니다. 비대한 몸집을 유지하기도 힘이 듭니다.
모든 사슴이 뿔의 크기를 절반으로 줄이지 못하여
종족 전체가 맹수의 공격에 더욱 위태롭게 되었듯이,
엄청난 공모사업 지원을 반으로, 아니 아예 없애는 근본적 성찰이 없다면,
복지관은 우리 안에서 비교 우위의 평가를 받기 위해 서로 경쟁하다
외부의 변화나 지역사회의 요구를 민감하게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대처하지 못해
결국 사회 생태계에서 낮게 평가받고 사라질지 모릅니다.
종족 안에서 경쟁을 위해 뿔의 크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말코손바닥사슴...

첫댓글 한참 지나, 지금 다시 읽으니 오류가 많습니다.
이때는 다윈을 몰랐습니다.
다윈의 자연선택과 성선택을 알고 나니, 이 글 논리에 문제가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