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
하금수
스물세 살 어린 나이에 대문이 큰집으로 시집을 왔다. 디귿 자형 구조의 안채, 사랑채, 대청, 뒤주뿐만 아니라 넓은 마당이 있는 한옥이었다. 집주변에 감나무, 자두나무, 앵두나무, 포도나무 등 과일나무가 풍성했고 시집가는 해 어디선가 벌까지 들어와 집안 어른들이 복덩이 들어왔다고 좋아하셨다. 시집온 지 십 년, 70년 된, 살던 집을 뼈대만 남기고 현대식으로 개조하였다. 옛것을 살리고 최대한 안락한 공간 활용을 위한 집이었다.
몇 년이 지나자 흙벽을 뚫고 쥐가 들락거리고 있었다. 한옥은 냉방을 위한 마루와 난방을 위한 온돌 구조이다. 지붕은 산자와 서까래 흙, 기와를 올리고 벽체는 흙과 산자, 나무 등을 사용하여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통풍이 잘되어 쾌적한 공간의 집이었으나 쥐가 들락날락하기 일쑤였다. 큰딸 결혼을 앞두고 사위를 맞이하려니 고민이 되었다. 남편이 하던 사업이 부도로 새로 집을 지을 형편이 되지 않아 막막하던 때였다. 다행히 농가 주택 자금을 빌리고 몇 년 모은 돈으로 천장이 높은 벽돌집을 지었다. 새집에 이사 가던 날 밤잠을 설칠 정도로 기뻤다. 직장생활 하던 삼 남매 역시 넓은 땅 위에 예쁘게 지어진 집을 보며 집에 오는 날에는 설렘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백 년을 삼대가 사용했던 세간 가마솥, 멍석, 채반, 사기그릇, 항아리, 가구 등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새집에 새살림으로 채웠다. 서재에 있던 많은 책도 고물상으로 보내졌고 꼭 필요한 읽을만한 책은 이 층 서재로 옮겼다.
새집으로 이사 간 후, 두 아들이 결혼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손주들이 태어나면서 새 보금자리에서 핀 웃음꽃은 집안 곳곳을 메꾸고 있었다. 새집에 정착하면서 하는 일마다 잘 풀리고 삼 남매 모두 좋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손주들도 건강하게 잘 크고 있었다.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욕심이었다.
벽돌집에서의 5년, 정들어 살던 집이 제2서해안고속도로 공사로 집을 헐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정들었던 집을 떠나야 했고, 일 년여 시간을 공들여 전원주택을 다시 짓고 입주하였다. 입주 청소를 마치고 새집에 들어서던 날, 벽돌집에 대한 미련 때문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야트막한 산 아래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집 밖 풍경은 여유로웠다. 코발트 색상 커튼 속 화이트 커튼 사이로 보이는 거실을 넓게, 주방과 벽은 흰색으로 모던 하게 꾸민 전원주택에서의 평온함은 하루가 다르게 정들어가고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은 집이 있을까?’ 집이 나에게 주는 행복감은 감출 수 없었다.
‘복도 많다. 평생에 한 번 살기 힘든 전원주택을 세 번 짓고 살게’
친구의 말이다.
새집으로 이사 오면서 안타까운 것은 벽돌집에서 함께 살았던 아롱이가 새집으로 이사 오면서 몇 달을 시름시름 앓더니 배꽃이 화사하게 피던 봄날, 우리 가족의 곁을 떠나갔다. 아롱이를 떠나보내고 지은 시이다.
배꽃 순둥이
하얀 배꽃 닮은 순둥이 아기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오던 날
낯선 개집에 서성대더니
뙤약볕 마당 장대비 내려도
폭풍 한설에도
문밖에 살던 아롱이
하얀 배꽃 필 무렵
파란 지붕의 집으로 주인 따라 이사 가던 날
꼬리 흔들던 아롱이
어미 개 되었다
하얀 배꽃 필 무렵
고속도로 공사로 집이 헐리고
세 번째 새집으로 이사와
몇 개월 시름시름 앓더니
배밭 땅속 묻혔다
백색 종양 안고 살던 아롱이
아픈 몸 일으켜 꼬리치던 아롱이
키 작은 배나무 안고 세상 떠나갔다
순둥이 배밭에 묻고
돌아서 우는 순둥이 아버지
굽은 등에 하얀 배꽃 피었다
새집에서 삼 년, 집안에 아무 일 없이 지나가야 좋은 집터라고 한다. 새집으로 이사하고 한 달 후, 졸음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와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연이어 악재가 이어지자 사고로 인한 불안 증세 ‘새집 증후군’은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담담히 받아드리며 차분하게 대처하였다. ‘집안에 더 나쁜 일이 없겠지’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고사성어에 ‘가화만사성’ (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 모든 일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다. 벽돌집에서 부모님 제사를 마지막으로 지내던 날이었다. 작년에 집이 헐리며 땅 보상금이 나오자 동기간의 사이가 소원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남편의 입장은 확고했다. 이미 30년 전, 동기간 도장을 다 받고 부모님께 증여받은 땅으로 편찮으신 부모 20년을 모셨고, 두 동생을 결혼시켰으니 본인 할 일은 다 했다는 것이었다. 남편의 생각은 뚜렷하여 제사를 모시기 위해 모인 동기간의 분위기는 썰렁했다. 제삿날 모인 가족들은 제사 마치고 늦은 밤까지 있다가 돌아갔고 시누이 한 분이 집에 있었다. 늦은 밤, 출가한 딸이 문자 한 통을 보내왔다.
딸이 대기업 경력직으로 이직한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나는 이 소식을 접하며 남편과 시누이가 있는 거실에서 남편한테 조용히 제안했다.
“딸내미 이직이,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어요. 동기간에게 서운하게 하지 말아요. 내가 덜 쓰고 살 테니 조금씩이라도 땅 보상금을 나눠줘요”
남편은 흔쾌히 내 제안에 웃으며 대답했다. 여러 동기간 나누면 적은 액수였지만 보상금 일부를 나눠 주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매사 내 욕심만 채우고 산다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까?’
‘억지로 돈을 금고에 채운다고 채워질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덜 쓰고 살면 돼’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나니 봄날 곳곳에 진달래꽃이 활짝 피듯, 집 분위기가 화사하게 전환되었다. 작년 이른 봄, 집 짓기 전에 부모님 산소를 매장으로 이장하고, 제사를 정성껏 모시고 있다. 자식들 또한, 우애 있게 잘 지내고 주변 가족들 역시 두루두루 행복하게 살고 있다. 흩어져 있던 동기간들이 시골집에 모이는 날이면 웃음꽃이 담장을 넘고 있으니 내 마음 또한 편안하다.
겨우내 긴 가뭄으로 여기저기 산불로 나라가 온통 어수선했는데 바깥은 봄비가 내리고 있다. 며칠 전, 옮겨 심은 울타리 나무 매화나무와 소나무 잎이 파릇파릇하다. 비 내리는 날, 캔버스에 그리고 싶은 내 보금자리에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두지(蠹紙) 하금수
모던한 현대식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는 나는 종종 60년대 유년의 꿈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초가삼간이었던 할아버지의 집이 그립다. 여동생 손을 잡고 오디 따 먹으러 갔던 할아버지 집 울타리는 싸리 꽃으로 담장을 한 예쁘고 아담한 초가집이었다. 단칸방에 마루하나, 뜨락엔 청초한 화초들이 우리 자매를 반겼다. 하얀 고무신을 신으시고, 한복을 정갈하게 입으셨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자 자식들 결혼시켜 내보내고 직장이 있는 이곳으로 이사 오셔 혼자 사셨다. 티끌하나 없던 마당 귀퉁이 가지런히 놓여있던 수수비, 댓돌위에 올려 져 있던 하얀 고무신, 봄에 하얗게 핀 싸리 꽃을 보면, 할아버지가 사시던 옛집이 아련히 그리워진다. 할아버지 집에 있던 나무로 만든 철봉에 매달려 해 질 무렵 까지 놀다가 장에서 돌아오는 엄마 오는 길, 개울가에 촘촘히 피어있던 싸리 꽃길 따라 엄마 마중 나갔던 어린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여학교 소사로 근무하셨던 할아버지 집에는 좀 먹은 책이 한권이 있었다. 금방울과 은방울이야기 구전으로 내려오는 우리나라 설화인지, 중국소설인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은 소설을 국문학을 전공하며 아무리 그 책에 대한 정보를 찾아봐도, 기억 속 오랫동안 정착되어 있는 책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내 유년시절 60대에는 책을 소장하고 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 다닥다닥 초가집이 붙어 있는 다랭이 마을, 동네 꼬마아이들과 어울리며 놀던 아이들은 많았어도 책을 보는 아이는 거의 본적이 없다, 빨간 앵두를 따주었던 기와집에 살던 선생님아들만이 삼국지를 읽고 있었다. 할아버지 집에 있던 좀 먹은 낡은 책은 겉표지도 없었다. 일곱 살에 한글을 읽었던 나는 그 책을 집에 가져와 책이 닿도록 여러 번 읽었다. 겉표지가 없는 헌책에 온종일 매달려 살던 어린아이, 만화방에 자주 가던 아이는 성장하면서 책을 가까이 하는 어른이 되었다. 대학에서 전공도 국문학을 선택했다. 어릴 적 꿈은 이루어져 지금은 맘껏 책을 구입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요즘, 간결한 짧은 수필을 쓰고 싶어 시 공부를 시작했다. 수필을 쓰는 사람이 시를 쓰면 수필이 짧고 간결해진다고 한다. 시 쓰기 시작은 1년 전이다. 시도는 했으나, 마음만 성급했지 시 한줄 쓰기가 수필을 쓰는 것보다 힘들었다. 먼저, 주변 시인들이 추천해준 시집을 찾아 읽었다. 그러던 차에 동인 한 분이 평론으로 유명한 작가의 책, 시 평론을 담은 여러 권의 책을 내게 선물하였다. 시 평론이 아주 잘된 책이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시인의 평론집은 매우 유익했다. 반복해서 읽어도 좋은 책을 선물해 주신 예산문학 동인께 지면으로나마 감사드린다. 이후, 쉬는 날이면 나는 도서관을 찾는다. 시 쓰기 하는 데는 많은 독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책을 고루 읽다보면 넓은 사고력을 키워주고 시 쓰기에 도움이 된다. 독일에서 서양학을 전공한 역사학과 교수님이 이끌어 주는 독서모임에 꾸준히 나가 책을 읽고, 읽은 책을 서평을 한다. 매달 모임을 갖고, 서로 나누는 독서모임에서의 동문들과의 교류는 내게 좋은 정보와 에너지를 준다. 늦게라도 대학에서 문화재관련 석사를 마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요즘, 문화재보존학과 동문들과의 유적, 사적지 답사를 종종 한다. 이 또한 내게 폭 넓은 지식과 역사인식을 갖게 된다. 문화재가 있는 곳은 자연경관이 좋아 자연이 주는 선물은 시 창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 다음부터는 나와의 싸움이다. 좋은 시를 쓰는 시인들은 정말 위대하다. 어떤 과정을 통해 좋은 시어를 창작해 내는지 매우 궁금하다. 시 쓰는데 도움을 주시는 선생님의 말씀이다. ‘시는 쉬우니, 무조건 써봐라’ 하셨다. ‘시가 쉽다고요?’ 시창작하는 과정이 매우 힘든 과정임을 알면서 내게 창작에 대한 용기를 주고자 하신 말씀이었다. 먼저, 읽기 쉬운 가벼운 시를 읽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집중하기 좋은 시, 이어 요즘 뜨는 시를 선별하여 읽기 시작했다. 보태어 좋은 시를 평론한 것을 다독 하면서 시가 어떻게 써야 하는 지, 조금은 알듯하나 아직 초보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시어를 찾는데 고민하는 것은 마땅히 시 작업 수순이지만 내 경험은 시간만 축내는 것이었다. 좋은 시를 골라 시를 다독하며 무작정 써보려 노력하는 방법 밖에 길이 없는 것 같다. 시 한줄 쓰고, 또 쓰고, 지우고, 또 지우기를 반복하며 .... 습작으로 쓴 시이다.
두지(蠹紙)
초가삼간에서의 어릴 적 꿈은 내 방이 있는 큰 집이었다 풀벌레 우는소리 기차가 마을을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겉장 없는 좀먹은 낡은 동화책에 매달려 살았다
초가삼간에서의 어린아이 꿈은 고물상에서 보았던 한 권의 책, 내 방에 두는 것 이었다
초가삼간에서 보았던 금방울 은방울 이야기 고전소설 두지,
내 기억 속의 너는 나의 꿈 이었다
* 두지 : 좀 먹은 종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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