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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시조 37/75 – 어부사시사 11/40
하사(夏詞) 01/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궂은비 멎어 가고 시냇물이 맑아 온다
낚대를 둘러메니 깊은 흥(興)을 금(禁) 못할돠
두어라 연강첩장(烟江疊嶂)은 뉘라서 그려낸고
궂은비 - 어두침침하게 흐리면서 오랫동안 내리는 비.
금(禁) 못할돠 – 금치 못하겠도다. 추측형 종결어미.
연강첩장(烟江疊嶂) - 연강첩장도시(烟江疊嶂圖詩)를 말하는 것으로, 왕진경(王晉卿)이 그리고 소동파(蘇東坡)가 찬(讚)을 쓴 것. 연강(烟江)은 연기나 안개가 자욱한 강. 첩장(疊嶂)은 겹겹이 쌓이고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파른 산봉우리들.
뉘라서 – 누가 있어서. 누구라서.
어부사시사 40수 중 여름 노래 하사(夏詞) 10수인데 그 증 첫 수입니다.
멎어 가고 맑아 옵니다. 가고 온다, 운율이 숨은 듯 드러납니다.
'돠' 현대어도 따라잡지 못할 축약입니다.
날씨가 낚대를 메도록 충동질을 한다는 것인데, 본인이 더욱 흥에 겨우니 강호의 은자가 바로 자신입니다. 중국의 유명한 도화(圖畫)와 찬시(讚詩)를 끌어왔으니 예삿 조옹(釣翁)은 아닙니다만. 그림보다 더한 승경(勝景)을 누리는군요.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궂은비 멎어 가고 시냇물이 맑아 온다
배 떠라 배 떠라
낚싯대를 둘러메니 깊은 흥을 금치 못하겠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안개 낀 강 겹겹이 높은 산은 누가 그려 내었는고
고산시조 38/75 – 어부사시사 12/40
하사(夏詞) 02/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연잎에 밥 싸 두고 반찬일랑 장만 마라
청약립(靑篛笠)은 써 있노라 녹사의(綠蓑衣) 가져 오냐
어떻다 무심(無心)한 백구(白鷗)는 내 좇는가 제 좇는가
청약립(靑篛笠) - 청대로 엮은 삿갓. 약립(篛笠)은 대 껍질로 엮어 만든 삿갓.
녹사의(綠蓑衣) - 푸른 빛 도롱이. 사의(蓑衣)는 도롱이. 농부들의 비옷.
어떻다 – 어쩌자고. 어찌하여.
무심(無心)한 – 마음을 비운 듯한. 남의 일에 걱정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은.
백구(白鷗) - 갈매기.
좇다 – 따르다.
배를 타고 나가는군요. 집을 나서면서 도시락을 챙기는 것은 기본, 종일 낚시를 할 예정이로군요. 연잎에 싼 밥이라니, 여름날에도 연잎에 싼 밥은 잘 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찬일랑 신경 쓰지 말라네요. 낚시로 해결할 모양입니다. 삿갓은 썼고, 혹시 비가 올지 모르니 비옷을 챙기랍니다. 도움을 받는 사내 아이 하나 쯤은 동행하기에 ‘실었느냐’ 점검을 합니다.
낚시할 곳으로 나가는데 흰 갈매기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는군요. 그 무심함이 곧 자신의 비운 마음일진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비유가 압권입니다. 저도 한 마디 끼어듭니다. “고산 선생님, 즐거운 하루 보내시구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연잎에 밥 싸 두고 반찬일랑 장만 마라
닻 들어라 닻 들어라
푸른 대삿갓은 쓰고 있노라 녹색 도롱이는 가져오느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무심한 흰 갈매기는 내가 좇는가 제가 좇는가
고산시조 39/75 – 어부사시사 13/40
하사(夏詞) 03/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마름 잎에 바람 나니 봉창(篷窓)이 서늘코야
여름 바람 정(定)할소냐 가는 대로 배 시켜라
아이야 북포(北浦) 남강(南江)이 어디 아니 좋을리니
마름 - 마름과의 한해살이풀.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줄기는 물속에서 가늘고 길게 자라 물 위로 나오며 깃털 모양의 물뿌리가 있다.
봉창(篷窓) - 배의 창문.
서늘코야 – 서늘하구나. ‘~고야’는 김탄형 종결어미.
배 시켜라 – 배를 시켜 두어라. 배를 내맡겨 두어라. 내버려 두어라.
북포(北浦) - 북쪽의 포구.
남강(南江) - 남쪽의 강.
어디 아니 좋을리니 – 아니 좋은 데가 있겠느냐. ‘리’는 미래 시제, ‘니’는 의문형 종결어미.
물에 둥둥 떠서 견디는 마름풀잎이 바람을 타니, 아무리 여름이 되었다고는 하나 배 안에서도 서늘함이 느껴진답니다. 생각해 보니, 여름 물 위의 바람결은 정한 바가 없으니, 배를 그냥 저 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도 좋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나게 되는 물가의 동서남북 어디거나, 북포거나 남강이거나 경치는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고기 잡는 일은 뒷전이고, 경치 감상이 우선이며, 작가는 이 시조 한 수 건졌으면 ‘이만 되었다’ 싶은가 봅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마름 잎에 바람 부니 봉창이 서늘쿠나
돛 달아라 돛 달아라
여름 바람 일정하게 불겠느냐 가는 대로 배 맡겨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북쪽 포구 남쪽 강이 어디가 아니 좋을런가
고산시조 40/75 – 어부사시사 14/40
하사(夏詞) 04/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물결이 흐리거든 발을 씻다 어떠 하리
오강(吳江)에 가자 하니 천년노도(千年怒濤) 슬플로다
두어라 초강(楚江)에 가자 하니 어복충혼(魚腹忠魂) 낚을세라
오강(吳江) - 오나라의 강.
천년노도(千年怒濤) - 천년이나 된, 오래 된 성난 물결. 오나라가 월나라에 망했는데, 그 전에 오자서(伍子胥)를 오왕 부차(夫差)가 가죽 부대에 담아 강에 빠뜨렸을 때, 강에서 노도가 일었다는 고사가 있음.
슬플로다 - 슬플 것이로다. ‘~ㄹ로다’는 ‘~겠도다’의 뜻을 가진 추측형 종결어미.
초강(楚江) - 초 나라의 강.
어복충혼(魚腹忠魂) - 물고기 뱃속에 든 충신의 혼백. 초 나라 굴원(屈原)이 결국 멱리수에 빠져 죽어 물고기의 배를 채우겠다는 자신의 심중을 이룬 고사가 있음.
고전번역원 각주를 옮겨옵니다,
물결이 …… 어떠하리 :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나 강호에 있을 적에 어부를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어부가 세상과 갈등을 빚지 말고 어울려 살라고 충고를 했는데도 굴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어부가 빙긋이 웃고는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했다는 내용이 《초사(楚辭)》 〈어부사(漁父辭)〉에 나온다.
오강(吳江)에 …… 슬프도다 : 춘추전국 시대에 오자서(伍子胥)가 참소를 받고 자결하였는데 그 시체를 오강에 던졌다고 한다. 천년노도(千年怒濤)는 이렇게 억울하게 죽은 오자서의 노여움을 표현한 것이다.
초강(楚江)에 …… 낚을세라 : 초강은 굴원(屈原)이 몸을 투신한 멱라수(汨羅水)를 가리킨다. 어복충혼(魚腹忠魂)은 시국을 걱정하며 자결한 굴원의 충혼을 표현한 것이다.
이 시조들이 서로 연결된 연시조임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뜬금없다 하겠으나, 전편에서 북포 남강 바람 부는 대로 배를 시켜두었으니, 오강 남강 돌아가며 오자서(伍子胥)며 굴원(屈原)을 끌어다 대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먹물깨나 든 작가는 두 충신의 고사를 끌어옴으로써 자신의 유유자적 또한 고통과 근심의 나날을 견디는 선비의 한 행적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물결이 흐리거든 발을 씻은들 어떠하리
이어라 이어라
오강(吳江)에 가자하니 천년노도(千年怒濤) 슬프도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초강(楚江)에 가자하니 어복충혼(魚腹忠魂) 낚을세라
고산시조 41/75 – 어부사시사 15/40
하사(夏詞) 05/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만류녹음(萬柳綠陰) 어린 곳에 일편태기(一片苔磯) 기특(奇特)하다
다리에 닫았거든 어인쟁도(漁人爭道) 허물 마라
가다가 학발노옹(鶴髮老翁) 만나거든 뇌택양거(雷澤讓居) 효칙(效則)하자
만류녹음(萬柳綠陰) - 많은 버드나무가 이룬 나무 그늘.
어린 – 엉켜 있는.
일편태기(一片苔磯) - 한 조각(좁장한)의 낚시터. 태기(苔磯)는 물가 이끼긴 자갈밭.
기특(奇特)하다 – 기이하고 특별하다. 맞춤한 낚시터를 발견하고 감탄하는 말.
어인쟁도(漁人爭道) - 낚시꾼이 앞을 다투어 건너감.
학발노옹(鶴髮老翁) - 흰 머리의 늙은 노인.
뇌택양거(雷澤讓居) - 뇌택이라는 못에서 낚시질히고 자리를 내어줌. 중국 고대 순(舜) 임금의 고사로, 순 임금이 뇌택이라는 못에서 낚시를 하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했다고 함.
효칙(效則) - 본받아 법으로 삼음.
고전번역원 각주를 옮겨옵니다,
뇌택(雷澤)에서의 자리 양보 : 《사기(史記)》 권1 〈오제본기(五帝本紀)〉에 “순 임금이 역산에서 밭을 경작하자 역산의 사람들이 모두 밭두둑을 양보했고, 뇌택에서 물고기를 잡자 뇌택 가의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양보했다.”라고 하였다.
낚시터에서도 예절이 있었군요. 나 많은 사람에게는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을 예기하고 있습니다. 훈민(訓民)의 일면이 있습니다. 자신이야 잡아도 그만 아니 잡아도 그만이니 쉬이 양보할 수 있겠으나, 어디 민초들이야, 더하여 생계가 달렸다면야. 이 작품에서도 식자의 용모가 뚜렷하니, 순 임금의 고사를 끌어왔습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버들 숲 녹음(綠陰) 어린 곳에 이끼 낀 바위 낚시터도 기특하다
이어라 이어라
다리에 도착하거든 낚시꾼들 자리다툼 허물 마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학발(鶴髮)의 노옹(老翁)을 만나거든 뇌택(雷澤)에서의 자리 양보 본받아 보자
고산시조 42/75 – 어부사시사 16/40
하사(夏詞) 06/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긴 날이 저무는 줄 흥(興)에 미쳐 모르도다
뱃대를 두드리고 수조가(水調歌)를 불러 보자
뉘라서 애내성(欸乃聲) 중(中)에 만고심(萬古心)을 긔 뉘 알꼬
미쳐 – 겨워.
모르도다 – 모르고 있었구나.
뱃대 – 돛대.
수조가(水調歌) - 뱃노래. 중국 역사에서, 수(隋) 양제(煬帝)가 강도(江都)로 향하면서 지었다는 ㅗ래로 곡조가 매우 원절(怨切)했다고 함.
애내성(欸乃聲) 중(中)에 만고심(萬古心) - 슬픈 뱃노래 가운데 스며든 오래된 근심. 애내(欸乃)는 뱃노래 또는 노 젓는 소리로 이두(吏讀)에서 온 표기.
긔 – 그것이.
알꼬 – 알겠느냐?
고전번역원 각주를 옮겨옵니다,
수조가(水調歌) : 악곡의 명칭으로 수 양제(隋煬帝)가 변하(汴河)를 개통할 때 〈수조가〉를 지었는데 당나라 때 이를 부연하여 대곡(大曲)이 되었다. 소식(蘇軾) 등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명칭의 곡조를 남긴 바 있다.
애내(欸乃) : 배의 노를 젓는데 따라서 일어나는 소리 또는 배에서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뱃노래를 뜻한다.
고산 선생의 시조를 풀다 보면 여간 먹물이 아닙니다. 고유어가 주를 이루어도 섞여 있는 한자어휘가 그 깊이가 대단합니다. 부르는 사람들이 이런 뜻을 알고, 즉 이해하고 부른다면 더욱 느낌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해 저무는지도 모르고 돛대를 두드리며 반주 넣고, 그 어려울 것만 같고, 원망이 자심한 내용의 ‘수조가’라니요. 우리 현대문학의 초창기 소설 ‘배따리기’ 가락을 상상해 보면서 여러 번 읽어봅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긴 날이 저무는 줄 흥에 미쳐 모르도다
돛 내려라 돛 내려라
돛대를 두드리고 〈수조가(水調歌)〉를 불러 보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애내(欸乃) 소리 가운데에 만고(萬古)의 마음을 그 누가 알까
고산시조 43/75 – 어부사시사 17/40
하사(夏詞) 07/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석양(夕陽)이 좋다마는 황혼(黃昏)이 가깝거다
바위 위에 굽은 길 솔 아래 비껴 있다
어디서 벽수앵성(碧樹鶯聲)이 곳곳이 들리나다
가깝거다 – 가까웠다. ‘~거다’는 ‘~다’의 강조형 옛말씨.
비껴 있다 – 비스듬히 걸려 있다.
벽수앵성(碧樹鶯聲) - 푸른 나무의 꾀꼬리 소리. 초장의 석양 황혼과 색깔의 대조를 이룹니다.
곳곳이 – 여러 곳에서.
들리나다 – 들린다. ‘~나다’는 ‘~ㄴ다’의 옛 말씨.
중장의 풍경 묘사에 주목합니다. 소나무 아래 바위가 있고, 사람들 지나다니는 길이 돌아나간다는 뜻인데, 풀어 쓴 듯 아닌 듯 훨씬 긴장감이 느껴지는 응집된 표현입니다.
종장의 꾀꼬리 울음소리가 녹음 우거진 숲 속에서 들려온다는 말도 네 글자 조합 한자어에 시각과 청각이 버무려져 있군요. 우리말 어휘와 한자어의 조홧속이 아름답습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석양이 좋다마는 황혼이 가깝구나
배 세워라 배 세워라
바위 위에 굽은 길이 솔 아래 비껴 있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푸른 숲에 꾀꼬리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는구나
고산시조 44/75 – 어부사시사 18/40
하사(夏詞) 08/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모래 위에 그물 널고 둠 밑에 누워 쉬자
모기를 밉다 하랴 창승(蒼蠅)과 어떠하리
진실로 다만 한 근심은 상대부(桑大夫) 들으려다
둠 – 뜸. 풀로 거족처럼 엮은 차양막,
창승(蒼蠅) - 쇠파리.
어떠하리 – 어떠할까. 누가 더 미울까? 모기보다는 쉬파리가 조금은 덜 미울 것 같다.
상대부(桑大夫) - 중국의 역사인물 상홍양(桑弘羊). 한(漢) 무제(武帝) 때 농사를 관장하는 대부로 활약했다. 세금을 잘 걷어 나라가 부국이 되게 하였다. 여기서는 미주알고주알 따지는 소인배(小人輩)라는 뜻으로 쓰였다.
들으려다 – 들을까 연려된다.
그물 널어두고 그늘에 의지하여 좀 쉬려는데, 여름이라 물것들이 덤비는군요. 모기, 대단히 성가신 존재입니다. 그래서 모기와 쇠파리를 비교하고서는 물지는 않는 쇠파리가 좀 낫지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뱉고 보니 자신이 여간만 소인배가 아닌 것으로, 혹시 미주알고주알 따지는 상대부가 들었으면 어쩔거나 걱정을 앞세우는군요. 조선의 선비들이 절대 들으면 안 되는 욕이었으니까요.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모래 위에 그물 널고 그늘 밑에 누워 쉬자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모기를 밉다 하랴 쉬파리에 비하면 어떠한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다만 한 근심은 상대부(桑大夫)가 들을까 하는 것이네
고산시조 45/75 – 어부사시사 19/40
하사(夏詞) 09/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밤사이 풍랑(風浪) 일 줄을 미리 어이 짐작(斟酌)하리
야도횡주(野渡橫舟)를 뉘라서 일렀는고
어즈버 간변유초(澗邊幽草)도 진실로 어여쁘다
짐작(斟酌) - 어림쳐서 헤아림.
야도횡주(野渡橫舟) - 야도무인주자횡(野渡無人舟自橫). 밤에 다니는 배. 당(唐) 시인 위응물(韋應物)의 시에서 나온 구절.
뉘라서 일렀는고 – 누가 있어서 말했던가.
간변유초(澗邊幽草) - 산골 시냇가에 숨어 자라는 풀.
진실로 어여쁘다 – 참으로 불쌍하다. 애처롭다.
고전번역원 각주를 옮겨옵니다,
상대부(桑大夫) : 한 무제(漢武帝) 때의 어사대부였던 상홍양(桑弘羊)을 가리킨다. 천하의 염철(鹽鐵)을 관장하며 세세하고 잡다한 부분까지 셈하고 따져서 국용(國用)에 이롭게 하였다. 여기서는 세금을 거두어 가는 관리를 비유한 말로 쓰였다. 소식(蘇軾)의 〈어만자(漁蠻子)〉 시에 “어부들 머리 조아리고 흐느끼며 관리에게 말하지 말라 하네.〔蠻子叩頭泣 勿語桑大夫〕”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어부들이 자신들의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관리들에게 말하여 세금을 뜯어 가지 못하게 하라는 내용이다.
들판 …… 일렀는고 : 당(唐)나라 시인(詩人) 위응물(韋應物)의 〈저주서간(滁州西澗)〉 시에 “봄 조수가 비를 띠어 저녁에 급해지는데, 들판 나루터에 사람은 없고 배만 절로 비껴 있구나.〔春潮帶雨晚來急 野渡無人舟自橫〕”라고 하였다.
물에서 돌아와 뭍에 배를 내리면서, 혹시 밤사이에 풍랑이 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먹물 든 작자에겐 고대 한 시인의 구절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닻도 내리고 돛도 내리고 단단히 단속을 했겠지요. 그러고는 곧바로 그윽한 풀 더미에 눈길이 갑니다. 숨어 사는 민초가 자신은 시냇가 그윽한 풀과 다름이 없고, 마침내 애처롭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어부가 다 된 양 살아갈지언정 치자(治者)의 시각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밤사이 풍랑을 어찌 미리 짐작하리
닻 내려라 닻 내려라
들판 나루터에 비껴 있는 배를 그 누가 일렀는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시냇가 그윽한 풀도 진실로 어여쁘다
고산시조 46/75 – 어부사시사 20/40
하사(夏詞) 10/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와실(蝸室)을 바라보니 백운(白雲)이 둘러 있다
부들부채 가로 쥐고 석경(石逕)으로 올라가자
아마도 어옹(漁翁)이 한가(閑暇)터냐 이것이 구실이라
와실(蝸室) - 달팽이 껍질 같이 작고 누추한 방.
백운(白雲) - 흰구름. 한시에서는 흰 백(白)이 서쪽이며 여름의 뜻을 품고 있습니다.
부들부채 – 부들 줄기를 엮어 만든 부채. 자연친화적입니다. 부들은 부들과의 여러해살이풀. 여름에 잎 사이에서 꽃줄기가 나와 노란 이삭 모양의 꽃이 육수(肉穗) 화서로 피는데 위쪽에 수꽃, 아래쪽에 암꽃이 달린다. 잎과 줄기는 자리와 부채 따위를 만드는 재료로 쓴다.
석경(石逕) - 바위 사이로 난 좁은 길.
어옹(漁翁) - 고기 잡는 늙은이.
구실 – 맡은 임무. 직책.
어부사시사 여름노래 마지막인데, 지신의 주변을 그려 놓고, 직분 곧 맡은 바 소임이 이렇듯 한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는 것은 달팽이 집 형상일진대 흰구름이 와서 어울리고, 더위는 부들 풀 줄기로 엮은 부채로 쫒고, 큰길 말고 소로로 다니며 한가하게 소일하니, 고난을 견디는 이즈음의 자신 곧 어옹이 맡은 바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추사(秋詞)로 넘어갑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오두막을 바라보니 흰 구름이 둘러 있다
배 붙여라 배 붙여라
부들부채 비껴 쥐고 돌길로 올라가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옹(漁翁)이 한가하더냐 이것이 구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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