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시조 035
북두성 기울어지고
다복(多福) 지음
북두성(北斗星) 기울어지고 경오점(更五點) 잦아간다
십주(十洲) 가기(佳期)는 허랑(虛浪)타 하리로다
두어라 번우(煩友)한 님이니 새워 무삼하리오
북두성(北斗星) - 북두칠성(北斗七星). 큰곰자리에서 국자 모양을 이루며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일곱 개의 별. 이름은 각각 천추(天樞), 천선(天璇), 천기(天璣), 천권(天權), 옥형(玉衡), 개양(開陽), 요광(搖光)이라 하며 앞의 네 별을 괴(魁), 뒤의 세 별을 표(杓)라 하고 합하여 두(斗)라 한다. 위치는 천구(天球)의 북극에서 약 30도 떨어져 있으며, 천추와 천선을 일직선으로 연결한 곳에서부터 그 길이의 다섯 배만큼 떨어진 거리에 북극성이 있다. 국자의 자루 끝에 있는 요광은 하루에 열두 방위를 가리키므로 옛날에는 시각(時刻)의 측정이나 항해의 지침으로 삼았다.
경오점(更五點) - 하룻밤을 오경(五更)으로 나누고, 경(更)마다 종(鐘)이나 북 같은 것으로 시간을 알렸다. 점(點)은 쳐서 소리가 난나는 뜻이다. 오경이란 일몰부터 일출까지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누어 부르는 시간의 이름. 밤 7시부터 시작하여 두 시간씩 나누어 각각 초경, 이경, 삼경, 사경, 오경이라고 이른다.
잦아간다 – 경(更)을 알리는 점(點)소리가 자주 잇달아 난다. 곧 밤이 깊어간다.
십주(十洲) - 신선(神仙)들이 산다는 열 군데의 섬.
가기(佳期) - 좋은 시절. 가절(佳節). 사랑을 처음 맺게 되는 좋은 시기.
허랑(虛浪)타 – 허랑하다. 미덥지 못하다.
번우(煩友) - 벗이 많음. 사귀는 사람이 많아 노닐기에 바쁨.
새워 – 시새움하여.
무삼하리오 – 무엇 하겠느냐. 부질없다.
지은이 다복(多福)은 기녀(妓女)입니다. 활동 기간 등 미상(未詳)인데, 이름을 들여다보니 복이 많아, 일찌감치 대감댁 첩으로 들어앉았을 것 같습니다. 시조 딱 한 수 남겼는데, 천문용어하며 한자어휘 사용이 가히 문장가(文章家)입니다.
시조의 내용은 밤이 깊어 가는데, 님은 안 옵니다. 오늘 밤 신선들도 사랑을 나누기 참 좋은 시절이라 은근 기대를 했건만, 다복은 부질없는 시새움 거두고 ‘원체 바쁘신 님이니’ 체념하고 맙니다.
흠흠시조 036
이화우 흩뿌릴 제
매창(梅窓) 지음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離別)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더라
이화우(梨花雨) - 배꽃이 지면서 꽃비가 날리는 모습을 나타낸 말.
추풍낙엽(秋風落葉) - 가을바람에 지는 잎새. 봄에 이별했으니 벌써 늦가을이라는 뜻입니다.
천리(千里)에 – 서로 멀리 떨어져. 공간적 거리에 시간적 거리가 겹치고, 대조적으로 심리적 거리만 가깝게 남았습니다.
지은이 매창(梅窓, 1513~1550)은 부안(扶安)의 기생인데, 본명이 이향금(李香今)이고 호가 매창(梅窓), 계생(桂生)입니다. 일명 계랑(桂娘)이라고도 합니다. 시조 한 수는 특별하고, 한시(漢詩)가 70여 수나 남아 있습니다. 가히 황진이(黃眞伊)에 견주는 여류시인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서로 떨어져 천리인(千里人)이 되었거늘 어느새 반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한답니다. 알려지기로는 촌은(村隱) 유희경(柳希慶)과의 이별을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다른 작품 ‘청조 오도고야’가 매창의 작이라는 설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지난 ‘흠흠시조 024’에서 계단(桂丹)의 작품으로 다루었기에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부안에 가면 ‘매창공원’이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매창의 묘도 있고, 큰 돌을 조각하여 여러 편의 시문들이 무거울 정도로 놓여져 있습니다. 이화우 흩날릴 제 거기 찾아가 술 한 잔 부어 놓고 시 한 수 읽는다면 저도 좋고 나도 좋고 하련마는.
흠흠시조 037
꽃 보고 춤추는 나비와
송이(松伊) 지음 1/4
꽃 보고 춤추는 나비와 나비 보고 당싯 웃는 꽃과
저 둘이 사랑은 절절(節節)이 오건마는
어떻다 우리의 사랑은 가고 아니 오느니
당싯 – 방싯.
절절(節節)이 – 계절마다.
지은이 송이(松伊)는 생몰 연대 미상인 명기(名妓)라고만 전합니다. 이 송이(松伊)에게도 짝이 있었으나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후 덜컹 병이 나 짧디 짧은 사랑가가 되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박준한(朴俊漢)으로 그의 모친이 아들의 장례 후 입산한 산사로 따라 들어가 소식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다행히 네 편의 시조가 남아 있어 그녀의 시조창 가락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꽃과 나비, 흔한 소재이지만 송이한테는 절절이 오는 사랑 노래가 아니라 딱 한 번으로 ‘가고 아니 온’ 노래가 되었습니다.
흠흠시조 038
내 사랑 남 주지 말고
송이(松伊) 지음 2/4
내 사랑(思郞) 남 주지 말고 남의 사랑 탐(貪)치 마쇼
우리 두 사랑이 행혜(行兮) 잡(雜)사랑에 섞일세라
우리나 니 사랑 가지고 백년동주(百年同住)
사랑(思郞) - 순 우리말 어휘 ‘사랑’을 억지로 한자어로 적은 표현입니다.
행혜(行兮) - 행여. 어쩌다가 혹시. 굳이 한자를 사용한다면 ‘幸여’가 되어야 할 텐데요.
니 – 이[此].
백년동주(百年同住) - 백년 동안 함께 살다. 오래오래 동고동락하리라.
송이의 작품이 아니라 신흠(申欽)의 작품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남의 사랑 넘보지도 않고, 내 사랑 남에게 앗기지도 않고 죽을 때까지 지고지순하게 살겠다는 깨끗함이 드러나 있습니다. 송이의 것이라 해두고 싶습니다.
흠흠시조 039
솔이 솔이라 하니
송이(松伊) 지음 3/4
솔이 솔이라 하니 무슨 솔만 여기는다
천심(千尋) 절벽(絶壁)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내 긔로다
길 아래 초동(樵童)의 접낫이야 걸어볼 줄 있으랴
천심(千尋) - 매우 높거나 깊음.
낙락장송(落落長松) - 가지가 길게 축축 늘어진 키가 큰 소나무.
긔로다 – 그것이로다.
초동(樵童) - 땔나무 하는 아이.
접낫 – 작은 낫.
지은이 송이(松伊)가 곧 이 작품에 나오는 낙락장송이랍니다. 저만치 아래 초동의 작은 낫으로야 전혀 베일 수 없음이라, 비록 기녀일지언정 언행과 품격이 굳건하니 그리 아르시란다.
솔 중에 어느 솔 찾으시냐 묻더니 낙락장송 찾으시냐 해놓고 바로 자기가 그것이랍니다. 설의법으로 접근하면서 문답이 금방 완성되는 수작(酬酌)이 빼어납니다.
흠흠시조 040
오동에 우적하니
송이(松伊) 지음 4/4
오동(梧桐)에 우적(雨滴)하니 오현(五絃)을 잉애는 듯
죽엽(竹葉)에 풍동(風動)하니 초한(楚漢)이 셧도는 듯
금준(金樽)에 월광명(月光明)하니 이백(李白) 본 듯하여라
오동(梧桐) - 오동나무. 봉황이 내린다는 나무. 가벼워서 악기 재료로도 많이 쓰임.
우적(雨滴)하니 – 비 방울지니. 비 듣나니.
오현(五絃) - 오현금(五絃琴). 다섯줄로 된 고대 현악기의 하나. 중국의 순임금이 만들었다고 하며, 칠현금의 전신이다.
잉애는 듯 – 타고 있는 듯.
죽엽(竹葉) - 대잎.
풍동(風動)하니 – 바람 이니.
초한(楚漢) - 초나라와 한나라.
셧도는 듯 – 섞여서 다투는 듯,
금준(金樽) - 금 술동이.
월광명(月光明) - 달빛이 밝음.
이백(李白) - 중국 당나라의 시인(701~762).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 젊어서 여러 나라에 만유(漫遊)하고, 뒤에 출사(出仕)하였으나 안녹산의 난으로 유배되는 등 불우한 만년을 보냈다. 칠언 절구에 특히 뛰어났으며, 이별과 자연을 제재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현종과 양귀비의 모란연(牧丹宴)에서 취중에 <청평조(淸平調)> 3수를 지은 이야기가 유명하다. 시성(詩聖) 두보(杜甫)에 대하여 시선(詩仙)으로 칭하여진다. 시문집에 ≪이태백시집≫ 30권이 있다.
다른 세 편에 비해 한문투요, 초 중 종장이 모두 ‘~듯’으로 되어 있어 어느 양반댁 자제분의 초년작일 듯도 합니다.
달 밝고 술잔 기울이면 모두 이백 어쩌고 하니, 이백은 물경 얼마나 많은 초심자들의 시심을 앗아갔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