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다보탑, 우리가 몰랐던 아픈 역사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이동설
Dragon ・ 2026. 4. 21. 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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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그 안에 수많은 사람의 땀과 눈물, 그리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는 생생한 역사책이다. 오늘은 경주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서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버텨온 신라 미술의 정수, 다보탑(국보 제20호)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교과서나 10원짜리 동전에서 보던 익숙한 탑이 아닌, 그 이면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과 아픈 역사를 들여다보겠다.
경주 불국사 다보탑 (국보)
■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상향, 불국사 그리고 다보탑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년), 재상 김대성의 발원으로 창건된 사찰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김대성은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불국사는 단순한 절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의 부처가 머무는 맑고 깨끗한 정토(淨土)를 이 땅에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숭고한 정신세계가 응집된 공간이다.
그 중심에 있는 대웅전 앞마당에는 동서로 두 개의 탑이 마주 보고 서 있다. 동쪽의 화려한 탑이 다보탑이고, 서쪽의 단아한 탑이 석가탑(삼층석탑)이다. 높이 10.29m의 다보탑은 10.75m의 석가탑과 나란히 서서 신라 석탑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이 두 탑을 같은 공간에 나란히 세운 이유는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인 『법화경』의 「견보탑품」 내용에 기원한다.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진리를 설법할 때, 땅속에서 화려한 칠보탑이 솟아오르고 그 안에 계시던 '과거의 부처' 다보여래가 그 설법이 참됨을 증명한다는 극적인 장면을 돌로 빚어낸 것이다. 즉, 다보탑은 부처의 진리를 찬탄하고 증명하는 영원한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 다보탑의 특징과 역사
① 돌을 나무처럼 떡 주무르듯 다룬 신라인의 예술혼
석가탑이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이고 간결한 '일반형 석탑'의 완성을 보여준다면, 다보탑은 층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복잡하고 기발한 '특수형 석탑'의 최고봉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중국이나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그 어디에서도 비슷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형태를 자랑한다.
원래의 명칭은 '다보여래상주증명탑(多寶如來常主證明塔)'이다. 이 긴 이름만큼이나 다보탑의 구조는 다채롭다. 십(十)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으로 돌계단을 마련하였고, 그 위로 4각, 8각, 원형 등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짜임새 있게 교차한다. 특히 딱딱한 화강암을 깎아 목조 건축의 복잡한 결구와 부드러운 곡선을 산만하지 않고 경쾌하게 표현해 낸 솜씨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8각형의 탑신 주위로 둘러친 네모난 돌 난간, 대나무 마디 모양으로 섬세하게 다듬어진 기둥(죽절문 석주), 활짝 핀 연꽃잎이 위로 향한 형태의 앙련대 등 각 부분의 길이와 너비, 두께가 일정한 비율로 통일감을 이루며 완벽한 비례미를 선사한다. 이는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이 도달했던 미적 감각과 기술적 성취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② 잃어버린 돌사자와 사리장치, 일제강점기의 뼈아픈 수난사
이토록 아름다운 다보탑을 바라보고 있으면 찬란한 예술성에 감탄하게 되지만, 그 이면에는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뼈아픈 설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1925년경, 일제는 보수라는 명목하에 다보탑을 완전히 해체하는 공사를 벌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이 중대한 공사에 관한 어떠한 도면이나 수리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이 깜깜이 해체 과정 속에서 탑 안에 모셔져 있던 귀중한 사리와 사리장치, 그리고 탑 내부에 봉안되었을 수많은 유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기단의 네 방향 돌계단 위에 늠름하게 앉아 탑을 수호하던 '네 마리의 돌사자'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네 마리가 온전히 남아있었으나, 일제의 해체 수리 과정을 전후로 세 마리가 약탈당해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잃어버린 사자상 중 하나가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현재까지 그 행방이 묘연하다. 지금 우리 곁에 남아있는 것은 가장 상태가 좋지 않아 차마 가져가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얼굴 부위가 훼손된 단 한 마리의 돌사자뿐이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1966년 이후 발행된 10원짜리 동전 앞면에는 다보탑이 새겨져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계단 위에 홀로 남은 그 돌사자의 모습까지 묘사되어 있어, 볼 때마다 잃어버린 문화유산에 대한 씁쓸함을 삼키게 한다.
③ 놀라운 가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원래 다보탑의 것이었다?
다보탑에 관한 또 하나의 매우 흥미롭고 극적인 이야기가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석가탑과 얽힌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이동설'이다.
1966년 10월, 석가탑을 노린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수리하기 위해 해체하는 과정에서 2층 탑신부 안에서 사리장엄구와 함께 두루마리 형식의 목판 인쇄물이 발견되었다. 너비 약 8cm, 길이 약 620cm에 달하는 이 유물이 바로 국보 제126호이자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로 널리 알려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발견 당시 학계는 당연히 이 다라니경이 석가탑을 처음 세운 8세기(751년경)의 통일신라 유물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석가탑에서 함께 출토된 '묵서지편(墨書紙片, 글씨가 적힌 종이 조각들)'을 2000년대 들어 보존 처리하고 판독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묵서지편 중에 고려시대인 1024년(현종 15년)과 1038년(정종 4년)에 지진으로 인해 탑을 보수했다는 기록이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통일신라 시대가 아닌 고려 시대에 인쇄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논란을 잠재운 것이 바로 불교서지학의 권위자인 박상국 문화재위원(전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의 연구였다. 그는 2009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원래 742년 무렵 다보탑에 봉안되었던 것인데, 고려 시대에 다보탑과 석가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석가탑으로 옮겨진 것"이라는 놀라운 분석을 내놓았다.
그 근거는 수리 기록의 꼼꼼한 비교에 있다. 1024년에 작성된 다보탑(당시 명칭 무구정광탑)의 중수 기록에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다보탑 내부에서 발견되었다는 내용이 명확히 두 번이나 등장한다. 반면, 14년 뒤인 1038년에 작성된 석가탑(서석탑) 중수 기록에는 탑을 보수하며 다라니경을 새롭게 넣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박 원장은 1036년 경주 일대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두 탑이 모두 피해를 입었을 때, 상대적으로 더 튼튼했던 석가탑을 1038년에 재보수하면서, 원래 다보탑에 보관되어 있던 다라니경 중 하나를 석가탑으로 옮겨 모셨다고 추정한 것이다.
또한, 고려 시대 11세기 무렵에는 이미 '보협인다라니경'이라는 새로운 경전이 유행하여 탑 안에 모시는 의식이 보편화되어 있었으므로, 구시대의 경전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고려 시대에 새롭게 목판으로 찍어낼 이유가 없었다는 점도 이 가설에 힘을 싣는다.
결국 이 '이동설'은 다라니경이 고려시대 인쇄물이라는 의혹을 말끔히 해소해주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통일신라 경덕왕 이전(742년경)에 간행된 것이 확실하며, 원래는 다보탑의 심장부를 지키고 있던 성보(聖寶)였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두 탑이 천년의 세월 동안 지진과 시련을 겪으며 서로의 성물을 나누어 품었다는 이 이야기는 다보탑을 한층 더 신비롭고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만들어 준다.
④ 상처를 품고 다시 서다, 최근의 보수 과정
천년이 넘는 세월은 돌로 만든 탑에게도 무거운 짐이었다. 산성비와 풍화작용으로 탑 표면이 오염되고 부재가 훼손되자, 2008년 12월부터 다보탑은 대대적인 수술대에 올랐다. 2층 사각 난간과 팔각 난간, 그리고 꼭대기의 상륜부를 해체하여 수리하고, 나머지 부분은 레이저 세척 등을 통해 찌든 오염물을 조심스럽게 제거하며 강화 처리를 진행했다.
하지만 자연의 위협은 끝이 없었다. 2016년 9월, 관측 사상 최대 규모였던 5.8의 경주 강진이 발생했을 때 다보탑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탑 전체가 붕괴되는 참사는 피했으나, 상층부 동쪽 난간석 일부가 아래로 떨어져 파손되는 아찔한 피해를 보았다. 당시 여진으로 인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검은색 고무 패드와 고정 벨트로 탑을 칭칭 동여맨 다보탑의 모습은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후 문화재청의 정밀한 기술 지원과 보수 공사를 통해 지금의 의연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 아는 만큼 보이고, 배운 만큼 사랑하게 되는 다보탑
불국사 다보탑은 단순히 화강암을 조각해 만든 아름다운 불탑 그 이상이다. 그곳에는 불교의 이상적인 진리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낸 통일신라 최고 장인들의 예술적 성취가 깃들어 있고,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훼손되고 약탈당한 가슴 시린 역사가 박혀 있으며, 지진의 위기를 넘기며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끈질긴 생명력이 숨 쉬고 있다.
무엇보다 옆자리의 석가탑과 원래의 성물(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나누어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그 아득하고 흥미로운 역사의 수수께끼는 우리가 왜 끊임없이 문화유산을 공부하고 들여다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 준다. 불국사를 방문하시어 대웅전 앞마당에 서신다면, 홀로 남은 돌사자와 눈을 맞추며 다보탑이 들려주는 이 천 년의 묵직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시길 권해드린다.
[출처] 국보 다보탑, 우리가 몰랐던 아픈 역사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이동설|작성자 Drag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