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제목은 '고수(高手)'였다. 바둑의 고수가 지혜를 나눠준다는 콘셉트였다.
"2009년 출판사가 제안한 건데요, 제가 고수가 아닌지라 그런 단어를 별로 안 좋아해요."
바둑 10급인 그는 대신 '미생마(未生馬)'를 떠올렸다.
살지도, 죽지도 않은 바둑돌이다.
"출판사에 전화해서 제목을 '미생'으로 하자고 했더니 무슨 뜻이냐고 그러더라고요. 전 다 아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부제를 붙였어요.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 만화가 윤태호(45)가 말했다.
'미생'이 웹툰에 이어 200만 부 판매를 돌파한 출판만화,
최고시청률 7%를 넘긴 TV 드라마, 누적 판매 15억원의 VOD 등 영역을 초월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이 웹툰을 '창조경제의 모범사례'로 꼽아 27일 서울 코엑스에서 특별 좌담회까지 열었다.
윤씨는 "만화가로서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결국 어떤 힘든 일을 매우 힘들게 헤쳐나가는 과정이잖아요.
샐러리맨이 밤마다 술에 취해 상사 욕을 해대는 것도, 일을 열심히 헤쳐나가려는 드라마 때문인 거죠."
-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만난 윤태호가 ‘미생’의 워커홀릭 오상식 과장 캐릭터 등신상(等身像)을 끌어안고 있다. “마감 때문에 정신없다”는 그는 깎지 않은 수염에 한 브랜드만 고집하는 모자 차림이었다. 미생이었다. /김지호 기자
취재만 3년이 걸렸다.
취직 경험 전무, 회사에서 과장과 차장 중 누가 높은지도 몰랐던 그였다.
"질문하게 돼요. 장그래는 계약직이지만, 정사원이 되면 완생인가? 회사 사장은 완생인가?
어쩌면 모두가 결국 완생을 지향하는 미생 아닌가?"
제목에 큰 공을 들였지만, 캐릭터 이름은 장난스럽다.
"장그래, 안영이는 절대 연인이 될 수 없도록 설정했어요. 안영이가 '안녕' 하면 장그래는 '그래' 하는 관계거든요."
2008년 윤씨가 연재한 '이끼' 역시 2010년 영화화되며 원소스멀티유즈(OSMU)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그는 "웹툰 플랫폼은 이미 만화가만의 무대가 아니다"고 말했다. "
'이끼' 영화화 이후에 많은 드라마·영화 제작사로부터 '준비 중인 시나리오를 줄 테니 웹툰으로 연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먼저 웹툰으로 반응을 본 뒤 영상화하거나 계획을 전면 취소하겠다는 전략이죠.
이제 웹툰은 수많은 매체와 이해 관계자의 공간이 됐어요. 판이 커진 거죠."
그는 지난 7월부터 웹툰 '파인(巴人·촌뜨기)'을 연재하고 있다.
1976년 전남 신안 앞바다의 고려청자 발굴 사업을 배경으로 한 도굴 사기극을 다룬다.
치밀한 당대의 배경 묘사에 네티즌들의 환호가 잇따른다.
그는 "'미생' 이후 취재가 아주 쉬워졌다"고 말했다.
"어딜 가든 '미생' 작가라고 하면 다 돼요.
번 돈으로 헬리캠 띄워 근처 스케치도 할 수 있고요."
그는 1988년부터 3년간 만화가 허영만의 문하생으로 있었다.
전수받은 취재 노하우를 묻자 농이 날아온다.
"허 선생님, 제가 나간 뒤부터 취재 열심히 하시던데요."
내년 3월쯤 '미생' 시즌2가 나온다.
장그래의 계약 해지와 거의 동시에 사표를 던진 상사들이 따로 회사를 차린 이후를 다룬다.
"성공이 클수록 경계하게 돼요.
성장할 순 있지만, 만화는 가내수공업처럼 소박해야 하죠. 책상이 곧 제 세계예요.
그 안에서 모든 지구인이 공감할 그런 보편성을 그려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