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 주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치유해주십니다. 예수님의이 치유 행위는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예고한 ‘메시아 시대’가 다가왔음을 선포합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이사 35,5-6)
여기에서 ‘그때’는 바로 메시아가 오시는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기다리고 고대했던 메시아가 오시는 그때 눈먼 이들이 눈을 뜨고, 귀먹은 이들의 귀가 열리며,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어다니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육체적인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뿐만 아니라, 영적인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아무리 많은 기적이 일어나도 ‘믿지 않으려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성경은 “눈은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는 있어도 듣지를 못하는 사람”(참조: 이사 6,9-10; 마태 13,14-15)이라고 탄식합니다.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31절)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공생활 동안 주로 헤로데 안티파스가 다스리던 갈릴래아 지방을 중심으로 유다인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북쪽 해안 지방인 티로에서 시작해 그곳에서 북쪽으로 약 36㎞ 더 떨어진 항구 도시 시돈에 들르셨다가 골란과 바타네아 지방을 거쳐 남동쪽에 있는 데카폴리스를 지나 갈릴래아 호수로 되돌아오십니다. 예수님의 이 여정은 약 150㎞ 정도에 이르는 머나먼 길입니다. 티로와 시돈은 예수님 당시에 번성하던 무역항이었고, 데카폴리스는 그리스인들이 주로 살던 이방인들의 도시입니다.
요르단 강 동부 지역에는 자치권을 가진 ‘열 개의 도시들’(Δεκάπολις)이 새롭게 생겨났다. 셈족에 맞서 자유 무역과 자체 방어망을 구출할 목적으로 결속된 도시 동맹체인 데카폴리스는,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우스에 의하면, 스키토폴리스, 펠라, 디온, 게라사, 필라델피아, 가다라, 라파나, 카나다, 히포스, 그리고 다마스쿠스가 여기에 속한다.
‘자본과 번영’ 그리고 ‘이교적인 도시 문화’가 넘치던 곳을 지나오신 예수님께 사람들은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데려와서 손을 얹어 주시길 청합니다(32절). “예수님께서는 ①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②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③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④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33-34절)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우리를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마치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따로 광야로 불러내어 사랑을 속삭여주듯(호세 2,16-25 참조),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시어, 당신 손가락을 그(우리)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마르 7,33) 그리고 빵 다섯 개로 5천 명을 먹이셨을 때처럼,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의 뜻에 의탁하여 ‘숨을 내쉬어’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에파타!” 곧 “열려라!”(אתפתח: εφφαθα, ὅ ἐστιν διανοίχθητι: ‘διανοίγω’ 동사의 명령법 단순과거 수동태 2칭 단수: 신적 수동태, Divinum Passivum, 마르 7,34)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καὶ εὐθέως ἠνοίγησαν αὐτοῦ αἱ ἀκοαί, καὶ ἐλύθη ὁ δεσμὸς τῆς γλώσσης αὐτοῦ καὶ ἐλάλει ὀρθῶς.” 35절)
한 성인(聖人)의 언어 습관이 기억납니다. 그는 말이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일단 말을 극도로 아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 가지 경우에만 말을 했다고 합니다. 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분의 영광을 찬미할 때, ② 자신의 죄를 고백할 때, ③ 이웃을 칭찬하고 격려할 때.
유아 세례 예식 중에 ‘열려라(에파타)’ 예식이 있습니다. 사제는 엄지손가락으로 세례 받는 아기의 귀와 입을 만지며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주 예수님,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셨으니, 이 아기도 오래지 아니하여, 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오늘 복음 말씀의 정신을 잘 담고 있는 어느 기도로 오늘의 강론을 마무리합니다.
“작고 가난한 사람들을 택하시어 신앙으로 부유케 하여 당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신 하느님, 길 잃고 방황하는 모든 이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선포하여, 기도할 힘을 잃고, 기도할 수조차 없는 병든 인간이 당신 기적의 능력과 은총으로 당신을 한없이 찬미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