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갔다오면 어머니는 맨 먼저 디딜방앗간 처마밑 둥지에 가보라고 하였다.
거기는 암탉이 자주 올라가는 곳이라 달걀 있는지 보라는 것이다.
내 키보다 높아서 잘 보이지는 않고 손을 살며시 올려서 더듬으면
아직 따스한 달걀 한 개가 손에 쏘옥 들어온다.
그 따스함은 어릴 적 엄마 젖가슴에 닿던 그런 느낌이다.
엄마는 얼릉 날계란으로 깨 묵으라고 한다.
부엌에 가서 쇠 젓가락으로 계란 한 쪽은 조금 작게,
다른 한 쪽은 조금 크게 껍질을 깨고 큰 쪽에 입을 대고 쪼옥 빨면
계란 한 개가 그대로 입안으로 들어온다.
자연에서 자란 최고의 유정란이다.
우리집 닭장은 샘 옆에 장독대가 있고 그 옆에 있었다.
흙 벽돌로 쌓고 양철 지붕을 했으며 닭은 보통 스무마리 정도였다.
닭장 안에는 횃대가 3단 있고, 동물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철망으로 둘러놓았다.
그런데도 가끔 한두마리가 없어지곤 했는데 족제비 짓이라고 한다.
족제비는 대가리만 들어가면 몸통도 들어갈 수 있고,
족제비 털로 만든 붓은 최고로 친다 하였다.
아침에 닭장 문을 열면 닭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앞마당 뒷마당으로 다니면서
뭔가 열심히 쪼아먹었고, 어머니는 수시로 곡식 부스러기들을 마당에 뿌리면서
"구구~~~ 구구~~~"하고 부르곤 했다.
허우대 좋은 장닭은 보통 열 마리 정도의 암컷을 거느리는데
귀한 손님이 오거나 어른 생신때는 황금비율을 넘치는 장닭을 잡거나,
아니면 씨암탉을 잡아서 보신을 하였다.
우선 목표한 닭을 몰아서 잡으면 날개죽지를 움켜 잡아야 꼼짝을 못한다.
아버지는 잡아온 닭을 식칼로 목을 찔러 피를 뺀 다음 끓는 물에 담가서 나랑 같이 털을 뽑는다.
암탉은 뱃속에 계란이 되는 알들이 줄줄이 달려나온다.
내장도 일일이 다듬고 똥집도 깨끗이 손질하여 어머니께 넘기면
적당한 크기의 백철 솥에 마늘 넣고 한참동안 불을 때서 푹 삶는다.
식구가 많아서 물을 많이 넣고 끓여도 하루만에 바닥이 나버린다.
나는 모처럼의 고기맛에 한마디 말도 안하고 열심히 먹었다.
정월 보름이 지나고 모아 놓은 유정란 열댓개를 암탉의 둥지에 넣어주면
암탉은 모이나 물 먹을 때만 빼고는 온 몸으로 알을 품는다.
3주일 후에 삐약삐약 소리가 나고 품은 알은 90% 이상 부화가 된다.
따스한 봄볕에 아가 병아리들은 호위무사 엄마의 철통같은 경호를 받으며
봄 햇살을 만끽한다.
이 때 엄마닭은 정말 무서운 전투력을 발휘하여 똥개도 함부로 접근을 못한다.
엄마 엄마 이리 와 요 것 보셔요
병아리 떼 뿅뿅뿅 지나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 났어요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 났어요~~
요런 삥아리들이 두세달 지나면 어느새 덩치도 커지고
노란색 위로 짙은 갈색의 털들이 삐죽 튀어나온다.
사춘기가 된 셈인데 이제 엄마랑 같이 안놀고 먹이도 다투게 된다.
닭들은 밤이 되면 모두 횃대에 올라가서 잠을 자는데,
이는 동물들로부터 안전해 지기 위함이다.
닭장에서 장닭은 암탉의 서열대로 횃대에 오르게 하고
마지막까지 안전을 지킴으로써 위계질서를 확립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일부다처제의 혜택을 독점한다고 하니 책임감의 발로라고나 할까.
그러던 어느 여름날, 갑자기 꼬꼬댁 꼬꼬~~ 불난 듯한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커다란 이웃집 장닭 한마리가 개를 피해서 날다가 우리 샘속으로 풍덩 빠져버리는 것이다.
우리 샘물은 깊어서 시원하고 물맛도 좋은데 아니 저런 괘씸한 넘,
그것도 남의 집 덩치 큰 장닭이 샘물에 빠져버렸으니 이 일을 우야꼬~~~???
장대에 고리를 달아서 삼사미터 아래 샘물로 내려 닭을 잡으려 하지만
닭은 죽자살자 버둥대서 깃털은 뭉텅빠지고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겨우겨우 잡아서 건져내긴 했지만 이미 샘물은 오염이 돼버렸다.
다음날 삼각 도르레를 설치하고 물을 바닥까지 다 퍼내느라 어른들이 총동원 했다.
마지막 바닥 청소를 덩치 작은 내가 해야 해서 도르레 바케쓰를 타고 샘 바닥까지
내려가는데 얼마나 무섭던지.....
밑에 내려가니 바닥은 모래이고 물을 퍼내는데 쬐끄만 붕어 한마리가 보였다.
아버지한테 물어보니 그대로 두라고 하신다.
근데, 약 10미터 깊이의 샘 바닥에서 위를 쳐다보니 십원짜리 동전만한 하늘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샘의 사방벽이 모두 크지 않은 돌들로 쌓여있어서 무너질까 겁이 많이 났었다.
도르레를 타고 세상 밖으로 올라 왔더니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후일담)
1. 샘 바닥의 붕어는 행여 물에 독극물이 투입될 경우 붕어가 죽어서 떠오른다는 경계의 표식이었다.
2. 정저지와(井底之蛙): 우물속 개구리의 이 뜻은 온 몸으로 체험하였기에 절대 잊어먹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