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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게 되는 쪽
이동아
광풍은 길 지우지 않는다
마지막 길 하나만 남긴다
바다가 입 벌리면
갑판은 뼈 한 장처럼 울고
물결은 벽이 되어 덮친다
암초는 밤의 살점부터 삼키고
사람은 강해지는 법이 아니라
작아지는 법부터 배운다
두려움은 눈꺼풀 안쪽에서 자라고
젖은 절망은 해진 외투처럼
몸에 오래 붙어 있다
그래도 떨리는 숨 하나
심연의 가장자리에 발 얹는다
그 한 점의 떨림으로
무너질 자리 겨우 버틴다
그때
물 위 밟고 오는 소리 하나
사나운 바람이 제 목청 거두고
가라앉던 가슴 한복판에
차갑고 단단한 못이 박힌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안쪽으로 박히는 방향이다
흩어진 줄 알았던 것들이
한 줄 밧줄처럼 다시 모여
부서진 나를 묶는다
나는 겨우 산 것이 아니라
끝내 끌려간다
광풍 한가운데서 포구는
처음 보이는 곳이 아니라
끝내 돌아가게 되는 쪽이다
──────────────
못의 방향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안쪽으로 박히는 길
광풍은 다 지우지 않는다
돌아가게 되는 쪽 하나만 남긴다
──────────────
세상은 광풍을 만나면 길이 모두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는 그 익숙한 해석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이 시에서 폭풍은 길을 지우는 재난이 아니라 수많은 거짓 방향을 걷어내고 마지막 길 하나만 남기는 혹독한 정리로 읽힌다
바다가 입을 벌리고 갑판이 뼈처럼 울며 암초가 밤의 살점부터 삼키는 장면은 단순한 위기 묘사에 머물지 않는다
이 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람이 강해지는 법이 아니라 작아지는 법을 배운다고 말하며 생존의 미학을 겸손의 감각으로 뒤집는다
두려움이 눈꺼풀 안쪽에서 자라고 절망이 젖은 외투처럼 몸에 달라붙는 순간에도 떨리는 숨 하나가 심연의 가장자리에 발을 얹는다는 대목에서 이 시의 반전은 더 깊어진다
이 시의 힘은 거대한 신념의 구호 대신 떨리는 숨과 젖은 외투와 차갑고 단단한 못과 한 줄 밧줄 같은 물질적 이미지로 내면의 구원을 만질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다
끝내 물 위를 밟고 오는 소리는 바람의 목청을 거두게 하고 가라앉던 가슴 한복판에 못 하나를 박아 넣는다
그 못은 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한 방향이며 흩어진 존재를 한 줄로 다시 묶는 중심이 된다
마침내 이 시는 내가 겨우 살아남았다고 말하지 않고 끝내 끌려간다고 고백한다
그 이동의 끝에서 독자는 포구를 안전한 출발점이 아니라 광풍의 한복판을 지난 뒤에야 비로소 알아보게 되는 귀환의 방향으로 다시 읽게 된다
젖은 못
이동아
광풍은 길 지우지 않는다
마지막 길 하나만 남긴다
바다가 입 벌린다
갑판은 뼈 한 장처럼 운다
물결은 벽이 되어 덮치고
암초는 밤의 살점부터 삼킨다
사람은 강해지는 법이 아니라
작아지는 법 배운다
두려움은 눈꺼풀 안쪽에서 자라고
젖은 절망은 해진 외투처럼 몸에 붙는다
그래도 떨리는 숨 하나
심연의 가장자리에 발을 얹는다
물 위 밟고 오는 소리가 있다
사나운 바람이 제 목청 거둔다
가라앉던 가슴 한복판에
차갑고 단단한 못 하나가 박힌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박히는 방향
흩어진 줄 알았던 것들이
한 줄 밧줄처럼 다시 모여
부서진 나를 묶는다
나는 겨우 산 것이 아니라 끌려간다
광풍 한가운데서
포구는 처음 보이는 곳이 아니라
끝내 돌아가게 되는 쪽이다
..........................
돌아가는 쪽
바다가 입을 벌릴 때
사람은 작아지는 법을 배운다
물 위를 밟고 오는 소리 하나
가슴 한복판에 못을 박는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다
포구는
끝내 돌아가게 되는 쪽이다
.......................
세상은 흔히 광풍 앞에서 살아남는 힘은 강해지는 데서 나온다고 믿는다. 버티고 맞서고 이겨내는 자만이 포구에 닿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는 그 익숙한 해석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바다가 입을 벌리고 갑판이 뼈처럼 울 때, 이 시가 건네는 것은 힘이 아니라 작아지는 법이다.
이 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두려움이 눈꺼풀 안쪽에서 자라고 젖은 절망이 해진 외투처럼 몸에 붙는 순간까지 내려간 뒤, 그 밑바닥에서 하나의 소리를 듣게 한다. 물 위를 밟고 오는 소리, 사나운 바람이 제 목청을 거두는 순간이다. 여기서 반전이 만들어진다. 구원은 폭풍을 잠재우는 사건이 아니라, 가라앉던 가슴 한복판에 차갑고 단단한 못 하나가 박히는 사건으로 온다.
그 못은 살기 위해 박히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박히는 방향이다. 이 지점에서 이 시의 역설이 완성된다. 흩어진 줄 알았던 것들이 한 줄 밧줄처럼 다시 모여 부서진 나를 묶고, 나는 겨우 산 것이 아니라 끌려간다. 살아남음이 아니라 끌려감으로 존재의 자리가 옮겨진다.
이 시의 힘은 포구를 위안이 아니라 방향으로 제시하는 데 있고, 끝내 남는 것은 처음 보이는 곳이 구원이 아니라 끝내 돌아가게 되는 쪽이 구원이라는 사실을 체험으로 알아차리게 하는 데 있다. 포구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끌려서 당도하는 자리다.
풍랑의 방향
이동아
광풍은 길 지우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길만 남긴다
바다는 예고 없이 입 벌리고
갑판은 한 장의 뼈처럼 운다
물결은 벽이 되어 덮치고
암초는
밤의 살점 먼저 받아 간다
그때
사람은 강해지는 법보다
작아지는 법 배운다
두려움은
눈꺼풀 안쪽에서 자라고
젖은 절망은
해진 외투처럼 몸에 붙는다
그래도
떨리는 숨 하나 내세워
심연의 가장자리에 발 얹는다
그때
물 위를 밟고 오는 소리가 있다
사나운 바람이 제 목청 거두고
가라앉던 가슴 한복판에
차갑고
단단한 못 하나 박힌다
살기 위해 붙드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박히는 방향이다
상처는 흩어지지 않는다
다만
흩어진 줄 알았던 것들이
한 줄 밧줄처럼
다시 모여 부서진 나를 묶는다
그래서 나는
겨우 산 것이 아니라 끌려간다
광풍 한가운데서
포구는 처음 보이는 곳이 아니라
끝내 돌아가게 되는 쪽이다
............................................
밧줄
광풍은 다 찢어놓고
하나만 남긴다
부서진 것들이
밧줄이 되어
나를 포구 쪽으로 끈다
...................................................
긴공감(핵심 반전)
사람은 보통 광풍을 파괴로만 이해하지만,
이 시는 광풍이 모든 것을 잃게 한 뒤에야
끝내 놓치지 말아야 할 방향을 남긴다고 말한다.
바람은 갑판을 울리고 물결은 벽처럼 덮치고
암초는 몸을 찢지만, 정작 사람이 배우는 것은
강함이 아니라 작아짐이다.
이 작아짐은 패배가 아니라 진실에 가까워지는 방식이 된다.
눈꺼풀 안쪽에서 두려움이 자라고 절망이 젖은 외투처럼
몸에 붙어도, 사람은 떨리는 숨 하나로 심연 가장자리에 선다.
바로 그때 들리는 발소리는 단순한 기적의 장면이 아니라,
무너지는 중심에 차갑고 단단한 방향이 박히는 순간이 된다.
그래서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 상처들이 흩어진 조각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한 줄 밧줄처럼 다시 모여 나를 포구로 끌고 간다.
이 시의 반전은 여기 있다. 나를 부순 것이
끝내 나를 살리는 방향이 된다는 것,
광풍은 길을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짜 길을 지우고
마지막 길만 남긴다는 것이다.
파도가 닻을 키웠다
이동아
광풍은
예고 없이 입 벌린다
갑판 위로
물결이 벽처럼 쏟아지고
암초에
몸이 찢기는 밤사람은
가장 작아지는 법 배운다
두려움은
눈꺼풀 안쪽에서 자라고
해진 절망 걸친 채 몸 세운다
떨리는 숨 하나로
심연의 가장자리에 발을 놓는다
그때—
물결 위를 밟아 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사나운 바람이 목청 거두고
가라앉던 가슴 한복판에
차갑고 단단한 것 하나 박힌다
상처들은 흩어지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방향 안다
부서진 것들이 나를 묶어
포구 쪽으로 끌고 간다
.......................
난파일지
오늘도 파도는 제 일을 다했다
부서진 갑판 위에서
나는 오래 방향 잃었다고 생각했다
닻이 나를 만들고 있었는데
....................................................
발자국의 문법
물결은 늘 먼저 왔다
암초에 몸이 찢기던 날도
심연의 끝에 발을 세우던 밤도
나는 가라앉는다 생각했다
포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
긴공감(핵심반전)
이 시의 무게중심은 마지막 두 행에 있다.
시 전체가 '나'의 난파를 따라가다가,
결말에서 주어가 바뀐다.
난파가 닻을 키웠다는 것—
그것을 파도가 지나간 뒤에야 안다는 반전.
「그때—」는 침묵의 축이다.
그 앞은 무너짐이고, 그 뒤는 전환이다.
낭송할 때 이 한 행에서 가장 긴 숨을 쉰다.
설명하지 않고 존재가 이동하는 자리.
「상처들은 흩어지지 않는다 / 다만 이제는 방향을 안다」
— 상처가 사라지는 것이 은혜가 아니다.
나침반이 되는 것이 은혜다.
평생 목회가 설명이 아닌 체험으로 터지는 지점.
어미를 「—는다」로 통일함으로써
시는 고백이 아니라 선언이 된다.
과거의 간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진실로 읽힌다.
...............................
심연 위의 발자국
이동아
무너짐의 끝에서
방향은 발자국으로 온다
광풍의 입이
예고 없이 벌어지고
부서진 갑판 위로
물결이 벽 넘어설 때
암초에 찢긴 몸 하나
난파처럼 떠 있다
두려움의 파고가
눈을 덮어올 때
해진 절망 걸친 채
겨우 몸 세우고
떨리는 숨 하나로
심연의 가장자리에 선다
그때
풍랑의 보폭 딛고
가까워지는 한 걸음
사나운 바람의 목청이
문득 꺼지고
가라앉던 가슴 깊이에
차갑게 박히는
하나의 닻
모진 물결이 남긴 상처들이
흩어지지 않고
이제는 방향이 되어
부서진 나를
조용히 묶어
포구 쪽으로
끌어간다
심연 위의 발자국
발자국은
길 위에 남지 않는다
가라앉는 가슴에
닻처럼 박혀
방향이 된다
심연 위의 발자국
이동아
광풍의 아가리가
예고 없이 벌어질 때
부서진 갑판 위로
물결이 벽 넘고
암초에 찢긴 몸 하나
난파처럼 떠 있다
두려움의 파고가 눈 덮어올 때
해진 절망 걸친 채 몸 세우고
떨리는 숨 하나로
심연에 서 있다
그때 풍랑의 보폭 딛고
다가오는 발자국
사나운 바람의 목청이
한순간 꺼지고
가라앉던 가슴 깊이에
차갑게 박히는 닻
모진 물결이
남긴 흔적들 비로소
임의 방향이 되어 흩어진 나를
포구 쪽으로 끌어간다
........................................
심연 위의 발자국
광풍의 입 벌어져 난파로 떠밀릴 때
심연 위 떨린 숨 하나 겨우 서 있거늘
발자국 닻이 되어 나를 포구로 이끈다
.........................................
닻을 내리는 숨결
이동아
예고 없는 광풍의 아가리
부서진 갑판 위
물결은 흉벽 넘고
암초에 찢긴 몸은
표류하는 난파선
두려움의 파고가
시야 가릴 때
해진 누더기 같은
절망 걸치고
오직 떨리는 숨결로
심연 위에 서 있다
그때 풍랑의
보폭 딛고 오는 발자국
사나운 바람의 목청
단숨에 잠재우며
침몰하던 가슴에
서늘한 평화의 닻 내린다
모진 풍랑이 새긴 궤적들이
비로소 임의
거대한 지도가 되어
물결 너머
안전한 포구로 인양하는 시방
난파(難破)
이동아
예고 없이 불어 닥친
광풍의 아가리 속으로
생의 갑판은 부서지고
물결은 흉벽 덮치나니
암초에 걸려 찢긴 몸은
어느새 표류하는 난파선이다
높게 설레는
두려움의 파고가
시야 가릴 때
절망이라는
해진 누더기 걸친 채
오직 떨리는 숨결 하나로
심연 위에 서 있다
그때, 그분은
풍랑의 보폭 딛고 걸어와
사나운 파도와 바람의 목청
단숨에 잠재우고
내 침몰하던 가슴에
서늘한 평화의 닻 내린다
인연처럼 밀려오던
모진 풍랑의 궤적들이
비로소 당신이라는
거대한 지도가 되어
나를 쉼 없는 물결 너머,
안전한 포구로 인양하는 시방(時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