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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 노인과 바다 1/3
그는 멕시코 만에서 조각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대부분은 혼자 배를 타고 나가곤 했는데,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낸 지 벌써 84일째였다.
처음 40일간은 어떤 소년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한 채 40일이 지나자 소년의 부모가 아들에게 이러는 것이었다. 그 노인은 이제 확실히 불운을 만난 것이라고. 그것도 마침내 최악의 불운인 '살라오'가 분명하다고. 그래서 소년은 그날 이후 부모의 명령대로 다른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다. 소년이 타고 나간 배는 첫 주에 제법 큼직한 고기를 세 마리나 낚았었다.
그러나 소년은 내심 노인이 날마다 빈 배로 돌아와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는 게 슬펐다. 그래서 소년은 노인이 돌아올 시간이면 바닷가에 나와 기다렸다
그리고 노인을 도와 사린 낚싯줄이며 갈고리며 작살과 돛대에 감긴 돛을 나르곤 했다.
돛은 밀가루 푸대로 군데군데 기워져 있었는데, 그것을 둘둘 말면 마치 영원한 패배자의 깃대같이 보였다.
노인의 목덜미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고, 볼은 형편없이 야위었으며, 전체적인 몰골이 너무나 초췌했다. 그 야윈 볼에는 열대지방 특유의 태양과 바다가 만들어 준, 양성 피부암의 흔적인 갈색 반점이 있었다. 그 반점은 얼굴 양쪽으로 해서 아래까지 쭉 번져 있었다.
손에는 큰 고기를 잡을 때 밧줄의 힘을 견디어 내느라 생긴 깊은 상처가 훈장처럼 박혀 있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최근에 새로 생긴 것은 아니었다. 고기 없는 사막의 썩어 문드러진 흔적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생겨난 상처들이었다.
노인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다 낡고 늙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만은 바다처럼 항상 젊고 명랑한 듯 했으며, 패배를 몰랐다.
"산티아고 할아버지."
조각배를 끌어 올려놓은 뒤 두 사람은 둑으로 같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 소년이 노인에게 말했다.
"실은 할아버지 하고 다시 배를 탔으면 해요. 그동안 우린 돈을 좀 벌었으니까."
노인은 소년에게 전부터 고기잡이를 가르쳐 왔었고, 그래서 소년은 노인을 무척 좋아했다.
"아니야."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넌 이제 재수있는 배를 탔으니까 그냥 거기 남아 있어."
"하지만 할아버지는 84일동안 고기 한 마리 못 잡았는데 우린 3주 동안 매일같이 큰 놈을 잡은 걸 기억하시죠?"
"그럼, 알고 있지."
노인은 조용하게 대답했다.
"네가 내 실력을 의심해서 내 곁을 떠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
"아버지 때문에 떠났던 거예요. 난 아직 어리니까 아버지 말을 들어야 했구요."
"그래, 알아."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암, 물론 그래야지."
"우리 아버지는 신념이 별로 깊지 못해요."
"그래?"
노인이 소년을 돌아보며 눈을 꿈쩍했다.
"하지만 우리는 신념이 있어. 안 그래?"
"네, 그래요."
소년은 잠시도 쉬지 않고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테라스에서 맥주를 한 잔 대접하고 싶어요. 그러고 나서 저 어구들을 집으로 나르지요."
"좋지."
노인이 즐거운 투로 말했다.
"우린 어부인데 뭐."
그들은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노인을 보자 주변에 있던 어부들이 노인을 놀렸지만 그는 절대 화를 내지 않았다. 다른 나이든 축들은 그 노인을 바라보며 괜스레 마음 언짢아했다. 그러나 그들은 섣불리 굴지는 않았다. 단지 조류라든지 낚싯줄을 드리웠던 당시의 바다 깊이라든지, 최근의 좋은 날씨에 대해, 아니면 그들이 고기잡이 나갔다가 본 것들에 대해 점잖게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그날 재미를 본 축들은 이미 그들이 잡은 마알린(돛새치)에 가차없이 칼질을 한 뒤 두 개의 널빤지에 기다랗게 눕히고 있었다.
그리고 매우 무거운 듯 그 판자를 한쪽에 두 사람씩 매달려 비틀거리면서 어류 저장고로 운반해 갔다.
그곳에서 아바나 시장으로 운반해 갈 냉동 화물차를 기다리는 것이다. 상어 공장으로 그것을 가져 가는데, 그곳에서는 도르래와 밧줄로 상어를 달아 올린 뒤 우선 간을 빼내고, 지느러미를 자르고, 껍질을 벗지고, 살을 소금에 절이기 위해 토막을 쳐대는 등 갑자기 바빠지는 것이다.
바람이 동쪽에서 불어올 때면 상어 공장에서 항구 건너 쪽까지 그 냄새가 풍겨 왔다. 그러나 오늘은 바람이 북쪽으로 불다가 그나마 그치고 말았기 때문에 냄새도 풍기는 듯 마는 듯 했다. 마침 테라스에는 햇볕이 잘 들었고 기분도 좋았다.
"산티아고 할아버지."
소년이 노인을 불렀다.
"응."
노인이 대답했다. 그는 맥주잔을 든 채 옛날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가서 내일 쓸 정어리를 좀 구해 올까요?"
"아니야, 넌 가서 야구나 하렴. 아직은 나 혼자서도 노를 저을 수 있고 로헬리오가 어망을 던질 테니까."
"하지만 전 지금 나갔다 왔으면 좋겠는데요. 할아버지 하고 같이 고기잡이를 할 수 없으니까 아무 거나 다른 일이라도 도와드리고 싶은걸요."
"벌써 맥주를 샀잖아. 그걸로 됐어."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도 이젠 어른이야."
"할아버지가 저를 처음 배에 태워 주셨을 때 제가 몇 살이었었지요?"
"아마 다섯 살이었지. 내가 그때 꽤 힘이 센 놈을 하나 잡아 올렸는데, 아 그놈이 배를 산산조각 낼 뻔했지. 너도 하마터면 죽을 뻔 했었어. 생각나니?"
"지금 기억나는 건 그놈이 꼬리를 철썩거리고 쿵쾅거리는 통에 가로대가 부러지고, 할아버지가 몽둥이로 그놈을 후려 갈기던 소리예요. 할아버지가 그때 저를 젖은 낚싯줄 사리가 있는 뱃머리로 던져 버리던 거며, 배 전체가 흔들리듯 요동치던 일, 그리고 마치 큰 나무를 찍어 넘기듯 몽둥이로 그놈을 내려치던 소리가 났었고, 이윽고 내 몸에서 들큰한 피비린내가 나던 것도 기억해요."
"정말 그때 일을 다 기억하고 있는 거냐, 아니면 나중에 내가 이야기해 준 거냐?"
"우리가 함께 배를 타고 나갔던 이후의 일은 무엇이나 다 기억하고 있는 걸요."
노인은 햇볕에 그을린 얼굴을 들더니 자신만만하고 자애로운 눈으로 물끄러미 소년을 바라 보았다.
"네가 내 아들이라면 너를 데리고 나가서 한번 모험이라도 해 보겠는데...."
노인의 표정이 약간 쓸쓸하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너는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임이 분명하고, 또 너는 지금 재수있는 배를 타고 있으니 어림없겠지..."
"정어리를 구해 올까요? 미끼도 네 개쯤은 구해 올 수 있어요."
"내 것은 오늘치도 아직 많이 남았다. 궤짝에 소금으로 절여 뒀어."
"싱싱한 걸로 네 개만 가져 올게요."
"그렇다면 하나만 가져 오너라."
노인은 말했다. 노인은 언제고 희망과 자신을 버린 적이 없었다.
이제 미풍이 일자, 희망감과 함께 더욱 자신이 넘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둘만."
소년이 자꾸 고집을 부렸다.
"그래, 둘만."
마침내 노인도 빙긋이 웃으며 동의했다.
"설마 훔치지는 않았겠지?"
"훔칠 수도 있었겠지만요, 그러나..."
소년은 자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건 산 거예요"
"고맙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노인은 워낙 단순해서 언제 자기가 겸손한 적이라도 있었던가 생각해 볼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겸손하다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진정한 자부심에 손상을 주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류가 이대로만 유지 된다면 내일은 재수가 있겠다."
노인이 자위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내일은 어느 쪽으로 가시려고요?"
소년이 물었다.
"바람이 바뀌면 돌아올 수 있을 만큼만 멀리 나갈까 한다. 그리고 날이 밝기 전에 나갔으면 좋겠다."
"저도 주인을 졸라서라도 멀리 나가도록 하겠어요."
소년이 다짐하는 투로 말했다.
"할아버지가 만일 진짜 큰 놈이라도 잡게 되면 우리가 달려가서 할아버지를 도와 줄 수 있도록 말예요."
"너의 주인은 아마 너무 멀리 나가는 건 싫어할 걸."
"그래요. 할아버지 말이 맞아요."
소년이 체념하듯 말했다.
"그래도 새가 날아가는 것 같은, 이를 테면 주인이 못 보는 것을 부러 찾아내어 돌고래를 쫓아서 멀리 나가도록 해보겠어요."
"그 사람 눈이 그렇게 나쁜가?"
"거의 장님이니까요."
"그래? 그것 참 이상하구나."
노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사람은 한번도 거북잡이를 간 적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거북잡이가 눈을 상하게 하거든."
"하지만 할아버지는 몇 해 동안이나 모스킷토 해안으로 거북이를 잡으러 나갔잖아요. 그런데도 할아버진 아직 눈이 좋잖아요?"
"나야 원래 좀 특이한 늙은이니까."
"참 할아버지, 정말 큰 고기를 이겨 낼 만큼 지금도 힘이 남아 있어요?"
"아마 그럴 거야. 그리고 난 여러 가지 요령도 알고 있으니까."
"어구를 집으로 나르지요."
소년이 말했다.
"그래야 투망을 가지고 정어리를 잡으러 가지요."
노인과 소년은 배에서 고기잡는 도구를 집어 들었다. 노인은 어깨에 돛대를 메었고, 소년은 단단히 꼰 낚싯줄이 들어 있는 나무 궤짝이며, 갈고릿대와 창이 달린 작살 등을 날랐다. 미끼가 들어있던 통은 배의 고물 아래쪽에 몽둥이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몽둥이는 큰 고기를 뱃전으로 끌어 올렸을 때 날뛰는 고기의 힘을 빼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다. 물론 누구도 노인의 물건을 훔쳐갈 리야 없지만, 돛이랑 굵은 밧줄은 이슬을 맞으면 좋지 않으니까 집으로 가지고 가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그 지방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노인의 물건을 훔쳐 가지는 않는다고 믿고 있었지만 갈고릿대나 작살을 배에 놔두는 것은 쓸데없이 남을 유혹에 빠뜨릴 수도 있을 거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들은 노인이 사는 판잣집으로 올라가서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우선 돛대를 벽에 기대어 놓았고, 소년은 궤짝과 다른 도구들을 그 옆에 놓아 두었다.
돛대의 길이는 그 판잣집의 단칸방 길이만큼이나 길었다.
판잣집은 '구아노'라고 하는 종려나무의 탄탄한 껍질로 만든 것이었는데, 방에는 침대 하나와 테이블 하나, 의자 하나가 덜렁 놓여 있었다.
그리고 땅바닥에는 숯으로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구아노 잎을 겹쳐서 편편하게 만든 갈색 벽에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 사진들은 여러 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는데, 이것들은 아내의 유물이었다.
전에는 아내의 사진도 벽에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까닭없이 쓸쓸해져서 그것만은 구석 선반위에 있는 깨끗한 셔츠 밑에다 넣어 두었다.
"뭐 좀 드실 거라도 있어요?"
소년이 물었다.
"누런 쌀밥 한 냄비와 생선이 있지. 참, 너도 좀 먹을래?"
"아녜요. 전 집에 가서 먹겠어요. 불 좀 피워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내가 나중에 피우지. 그냥 찬 것으로 먹어도 되니까."
"저 투망은 가져가도 돼요?"
"좋고말고."
그러나 노인에게는 투망이 없었다.
소년은 노인이 그것을 언제 팔아 버렸는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날마다 이런 꾸민 얘기들을 주고 받고는 했다.
물론 누런 쌀밥도 생선도 없었다. 소년은 그것도 알고 있었다.
"여든 다섯이란 꽤 재수 있는 숫자야."
노인이 소년을 보며 말했다.
"내가 내장을 빼고도 천 파운드가 넘는 놈을 잡아 오는 것을 봤으면 좋겠지?"
"전 투망으로 정어리나 잡으러 가겠어요. 할아버지는 문가 쪽에 앉아 계시겠어요? 햇볕이 따뜻한데."
"그래 어제 신문이 하나 있으니까 야구 기사나 읽어야겠다."
하지만 소년은 어제 신문이 있다는 것도 거짓으로 꾸며낸 얘기인지, 아닌지 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노인은 침대 아래에서 정말로 신문을 꺼내 오는 것이었다.
"반찬 가게에서 페리코가 이 신문을 주더구나."
노인이 소년의 표정을 살피며 설명했다.
"정어리를 잡으면 바로 돌아올게요. 할아버지 것하고 내 것하고 같이 얼음에 채워 놓은 다음 아침에 나누어 가져요. 대신 내가 돌아 오거든 야구 얘기 좀 들려 주세요."
"물론 양키즈 팀이 질 리가 없지."
"그래도 클리블랜드의 인디언즈 팀이 걱정되는데요."
"얘야, 양키즈 팀을 믿어라. 위대한 디마지오를 생각하란 말이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의 타이거즈 팀과 클리블랜드의 인디언즈 팀 둘 다 모두 겁나는데요."
"그러다가는 신시네티의 레스 팀이나 시카고의 화이트 삭스 팀까지 겁내겠는걸."
"어쨌든 할아버지가 잘 보시고 돌아 오거든 얘기해 주세요."
"그렇지! 끝수가 85로 된 복권을 한 장 사는게 어떻겠니? 내일이 바로 여든 다섯 번째 날이거든."
"그렇게 하세요."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위대한 기록인 85를 네가 찾아 낼 수 있겠니?"
"바로 그걸로 한 장 주문하지요, 뭐."
"그래, 한 장만. 2불 50전이야. 그런데 돈은 누구한테서 꾸지?"
"그건 쉬워요. 2불 50전쯤은 언제든지 꿀 수 있어요."
"아마, 나도 마음만 먹으면 꿀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내가 꾸려고 하질 않는게 문제지. 왜냐하면 처음엔 꾸어 오지만 다음엔 구걸하게 되니까."
"할아버지, 우선 몸을 따뜻하게 하세요."
소년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지금은 9월이란 것을 생각하셔야죠."
"9월은 큰 고기가 오는 때지."
노인이 말했다.
"5월에는 누구든지 어부가 될 수 있단다."
"전 정어리 구하러 가겠어요."
소년이 말했다.
그리고 한참후 소년이 돌아왔을 때 노인은 의자에 앉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이미 해도 진 후였다.
소년은 침대에 있던 낡은 군용 담요를 벗겨서 의자 뒤로 가 노인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늙었지만 아직도 힘찬, 이상한 힘이 넘치는 두 어깨였다. 목도 아직 튼튼했으며, 노인이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오늘따라 주름살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노인의 셔츠는 하도 여러번 기워서 그의 돛처럼 패잔병의 해어진 전투복 같았고 기운 조각이 햇볕에 바래 각각 여러 가지 색깔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노인의 머리는 숨길 수 없는 백발이었으며, 눈을 감고 있으니까 산 사람 같지가 않았다.
신문이 무릎에 펼쳐진 채 놓여 있었지만, 그 무게 때문에 저녁 미풍에도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발은 맨발이었다.
소년이 노인을 그대로 두고 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도 노인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할아버지,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하고 소년이 말하면서 노인의 한쪽 무릎 위에 손을 올려 놓았다.
그러나 노인은 눈을 뜨고도 먼 꿈나라에서 현실로 되돌아 오느라고 한참이나 걸렸다. 이윽고 노인이 웃음을 띠었다.
"그게 뭐지?"
"저녁밥이에요."
소년이 말했다.
"저녁은 잡수셔야지요."
"하지만 난 그리 배가 고프지 않다."
"그래도 드세요. 밥을 먹지 않으면 고기도 못 잡아요."
"전엔 잡았었는데."
노인은 신문을 접으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담요를 개려고 했다.
"담요는 그냥 두르고 계세요."
소년이 말렸다.
"제가 곁에 있는 한, 밥을 먹지 않고는 고기잡이도 못하시게 할 거예요."
"그럼, 오래 살고 몸조심해야지."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뭘 먹을 거냐?"
"검정콩과 쌀밥, 바나나 후이한 것과 스튜예요."
소년은 테라스에서 가져온 음식들을 2중으로 된 양재기에 담아 왔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종이로 싼 나이프와 포크, 스푼 따위 등을 꺼냈다.
"이걸 누가 주든?"
"마틴이오, 우리 주인 말예요."
"그 사람한테 고맙다고 해야겠구나."
"제가 벌써 그 말을 한 걸요."
소년이 말했다.
"할아버지까지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이번에 큰 고기를 잡으면 그 사람한테 뱃살이라도 주어야겠다."
노인이 말했다.
"이번 말고도 여러 번 음식을 주곤 했었니?"
"네, 그래요."
"그렇다면 뱃살 이상의 것을 줘야겠구나. 그 사람, 우리한테 퍽 친절하구나."
"맥주도 두 개나 줬어요."
"나는 깡통 맥주가 제일 좋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오늘 건 병맥주예요. 햇티 맥주요."
"고맙다."
노인의 목소리가 잦아 들었다.
"자, 그럼 먹어 볼까?"
"그래서 아까부터 들자고 했잖아요."
소년이 다정한 말투로 노인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뚜껑을 열고 싶지가 않았어요."
"이젠 준비됐다."
노인이 말했다.
"난 그저 손 씻을 시간이 필요했던 것 뿐이야."
하지만 손을 어디서 씻었지? 소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말 뜻을 생각했다.
마을의 물긷는 곳까지 갔다 오려면 큰 거리를 둘씩이나 거쳐 내려가야 했다.
맞아.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할아버지를 위하여 물을 길어 와야 하는 건데. 그리고 비누랑 깨끗한 타월도 가져오고. 난 어째 이렇게 생각이 모자랄까? 다음엔 겨울에 입을 셔츠와 자켓과 신발과 담요도 한장 더 갖다 드려야겠다. 소년은 계속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스튜가 아주 맛있구나."
노인이 말했다.
"야구 얘기나 해주세요."
소년은 마치 자기 생각을 들키기라도 한 듯 짐짓 노인을 졸랐다.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역시 내가 말한 대로 양키즈 팀이야."
노인은 유쾌하게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졌는걸요."
소년이 노인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위대한 디마지오가 다시 활약할 거니까."
"그 팀에는 다른 선수들도 있는걸요."
"물론이지, 그렇지만 디마지오가 나타나면 달라지지. 브룩클린과 필라델피아 사이의 다른 리그라면 나는 단연 브룩클린 쪽이야. 그러나 딕 시슬러의 그때 모습이며 낯익은 야구장에서 멋있게 직구를 던지던 일들이 생각난다."
"정말 그런 멋진 강타는 없었어요. 내가 본 것 중에서 제일 길게 쳤을 거예요."
"그게 테라스에 모습을 나타냈던 때의 일을 기억하니? 나는 그를 고기잡이에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너무 소심해서 말도 못 꺼냈어. 그래 널 보고 말해 보라고 했지만 너도 차마 말을 못했지."
"알고 있어요. 그땐 참 바보 같았어요. 만약 말을 했으면 우리하고 함께 갔을지도 모를 텐데. 그랬다면 우린 평생 자랑거리가 하나 생겼을 텐데 말예요."
"나는 지금도 그 위대한 디마지오를 고기잡이에 한번 데리고 나갔으면 좋겠어."
하고 노인이 말했다.
"그의 아버지도 어부였다고들 말하던데, 아마 디마지오도 한때는 우리처럼 가난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를 이해할 거야."
"위대한 시슬러의 아버지도 가난했던 적이 있었잖아요. 그리고 내 나이 때는 대리그에서 뛰었었죠."
"내가 네 나이 때는 횡범을 타고 아프리카로 다니는 배를 탔었는데.... 저녁 때는 해안까지 나와서 어슬렁거리는 사자들을 봤어."
"알아요, 전에도 얘기하셨어요."
"그래? 그럼 아프리카 얘기를 할까, 야구 얘기를 계속할까?"
"야구 얘기요."
소년이 재빨리 말했다.
"위대한 존 제이(J) 맥글로우에 대해 얘기를 해주세요."
소년은 제이(J)를 호타라고 했다.
"예전엔 그도 이따금 이 테라스에 나타나곤 했었지. 그렇지만 성질이 사납고 말투가 거칠어서 한번 술에 취하면 다루기가 힘들었어. 그는 야구 이외에도 경마에 관심이 많았었지. 늘 호주머니 속에 말 일람표가 들어 있었고, 전화를 할때조차 말 이름을 댔거든."
"그는 훌륭한 매니저였어요. 우리 아버지는 그가 최고래요."
소년이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그가 주로 여기에 나타났었으니까 그렇지."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만일 듀로처가 매년 잊지 않고 이곳에 나타났었다면 네 아버지는 듀로처가 제일 훌륭한 매니저라고 말했을 게다."
"그럼 진짜 누가 제일 훌륭한 매니저예요? 류크예요? 아니면 마이크 곤잘레요?"
"아마 둘 다 비슷비슷하겠지."
"그리고 가장 훌륭한 어부는 바로 할아버지예요."
"아니야, 나보다 더 훌륭한 어부들도 있는 걸."
"천만에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그중에는 괜찮은 어부들이나 훌륭한 어부들도 더러 있겠죠. 하지만 역시 할아버지가 최고라는 건 사실이에요."
"고맙다. 네 말을 들으니 무척 기쁘구나. 너무 큰 고기가 나타나서 지금 우리가 한 말이 잘못이라는 걸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아직 튼튼하시다면 그런 고기란 세상에 없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그렇게 튼튼하지 않을지도 몰라."
하고 노인은 말했다.
"그래도 난 여러 가지 비결을 알고 있고 각오도 단단히 되어 있어."
"아침에 새로운 힘이 솟아날 수 있게 이제 잠자리에 드세요. 나는 이 그릇을 테라스에 갖다 두겠어요."
"그럼 잘 자라. 아침에 내가 깨우마."
"할아버지는 날 깨워주는 시계라니까."
"그리고 나이는 내 시계이고."
노인이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늙은이는 왜 그렇게 일찍 잠이 깨는지 몰라. 영원히 잠들 시간이 가까웠으니까 하루를 좀 더 길게 보내라는 걸까?"
"그건 잘 모르겠군요."
하고 소년이 대답했다.
"반대로 젊은 애들은 늦게까지 곤히 잔다는 것밖엔 모르겠어요."
"그건 나도 기억할 수 있어."
노인이 다시 다짐하듯 말했다.
"제 시간에 깨우마."
"난 우리 주인이 날 깨우는게 싫어요. 왜냐하면 그럴 때마다 내가 그 사람만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 알겠다."
"그럼 편히 주무세요, 할아버지."
소년은 나갔다.
그들은 그때까지 불도 켜지 않고 식탁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노인은 어둠속에서 바지를 벗고 잠자리에 들었다. 노인은 바지를 둘둘 말아서 그 속에 신문을 넣어 베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담요로 몸을 감은 뒤 요 대신 침대 스프링을 덮어 놓은 다른 헌 신문지 위에서 잤다.
노인은 잠이 들자 곧 어렸을 적에 보았던 아프리카의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길게 휘어진 금빛 해안과 너무 희어서 눈이 아플 정도였던 백색 해변과 높은 갑과 거대한 갈색 산들을 보았다.
노인은 요즈음 잠만 들면 날마다 그 해안에서 살다시피했고, 꿈속에서 부딪치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거친 파도를 헤치고 원주민의 배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면서도 갑판의 타르 냄새와 뱃밥 냄새를 맡았고, 아침이면 뭍에서 불어오는 미풍 속에서 아프리카의 냄새를 맡곤 했다.
노인은 뭍의 미풍 냄새를 맡게 될 때쯤 습관적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옷을 입고 소년을 깨우러 가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 미풍 냄새를 너무 일찍 맡은 것 같았다. 꿈을 꾸면서도 너무 이른 시각이라는 것을 느낀 노인은 다시 꿈속으로 돌아가 바다에서 솟아 오르는 섬의 흰 봉우리를 보았고, 다음에는 카나리아국도의 여러 항구며, 정박장에 대한 꿈을 꾸었다.
노인은 이제 더 이상 폭풍우나 여자, 큰 사건이나 큰 고기, 싸움, 힘겨룸과 아내에 대한 꿈같은 것은 꾸지 않았다. 다만 그 동안 돌아다녔던 여러 장소며 해안의 사자 꿈을 꿀 뿐이었다. 사자는 마치 고양이 새끼처럼 황혼에서 뛰놀았고, 노인은 소년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 사자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노인은 소년의 꿈을 꾼 적은 없었다. 노인은 곧 잠에서 깨어 열린 문으로 달을 쳐다보며, 주섬주섬 바지를 입었다. 베개를 대신 해주던 그 바지였다. 판잣집 바깥에서 오줌을 누고 소년을 깨우러 올라갔다. 그는 아침 냉기가 대단하다고 느끼며 몸을 오싹 떨었다. 그러나 잠시 떨고 나면 곧 몸이 따뜻해지고 또 힘차게 노를 젖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소년이 사는 집 문은 늘 잠겨 있지 않은 채였다. 노인은 문을 열고 맨발로 가만히 걸어 들어갔다. 소년은 첫 번째 방 침대에서 자고 있었는데 희미해져 가는 달빛을 받아 그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노인은 가만히 소년의 한발을 잡고 소년이 눈을 뜰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이윽고 소년이 눈을 떴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은 옆의 의자에서 바지를 가져다가 침대에 앉은 채로 옷을 입었다.
노인이 문 밖으로 나가자 소년도 따라 나섰다. 소년은 아직도 졸린 모양이었다. 노인은 자기 팔을 소년의 어깨에다 두르면서 말했다.
"너무 일찍 깨운 모양인데, 미안하다."
"천만에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어른이 되면 그것도 해야 할 하나의 일인 걸요."
그들은 노인이 살고 있는 판잣집까지 걸어 내려갔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길가에서 맨발 벗은 사람들이 자기네 배의 돛대를 나르느라 부산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노인이 사는 판잣집에 이르자, 소년도 갑자기 바빠졌다. 소년은 광주리에 담긴 낚싯줄 고리와 갈고릿대와 작살을 들었고, 노인은 돛을 감은 돛대를 어깨에 메고 배로 날랐다.
"커피 드시겠어요?"
소년이 물었다.
"이 도구들을 배에 갖다 두고 와서 들자."
그곳에는 이른 새벽마다 어부들에게 음식을 파는 곳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연유통으로 커피를 마셨다.
"할아버지, 어젯밤에 잘 주무셨어요?"
소년이 물었다. 소년은 그때까지도 말끔하게 잠에서 깨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졸음이 가시는 중이었다.
"응, 잘 잤다. 마놀린."
노인이 말했다.
"어쩐지 오늘은 자신이 생기는데."
"저도 그래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자, 이젠 우리 정어리하고 할아버지가 쓸 싱싱한 미끼를 가져올게요. 우리 주인은 어구를 직접 가지고 오거든요. 남이 자기 도구를 나르는 걸 싫어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달라."
하고 노인이 말했다.
"나는 네가 다섯 살 때부터 도구를 나르게 했었지 않니."
"알아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곧 돌아올게요. 커피나 한 잔 더 드세요. 여기서는 외상으로 해도 돼요."
소년은 맨발이었다. 그는 산호석 위를 겅중겅중 뛰며 미끼가 저장되어 있는 얼음집으로 걸어갔다.
노인은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그것이 하루 동안 자기가 먹을 식량의 전부이기 때문에 끝까지 먹어 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인은 먹는 것이 싫어진지 오래된다. 그래서 점심을 가지고 나가지 않는 것이 편했다. 뱃머리에 물 한 통만 달랑 달고 나가는데 그것만 있으면 온종일 견딜 수 있었다.
소년이 신문에 싼 정어리와 미끼 두 개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은 미끼를 들고 자갈섞인 모래의 감촉을 느끼면서 배가 있는 데까지 오솔길을 따라 내려갔다. 노인과 소년은 말없이 배를 들어 물에 띄웠다.
"할아버지, 행운을 빌어요."
"너도 행운을 빈다."
노인도 답례를 했다. 그는 노를 묶어둔 밧줄을 노꽂이에다 비끌어 매고 노깃을 물에다 밀어 넣으며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그리고 천천히 어둠을 헤치며 항구 밖으로 노를 저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쯤 벌써 다른 배들도 바다로 나가고 있었다. 달이 산 너머로 넘어간 시각이어서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그들이 노를 물에 담그고 물을 밀어내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간혹 배에서 말을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나 대개의 고깃배에서는 노를 저어 나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전달되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배들은 항구 밖으로 나가면 뿔뿔이 흩어져서 각기 고기가 있음직한 곳을 향해 뱃머리를 돌리는 것이다. 노인은 오늘 하루는 멀리 나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항구의 물 냄새를 뒤로 하고 넓은 대양의 맑은 냄새를 쫓아 노를 저어 나아갔다. 어부들이 큰 샘이라고 부르는 곳까지 왔을 때 노인은 물속에서 해초의 인광을 보았다. 큰 샘이라는 이곳은 별안간 물 깊이가 7백 길로 떨어지는 지점인데, 해륙가 바다 밑바닥의 가파른 장벽에 부딪쳐서 소용돌이를 이루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고기가 모여 드는 곳이다.
대부분은 새우와 미끼 고기가 수없이 많았으며, 가끔은 아주 깊숙한 굴 속에 오징어 떼들이 몰려 있기도 했다. 이것들은 밤이면 수면 가까이로 올라 오기도 했는데, 수면 위로 떠 다니는 고기들에게 잡아 먹히기도 했다.
노인은 어둠 속에서도 아침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노를 저어감에 따라 날치가 물을 차고 올라올 때의 물의 진동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놈이 어둠속에서 공중을 날 때 빳빳하게 세운 날개가 공기를 가르는 '쉿'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날치를 대단히 좋아했는데, 바다에서는 노인의 제일 친한 친구였다. 그는 새들을 가엾게 여기는 사람 중 하나였다. 특히 작고 가냘픈 검정색 제비갈매기는 언제나 물 위를 날며 먹이를 찾고 있었지만 거의 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불쌍했다. 노인은 생각했다. 파리매라든지 크고 힘센 새들이 아니라면, 새들은 우리 인간보다 더 살기가 어렵겠구나 라고.
바다는 종종 저다지도 잔인한 때가 있는데, 어쩌자고 신은 바다제비 같은 저런 약하고 섬세한 새를 만들었을까? 바다는 대부분 친절하고 대단히 아름답지만 갑자기 잔인하게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냘프고 구슬픈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먹이를 찾아 떠도는 새들은 이 심술궂은 바다에서 살기에 너무나 연약한 존재였던 것이다.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라 마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붙인 이름이다. 간혹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나쁜 말을 할 때가 있지만, 그 말도 결국 바다를 여자로 생각하고 하는 말이다. 간혹 젊은 어부들 가운데서는 낚싯줄을 뜨게 하려고 찌를 사용했다든지, 아니면 상어의 간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모터보트를 사게 되었을 경우 바다를 남성으로 생각해서 '엘 마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들은 바다를 경쟁자나 경쟁 장소라고 생각하는 듯했고, 심지어는 적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고 큰 은혜를 베풀거나 간직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가끔 바다가 사나워지고 나쁜 일을 할 때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라고만 여겼다. 달이 여인에게 영향을 미치듯 바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노인은 쉬지 않고 노를 저었다. 배는 적당한 속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따금 해류가 소용돌이 치는 것 외에는 너무나 잔잔해서 노젓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조류의 덕택으로 3분의 1의 노력을 덜 수 있었다. 이윽고 동이 트기 시작했을 때는 처음의 목적지보다 훨씬 멀리 나가 있는 것을 깨달았다.
노인은 생각했다. 나는 일주일 동안이나 깊은 곳에서 낚시질을 했지만, 매일 허탕이었다. 오늘은 칼고등어와 다랑어 떼가 모이는 곳에서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큼직한 놈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날이 완전히 밝아지기 전에 노인은 미끼를 꺼내려고 노를 놓았다. 이제 배는 조류에 맡길 심산이었다. 우선 미끼 하나를 40길 아래로 던졌다. 두 번째 것은 75길 아래로, 세 번째 것과 네 번째 것은 각각 100길과 125길 아래의 깊은 물속으로 던졌다. 낚시 바늘의 몸대는 미끼고기 안으로 밀어 넣어 단단히 꿰매고, 구부러지고 뾰족한 부분은 싱싱한 정어리로 쌌기 때문에 미끼는 모두 머리를 아래로 두고 매달려 있었다. 정어리들은 양쪽 눈을 꿰어 달아 놓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돌출된 낚시바늘에 반달 모양의 화환을 씌운 것 같았다. 오늘 낚시의 미끼들은 훌륭했다. 미끼의 구수한 냄새가 고기들의 입맛을 돋울 만했다.
소년이 노인에게 싱싱한 다랑어 새끼 두 마리를 주었는데, 그것은 제일 깊이 던진 줄에 매달려 있었다. 다른 줄에는 한번 썼었던 푸른 정어리와 누르스름한 빛을 하고 있는 연어 수놈을 매달았다. 아직은 물이 좋았고 정어리 냄새도 썩 좋은 걸 보니 전에 쓰던 미끼라도 괜찮았다. 연필만큼 굵은 낚싯줄에는 하나같이 초록색 막대기가 묶여 있어서 고기가 미끼를 조금 잡아 당기거나 닿기만 해도 막대기가 물 속에 잠기도록 되어 있었다. 또 낚싯줄에는 40길짜리의 낚싯줄 두 벌이 같이 있어서 재빨리 남은 낚싯줄에 이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필요한 경우에는 고기가 3백 길 이상까지 줄을 끌고 갈 수도 있었다.
이제 노인은 뱃전 너머로 낚싯대 세 개가 물속에 잠기는 것을 지켜 보면서 낚싯줄이 적당한 수심에서 위아래가 팽팽하게 당겨지도록 가만히 노를 저었다. 날이 상당히 훤해졌다. 이제 곧 해가 솟아 오를 것 같았다.
해가 희미하게 떠오르자, 바다 위에 떠 있는 다른 고깃배들이 보였다. 고깃배들은 대부분 멀리 해안 쪽 바다에서 조류를 가로질러 야트막하게 흩어져 있었다. 날이 더욱 밝아지자 갑자기 눈부신 햇빛이 물 위로 쏟아졌다. 잠시 후에 해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고, 잔잔한 수면이 해를 반사시켜 눈이 아팠다. 노인은 물 위에서 시선을 거두며 천천히 노를 저었다. 노인은 가끔 물 속을 내려다보았다. 어두운 물 속 깊이 곧게 내리뻗은 낚싯줄이 보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낚싯줄을 똑바로 드리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물 속 어디서 건, 그곳을 오가는 고기가 바로 미끼를 먹을 수 있도록 원하는 곳에 정확히 미끼가 놓여 있었다. 다른 어부들은 종종 조류에 낚싯줄을 담가 놓기 때문에 1백 길 되는 곳에 낚시를 드리웠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60길 수심에 떠 있는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정확하지. 노인은 생각했다. 단지 난 운이 없을 뿐이야. 그러나 누가 알아?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것이니까 재수가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러나 나는 항상 정확하게 해야 해. 그래야 운이 닿아도 놓치지 않을 테니까.
해가 뜬 후 두 시간이 지나자 이젠 동쪽을 보아도 그다지 눈이 아프지 않았다. 이제 시야에 들어오는 배는 세 척밖에 없었고, 그나마 그 배들도 멀리 해안 쪽에서 야트막하게 보였다.
노인은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난 아마 한평생 바라본 아침해 때문에 눈이 상했을 거야.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아. 저녁때는 해를 똑바로 쳐다 보아도 깜깜해지지는 않으니까. 사실 저녁 햇빛도 강하기는 해. 그러나 이놈의 아침해는 눈이 너무 아프단 말이야.
바로 그때였다. 노인은 군함새 한 마리가 길고 검은 날개를 편 채 머리 위 하늘을 빙빙 돌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새는 날개를 뒤로 뻗은 채 비스듬한 자세로 급히 하강했다가는 다시 하늘로 날아 올랐다.
"뭘 봤구나."
노인은 혼자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그냥 먹이만 찾고 있는 것이 아니야."
노인은 새가 빙빙 돌고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계속해서 노를 저었다. 그는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다시 한번 낚싯줄이 위아래로 팽팽하게 드리워져 있도록 조정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조류를 헤치며 약간 속력을 내었다. 새를 이용하지 않고 고기잡이 할 때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였다. 그래도 정확하게 낚시질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속력을 내었다.
새는 더 높이 날아올라 가더니 날개를 움직이지도 않은 채 다시 그 자리에서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래로 내려왔다. 그때 날치가 물 밖으로 튀어 나오며 필사적으로 수면 위를 날으는 것이 보였다.
"돌고래다."
노인은 짧게 소리쳤다.
"큰 돌고래야."
그는 노를 노받이에 걸고 이물 밑창에서 작은 낚싯줄을 하나 꺼냈다. 그 줄에는 철사로 된 낚시걸이와 보통 크기의 낚시가 달려 있었다. 노인은 거기에다 미끼로 정어리 한 마리를 달았다. 그것을 그물 쪽에 있는 고리 쇠에 단단히 붙들어 맨 뒤 뱃전 너머로 드리웠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른 낚싯줄에도 미끼를 달아서 이물 구석진 곳에 감아 놓았다. 그는 다시 노를 저으며 아까 그 검은 새가 물 위를 얕게 날면서 먹이를 찾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새는 날개를 비스듬히 한 채 잠깐 해면에 내려 앉는 것 같더니 날치를 꽃아서 쓸데없이 마주 활개를 쳤다. 노인은 큰 돌고래가 고기를 쫓을 때 물이 약간 일렁대며 올라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돌고래는 날치가 도망가고 있는 바로 아래 쪽에서 물살을 헤치고 달리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려가다가 날치가 다시 물 속으로 떨어질 때 그 자리에서 잡으려는 것이었다. 노인은 큰 돌고래 떼가 널리 퍼져 있어서 그 날치가 살아날 길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검은 새가 날치를 잡아먹을 가망도 전혀 없음을 알았다. 날치는 새가 잡아 먹기에는 너무 크고 빠르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날치가 자꾸만 튀어오르는 모습과 새의 헛된 동작을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윽고 그는 돌고래 떼가 멀리 가버렸다고 생각했다. 놈들은 너무나 민첩하게 멀리 달아나기 때문에 쉽게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노인은 생각했다. 그래도 아마 혼자 뒤떨어진 놈을 잡아 올릴 수 있을지도 몰라. 혹 그놈을 놓친다 해도 그 근방에 큰 고기가 있을지 몰라. 내 큰 고기가 말야. 그 녀석, 어딘가엔지 반드시 있을 거야.
저 멀리 육지 위로는 구름이 산처럼 피어나고, 해안은 연푸른 산을 배경으로 한 긴 초록빛 선으로 보였다. 물빛은 짙은 청색이었는데 너무 짙어서 아예 자줏빛에 가까웠다. 어두운 물 속을 들여다 보니까 붉은 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플랑크톤이 보였고, 이따금 햇빛의 반사로 생긴 이상한 색채같은 것도 눈에 띄었다. 노인은 낚싯줄이 물 속의 보이지 않는 깊은 곳까지 똑바로 드리워져 있는가를 살펴 보았다. 수많은 플랑크톤이 떠 있다는 것은 바로 가까이에 고기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어서 몹시 기뻤다. 해가 더욱 높이 떠 감에 따라 물 속에 보이는 이상한 빛이라든지 육지 위의 구름 형태로 보아 오늘 날씨는 틀림없이 좋을 것 같았다. 이제 새는 시야 밖으로 사라져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수면 위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햇볕에 바랜 해초와 뱃전 가까이 떠 있는 고깔해파리의 자줏빛 찬란한 아교질로 된 고른 형태의 기포뿐이었다. 그것은 물살에 의해 앞뒤로 뒤집히며 기분좋게 거품을 이루고 있었는데, 뒤로는 1야드 가량의 길이로 무서운 독이 있는 자줏빛 섬유상 세포가 물 속으로 늘어져 있었다.
"이건 '아구아말라'로군."
노인은 혼자 중얼거렸다.
"갈보년 같으니라구."
가만히 노를 저으면서 물 속을 들여다 보니까 길게 늘어진 섬유상 세포 같은 색깔의 조그마한 고기들이 그 사이사이로 헤엄쳐 다니기도 하고, 떠 있는 거품 때문에 드리워진 조그만 그늘 아래에 숨어 있기도 했다. 그 고기들은 이미 해파리의 독에 면역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가 않았다. 노인이 그렇게 오랜 세월 고기잡이를 했는데도 그 독세포가 조금이라도 낚싯줄에 묻어서 끈끈하게 자줏빛으로 남아 있다가 실수로 팔이나 손에 묻으면 옻등나무를 만졌을 때와 같은 자국이나 종기가 생기는 것을 경험했던 것이다. 이 '아구아말라' 독은 금새 온몸으로 퍼져서 마치 채찍으로 맞은 것처럼 부풀어 오르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그 무지개빛 거품조차 아름다웠다. 그것은 바다에서 가장 허망한 존재였고, 노인은 커다란 바다거북이 이것을 먹어 대는 것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거북들은 이것을 보면 주저하지 않고 똑바로 접근해 와서 완전무장을 하듯 아예 눈을 감고는 섬유상 세포들을 죄다 먹어 버리는 것이었다. 노인은 거북의 먹는 모습이 또한 보기 좋았다. 그리고 폭풍이 지난 뒤의 해변을 걸어다닐 때면 곳곳에 널려 있는 해파리들이 단단한 구두창 아래에서 '펑펑' 하고 터지곤 했는데,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노인은 특히 녹색 거북이나 대모 거북이 품위가 있고 빠르며 값이 나가기 때문에 더 좋아했다. 그는 크고 우둔한 왕바다거북을 볼 때마다 일종의 우정을 담은 눈길로 깔보기도 했는데, 그것은 등껍질이 누렇고 교미하는 모습이 매우 특이했다. 그놈들은 눈을 감고 고깔해파리를 즐겨 먹었다.
노인은 몇 해 동안 거북잡이 배를 타기도 했었지만 거북에 대해서 선비한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모든 거북에 대해서 단지 측은하다는 동정심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는 길이가 조각배만하고 무게가 1톤이나 되는 큰 거북을 보아도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거북은 칼질을 해서 잡아 놓은 후에도 몇시간 동안이나 심장이 뛰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북에 대해서 냉혹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노인은 나도 이런 심장을 갖고 있으며, 내 손발도 거북의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노인은 정력제로 거북의 흰 알을 먹었다. 9월과 10월이 되면 보란듯이 큰 고기를 잡기 위해서 힘을 기르려고 5월 내내 그 알을 먹었던 것이다.
노인은 또 어부들이 어구를 보관해 두는 판잣집으로 가서 상어 간유를 매일 한잔씩 마셨다. 상어 간유는 큰 드럼통에 담겨 있었는데, 원하는 어부들은 누구나 마시도록 그곳에 놓아둔 것이었다. 대부분의 어부들은 그 독특한 맛을 싫어했다. 그러나 간유를 먹는 일은 그들이 일어나야 하는 시각에 일어나는 것보다는 덜 괴로웠다. 또 간유는 사소한 감기나 유행성 감기에 효과가 있었고, 눈에도 좋았다.
노인은 머리 위에서 다시금 새가 빙빙 도는 것을 보았다.
"고기를 찾았구나."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그러나 아까처럼 해면으로 뛰어 오르는 날치도 없었고 미끼고기들도 흩어져 있지가 않았다. 다랑어 새끼 한 마리가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가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다랑어의 몸통은 햇빛을 받아 찬란한 은빛으로 빛났다. 한 마리가 물 속으로 떨어지고 나자 연달아 다른 다랑어들이 뛰어 오르더니 사방으로 곤두박질치며 정신을 혼란시켰다. 그놈들은 물을 마구 휘저으며 미끼를 따라 길게 뛰어 올랐다 떨어지곤 했다. 머리 위의 새는 바로 그 미끼 주위를 맴돌며 쫓고 있는 것이었다. 저것들이 저렇게 빨리 도망가지만 않는다면 내가 따라갈 텐데,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노인은 고기 떼가 물결을 하얗게 일으키며, 겁을 먹고 물 위로 쫓겨 올라오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칠새라 먹이를 따라 쏜살같이 내려와서 물 속에 주둥이를 처박는 새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
"낚시에는 새가 큰 도움이 된단 말이야."
노인이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고리를 만들어 밟고 있던 고물 쪽 낚싯줄이 순간 팽팽해졌다. 노인은 재빨리 손에서 노를 놓고 줄을 단단히 잡아 끌어들이려 했다. 그때 다랑어 새끼가 몸을 부르르 떨며 낚싯줄을 잡아 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줄을 잡아 당길 수록 진동은 더해 갔고 물속에서 푸득이는 고기의 푸른 잔등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노인이 고기를 뱃전으로 휙 끌어들이기 직전에 배가 금빛으로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단단한 총알처럼 생긴 다랑어가 크고 멍한 두 눈을 뻐끔하게 뜬 채 그물 쪽에서 햇빛을 받으며 누워 있었다. 그놈은 균형잡힌 꼬리로 배의 널빤지를 푸드득 때리면서 생명을 재촉하고 있었다. 노인은 친절한 마음을 발휘하여 다랑어의 머리를 때려서 즉사시켰다. 그리고 아직도 떨고 있는 그 몸뚱이를 고물 구석진 곳으로 던졌다.
"다랑어야."
노인은 기분좋게 중얼거렸다.
"좋은 미끼가 되겠구나, 못해도 10파운드는 나가겠는 걸."
노인은 자신이 언제부터 혼자 있을 때도 소리내어 말하기 시작했는지 잘 기억 할 수가 없었다. 옛날에는 혼자 있을 때 곧 잘 노래를 불렀다. 고깃배나 거북잡이 배를 타고 밤에 당직을 하면서 혼자 노를 젓고 있을 때는 이따금 노래를 불렀다. 아마 소년이 떠난 후 혼자 있게 되면서부터 이렇게 소리내어 말하기 시작했으리라. 그러나 노인은 그것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었다. 노인과 소년이 함께 고기잡이를 할 때도 꼭 필요한 때만 얘기를 하곤 했었다. 그들은 밤이라든지 악천후로 인해 별수없이 갇혀 있을 때에만 얘기를 했다. 바다에서는 쓸데없는 얘기를 않는 것이 좋다고들 생각했고, 노인도 늘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부들은 대부분 그런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노인의 얘기를 귀찮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노인은 자기의 생각을 자꾸만 소리내어 말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들이 내가 혼자서 이렇게 소리내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아마 미친 줄로 생각하겠지."
노인은 다시 소리내어 말했다.
"그러나 내가 미치지 않았으니까 상관할 것 없어. 그런데 돈 많은 사람들은 배에서도 원하면 언제든지 말을 해주고 야구 얘기를 들려주는 '라디오'란 친구를 가지고 있어."
하지만 지금은 야구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은 꼭 한 가지 일만 생각할 때인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내가 태어난 것이니까 말이다. 고기떼 주위에는 반드시 큰 놈이 있을 거야. 노인은 생각했다. 나는 지금 먹이를 쫓고 있는 다랑어들 중에서 낙오한 놈 한 마리를 잡았을 뿐이다. 그런데 다른 놈들은 이미 재빨리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오늘은 어째 물 위로 떠 오른 놈마다 죄다 빨리 달리고, 또 동북 쪽으로 달린단 말인가. 때가 그럴 때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무슨 날씨의 변화라도 있다는 얘긴가?
노인은 이제 더 이상 해안의 초록빛을 볼 수가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마치 눈으로 덮인 듯 희고 푸른 산봉우리와 위로 또 하나의 높은 설산처럼 솟아 있는 구름밖에 없었다. 바다는 대단히 짙은 색이었고 광선이 물 속에서 무지개 색깔을 내고 있었다. 해가 높이 솟았으므로 무수한 플랑크톤의 조각들은 사라졌다. 대신 푸른 물 속으로 들여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곧바로 드리운 낚싯줄과 더불어 거대한 프리즘 현상뿐이었다.
다랑어 떼는 다시 물 속 깊이 내려가 버렸다. 어부들은 이들 고기의 종류를 보통 다랑어라 불렀고, 고기를 팔러 나올 때나 미끼 고기와 바꾸려고 할 때만 제 이름을 부르며 구별했다. 이제 햇살이 뜨거워질 시간이었다. 노인은 목덜미에 햇살의 따가움을 느끼게 되었다. 노를 저을 때마다 땀이 등을 타고 줄줄 흘러 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은 생각했다. 이대로 가만히 배를 띄워 놓고, 고기가 물면 깨어나게끔 발가락에다 낚싯줄을 감아놓고 잠을 자면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여든 닷새째 날이다. 정신차려서 낚시질을 해야 한다고.
바로 그때였다. 물 위에 나와 있던 초록색 막대기 중 하나가 물 속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오냐."
노인은 눈을 빛내며 배에 부딪치지 않게끔 조심해서 노를 노받이에 걸었다. 그리고 팔을 뻗어 낚싯줄을 잡은 뒤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우고 가만히 들었다. 그러나 낚싯줄이 당겨지거나 무거운 감각이 없어서 그냥 가볍게 잡고만 있었다. 그때 또 그런 느낌이 전해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한결같이 무게를 느끼도록 당기는 것이 아니고, 시험삼아 건드려 보는 것이었다. 노인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백 길 물 속에서 지금 '마놀린'이 낚시 바늘과 그 뾰족한 끝을 감싸고 있는 정어리를 먹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또 새끼 다랑어의 머리통이 있었고, 손으로 벌려서 만든 낚시가 삐죽 튀어 나와 있을 것이었다.
노인은 왼손으로 낚싯줄을 조심스럽게 잡은 뒤 낚싯대에서 풀어 내었다. 고기가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도록 손가락 사이로 슬슬 줄을 풀어 놓아 줄 단계가 된 것이다.
노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이처럼 멀리 나왔겠다. 그리고 9월이니까 아마 틀림없이 큰 놈일 것이다. 고기야, 먹어라, 먹어. 어서 제발 먹어다오. 600피트 아래의 어둡고 찬 물 속에 있으니 너나 미끼나 얼마나 싱싱하겠니, 어둠 속에서 한 바퀴 더 돌고 와서 나머지 미끼까지 마저 먹어 주려무나.
노인은 고기가 미끼를 가볍게 가만가만 잡아 당기는 것을 느끼며 부탁하듯 혼잣말을 했다. 그러나 낚시에 끼워 놓은 정어리 머리를 뜯어내는 것이 어려운지 더 힘차게 잡아 당기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또 잠잠했다.
"자,"
노인은 자신있게 소리내어 말했다.
"한 바퀴 더 돌아라. 그리고 어서 냄새를 좀 더 맡아 봐. 구수하잖아? 자, 실컷 먹어라. 다랑어도 있지 않은가, 단단하고 차가운 것이 맛이 좋단다. 고기야, 망설이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어서 먹어라."
그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낚싯줄을 잡아들고 끈질기게 기다렸다. 고기가 아래 위로 헤엄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줄과 다른 줄을 동시에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고기가 조금 전처럼 살며시 미끼를 건드려 보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먹을 거야."
노인은 마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느님, 제발 먹게 해주십시오."
그런데도 고기는 더 이상 미끼를 먹지 않았다. 멀리 가버렸는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냐,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절대로 가 버릴 리가 없어. 아마 이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있을 거야. 전에 낚시에 한 번 걸린 적이 있어서 의심이 많은 놈인가 보지."
그때 노인은 낚싯줄이 다시 약하게 떠는 것을 느끼고 뛸듯이 기뻤다. 그리고 잠시후 무엇인지 세찬,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서운 것을 느꼈다. 고기의 무게였다. 그래서 노인은 아래로 아래로 자꾸만 줄을 풀어 주었다. 이미 두 개의 예비 사리 중 하나를 다 풀어 주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로 줄이 풀려 나갈때는 거의 줄을 누르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대단한 무게만은 느낄 수 있었다.
"이 녀석 봐라."
하고 그는 말했다.
그는 중얼거리다 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미끼를 옆으로 물고 달아나고 있구나. 하지만 그러다가 한 바퀴 돌아와서 미끼를 삼켜 버리겠지. 그러나 노인은 결코 그 생각만은 말하지 않았다. 좋은 일일수록 방정맞게 지껄여 대면 될 일도 잘 안 된다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놈이 얼마나 큰 고기인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고기가 어둠 속에서 다랑어를 물고 달아나는 모양을 상상했다. 그때 고기의 움직임이 정지하는 것을 느꼈으나 무게는 아직도 그대로였다. 그러다가 더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자 노인은 서둘러 다시 줄을 또 풀었다. 그는 엄지와 검지를 잠시 꽉 쥐어 보았다. 고기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지면서 줄이 똑바로 아래로 내려갔다.
"드디어 먹었군."
노인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 잘 먹도록 해야지."
노인은 손가락 사이로 줄이 계속 풀려 나가도록 해놓고, 왼손으로는 끄트머리를 옆에 있던 낚싯줄의 두 예비 사리 고리에다 단단히 묶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노인은 지금 쓰고 있는 사리 이외에도 40길짜리의 사리를 세 개나 더 갖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삼켜라 "
그는 주문하듯 중얼거렸다.
"토하지 않도록 잘 삼키란 말이다."
그래서 마침내 낚시 끄트머리가 심장에 박혀 너를 죽일 수 있도록 꿀꺽 삼켜 버려라, 하고 노인은 주문했다. 그리고 최후에는 쉽게 떠올라서 작살로 널 찌를 수 있게 해다오. 자, 다 됐지? 실컷 먹었겠지?
"됐어."
노인은 소리내어 말한 뒤 두 손으로 힘있게 줄을 낚아 챘다. 1야드쯤 낚싯줄을 끌어들인 다음에 팔힘을 다하여, 또 몸의 무게를 축으로 한뒤 좌우 팔을 열심히 움직이며 연거푸 낚아 챘다.
그러나 놈은 꿈쩍도 안 했다. 고기는 오히려 천천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놈을 한치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노인이 쓰는 낚싯줄은 매우 튼튼하며 무겁고 큰 고기를 낚는데 알맞게 만든 것이다. 그것을 등에 메고 있자니 마침내 팽팽해지며 줄에서 물방울이 튀었다. 그러더니 물 속에서 천천히 쉿쉿하는 소리가 났다. 노인은 노좌석에 버티고 앉은 채 끌리는 힘에 맞서 몸을 뒤로 젖히며 계속 줄을 잡고 있었다. 배가 서북 쪽을 향해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기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그저 평온하게 잔잔한 바다 위를 천천히 달리는 것 같았다. 다른 미끼는 아직 물 속에 있었지만 입질이 없어서 손댈 필요도 없었다.
"이럴 때 그 애가 있었으면."
하고 노인은 소리내어 말했다.
"나는 지금 고기한테 끌려가는 중인데, 내 몸에 밧줄을 걸고 있으니 마치 끌려 가는 닻줄 기둥이 된 셈이군. 줄을 더 세게 당길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 고기란 놈이 줄을 끊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조심해야 해. 나는 힘이 닿는 데까지 그놈을 잡고 있어야만 해. 또 그놈이 필요로 할 때는 줄을 풀어 주어야 한다. 그래도 놈이 옆으로만 달리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노인은 고기에게 끌려 가면서도 끊임없이 생각했다. 만약 녀석이 아래로 내려갈 작정을 하면 그땐 어떻게 하지? 그러다가 혹 물 밑으로 내려가서 죽기라도 한다면 어쩌지? 그러나 무슨 방도가 있겠지. 상황에 따라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도란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노인은 줄을 등에 메고 물 속으로 뻗은 줄의 경사와 서북 쪽으로 달리는 배를 지켜보며 잠시 두려움을 느꼈다.
이러다가 죽을지도 몰라. 이 짓을 영원히 계속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네시간이 지난 후에도 고기는 여전히 줄기차게 배를 끌고 바다 멀리로 헤엄쳐 나가고 있었다. 그때까지 노인도 여전히 줄을 등에 멘 채 버티고 있었다.
"이 녀석을 낚은 것이 정오였지, 아마?"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런데 아직 한번도 네 얼굴을 보지 못했구나." *
-계속-